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24화
11. 주유소 습격사건(7)
내가 이 장소를 찾는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관우가 날듯이 우진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게 소금 창고라고? 어떻게 알아?”
우진은 영문 모를 얼굴로 나와 관우를 번갈아 보다 말했다.
“어…… 옛날에 저희 삼촌이 염전 사업하셨습니다. 어릴 때 빈 창고에서 놀아본 기억이 있어서…… 그런데 왜 이러시는지…….”
관우가 내 수첩을 들이밀며 물었다.
“확실해?”
“예…… 이 미끄럼틀 이거 소금 저장할 때 포크레인으로 소금 퍼서 천장 쪽에서 떨구는 통로인데. 바닥에 멍석이 있는 이유도 소금을 그냥 흙바닥에 두면 모래와 섞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만.”
관우가 날 바라본다. 이 녀석은 이게 얼마나 중요한 정보인지 모른다. 단지 내가 찾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나는 수첩을 가져와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우진.”
“예, 과장님.”
“근처에 염전 있어?”
“예? 여주에는…… 염전이 없죠.”
“가까운 곳에는?”
“제일 가까운 곳이…… 서해 쪽입니다.”
“서해…….”
“예, 지금도 성업 중인 곳이 꽤 있습니다.”
서해…… 바다 근처다. 염전이 한두 군데는 아닐 텐데 그걸 다 뒤진다? 하, 어쩔 수 없다. 다 뒤질 수밖에. 그래서라도 시신을 찾아낼 수 있다면 당연히 할 것이다. 하지만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좁힐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때 연주가 말했다.
“아, 과장님. 지난번 실종사건전담팀 사건 보고할 때 빠뜨린 게 있는데.”
“뭐?”
“이거.”
연주가 사진 한 장을 민다. 손은정 씨가 찍혀 있는 사진이다.
“ATM 기계 CCTV 같은데.”
“네, 손은정 씨가 수원 소재 은행에서 돈을 찾은 사진인데. 실종 예상 시점 후에 찾았답니다. 액수도 꽤 크고 멀쩡해 보여서 단순 가출로 사건 마무리할까 고민했다고 하던데.”
“실종 후라고?”
“네, 여기 사진 보면 혼자 있습니다. 은행 바깥 CCTV도 전부 확인했는데 혼자 들어와서 혼자 나갔고요. 누군가에게 협박당한 것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손은정과 범인의 대화.
‘아저씨! 아저씨 죄송해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돈 더 드릴 테니 제발 살려주세요!’
‘일찍 말하지 그랬냐? 이제 늦었어.’
‘아저씨, 제발!’
‘돈 더 있어?’
‘가, 가게 정리하면 더 구할 수 있어요.’
‘지랄, 언제 가게 팔릴 때까지 기다려? 현금 더 있냐고.’
‘지난번에 드렸잖아요!’
‘뭐, 구백만 원?’
‘네, 그거 이달이랑 다음 달에 집에 보내야 되는 돈이었어요. 그게 전부예요, 정말이에요!’
‘진짜야?’
‘네! 진짜예요!’
‘응, 믿어줄게.’
나는 연주에게 물었다.
“혹시 그날 손은정 씨가 찾은 금액이 구백만 원이야?”
내 말을 들은 연주 눈이 커진다.
“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
내가 답하기 전에 관우가 끼어든다.
“ATM 기기 1회 출금 한도 걸리지 않아?”
연주가 날 뚫어지게 보며 다른 자료를 꺼낸다.
“어…… 기기 앞에 가기 전에 은행 창구 들려서 1일 한도 풀었어.”
“잉? 창구까지 갔으면 그냥 거기서 찾지 왜?”
연주가 내게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이것 때문에 실종전담팀도 헷갈린 거야. 창구에서 그냥 찾았으면 납치 협박의 가능성을 열어놨을 텐데 1일 한도를 풀고 굳이 ATM기기에서 찾았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큰 금액을 찾으려고 그런 게 아닌가 한 거지. 단란주점 운영과 가족 건사에 염증을 느낀 손은정 씨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집을 얻고 새 출발 하려고 이랬을 수도 있다고 본 거야.”
“아…….”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관우에게 말했다.
“관우. 이 날짜 은행 외부 CCTV 뒤져서 주변에 렉서스 차량이나 구형 소나타가 있었는지 확인해. 여기까지 손은정 씨가 살아 있었으니 그전은 생략하고 여기부터 찾는다.”
봐야 할 분량이 줄어들어 신이 난 관우가 얼른 경례를 한다.
“바로 추적하겠습니다!”
보통 CCTV 저장 기간은 30일이다. 하지만 은행과 같은 고위험군의 장소는 다르다. 30일간 저장을 하는 것은 같지만 지우지 않고 대용량 저장장치에 따로 저장을 해둔다. 그래서 30일 이전 데이터도 가져올 수 있다.
나는 아직 놀란 얼굴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연주를 불렀다.
“연주.”
“네?”
“지난번 브리핑 후에 실종전담팀 담당자와 통화했다. 그때는 흘려 들었는데 손은정 씨가 살해당했다고 생각하고 나니 이게 중요한 정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물었던 거야.”
“아…….”
연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액수를 들으셨구나. 와, 난 순간적으로 과장님이 무당으로 보였어요.”
“…….”
나도 참 거짓말이 많이 늘었다. 예전에는 할 말을 찾지 못해서 어물쩍댔는데.
나는 연주가 다른 질문을 던지기 전에 얼른 지시를 했다.
“이 은행이 어디 지점이라고?”
“수원입니다.”
“수원이라…… 우진아, 수원에 염전 있어?”
최우진이 잠깐 생각해 보다 말했다.
“거긴 없고, 근처라면 화성에 있는데…….”
수원과 화성. 두 장소는 매우 가깝다. 돈을 뜯어낸 직후 죽였다면 시신을 매장할 확률이 높은 장소다.
“우진이는 연주한테 화성 염전 위치 알려줘.”
“네, 과장님.”
“연주는 수색영장 신청해 둬.”
“예, 알겠습니다.”
“자, 움직여.”
* * *
다음 날 화성시 서신면 공생 염전.
만약 이 사건이 없었다면 나는 평생 여기 이런 대규모 염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연주도 염전 규모를 보고 놀랐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한다.
“너무…… 큰데요?”
관우는 CCTV를 분석해야 하기에 여주에 두고 왔다. 연주의 말을 들은 우진이 말했다.
“공생 염전은 한국전쟁 후에 피난민들이 1953년부터 1957년까지 5년 동안 지게로 흙을 지어 제방을 쌓아 만든 염전입니다. 전쟁 후 피난민들은 미국의 원조를 받아 겨우 살았는데, 밀가루, 강냉이 가루 같은 원조품을 받아 힘들게 살며 만들었답니다.”
우진은 삼촌에게 얻어들은 것이 많은 모양인지 염전을 둘러보며 말했다.
“옛날에는 토판염이라고 흙바닥에서 하는 염전 방법을 썼습니다. 그러다 수레로 소름을 나르고, 또 광주리에 담아 어깨에 지고 옮기기도 했죠. 지금은 다 기계화됐습니다만, 여전히 사람 손이 참 많이 가는 일입니다. 삼촌도 평생 이 일을 하시다 은퇴하신 지 10년쯤 되셨는데 아직도 관절염 때문에 고생하실 만큼 아주 힘든 일이죠.”
연주가 물었다.
“흙바닥에 그냥 했다고?”
우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런데 흙바닥에서 타일을 깔고 하는 것만 바뀌었지, 바닷물을 햇빛에 말리고 소금을 말리고 미는 건 옛날과 같은 방식이라 여전히 힘듭니다. 일기예보가 안 맞아서 갑자기 비라도 내리면 다 녹아버려서 맹물이 되어 바다로 돌아가 버리거든요. 다시 소금물을 만들려면 또 한 달이나 시간을 투자해야 돼요.”
나는 우진의 말을 듣다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잠깐.”
우진이 날 돌아본다. 나는 그를 빤히 보다 물었다.
“타일을 깐다고?”
우진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흙과 섞이면 안 되니까요. 타일 위에 멍석 깔고 그 위에 저장합니다.”
이상하다. 내가 본 바닥은 그냥 흙이었다. 멍석을 걷어 구석에 밀어놨으면 타일 바닥이 드러났어야 맞다. 잘못 짚은 걸까?
바로 그때 염전터로 열 대가 넘는 버스가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모두 경찰 버스이다. 일명 기대마. 의경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가 각자의 중대 번호를 달고 일렬로 들어오고 있다.
연주가 손을 들며 말했다.
“지원 왔네요.”
수색을 위해 요청한 의경 3개 중대. 약 360명의 의경들이 우르르 내려 기대마 옆에 바짝 붙어 서는 모습이 보인다. 저 많은 인력을 동원하고 헛물을 켜면 징계감이다.
중대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 셋이 내 쪽을 보며 걸어온다. 의경 중대장은 대부분 경감이다. 나와 같은 계급인 것이다. 나이를 보니 나보다 한참 선배들 같다. 나는 같은 계급이지만 먼저 고개를 숙였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대장들은 한참 어린 내게 허리를 숙인다. 아무래도 의경 중대장과 국가수사본부 과장은 끗발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외부에 있는 염전은 제외하고 소금 창고 위주로 보시면 됩니다.”
중대장 중 한 명이 염전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여기 규모가 다른 소금 창고가 오백 채가 넘습니다. 그거 다 봅니까?”
“…….”
제길 오백 채나 있었어? 삼백이 넘는 의경이 지원을 왔으니 두 명씩 짝지어서 보면 금방 보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닥에 묻힌 시신을 찾는 일이란 것이다. 한 창고에 두 명씩 보내서 언제 땅을 다 파보겠는가?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수색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잠시 고민하는 동안 우리 옆을 지나던 아주머니 한 분이 말을 건다.
“저기, 무슨 일인데 이 난리예요?”
이들에게 이곳은 생활의 터전이자, 일상의 산실이다. 그런 곳에 무려 300이 넘는 경찰들이 출동하니 당연히 놀라고 불안할 것이다.
나는 아주머니를 힐끔 본 후 그냥 수사 중이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다 문득 우진의 말이 떠올랐다.
‘요즘은 타일을 깔고 그 위에 멍석을 덮는다고 했다. 바닥이 흙이라면…….’
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여기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아주머니는 자기 질문이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자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나? 나는 뭐…… 30년쯤 했죠?”
나는 얼른 물었다.
“혹시 여기 소금 창고 중에 아직 흙바닥인 곳이 있습니까?”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친다.
“에이, 요즘 누가 그렇게 해요. 그럼 불순물 때문에 납품 못 해요. 흙바닥에 뒀다가 알갱이 일일이 손으로 다 걷어야 되는데 요즘 누가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 다 타일 깔지.”
“여긴 그런 곳이 없는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화성이 아닌 거다. 또 다른 어디인가 분명히 그 소금 창고가 있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잠시 생각해 본 뒤 조금 먼 곳을 응시한다.
“음, 흙바닥이면…… 저기 지금 폐업한 염전. 거기가 폐업한 지 15년이 넘었으니까 거긴 있을걸요?”
나는 눈을 번쩍 떴다. 폐업한 염전? 그렇다면 지금 아무도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신을 매장하기 가장 좋은 장소라고 볼 수 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지도에 표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살인사건입니다.”
아주머니 눈이 튀어나오기 직전이다.
“사, 사, 살인…….”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본래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30년을 일한 분이다. 그녀에겐 이 일을 알 충분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알려지면 난 징계를 먹겠지만 일단 지금은 시신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아주머니는 살인사건이란 소리를 듣자 얼른 내 펜을 받아 지도에 표기를 해준다.
“여, 여기요.”
“여기 창고가 있는 겁니까?”
“창고는 여기.”
아주머니가 다시 펜으로 표기해 준다. 아주머니가 표기한 창고. 설계도 상 아홉 채의 소금 창고가 보인다. 아주머니가 펜을 돌려주며 말했다.
“창고는…… 좀 많을 텐데.”
하하, 오백 채에서 아홉 채로 줄었는데 그게 어디입니까?
“아닙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중대장들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여기 아홉 채를 집중적으로 뒤집니다. 바닥 위주로 전부 확인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동시키겠습니다.”
의경 부대가 파도처럼 밀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잠시 후 소금 창고 앞. 최우진이 차에 기대 팔짱을 끼며 수색 중인 의경 부대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연주 누님.”
연주가 수첩을 펴고 사건을 다시 되짚어보다 답한다.
“왜?”
“진짜 여기서 시체가 나올까요?”
“…….”
“아니 그렇잖아요. 아까는 너무 굵직한 사건 이름이 나와서 제 주제에 과장님 태클 거는 게 가당치 않다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요. 손은정 씨가 사망했을 확률이 높다는 건 그렇다 치고. 여기 시신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요? 관우 형님이 CCTV 역추적 중에 여기가 나왔다면 모를까, 아직 그런 것도 안 나왔는데.”
고개를 든 연주의 눈에 소금 창고 사이를 누비며 지시를 내리는 도경의 모습이 들어온다. 잠시 도경을 바라보던 연주가 씩 웃으며 말했다.
“너도 좀 지나보면 알게 될 거다.”
우진이 연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뭘요?”
바로 그때 호루라기 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삑, 삑!! 여깁니다! 발견했습니다!!”
연주를 바라보던 우진의 고개가 획 돌아간다. 의경 중대장들을 비롯한 수많은 의경들과 도경이 빠르게 고함이 들린 창고로 뛰어들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헐?”
연주가 수첩을 닫으며 씩 웃었다.
“우리는 과장님만 잘 따라가면 된다는 거. 그러니 토 달지 말고 뒤처지지나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