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21화
11. 주유소 습격사건(4)
관우가 키보드를 마구 두드리며 말했다.
“이미 수배 등록된 차량입니다, 과장님.”
나는 다른 PC에 앉아 있는 연주를 보았다. 눈치 빠른 그녀는 내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전화를 든다.
“예, 강남 경찰서죠? 여기 국가수사본부 수사국입니다. 실종전담팀 연결 부탁드립니다.”
역시 연주다. 빨리 관할서에 연락해 사건을 이관받으라고 지시하려 했는데 알아서 하는구나.
나는 팔짱을 끼고 CCTV 화면에 걸린 렉서스 차량을 노려보며 연주의 통화 소리를 들었다.
“네, 현재 수사 중인 강도상해 사건의 용의자가 실종자인 손은정 씨 차량을 타고 이동 중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실종사건을 저희 쪽으로 이관해 주시겠습니까? 예, 예 맞습니다. 책임자는 현도경 수사2과 과장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연주가 고개를 든다.
“바로 데이터베이스 넘겨준답니다.”
관우가 즉시 바통을 이어받는다.
“렉서스 차량, CCTV를 통한 추적을 시작합니다.”
음, 내가 필요 없는 듯 잘 굴러간다. 역시 이 녀석들을 데려온 건 신의 한 수였다.
과거 영상을 통해 현재 위치를 역추적해야 하므로 시간을 좀 걸리겠지만 관우라면 분명히 발견해 낼 것이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실종전담팀에서 사건 데이터를 바로 보내줬는지 연주는 데이터베이스에서 보고서를 출력해 내 자리로 온다.
“과장님, 여기요.”
연주가 전해준 보고서를 넘겨본 나는 손톱을 깨물며 말했다.
“실종 예상일은 4월 3일. 근거는?”
“손은정 씨가 운영하던 가게에서 4월 3일 퇴근 후, 4일에 출근하지 않았답니다.
“무슨 가게야?”
“단란주점입니다.”
“단란주점? 동업자는?”
“없습니다.”
“음.”
손은정은 41세다. 이쪽 업계를 잘 모르지만 41세 여성이 혼자 강남에 단란주점을 운영한다? 가능한 일일까?
나는 보고서를 넘기며 물었다.
“강남 쪽 조폭과 관계는 없고?”
연주는 바로 PC로 돌아가 손은정의 통장 입출금 기록을 확인 후 고개를 끄덕인다.
“말만 강남 단란주점이지, 수익이 크지 않았습니다. 장사 잘되는 가게가 아니라 그런지 조직폭력배와 연관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신고자는…….”
아, 그건 직접 보면 되지, 참. 보고서를 넘긴 내 눈에 신고자 이름과 관계가 기재되어 있다.
“손석현, 38세. 신고자의 친동생…….”
그러니까 누나가 실종된 것을 알아챈 남동생이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바쁘니 직접 내 PC에 앉아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 나는 동생에 대한 기록을 확인했다.
‘11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에 후유 장애, 현재 분식집 운영.’
나는 손은정의 가족관계를 모두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본가는 대구. 매월 일정 금액을 부모님 명의 통장으로 송금했고, 동생의 분식집 계약 시에도 계약금 송금 명의자가 손은정 씨다.’
사람들은 여자 혼자 술집을 운영한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본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있다. 손은정 씨의 본가는 대구. 그곳에 부모님과 아픈 동생이 있다. 그녀는 홀로 서울에 상경해 갖은 고생을 하며 돈을 벌어 가게를 차렸고, 가게에서 난 수익으로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을 건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하늘은 이런 사람을 돕지 않는 걸까? 나쁜 놈들은 오래 살고, 착한 사람들은 사고를 당하고.
왜 이런 세상을 만든 걸까?
연주가 조사를 진행하며 말했다.
“손은정 씨가 소유하고 있던 렉서스 차량은 5년 할부로 산 차입니다. 수익에 비해 차가 좋다 했는데 영업용으로 보여주기 위한 차량이었던 것 같아요.”
좋은 차를 타야 돈 많은 사람들이 꼬인다. 아니꼽고 더럽지만 그게 현실이다. 손은정은 자신의 가게를 잘 운영하기 위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었고, 결국 그것이 자신을 위험에 빠뜨렸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이 그녀가 분수에 맞지 않는 차를 구입했기 때문인가? 결코 아니다. 누가 어떤 차를 타든, 어떤 옷을 입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한 이유로 사람을 납치하는 쪽이 나쁜 것이다.
관우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찾았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관우에게 달려갔다. 도로 CCTV 속에 찍힌 렉서스가 보인다.
“이거 언제 영상이야?”
“그저께 영상입니다.”
“여기 어디야?”
“사건이 난 주유소와 약 4㎞ 떨어진 곳입니다.”
“좋아, 계속 추적해.”
이 능력 있는 녀석. 내가 어깨를 두드려 주자 신이 난 관우가 실시간으로 추적 결과를 말하기 시작한다.
“상거 2교차로에서 남여주IC, 가남 방면으로 좌회전.”
“오게 교차로에서 가남, 남여주IC방면으로 비보호 좌회전.”
“남여주IC 오른쪽 고속도로 진입.”
“남여주 IC에서 충주 방면으로 전환.”
“여주 분기점에서 인천, 원주 방면으로 진입.”
응? 고속도로? 어디 다른 지방으로 가고 있는 건가?
“운전자 보여?”
“예, 그런데 혼자인 것 같습니다.”
정확히 식별은 안 되지만 일단 조수석은 비어 있다. 뒷모습을 보았을 때 차 뒤쪽에 머리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그저께 이 차를 가지고 고속도로로 빠져나갔다.
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일단 머리는 있는 놈들이네.”
납치한 사람의 차를 계속 타고 다니면 언젠가 꼬리를 밟힌다. 범인들은 그걸 알고 있는 것이다. 하긴 가방끈이 짧아도 상식적으로 그 정도는 알겠지.
“차를 버리러 가는 거다.”
관우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계속 추적하겠습니다.”
차를 발견하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이다. 차 속에서 어떤 단서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몇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관우의 외침이 들려온다.
“경기도 화성 인근 야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눈이 빠지게 관우만 기다리던 나는 벌떡 일어나 말했다.
“바로 간다. KCSI 연락해서 주소 찍어주고 그쪽으로 오라고 해.”
“예, 과장님!”
여주에서 화성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자동차로 가면 차가 밀리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약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
차를 몰고 화성의 야산 앞 도로가 끝난 지점까지 들어오자, 조수석에서 지도를 펴고 있던 관우가 차량 통행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비포장길을 가리켰다.
“저기로 갔습니다.”
관우는 뒤를 돌아보며 CCTV 위치를 확인한다. 자신이 추적한 CCTV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차를 출발시켜 산으로 진입했다. 동시에 KCSI에서 출동한 요원들이 뒤에 붙는 것이 보인다.
나는 창을 열고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낸 후 야산으로 진입했다.
산길은 확실히 차가 올라가는 길이 아닌지 진입 시 차량 양쪽 문이 나무에 긁히고 있다. 제길, 이거 강혁 아저씨가 준 소중한 차인데 기스 나면 어쩌지?
양쪽에서 나는 소름 끼치는 쓸림 소리에 나는 결국 차를 세웠다.
“뒤에 KCSI 차량은 못 들어오겠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들어간다.”
KCSI의 차량은 그랜드 카니발이다. SUV인 내 차도 이 꼴인데 저쪽 차량은 더 어려울 것이다. 엄연히 국민 세금으로 산 차일 텐데 긁히게 할 순 없지. 물론 차에서 내려 내 차 상태를 슬쩍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휴, 다행히 크게 긁히진 않았네.”
내 차를 지키기 위해 차를 멈췄지만, 티를 내긴 좀 그렇다. 헛기침을 한 나는 빠르게 산속으로 뛰기 시작했다.
날쌔기는 나보다 더한 관우가 내 곁을 스쳐 지나 앞서간다. 연주도 내게 뒤지지 않는 속도로 따라오고 있다.
날다람쥐처럼 나무뿌리들을 마구 넘으며 달려나간 관우는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곧 관우의 외침이 들렸다.
“여기 있습니다!”
나와 연주가 속도를 내 관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가자, 거대한 나무 아래 주차된 하얀 렉서스가 보인다.
우리는 모두 장갑을 착용 후 일단 KCSI를 기다렸다. 괜히 먼저 내부를 건드렸다가 증거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장비들을 들고 끙끙거리며 올라온 요원들은 차를 확인 후 주변 사진부터 꼼꼼하게 남기기 시작한다. 괜히 빨리 왔구나. 좀 느긋하게 올라올걸.
차 주변, 차 외부, 내부와 트렁크까지 모두 사진을 찍고, 혈흔 반응을 포함한 모발 채취를 끝낸 건 무려 세 시간이 지난 후였다.
나무뿌리 위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던 우리는 요원들이 이제 됐다는 신호를 보낸 후에 달려갔다.
차 안에 시체라도 있었으면 몰라, 범인을 추적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것이 단서가 될지 모르니 시간 낭비는 피할 수가 없다.
나는 운전석을 열고 차 내부를 확인했다. 담배 냄새가 잔뜩 절어 있다.
연주는 차의 천장 쪽을 보며 말했다.
“천장에 니코틴이 흔적이 없습니다. 담배는 손은정 씨가 아니라 범인들이 태운 것 같습니다.”
보통 흡연하는 차들은 차 천장에 노란 니코틴이 끼어 있게 마련이다. 손은정 씨가 평소에 차량 내부에서 흡연을 했다면 노란 니코틴이 발견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차 안에는 담배 냄새만 잔뜩 나고 변색된 부분은 없다. 납치된 후에 범인들이 차를 몰고 다니며 담배를 태운 것이다.
“담배꽁초 안 나왔어?”
“네, 아까 물었는데 없답니다.”
차를 버리러 왔으니 당연히 잘 치웠겠지. 나는 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요원에게 물었다.
“특별한 거 안 나왔습니까?”
요원이 트렁크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트렁크에서 혈흔 반응이 있었습니다. 눌린 자국을 보아 사람을 트렁크에 태웠던 것 같습니다.”
나는 차를 돌아 트렁크 쪽으로 갔다. 문이 열린 트렁크의 우측 편에 코피를 흘린 것 같은 작은 혈흔이 떨어져 있다. 치명상을 입은 상처는 아니다. 아마 납치하는 순간에 약한 폭행이 있었고 코나 입에서 출혈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문 다 떴습니까?”
요원이 고개를 저었다.
“차를 버리기 전에 전부 다 닦았습니다. 어찌나 꼼꼼하게 닦았는지 쪽 지문 딱 하나 나왔습니다. 근데 전체의 10%도 안 되는 양이라 그걸로 신분 확인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길, 겨우 단서를 쫓아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못 건진다고? 그럴 순 없다.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지. 나는 즉시 연주에게 말했다.
“연주는 KCSI 요원들과 같이 가. 증거물 수거한 것 중에 단서 될 것 있으면 실시간 보고해.”
“네, 과장님.”
나는 아직 차 내부를 살피고 있는 관우에게 말했다.
“관우는 이쪽 관할서 가서, CCTV 가져와. 범인이 차를 버리고 도주했을 때 영상에 걸렸을 수도 있어.”
“예, 과장님.”
사실 관우 쪽은 확률이 낮다. 치밀한 녀석들인 만큼 CCTV 사각지대를 파악하고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범인은 사전에 이곳에 대해 알고 있던 자다.’
CCTV 위치, 도주 경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자. 현재, 혹은 과거에 이곳에 살았던 자이거나 일터가 이쪽인 자. 범인에 대한 힌트 하나가 또 추가되었다.
연주와 관우가 지시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자리를 뜨고, 나는 장비를 정리 중인 KCSI 요원들을 물끄러미 보다 다시 차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룸 미러 위에 묵주가 걸려 있고, 끝에 동그란 펜던트가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장갑 낀 손으로 펜던트를 조심스럽게 빼 운전석에 앉은 후 열어보았다.
“제기랄.”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차 내부에 있던 펜던트 속에는 손은정의 가족사진이 있었다.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자식들 나이에 비해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두 부모님과 목발을 짚고 있는 남동생. 그리고 손은정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이 씨X놈들, 내가 반드시 잡는다.”
나는 룸 미러에 비친 내 눈을 노려보았다. 제발 손은정 씨가 살아 있길 바라며. 또 열심히 생을 살아가는 죄 없는 이를 납치한 범인들에 대한 악의(惡意)를 떠올리며.
그리고.
차 속에 있던 내 눈에 비친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며 색을 잃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