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19화
11. 주유소 습격사건(2)
범죄 단체. 마약사건도 아니고 강도상해 사건을 조직적으로 저지른다고? 연주가 수첩에 중요 내용들을 메모하다 볼펜 끝을 깨문다.
“음, 보통 사건이 아니네. 강도상해를 조직적으로 한다……. 잘하면 여주가 범죄 집합소가 되겠네요. 빨리 해결해야 되니 이관된 거구나.”
최우진이 약간 불만스러운 얼굴이 된다. 이해는 되는 일이다. 여주경찰서 형사들의 힘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생각될 것이다.
사건이 국가수사본부로 이관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관할서 형사들은 분노했을 것이다. 관할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을 빼앗아 온 것이니까.
관우가 말했다.
“열둘이라고 딱 규정할 순 없지만 일단 대략적인 사이즈를 봤을 때 범인은 다수로 볼 수 있겠네요. 일단 여주 내려가서 주유소 직원들부터 만나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과장님.”
모두가 내 지시를 기다린다. 나는 박수를 한 번 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여주로 내려간다. 최우진 경사?”
최우진이 차려 자세로 답한다.
“예! 과장님!”
“말 편히 해도 되겠나?”
보통은 안 이러지만 아까 보니 관우보다 어려 보이니 괜찮겠지? 최우진은 오히려 반가운 얼굴로 밝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과장님!”
녀석, 아무래도 국가수사본부에 지원 나온 김에 잘 보여서 이쪽에서 일할 기회를 얻고 싶은 모양이다. 뭐, 일 잘하면 안 될 건 없지. 인원도 부족한데. 일단 한번 지켜보자.
“자, 그럼 내려가자. 지리를 모르니 전원 우진이 안내에 따르도록.”
내 지시가 떨어지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튀어 나간다.
* * *
팀원들이 준비하는 동안 장영훈 본부장님께 여주로 내려간다는 점을 보고하기 위해 그의 방을 찾은 나는 방 앞에서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렸다.
잠시 후 들어오라는 말 대신 문이 열린다. 본부장님이 직접 문을 열어줄 리는 없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이 나오며 안을 향해 허리를 숙이는 것이 보인다. 선객이 있었던 모양이다.
옆으로 비켜서 기다리다 굽혔던 허리를 펴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 경감…… 아니, 1과장님.”
수사국 1과장, 오진규 경감.
대전에서 만났던 능력 있는 경감이다. 같은 본부에 있으면서 오늘 처음 얼굴을 본다. 그런데 어쩐지 표정이 썩어 있다. 오진규는 문을 닫고 날 본 뒤 쓴웃음을 지었다.
“간만에 봅니다.”
“이쪽으로 오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예, 저도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오진규 경감의 얼굴이 무척 좋지 않다. 얼마 전에 사건을 배당받았다고 들었는데 경과가 좋지 않은 걸까?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오진규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예, 과장님.”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선배가 고개를 숙인다. 나는 그보다 더 허리를 숙였다.
오진규가 사라지자, 안에서 장영훈의 목소리가 들린다.
“도경이냐?”
나는 멀어지는 오진규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 본부장실 문을 열고 경례를 했다.
“충성.”
“경례 생략해, 매번 얼굴 볼 사이에 볼 때마다 그럴 거냐? 좀 편하게 가자.”
“알겠습니다.”
“여주경찰서 지원 인력 왔지?”
“예, 방금 합류해서 브리핑 들었습니다.”
“바로 내려가냐?”
“예, 가기 전에 보고하러 왔습니다.”
본부장님은 미리 사건 보고를 받았는지 소파로 와 앉으며 말했다.
“잠깐 앉아.”
“예, 본부장님.”
자리에 앉자 본부장님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범인들이 다수다. 단순 조직폭력 사건이라면 모를까 강도상해 사건에 다수가 동원되는 일은 드물어.”
만약 넷 이하의 범인이라면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뭉쳐 범행을 계획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여섯 이상, 최대 열둘의 범죄자가 모였다. 경찰은 이번 일을 꽤 심각하게 보고 있다.
본부장님이 턱을 괴며 말했다.
“피해자들에게 미안하지만 아직 강도상해 정도의 범죄만 저질러 다행이라고 해야 돼. 그대로 두면 더 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옳은 말이다. 만약 범죄자들이 이번 범행에서 강도질한 액수가 크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만약 큰 액수를 훔쳤다면 크게 한탕 해 먹고 해외로 도피할 계획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주유소 세 곳에서 훔친 돈의 총액이 오백만 원이 조금 넘는다. 1차 범행에서의 세 곳은 그보다 더 적다.
최소 인원으로 여섯 명 정도를 놓고 보아도 여섯 번의 범행에서 총 천만 원 미만을 갈취했다. 나눠 가진다면 인당 이백만 원도 안 돌아가는 돈이다.
고작 그 정도 돈을 해 먹겠다고 이렇게 큰일을 벌이진 않았을 것이다. 본부장님도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빨리 잡을수록 피해는 적어진다. 만약 살인사건이라도 나면 그땐 정말 일이 커진다. 경찰과 적당히 협력해 가며 자기들 구역에서 돈 버는 조폭과 완전히 다른 놈들이야.”
“예, 본부장님. 잘 알고 있습니다.”
“좋아, 바로 출발하고. 수사 비용 넉넉하게 책정할 테니 좋은 거 먹고 다녀. 애들 라면 먹이지 말고.”
“예, 본부장님.”
“가 봐.”
“저기…….”
“뭐.”
나는 조금 전에 나간 오진규 과장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엄연히 다른 부서 일인데 물어도 될까?
“방금 오진규 과장님…….”
“후…….”
내 입에서 과장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본부장님이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쉰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더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라 가만히 본부장님의 말을 기다렸다.
몇 번이나 한숨을 쉰 본부장님이 말했다.
“1과에 배당된 수사가 납치 사건이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보통 납치 사건이라면 국가수사본부가 나섰을 리 없다. 하지만 정부 중요 인물 본인이거나 그들의 친인척, 혹은 대중적으로 매우 알려진 연예인일 경우라면 말이 다르다. 누가 납치되었을까?
먼저 묻긴 좀 그래서 가만히 기다리자 본부장님이 말을 잇는다.
“9세 남아였다.”
내 눈이 커졌다. 겨우 9세 남아였다고? 어린이 유괴 사건이었다는 말이야?
“9……세요?”
“휴, 그래.”
“아…….”
유명한 사람의 자식인가? 장영훈이 턱을 괴고 말했다.
“유명 저널리스트의 아들이다. 정부 정책에 반하는 칼럼을 많이 쓴 교수였지만 옳은 소리를 하는 양반이었다. 실제 청와대에서도 그 사람 칼럼을 보고 자기들 잘못을 깨닫는 경우도 있었지. 유괴 소식을 듣고 청와대에서 직접 국가수사본부에서 관장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1과장에게 맡긴 거야.”
아, 그랬구나.
“범인 검거가 어려운 상황입니까?”
본부장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미 잡았다.”
응? 이미 잡았어? 근데 얼굴이 왜 저러지? 설마…… 나는 불현듯 떠오르는 불길한 예감에 입을 다물었다.
본부장님이 긴 한숨을 쉬며 담배를 찾는다.
“범인은 검거했으나, 아이는 죽었다.”
“…….”
“후…….”
장영훈은 그래도 실내에서 담배를 태우진 않는지 담배를 들기만 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검거 과정에서 사망한 겁니까?”
장영훈이 고개를 숙였다.
“아이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수사 압박에 시달린 범인이 죽여 버렸지. 9세밖에 안 된 아이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할 테니 오진규 과장 마음고생이 심할 거야.”
자식 잃은 부모 마음보다는 덜하겠지만 죄의식이 상당할 것이다. 장영훈이 날 힐끔 보며 말했다.
“오 과장 앞에서 말조심하고. 그냥 모른 척해라.”
“예, 본부장님.”
“바쁠 텐데 어서 가 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습관처럼 경례를 하려고 하다 편하게 하라는 본부장님의 말씀이 생각나 적당히 허리를 숙인 후 본부장실을 벗어났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이미 짐을 챙겨 차에서 대기 중인 팀원들이 손짓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건물을 보았다. 오진규 과장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나도 저 상황이었다면 죄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는 날 차에서 지켜보던 연주가 창문을 열고 손짓한다.
“과장님! 여기요!”
나는 살짝 고개를 털었다. 지금은 내 사건에 집중할 때이다.
어떤 놈들일까?
요즘 하도 악마 같은 놈들만 상대해서 그런지 고작 강도상해나 저지르는 놈들이 잔챙이 범죄자같이 느껴진다. 오진규 과장도 그런 악마를 만났던 것이다.
하지만 악마도 새끼 때가 있는 법이다. 그대로 두면 마음속 악이 알을 깨고 나올 것이다. 미리 쳐내야 한다.
“미안, 바로 가자.”
* * *
두 시간 뒤 여주휴게소.
보통 이런 때는 도착 즉시 관우가 먼저 움직였다. 경비실로 가 CCTV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여주경찰서에서 수사하던 사건이므로 최우진이 모든 자료를 이미 구비해 놓았다. 여주경찰서에 가면 CCTV 관련 자료는 모두 재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목격자나 피해자 인터뷰를 주로 맡는 연주가 먼저 주유소 문을 열었다.
창문 밖에서 안을 보니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든 직원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이 보인다. 차가 들어왔음에도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니 여긴 셀프 주유소인 것 같다.
직원이 연주를 발견하고 대화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눈으로 다른 직원들을 살폈다.
내부에 있는 직원은 모두 셋. 그들 모두 부상을 입고 있다. 연주와 대화 중인 남자는 눈과 입 주변에 멍이 들어 있고, 소파에 앉아 있는 직원은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으며, 화장실 앞에서 대걸레를 들고나오는 직원은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다.
관우가 CCTV 위치들을 살피며 최우진에게 물었다.
“주유소 말고, 휴게소 CCTV도 다 가져가셨죠?”
“예, 물론입니다. 앞쪽 도로도 휴게소 전후 10㎞ 영상을 모두 확보했습니다, 형님.”
“흐흐.”
왜 웃냐? 형님이란 소리가 그렇게 좋아? 나는 실소를 흘리며 주유소 뒤편을 눈짓했다.
“관우는 우진이와 산 뒤 편으로 가봐. 범인들 예상 도주 경로 확보하고.”
“예, 과장님. 우진아, 가자.”
최우진과 관우가 사라지고 얼마 후, 인터뷰를 진행하던 연주가 밖으로 나왔다. 나는 유리 안에서 밖을 보고 있는 직원들을 눈짓하며 말했다.
“사장 같아 보이는 사람은 없는데.”
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장님이 좋은 사람인가 봐요. 칼에 찔려서 입원한 직원이 있는 병원에 가 있다고 합니다.”
“음, 뭐 건진 거 있어?”
연주가 메모한 수첩을 펴며 말했다.
“음…… 사건 발생 시간은 20시 33분. 19시부터 교대로 두 명씩 식사 시간이라, 해당 시간에는 원래 둘만 주유소에 있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근무 시간인 둘은 사무실을 비워두고 뒤쪽 세차장 청소를 하는 중이었는데 밥을 먹고 돌아온 두 명이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누가 사무실 금고를 뒤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해요.”
“그래서?”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소리를 쳤는데 뒤에서 누가 뒤통수를 후려갈겼다고 합니다.”
“뒤에서?”
“네, 안에서 훔치던 놈 말고 다른 공범이 사무실 밖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훔치던 놈 말고,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놈들이 직원이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와 폭행했다는 것이다.
연주가 볼펜을 손안에서 돌리며 말했다.
“처음에는 직원 한 명이 격렬하게 반항하다 칼 맞는 걸 보고 다들 얌전히 있었다고 합니다. 자칫하다 죽겠다 싶었다고 하네요. 뭐 결과적으로 한 명은 입원할 만큼 중상을 입었지만 나머지는 경상으로 그쳤고요.”
“범인에게 특이점은 없었고?”
연주가 씩 웃으며 눈짓한다.
“범인들 목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음, 목소리. 뭔가 특이한 목소리라면 몰라. 목소리 정도로는 범인을 검거할 수 없다. 하지만 연주는 조금 밝은 얼굴로 말을 잇는다.
“범인들 목소리가 아주 앳되었다고 해요.”
내 미간이 좁혀진다. 나는 연주를 바라보다, 안쪽 직원들을 힐끔 바라보았다.
“범인들이…… 애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