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20화
11. 주유소 습격사건(3)
여주경찰서 입구.
강도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주유소를 모두 돌며 피해자들 인터뷰를 마친 우리는 최우진의 안내를 받아 여주경찰서로 왔다.
차에서 내린 관우가 휘파람을 분다.
“이야, 눈빛들 한번 살벌하네.”
차에서 내린 나는 관우의 말에 경찰서 입구를 보았다.
팔짱을 끼거나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잔뜩 인상을 찌푸린 여주경찰서 형사들이 보인다. 어림잡아 열도 넘는 형사들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자기들 사건 빼앗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너무 그렇게 보지들 마요. 우리도 하고 싶어서 사건 맡은 거 아니니까.
최우진에게 그들은 직장 상사이자, 선배들이다. 최우진이 눈치를 보며 허리를 숙이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어떤 형사도 그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째려만 보고 있다.
나는 그들을 가만히 보며 말했다.
“괜히 관할 형사들 자극하지 말도록.”
형사들과 눈싸움을 벌이고 있던 관우와 연주가 얼른 시선을 돌린다.
“네, 과장님.”
나는 최우진을 보며 고갯짓했다.
“우리가 쓸 사무실로 가자.”
“예…… 과장님.”
잔뜩 주눅이 든 최우진이 허리를 살짝 굽히고 별관으로 향한다.
아무래도 관할서 형사들과 충돌이 있을 것으로 본 서장이 별관에 사무실을 마련해 준 모양이다. 서장 입장에서는 국가수사본부장에게 밉보일 순 없을 테니 사무실은 좋을 것이다.
예상처럼 별관 3층에 꽤 넓은 임시 사무실을 배정받은 우리는 회의실에 빙 둘러앉았다. 연주가 주유소 직원들에게 얻은 정보들을 메모지에 적어 화이트 보드에 붙이며 말했다.
“일단 지금까지의 정보를 모아보면 범인들이 이용하는 흉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야구 배트, 각목, 쇠 파이프, 잭 나이프, 청 테이프입니다.”
관우가 화이트보드를 보며 말했다.
“조잡하네. 일단 회칼이 없으니 진짜 조폭은 아닌 것 같고. 그렇지?”
최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최우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주경찰서에서는 범인들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최우진이 잠시 생각해 본 뒤 말했다.
“일단 여주를 무대로 활동하는 조직들을 먼저 조사했습니다. 그 후에 조직에 가입했다 탈퇴한 놈들 위주로 조사를 했고, 동네에서 그냥 몰려다니는 놈들도 조사 대상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나왔고?”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그다음은 안다. 물론이지. 여기 형사들이 능력 없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더 있었으면 잡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사건은 우리 쪽으로 이관되었으니까.
“여주를 무대로 활동하는 조직에 대해 말해봐.”
최우진은 그쪽은 잘 알고 있는지 자신 있게 말했다.
“여주는 태평로 쪽 업소를 관리하는 조직과 세종로 쪽 업소를 관리하는 조직이 있습니다. 잔바리들 말고 큰 조직은 그 둘입니다.”
“어떤 조직이지?”
“태평로 쪽 조직은 김태현이란 놈이 두목으로 있는 조직으로, 주로 ‘쓰리 노’라는 업소를 운영하는 애들입니다.”
연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쓰리 노?”
최우진이 설명을 하려고 하다 연주 눈치를 보며 머뭇거린다.
“아, 그게…….”
음, 좀 안 좋은 용어인가 보다. 연주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숫자 쓰리. 그리고 노. 세 가지가 없다? 뭐 그런 뜻인가?”
“…….”
최우진이 내 눈치를 본다. 나는 눈짓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여기 남자, 여자 없다. 연주는 형사다. 눈치 보지 말고 말해.”
최우진은 다시 한번 연주를 힐끔거린 후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게 쓰리 노라고…… 불법 성매매 업소인데. 나체로 술 시중드는 룸살롱입니다.”
연주가 코끝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왜 쓰리 노야?”
최우진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옷, 속옷, 스타킹 없이 접대한다고…….”
관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 기발하다, 정말.”
연주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나는 최우진에게 계속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최우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세종로 쪽을 관리하는 애들은 주로 하우스 영업을 합니다.”
“도박 말인가?”
“예, 아시겠지만 여주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프리미엄 아울렛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동인구가 꽤 많은 편인데, 여기 놀러 온 사람들 중에 단순 쇼핑이 아닌 하우스 도박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숫자도 꽤 많아 전국적으로 모이죠.”
“단속은?”
“수시로 합니다만, 보통 산속에 대규모 간이 도박장을 엽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마다 사람을 세워놓고, 경찰들이 올라오면 바로 무전을 때립니다. 갖가지 방법으로 진입을 방해하죠. 올라가 보면 이미 다 튄 상태인 적이 많았습니다.”
“단속된 적 없고?”
“있습니다, 2013년에 한 번, 2019년에 두 번입니다. 두목 이세창은 그 일로 현재 감옥에 있고 부두목인 박현수가 조직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조사는 했고?”
“예, 하지만 자기들 밑에 애들은 아니라고 딱 잡아떼고 있습니다.”
정석대로 가면 나는 두 조직부터 탈탈 털어야 한다. 하지만 이쪽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현지 형사들도 꼬리를 밟지 못한 것이라면 두 가지 경우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정말 조직과 관련이 없거나, 혹은 경찰과 조직 간에 유착이 있어 그냥 넘어간 것이다. 주유소 직원들의 증언을 생각해 봤을 때 조직과 관계성은 없어 보이나, 조사를 허투루 할 수는 없다.
나는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연주는 관우와 함께 주유소 근처 CCTV 재조사해.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고. 우진이는 나와 조직폭력배들을 만난다. 어디 있는지 알지?”
최우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사무실을 압니다. 거의 거기 모여 있습니다.”
“좋아, 바로 움직여.”
나는 연주와 관우를 여주경찰서 별관에 남겨두고 우진과 함께 조직폭력배 사무실 두 곳을 찾아갔다.
처음에 날 보며 눈을 부라리던 녀석들은 우진이 얼굴을 보더니 움찔 놀라며 길을 터줬다. 우리가 보기에 약간 모자라 보이는 녀석이었지만 이 지역 조직들 앞에서는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우진이었다.
태평로 쪽을 관리하는 조직에서는 두목을 직접 만났고, 세종로 쪽 조직은 부두목이 지방에 내려가 있어 행동대장을 만났다.
하지만 둘 다 자신들은 절대 아니라며 잡아뗀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다. 세상에 어느 조폭이 쪽팔리게 주유소 강도질을 하고 돌아다니겠는가? 깡패는 폼이 전부다. 폼 떨어지면 깡패 삶도 끝나는 거다.
나는 일단 건질 게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최우진과 함께 차에 올랐다.
“우진아.”
“예, 과장님.”
“조직으로 데려올 만한 애들 물색하는 곳 어디인지 알지?”
회사나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새 얼굴이 필요하고, 조직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갓 졸업한 아이들 중 쓸 만한 아이들을 계속 수급한다. 아마 동네에서 싸움 좀 한다는 애들을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다.
“보통 여기 공고나 상고 애들 쪽에서 수급합니다.”
“공부 잘하는 공, 상고도 있을 텐데. 똥통 학교인가 보지?”
“보통 그렇죠.”
“어디야?”
“저쪽에서 좌회전하면 멀지 않은 곳에 공고가 있습니다.”
조직의 범행이 아니다. 범인들은 앳된 목소리다. 그렇다면 조폭이 되다 만 녀석들이 범인일 확률이 높다.
조직이 되고 싶지만 급이 맞지 않아 조직에 영입되지 못한 녀석들. 학교에 가서 최근 졸업자 명단을 입수해 보는 것이 좋겠다.
우진이 알려준 방향으로 차를 출발시키는 것과 동시에 관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관우야.”
-과장님. 하나 물었습니다.
역시 능력 있는 녀석. 여주경찰이 다 들러붙어도 못 찾아낸 단서를 반나절 만에 찾아냈다.
“뭐?”
-주유소 사건이 있기 3일 전에 근처에서 여러 번 CCTV에 찍힌 차량이 있습니다.
“다른 주유소도?”
-예, 여섯 군데 전부 찍혔습니다.
그러니 전화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관우 말은 용의주도한 범인들이 범행을 저지를 때는 도보로 이동했지만 사전 범행 모의 시에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는 뜻이다.
“몇 번이나 왔지?”
-좀 수상해서 열흘 치를 뒤졌는데 열흘 동안 여섯 번이나 주유소 근처를 배회했습니다.
“몇 대야?”
-두 대입니다.
좋다. 아주 좋은 숫자다. 두 대라면 조사도 금방 끝날 것이다.
“차량 조회는?”
-한 대는 구형 소나타고 대포 차량입니다. 나머지 한 대는 일본제 렉서스 승용차인데 명의자가 강남 포이동에 삽니다.
음? 강남 포이동 사는 사람 차가 왜 여길 배회해? 범행에 쓰인 차는 대부분 대포차인 경우가 일반적인데. 뭔가 이상하다.
“일단 명의자 확인되는 렉서스부터 확인해.”
-예, 과장님.
“바로 들어갈 테니 최대한 조사해 줘.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최우진에게 말했다.
“너 이 동네 대포차 취급하는 곳 알지?”
“어…… 여긴 없고 이천 쪽에 한 군데 있습니다.”
“너 차 있지?”
“예, 과장님.”
“서에 내려줄 테니까 넌 바로 이천으로 가. 관우가 구형 소나타를 발견했어. 차량 정보 받아서 바로 이천에서 확인해. 어떤 놈이 사갔는지.”
“알겠습니다, 과장님.”
최우진은 반나절도 안 되어 힌트를 얻은 우릴 새삼스러운 눈으로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서 앞에서 최우진과 헤어져 별관으로 들어온 나는 각자의 PC 앞에 앉아 있는 연주와 관우에게 급히 물었다.
“뭐 좀 나왔어?”
관우가 먼저 목 뒤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일단 구형 소나타 쪽부터 추적 중인데 이놈 맞는 것 같습니다. 주유소 여섯 군데 전부 다 돌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가는 주유소만 가게 마련이다. 아니면 출근길에 진입이 용이한 주유소 한두 곳을 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 있는 주유소 여섯 곳을 모두 배회했다는 건 좀 이상하다.
“주유소 결제 기록 있어?”
“아뇨, 기름은 안 넣었고 주유소 주변을 뱅글뱅글 돌다 사라졌습니다.”
확실히 수상하다.
“렉서스는?”
“같이 다녔습니다.”
범인은 다수. 소나타와 렉서스에 나눠 타고 사전 모의를 한 것이다. 주유소의 경비 체제, 도주로, 예상 시간 등을 계산하러 방문했을 확률이 높다.
“어디 보자.”
관우가 자리를 비켜준다. 보기 좋게 필요한 부분만 짤막하게 잘라 이어 붙인 영상들이 보인다.
범행 5일에서 10일 전에 여러 차례 주유소 근처를 배회하는 두 차량. CCTV상에서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뒷자리에 누군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것은 차 안에 운전자, 조수석 탑승자를 합쳐 최소 셋 이상이 있다는 뜻이다. 차 두 대에 나눠 탔으니 최소 6명이다.
물론 범죄 모의 시 조직 전체가 왔다는 보장은 없으니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일단 이천 쪽에 대포 업체가 있다고 해서 우진이 보냈다. 렉서스 명의자는 조사했어?”
관우가 연주 쪽을 눈짓하자, 연주가 손을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연주.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모니터를 보며 물었다.
“왜? 뭐 있어?”
연주가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보라는 듯 눈짓한다. 나는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떠오른 명의자 신상정보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성명, 손은정. 강남구 개포동 진우 빌라 302호 거주…… 현재 실종 신고 상태?”
연주가 실종자 조사 자료를 띄우며 말했다.
“실종 신고는 4월 23일인데 실종 예상일이 4월 3일입니다.”
4월 3일? 그럼 맨 처음 주유소 강도 사건이 일어나기 조금 전이다. 범인이 실종자의 차를 타고 다닌다. 그럼 실종자는?
나는 화면에 떠오른 렉서스 차량의 넘버를 노려보았다.
“설마 이 새끼들…….”
단순 강도상해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부녀자 납치 감금…… 심하면 납치 살해까지 있었을 수 있다. 나는 생각보다 커진 사건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빨리 렉서스 차량 수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