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17화 (117/328)

살인의 기억 117화

10. 국가수사본부 수사국(3)

국가수사본부에 발령받은 다음 날.

포장마차 회식을 마치고, 숙취에 시달리며 출근한 직후 나는 최영현의 전화를 받았다.

기쁜 소식이었다. 혼수상태로 병원에 있던 권진아 씨의 의식이 회복되었다는 소식. 나는 연주, 관우와 함께 그녀를 만나러 갔다.

지현우를 검찰에 송치하긴 했지만 추가 죄목이 있을 수 있기에 생존자 인터뷰는 필수였기 때문이다.

병원 앞에 도착하자, 범인 검거 후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해제되었지만, 만일을 위해 며칠 더 경비를 하라는 최영현의 지시로 문 앞을 지키는 순경이 보인다.

간단히 신분 확인 절차를 끝내고 노크를 했지만, 안에서는 답이 없다. 자그마한 병실 창문으로 안을 보니, 침대에 앉은 권진아가 힘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쩌면 지금 그녀는 의식이 없던 상태가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눈을 떴을 때 하룻밤의 꿈이었으면 했던 일가족 몰살 사건이 실제임을 알게 된 그녀는 얼마나 끔찍한 마음일까?

관우는 창문에 붙어 권진아를 바라보다 머리를 긁었다.

“아무래도 우르르 들어가는 건 좀 그렇네요.”

나도 동감이다. 마음 같아서는 동성인 연주만 들여보내고 싶은 마음이지만, 생존자 인터뷰는 매우 중요하다.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더라도 직접 들어야 한다.

“나와 연주만 들어간다. 관우는 대기해.”

“예, 과장님.”

나는 최대한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문 옆으로 비켜났다. 문을 열고 보이는 첫 인물이 남자이면 권진아가 놀랄 수 있기 때문에 연주 얼굴부터 먼저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연주는 내 뜻을 눈치채고 병실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실례합니다, 권진아 씨.”

“…….”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내게 연주가 눈짓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소리를 죽여 병실 안으로 들어왔지만 침대에 앉은 권진아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분명히 연주의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그녀는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바깥만 보고 있다.

병실에 오기 전에 담당 의사와 인터뷰가 가능한 상태라는 확인을 받고 온 것이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로 보이지 않는다.

파리하게 질린 얼굴. 관리를 하지 않아 산발인 머리. 온몸에 힘을 풀고 늘어진 몸은 손바닥이 위로 향한 상태로 축 늘어져 있다.

나는 간이의자 두 개를 가지고 와 권진아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대신 고개만 조금 돌려도 나와 눈이 마주치는 자리에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역할은 연주에게 맡겼다. 연주는 침대 바로 옆에 의자를 놓고 앉은 후 조심스럽게 말했다.

“권진아 씨, 경찰입니다.”

“…….”

권진아는 여전히 답이 없다. 연주는 그녀가 가장 듣고 싶어 할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지현우는 체포되었습니다.”

권진아의 신체가 약간의 반응을 일으킨다.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손목이 약간 움찔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시선은 창밖에 있다.

연주는 잠시 시간을 준 후 말을 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현재 검찰에 송치된 지현우를 기소하기 전에 확인해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묻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우시면 고개만 끄덕여 주시겠습니까?”

권진아는 가만히 창밖을 보고만 있다. 연주가 날 힐끔 본다. 나는 권진아의 안색을 살피며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만약 계속 답을 하지 않는다면 인터뷰 불가로 보고 철수하는 쪽이 옳다.

연주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사건 당일, 지현우가 권진아 씨와…… 진아 씨의 부……모님, 강아지 외에 다른 피해를 입힌 사실이 있습니까?”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권진아가 몸을 바르르 떤다.

나는 그녀의 신체 변화를 눈여겨보며 여차하면 의사와 간호사를 호출할 수 있는 비상벨을 누르기 위해 벨 위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그녀는 잠시 몸을 떨다 잠잠해진다.

연주가 다시 날 본다. 계속해도 되겠냐는 의미.

나는 권진아를 살폈다. 힘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권진아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범죄의 기억. 누군가는 또 다른 인격을 만들어내 자기방어를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참혹한 기억.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이 무척 죄스럽다.

나는 권진아의 상태가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다 고개를 저었다.

‘인터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신체보다는 정신적인 충격이 커. 이대로 인터뷰 강행하다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녀는 일가족이 몰살당했다. 게다가 양 부모님 모두 외아들, 외동딸이라 친척도 없다. 이렇게 큰 사건이 났지만 병원에 그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 상황이 악화되어 상태가 나빠지면 보살펴 줄 가족이 없는 것이다.

나는 연주에게 그만 일어나자는 신호를 보내고 일어나 의자를 원래 있던 곳에 정리하고 돌아섰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불쑥 다가왔다.

“어머! 형사님!”

권진아의 친구 김지혜다. 자칫하면 지현우에게 가족이 몰살당할 뻔했던 그녀는 날 보고 반갑게 달려와 내 팔에 매달린다.

“형사님, 언제 오시나 기다렸어요.”

나는 조카처럼 애교 있게 매달리는 김지혜를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계속 여기 계시는 겁니까?”

김지혜가 여전히 멍하게 있는 권진아를 눈짓하며 말했다.

“친구가 저런 상태인데 당연하죠. 교수님들께 허락받았어요. 여기 있는 동안 출석 인정해 주시기로 해서 제가 와 있어요. 주 2회는 명훈이가 오고요.”

대전에서 서울까지 오가기 쉽지 않을 텐데 친구들 사이의 우애가 좋구나. 다행이다. 권진아가 완벽한 외톨이가 아니라 친구가 있어서. 이런 때 보살펴 줄 누군가가 곁에 있어서.

만약 내가 이런 일을 당하면 누가 날 보살펴 줄까? 연주? 관우?

역시 강혁 아저씨이겠지. 그러고 보니 난 아저씨 가족관계도 모르네. 아저씨는 나에 대해 뭐든 다 알고 있는데 내가 너무 무심한 것 같다. 나중에 물어봐야지.

나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권진아 씨 사건 인터뷰를 따러 왔는데 정신적 충격이 크신 것 같아 오늘은 돌아가려 합니다.”

김지혜가 슬픈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진아가 아직 좀.”

“네,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피해자에게 경찰은 불청객이다. 범인은 잡아주기를 바라지만 오히려 피해자를 추궁하듯 심문하는 것이 반감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물론 수사를 위한 것이지만 내가 피해자 입장이라도 싫을 것 같다. 빨리 사라져 주는 것이 좋다.

나와 연주가 나가려 하자, 김지혜가 얼른 말했다.

“아, 형사님.”

“예?”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엄마도 형사님 만나면 꼭 인사드리라고 하셨고.”

“…….”

김지혜의 가족 입장에서는 내가 생명의 은인일 것이다. 그때 내가 피하라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김지혜의 가족이 피해를 입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그저 내 일을 한 것뿐이다. 이걸로 우쭐할 생각은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지만 김지혜는 고마움이 가시지 않는지 계속 말을 건다.

“그때 형사님이 가족들을 피신시키라고 전화 주지 않으셨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만약 그랬다면 지금 저기 권진아 씨 옆에 당신도 누워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 최영현과 연주가 그녀의 집 앞에서 잠복 중이었기 때문이다. 대응이 늦어 다칠 수는 있었겠지만, 두 사람이 가만있지 않았을 테니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뭐, 그런 것까지 이 사람이 알 필요는 없지.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행입니다. 그럼 이만.”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것 같아 계면쩍은 얼굴로 김지혜를 피해 복도로 나가려던 찰나, 김지혜의 탄성이 들린다.

“어머, 진아야?”

나가려던 나와 연주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멍하게 초점 잃은 눈빛으로 창밖만 바라보던 권진아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김지혜가 얼른 다가가 권진아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며 말했다.

“좀 어때? 정신 돌아온 거야?’

권진아가 갈라진 입술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형사님이 그때 그 사람…… 이야?”

“어머, 내 말 다 들었던 거야? 난 네가 정신이 없어 보여서 내 말 하나도 못 들은 줄 알았어. 맞아, 내가 말했던 그 형사님이셔.”

권진아가 파리한 안색으로 천천히 손을 내민다. 힘이 없어 손을 잘 움직이지 못하고 팔을 허우적거린다. 가까이 오라는 뜻일까?

나는 연주에게 잠깐 대기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천천히 그녀의 발 쪽으로 걸어갔다. 옆으로 다가가면 그녀가 위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권진아 씨.”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야 처음 마주한 피해자. 권진아는 힘없는 눈으로 날 바라보며 간신히 입술을 달싹인다.

“인터뷰, 하세요…….”

“…….”

해도 될까? 이런 상태의 피해자에게 또다시 끔찍한 기억을 일깨워도 되는 걸까? 나는 형사의 직분과 인간으로의 동정과 연민 사이에서 방황했다.

권진아 옆에 앉은 김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질문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사건의 개요를 설명드릴 겁니다. 만약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거나, 추가하실 부분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권진아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과연 지금 내 행동이 맞는지. 나는 그나마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연주가 했던 것처럼 그녀가 가장 듣고 싶어 할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혹시 아까 그녀가 듣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현우는 체포되었습니다.”

“…….”

권진아는 아무 말 없이 날 바라본다.

그 후로 권진아의 신체 확인 결과 성폭행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성범죄 사실이 있냐는 질문과, 지현우가 부모님을 이미 사망케 한 뒤 그런 짓을 벌인 것이 맞냐는 하기 싫은 질문도 했다.

피해자 입장에서 끔찍하지만 이 질문은 법정에서 범죄자의 죄질을 판단할 때 중요한 근거로 쓰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한다.

내 예상과 같이 권진아는 부모님의 시신 옆에서 그런 짓을 당했다. 뻔뻔하게도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점을 들어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들기까지 했다고 한다.

나는 최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내리눌렀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이 사건의 피해자다. 내가 아무리 울분에 찼다고 해도 이 사람만 하겠는가?

하기 싫은 질문들을 모두 던지고, 특별히 추가할 점이 없다는 듯 가만히 날 바라만 보고 있는 권진아에게 허리를 숙였다.

“심신이 피로하시고, 힘드실 텐데 최대의 협조를 보여주신 점, 경찰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권진아가 친구의 도움을 받아 힘들게 상체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지혜 가족을 지켜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형사님.”

나는 권진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현우를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아니라, 친구의 가족을 지켜준 것이 고맙다는 권진아.

어쩌면 나와 연주는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 아닐까? 그녀가 가장 듣고 싶어 한 말은 지현우를 체포했다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녀에게 꼭 이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만히 권진아와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권진아 씨.”

“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지금 제 말이 당신 가슴에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우리가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말했던 것이 가슴에 와닿을 날이 있을 겁니다.”

멍한 얼굴의 권진아가 일순간 와락 눈물을 쏟는다.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리는 권진아. 하…… 괜히 주제넘은 말을 한 걸까?

김지혜가 얼른 권진아의 등을 두드리며 진정시킨다.

“괜찮아, 진아야. 괜찮아.”

나는 짧은 한숨을 쉬며 허리를 숙였다.

“주제넘은 말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빨리 피하는 것이 좋겠다. 괜한 말을 해버린 모양이다. 얼른 연주와 함께 병실 밖으로 벗어나려던 바로 그때. 뒤에서 울음 섞인 권진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마워요…… 흐흑,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요……흐흐흑…….”

나는 권진아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눈이 붉게 충혈되어 눈물을 참고 있는 스스로를 들키지 않기 위해.

“그럼 부디…….”

부디 평안하시길.

부디 편안해지시길.

부디 다시 행복해지시길.

부디 다시 웃게 될 날이 오시기를.

마음속에 수많은 말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중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병실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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