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25화 (125/328)

살인의 기억 125화

11. 주유소 습격사건(8)

호루라기 소리, 고함 소리.

소금 창고 아홉 채 중 한 곳을 향해 뛰어가는 사람들.

소금 창고를 수색하던 의경 중 두어 명이 뛰어나와 토하는 모습. 이 모든 것들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보인다.

15년 전 폐업했다는 염전의 소금 창고. 이곳에 정말 손은정의 시신이 있었다.

나는 입구를 꽉 채운 의경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비교적 비위가 좋은 의경들이 삽자루를 들고 물끄러미 보고 있는 곳. 그곳에 사람의 머리가 있다.

아직 썩지 않아 얼굴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손은정의 시신은 목이 좌측으로 꺾여 있었다. 이상한 것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의경들이 얼굴의 반만 파놓은 구덩이.

흙 속에 묻힌 손은정의 꺾인 머리가 반쯤 보인다. 의경 중대장들이 소리를 지른다.

“동작 그만! 전부 물러나! 감식반 올 때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두 다리가 땅에 붙은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내 눈에 소금 창고의 전경이 보였다.

닫혀 있는 천장 문 위에서 아래로 뻗은 미끄럼틀과 구석에 말려 있는 몇 개의 멍석. 기억에서 보았던 장소 그대로다.

소금 창고 중앙에 묻혀 있는 손은정. 내 기억 속에 있던 저곳은 깊이 1미터 40센티 정도 되는 구덩이였다. 삽에 맞고 기절한 후는 기억이 없기에 현재 모습이 오히려 생소하다.

나는 중대장을 보며 말했다.

“최초 발견한 의경들 좀 불러주세요.”

중대장이 손짓하자, 얼굴빛이 좋지 않은 의경 두 명이 머뭇거리며 다가와 경례를 한다. 아직 어린 친구들. 군대 대신 지원제로 온 의무경찰이다.

어린 나이에 시신을 본 기억은 아마 평생 남겠지. 이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걸 봐야 하는 걸까? 범죄라는 것은 단순히 살해당한 피해자뿐 아니라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

“충격받았을 텐데 미안하다.”

내가 경례를 받아주지 않아 경례를 한 자세로 굳어 있는 두 사람. 의경도 군인이라 군기가 잔뜩 든 모습이다. 나는 대충 경례를 받아준 뒤 말했다.

“쉬어.”

의경들이 차려 자세를 했다가, 쉬라는 지시에 열중쉬어 자세로 바꾼다.

“편하게 말해.”

“…….”

의경들이 중대장 눈치를 본다. 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몸에 힘을 푸는 의경들. 나는 손은정의 시신을 눈짓하며 말했다.

“땅 파기 전에 상태 말해봐.”

의경들이 서로를 바라보다 한 명이 머뭇거리며 말한다.

“그게, 창고 중앙에 작은 봉분이 솟아 있었습니다. 뭐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에 봉분을 팠는데…… 시신이 나와 바로 보고했습니다.”

작은 봉분.

“크기는 얼마나 됐지?”

“사, 사람 머리 하나 크기 정도였습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더러운 짐승 새끼들. 중대장이 나서며 물었다.

“아니, 좀 이해가 안 되는데. 사람 죽여서 묻은 새끼들이 무덤을 만들어준 것도 아니고. 찾기 어렵게 해놓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봉분을 만들어요?”

중대장의 말이 옳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땅을 팠는데 깊이가 모자랐던 겁니다. 다시 파기는 귀찮고 목을 꺾어도 튀어나오니 그냥 흙으로 덮은 겁니다.”

내 앞에 있던 의경 두 명이 겁먹은 얼굴로 뒷걸음질을 친다. 중대장 역시 놀란 눈으로 날 보며 굳어 있다. 어째 저 시신보다 날 더 겁내는 듯한 표정들이다.

잠시 후 KCSI가 몰려오고, 일단 현장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의경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KCSI의 허가가 떨어진 후에 창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중대장들에게 수고했다는 악수를 청한 후 철수시켰다. 오랜만에 목 과장님이 직접 현장에 나와 계신 것이 보인다. 과장님이 날 보며 손을 드는 것을 보고 다가갔다.

“현장에도 나오십니까?”

“인사나 좀 하고 본론 들어가지, 좀.”

“시신 앞에서 인사하긴 좀 그래서.”

“음, 그것도 그러네.”

목 과장님이 얼굴의 반만 나와 있는 손은정 씨의 시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물었다.

“누구야?”

“성명 손은정, 나이 41세. 강남 개포동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는 미혼 여성입니다. 올해 4월 3일에 실종 신고되었습니다.”

“실종? 정호 말로는 너 국가수사본부로 발령 났다고 하던데. 거기 가서 실종 사건 맡은 거야?”

“아뇨.”

목 과장에게 상황 설명을 하자, 그는 연신 코를 찡그리며 이야기를 듣다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쫓고 있는 강도상해 범죄 단체의 범인들이 이 사람을 죽였다고?”

나는 손은정의 시신을 가만히 내려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강도살인 범죄 단체입니다.”

목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사건을 몰고 다니네, 넌.”

“…….”

목 과장이 손은정 씨 주변에 붙어 사진을 남기고 있는 현장 요원들을 눈짓하며 말했다.

“현장 와서 들어보니 네가 요원들에게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하던데.”

“…….”

“삽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며?”

삽. 손은정은 삽에 맞아 기절했다. 혹시 흉기가 된 삽에 범인들의 지문이 남았을 수도 있다. 물론 치밀한 놈들이니 삽을 도로 가져갔을 확률이 높겠지만 그렇다고 간과할 순 없다.

목 과장님이 날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삽은 갑자기 왜?”

나는 손은정의 머리가 묻힌 구덩이를 빙 돌아 그녀의 뒤로 가 주저앉았다.

“여기.”

목 과장이 안경을 쓰고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눈살을 찌푸린다.

“둔기에 의한 외상이네. 음, 이쪽 면을 보면 날카로운 흉기에 의한 자상 같아 보이기도 하고.”

“삽이면 어떻습니까?”

“음?”

목 과장님이 장갑 낀 손으로 손은정 씨의 머리카락 사이를 더듬는다.

“음…… 삽이라. 검시를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그럴 확률이 높아.”

“그래서 찾으라고 한 겁니다.”

목 과장님이 씩 웃으며 말했다.

“허허, 너 형사 다 됐다? 이제 상처만 척 봐도 흉기 짐작이 되는 거냐? KCSI 요원 밥 30년 먹은 나도 검시해 봐야 아는데.”

“그냥 의심한 겁니다. 소금 창고에 삽이 있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라 혹시 증거물이 누락될 수 있으니까요.”

“음, 옳은 말이다.”

“삽 수거는 하고 있는 겁니까?”

“어, 근데 너무 많아. 다른 창고에 기구들이 저장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나온 삽만 백 자루가 넘는다.”

“그 창고는 잠겨 있었습니까?”

“어, 그런데 창문이 열려 있었어.”

잠겨 있었다면 거기서 나온 삽은 배제해도 좋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천하의 목 과장님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 창고에는 창문이 있었고, 그것이 열려 있었기에 그 속으로 흉기를 던져 넣었을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수색을 지시한 것이다.

목 과장님이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백 자루 넘는 삽에서 지문 뜨려면 며칠 걸리려나. 후, 집에는 다 갔군.”

“꼭 좀 부탁드립니다.”

“오냐, 누구 부탁인데. 아, 도경아 이거.”

목 과장이 쇼핑백 하나를 내민다. 얼결에 받아 들고 안을 보니 반찬 통이 여섯 개나 들어 있다.

“이게……?”

“반찬이다.”

반찬 갑자기 뭔 반찬? 목 과장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너 혼자 산다고 했더니 동생이 갖다주라고 해서. 센터 냉장고에 넣어 놨다가 오늘 출동하는데 담당이 너라고 하길래 가지고 왔다.”

“동생분이요? 동생분이 왜……. 아!”

목 과장님의 동생. 영덕 노인사건에서 살해된 한지윤의 어머니다. 자식 잃은 어머니가 찢어지는 마음으로 감사를 표한 반찬인 것이다.

나는 쇼핑백 입구를 조심스럽게 접은 후 고개를 숙였다.

“잘 먹고 깨끗하게 씻어 돌려드리겠습니다.”

“아냐, 통은 그냥 가져라. 너 주려고 일부러 새것 산 것 같더라.”

“…….”

처음이다. 새로운 피해자의 시신 앞에서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경찰로 살며 감사함을 표하는 피해자 가족의 선물을 받는 건.

목 과장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동생이 그러던데. 그거 원가 3만 원 안 되니까 맘 편히 먹으라고.”

목 과장님의 농담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목 과장이 손바닥을 비비며 손은정의 시신을 본다.

“자, 일단 파내보자. 거기, 장비 가져와.”

마치 고대 유물을 파내듯 조심스럽게 붓과 장비들로 파내는 시신.

나는 전문가들이 시신을 꺼낼 때까지 조용히 물러나 있었다. 한구석에 여기서 진짜 시신이 나왔다는 것에 놀란 최우진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녀석, 말로만 믿는다고 했었구나.

연주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나는 손짓으로 최우진을 불렀다. 우진이 녀석은 내 손짓을 보자마자 총알같이 뛰어온다.

“예, 과장님!”

“이쪽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문신 업자 데려와.”

“예! 바로 데려오겠습니다!”

바람같이 달려가는 녀석. 오늘 오전과는 다른 몸짓이다. 아주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처럼 보인다.

잠시 후, 한 시간에 걸쳐 조심스럽게 시신을 파낸 목 과장님이 보호안경을 벗으며 인상을 쓴다.

“이 새끼들, 진짜 땅을 이거밖에 안 파서 이 꼴로 묻었네. 에이 쓰레기 새끼들.”

목 과장님이 눈짓으로 와서 보라는 신호를 보낸다. 다가가 보니 손은정의 발이 평평한 바닥에 닿아 서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전경이 보인다.

참혹한 광경을 본 연주가 고개를 돌리며 눈을 질끈 감는다. 나는 사망한 손은정 씨 앞에서 잠시 눈을 감고 묵념을 했다.

“가족들께 연락하겠습니다.”

연주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움직였다. 형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일. 그건 피해자의 가족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알리는 것이다.

내가 하기 싫으면 남도 하기 싫다. 하지만 연주는 군소리 없이 지시 전에 움직여 준다. 고마운 녀석.

목 과장님이 보호안경을 접어 주머니에 넣은 후 말했다.

“일단 검시는 해봐야 알겠지만 입안에 흙이 꽉 차 있다. 기도까지 넘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태를 봐서는 살아 있을 때 매장된 거야.”

“…….”

“뭐 이런 개새끼들이 다 있어. 여자를 홀딱 벗겨서 이 외진 곳까지 끌고 와 생매장을 해? 도대체 목적이 뭐야?”

목 과장의 말을 들은 나는 진짜 중요한 부분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목적.”

범인들은 손은정 씨를 납치한 후 현금 구백만 원을 갈취하고 죽였다. 주유소에서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만 목적은 돈이었다.

액수는 그리 크지 않다. 현재까지 갈취한 금액을 다 합해도 이천만 원이 조금 넘는다. 단순 유흥비를 벌기 위한 목적으로 보아도 될 만한 액수.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진짜 먹고 놀기 위해 필요한 돈을 마련하려고 이런 짓을 벌인 걸까?

시신을 수거하는 KCSI를 바라보며 본부장님께 전화로 사건이 강도상해 사건에서 강도살인으로 전환되었다는 보고를 하자, 그는 한숨을 푹푹 쉰다.

하지만 국가수사본부 입장에서 욕먹을 건 없다. 손은정 씨가 살해된 시점은 사건이 국가수사본부로 이관되기 전에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해결하고 돌아오라는 지시를 받은 나는 연주와 함께 차에 올랐다. 일단 KCSI로 가서 부검 결과를 보는 것이 좋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에 오른 후 안전벨트를 하자마자 우진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은 우리는 KCSI로 갈 수 없었다.

-과장님. 문신 업체 사장이 이미 경찰서에 와 있습니다.

이미 와 있다는 건 우진이 데려온 것이 아니란 뜻인가?

“무슨 말이야?”

잠시 머뭇거리던 우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문신을 하던 사람이 쇼크로 죽었다고 합니다.

뭐? 문신 중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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