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18화
11. 주유소 습격사건(1)
국가수사본부 수사2과.
아직 배당된 사건이 없어 사무실 청소와 정리에 열을 올리고 있는 연주. 주로 기계설비와 관련된 장비를 챙기는 건 관우의 일이었기에, 연주는 정리와 청소를 맡았다.
걸레를 들고 열심히 먼지 쌓인 곳을 닦고 있는 연주. 관우가 그런 연주를 보며 물었다.
“청소부 아주머니가 하실 일인데, 왜 형사가 그런 일까지 해?”
연주가 열심히 걸레질을 하며 말했다.
“그럼 노냐? 사람이 월급을 받았으면 그만한 일을 해야지. 난 월급 루팡 짓은 딱 질색이야. 사건 배당 없으면 청소라도 해야 내 몫을 하는 것 같거든.”
“허, 성격 참 특이하네. 대충 게임이나 한판 하면 될걸.”
“과장님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지, 정관우?”
관우는 내가 있다는 생각을 못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가 움찔하며 내 눈치를 본다.
아직 권진아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는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귀로는 두 사람 이야기가 들렸지만 사무실에서 저 정도 이야기도 편히 못 하게 할 수는 없다. 그저 농담일 뿐이다. 말로는 게임을 하니 어쩌니 하는 관우도 실은 오늘 하루 종일 장비 세팅을 했기 때문이다.
관우는 내가 반응을 하지 않자 자라목을 하고 다시 장비 세팅을 시작하다, 연주에게 조용히 물었다.
“1과는 사건 배당받았다고 하던데. 들었어?”
연주가 날 슬쩍 보며 속삭인다.
“어, 어제 사건 배당 들어갔어.”
“근데 우린 왜 안 오지?”
“몰라.”
다 들린다, 이놈들아.
나는 다 마신 커피 잔을 구겨 쓰레기통에 넣은 후 말했다.
“일 없으면 좋은 거다. 우리가 놀면 그만큼 세상이 평화롭다는 거니까.”
관우가 계면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는다.
“하하, 그래도 세금으로 돈 받는 처지에 놀긴 좀 그래서.”
놀긴 뭘 놀아, 이 녀석아. 하루 종일 일해놓고.
그때, 사무실 입성 첫날에 관우가 세팅한 내 자리 전화가 울린다.
이 사무실에 오고 처음 울리는 전화다. 형사들 사무실에 전화벨 울리는 것이 뭐 대수이겠냐마는 수사국 발령 후 아무 사건도 배당받지 못하고 있다가 처음 울리는 전화벨이라 모두 긴장한 눈빛이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수화기에 손을 올리고 두 사람과 눈빛을 교환 후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다.
“예, 국가수사본부 수사2과 현도경 경감입니다.”
-어, 도경아. 애들 둘만 수시기획조정실로 보내.
장영훈 본부장님이다.
“사건입니까?”
-그래, 와서 사건자료 받아가.
“알겠습니다.”
-첫 사건이지?
“예, 본부장님.”
-그래, 1과도 어제 배당받았다. 애들 잘 이끌고. 형님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계시니 잘해. 너만 믿는다?
“예.”
-새끼, 농담도 좀 하고 그러지 딱딱하긴.
미친, 내가 국가수사본부장이랑 농담 따먹기 하게 생겼냐? 당신이 강혁 아저씨도 아니고. 내가 별 답을 하지 않자 장영훈 본부장이 말했다.
-하여간 애들 둘만 보내. 박스로 네 개니까 혼자 못 들어.
“예, 알겠습니다.”
관우가 수화기 볼륨을 높여놔 밖에서도 다 들린 모양인지 전화를 끊기도 전에 관우와 연주가 신나게 밖으로 뛰어나가는 것이 보인다.
연주는 왜 가는 거야. 둘 오라고 하길래 내가 가려고 했는데. 박스 그거 다 종이서류가 든 거라 무거울 텐데.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돌아온 연주는 빈손으로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이 나갔는데 돌아온 건 셋이다.
키가 꽤 크고 마른 체격의 남자 형사가 연주 대신 박스를 들고 온다. 연주가 문을 잡고 있고 관우가 먼저 들어와 말했다.
“여기 위에 올려주세요.”
“예.”
남자 형사는 박스를 놓기 전부터 날 힐끔거리다가 박스 정리를 마친 후 바로 내게 달려와 경례를 한다.
“충성.”
가만히 남자를 보던 내가 물었다.
“누구?”
“여주경찰서 형사과 최우진 경사입니다.”
“아, 브리핑?”
“예! 브리핑 밑 사건 해결까지 수사국에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여주경찰서 소속 형사과. 이번 사건은 여주에서 발생한 사건이며, 여주경찰서에서 해결하기에 사건 사이즈가 크다고 판단해 국가수사본부로 이관된 사건인 모양이다.
최우진은 말끔하게 잘생긴 타입의 형사다. 경사라는 계급을 보니 경대 출신은 아닌 것 같다.
붙임성 좋은 관우가 악수를 청하며 물었다.
“같은 경사네요. 여기 연주도 경사입니다.”
최우진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몇 살이세요?”
“스물여섯입니다.”
“어, 내가 형이네.”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어……?”
관우가 움찔 놀란다. 살다 살다 자기보다 붙임성 좋은 놈은 처음 본다는 표정이다. 관우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저기, 연주도 동갑인데.”
최우진이 허리를 구십 도로 꺾으며 말했다.
“누님!”
연주가 당황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친다.
“누, 누, 누님이요?”
“예! 누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상한 캐릭터구나. 뭐, 싸가지 없는 놈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보다 낫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인사는 그쯤하고 바로 브리핑 시작하지. 모두 회의실로.”
최우진은 얼른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회의실로 달려간다. 관우는 꽤 마음에 드는지 연신 싱글벙글 웃는다.
“이야, 쟤 우리 팀 오면 나 막내 탈출인가?”
연주와 동갑이지만 항상 막내 취급 받는 관우. 계급도 경사인데 막내는 좀 너무하긴 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 팀 티오도 안 나왔으니 충원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잠시 준비할 시간을 준 뒤 회의실 내에 빔 프로젝터가 켜지는 것을 확인 후에 들어가자, 이미 준비를 마친 최우진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최우진이 다시 허리를 숙인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최우진입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밤무대 나온 무명 가수도 아니고 무슨 자기소개를 몇 번이나 하고 그래? 나는 됐다는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사건 브리핑하죠.”
“예, 경감님!”
최우진이 모니터에 사진을 띄운다. 서로 다른 주유소 세 곳이 보인다.
“사건 발생일은 5월 1일, 최초 사건 발생 지역은 여주휴게소 내에 있는 금천 주유소입니다. 같은 날 무려 세 곳의 주유소에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주유소에서 무슨 사건이 벌어진 걸까? 우리는 잠자코 최우진의 설명을 기다렸다.
“5월 1일 20시 33분, 휴게소 내 주유소에 침입해 계산대에서 금품을 훔치던 범인이 주유소 직원에게 발견되었습니다. 범인은 직원을 폭행 후 팔과 등을 흉기로 찔러 상해를 입힌 후 현금 37만 원을 갈취하고 도주했습니다.”
강도 사건인가? 음, 강도 사건도 수사국 소관이 맞긴 한데. 이 정도 사이즈가 수사국까지 올라올 사건인 걸까? 관할 경찰서에서 맡아도 충분한 사건 같은데. 더 들어보고 판단해야 될 것 같다.
최우진이 두 번째 주유소를 지목하며 말했다.
“몇 시간 뒤이지만 날짜가 바뀌어 5월 2일이 된 새벽 03시경. 범인들은 여주IC 부근에 있는 톨게이트 주유소를 습격하여 두 명의 직원을 폭행, 주유소 뒤편에 있는 당직실에 감금 후 현금 210만 원을 강탈해 도주했습니다.”
첫 번째 사건보다 피해액이 좀 커지긴 했다. 다행히 누굴 죽이려는 목적은 아닌 모양이다. 최우진이 다시 말을 잇는다.
“세 번째 주유소는 새벽 5시 40분경에 습격받았습니다.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에 인접해 있는 세정 주유소이며, 현금 310만 원을 강탈하고 직원들을 폭행 후 도주했습니다.”
관우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강도치사? 이거 우리가 맡을 사이즈 맞는 건가요?”
녀석. 국가수사본부 왔다고 강도치사 사건은 성에 안 차는 거냐?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눈치 빠른 연주가 관우 뒤통수를 친다.
“조용히 해, 바보야.”
인상을 구기며 덤벼들려던 관우가 내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입을 닫는다. 나는 최우진을 보며 말했다.
“계속하세요.”
“예, 경감님!”
키보드를 조작하는 최우진. 그러자 또다시 서로 다른 주유소 세 곳의 사진이 나온다. 그때부터 나는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다.
‘연쇄 강도?’
최우진이 사진을 보며 말했다.
“이 세 곳 역시 여주 소재의 주유소입니다. 사건 발생 일자는 올해 4월 초입니다. 여주경찰서는 사건의 범행 수법이 유사함을 들어 여섯 개의 사건이 모두 같은 범인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범인들이 무려 4~5월 두 달에 걸쳐 총 여섯 개의 주유소를 털었는데 못 잡았다는 거다. 당연히 무능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고, 결국 이관되었겠지.
보통 관할서가 처리하기 힘든 일은 광역수사대가 맞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경우에 남는 팀이 우리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일단 기본적인 정보부터 물었다.
“CCTV 확인 결과는?”
최우진이 화면을 전환하자, 주유소에서 찍힌 범인들의 모습이 여러 장의 사진으로 보인다.
하나같이 구멍이 세 개 뚫린 니트 소재의 복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 각자 손에 야구 배트와 칼, 삽 같은 흉기를 들고 있다.
“여섯 곳 모두에서 CCTV가 확인되었습니다만, 범인들의 얼굴은 식별할 수 없었습니다.”
관우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도주로 추적은요?”
최우진이 부끄러운 얼굴로 말했다.
“서울 경찰들은 모르시겠지만, 지방은 아직 모든 도로에 사각 없이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범인들은 주유소를 공격 후, 사라졌습니다.”
CCTV로 찾는 건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지방의 사정은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관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쟤들이 주유소 털러 걸어왔어요?”
“예.”
“…….”
“걸어왔다고요? 차 안 타고?”
“예, 갈 때도 걸어갔습니다.”
차를 추적하면 될 거 아니냐 말을 하려 했던 관우의 입이 다물어진다.
하룻밤 새에 주유소 세 곳을 털었는데 걸어 다녔다고? 그게 말이 되나? 나는 사진들을 보며 말했다.
“같은 날 범행이 이루어진 주유소들 위치 좀 봅시다.”
최우진은 미리 준비했는지 바로 주유소 위치가 표기된 여주 지도를 띄운다.
“1차 사건이 난 주유소에서 2차 사건이 발생한 주유소까지의 거리는 12㎞, 2차에서 3차 발생지까지의 거리는 6㎞입니다. 사건 간 시간 차는 1차에서 2차가 6시간 30분. 2차에서 3차는 2시간 40분입니다.”
애매한 거리다. 도보로 이동하기 먼 거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동이 불가능한 시간은 아니다.
마라톤 선수들은 42.195㎞를 두 시간 조금 넘은 시간에 주파한다. 물론 아마추어는 5시간가량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마라톤에 비해 이동 거리가 짧다. 범인들은 진짜 도보로 이동한 걸까?
CCTV 분석 전문가인 관우가 일어나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3번 국도와 5번 국도 CCTV는요? 사건 전후 다 확인했어요?”
“예, 아무것도 안 나왔습니다. 특히 3번 사건의 경우 매우 늦은 시간이라 해당 시간에 이동한 차량도 두 대뿐이었는데 두 대의 차주를 모두 조사했습니다만,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관우는 팔짱을 끼고 주유소 사진을 뚫어지게 보다 말했다.
“여기 주유소 뒤에 나무가 잔뜩 있네. 혹시 뒤가 산이에요?”
“예, 맞습니다.”
“이 새끼들 산으로 튀었네.”
미리 도주 경로까지 준비한 계획범죄다. 최우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정말 중요한 내용이 아직 남았습니다.”
관우가 계속하라는 듯 자리에 앉자 최우진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사건이 국가수사본부로 이관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부터 본론인 모양이다. 최우진은 빔에 총 세 사건에서 찍힌 범인들의 모습을 동시에 띄우며 말했다.
“자세히 보시면 각 사건마다 네 명의 범인이 보일 겁니다.”
그의 말처럼 세 개의 사진 모두 각자 네 명의 범인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옷이 모두 다릅니다.”
옷은 바꿔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최우진이 저리 말한다는 건 사진 속의 범인들에게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우진이 다음 자료를 보여준다. 자료가 빔을 통해 쏘아지는 동시에 나와 연주, 관우의 눈이 동시에 커진다. 최우진이 자료를 보며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KCSI에 범인들의 신체 사이즈를 통해 분석을 의뢰한 결과 세 사건에서 찍힌 범인들이 모두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뭐라고? 단순 주유소 강도치사 사건이 아니다. 네 명씩 총 세 사건. 최소 열두 명이 범죄에 가담했다.
지금껏 조용히 브리핑을 듣고 있던 연주가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범죄 단체…… 라는 말인가요?”
최우진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