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26화 (126/328)

살인의 기억 126화

11. 주유소 습격사건(9)

여주경찰서로 돌아온 우리는 로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최우진에게 달려갔다. 우진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기다리다 내 얼굴을 보더니 얼른 차려 자세를 한다.

“사람이 죽었다고?”

“예, 과장님!”

“어떻게?”

“일단 이쪽으로.”

최우진은 별관이 아닌 여주경찰서 본관으로 안내를 하며 말했다.

“문신 업체에 가보니 폴리스라인이 있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순경한테 물었더니 점심시간이 막 지난 후에 형사님들이 조사한다고 업체 사장을 데려갔다고 하더군요. 선배들에게 연락 돌렸더니 이미 경찰서에 와 있었습니다.”

상황 설명을 해달라고 하려 하다 곧 만날 업체 사장에게 직접 물으면 되겠다 싶었던 나는 여주경찰서 강력계로 들어갔다. 다들 날 보는 눈빛이 살벌하다. 이해가 되는 눈빛들이다.

나는 최대한 관할서 형사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우진의 안내에 따라 강력계 끝에 있는 유치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얼굴을 빼고 온몸에 문신을 한 30대 후반의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범죄자들보다 더 범죄자처럼 생긴 남자는 한숨을 푹푹 쉬며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

우진이 남자를 눈짓하는 것을 본 나는 바로 사장에게 말을 하려고 하다 멈칫했다.

슬쩍 돌아보니 관할서 형사들이 째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창가 자리에 서서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있는 중년 남자가 반장임을 간파한 나는 먼저 허리를 숙여 보인 후 말했다.

“국가수사본부 현도경 과장입니다.”

관할서 형사들이 놀란 눈으로 자기들 반장을 본다. 반장 역시 내가 허리를 숙일지 몰랐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허리를 숙인다.

나는 최대한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저희 사건과 관계가 있어 그런데 이 사람 잠시 빌려가도 될까요?”

반장은 침을 꿀꺽 삼키며 주변 형사들을 본다. 내가 조금이라도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확 물어뜯을 기세였지만 먼저 허리를 숙여주니 자기들도 어찌해야 될지 모르는 눈치다.

반장 계급은 잘 모른다. 경위 아니면 경감일 텐데 지방서 반장이면 경위일 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은 계급으로 누르기보다 정중하게 부탁하는 편이 좋다.

반장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 이쪽도 조사가 바쁘니 빨리하고 보내주세요.”

“예, 최대한 빨리 조사 후 돌려보내겠습니다.”

나는 나보다 계급이 낮은 다른 형사들에게도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했다. 다들 내가 국가수사본부 과장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놀란 얼굴로 화들짝 일어나 엉거주춤 허리를 숙인다.

나와 함께 있던 연주와 우진도 덩달아 허리를 굽실거리고 있다.

나는 우진에게 속삭였다.

“데리고 별관으로 와.”

“예, 과장님.”

연주와 함께 돌아서서 다시 한번 관할서 형사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별관으로 향했다. 연주가 따라붙으며 말했다.

“과장님.”

“음.”

“이렇게 저자세로 갈 이유는 없지 않아요? 막말로 과장님보다 계급도 낮을 텐데.”

“하하. 그래 보여?”

연주가 입술을 삐죽 내민다.

“솔직히 국가수사본부라고 어깨에 힘주고 다닐 생각은 없지만 너무 굽실거릴 생각도 없거든요.”

“안 싸우고 내 목적 이루는 게 진짜 이기는 거지.”

“그건 그렇지만…….”

연주는 빙긋 웃으며 걷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 히죽 웃는다.

“과장님, 진짜 많이 변하셨다.”

“내가?”

“네, 그때 단양에서 범인 쫓느라 혈안이 되어 주변은 아무것도 못 보던 과장님과는 달라요.”

순간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 그때는 그랬었지. 연주가 아름다운 강을 보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때 장진수의 아지트를 발견해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연주 말처럼 그때의 나는 범인을 쫓는 것 하나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마치 꽃만 바라보고 나무는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 나무와 산 전체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순 없다. 나는 여전히 생각이 짧고 스스로가 모자라다고 느낀다.

하지만 조금씩 성장하면 그걸로 됐다. 멈춰 있지만 않다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나의 성장은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함께 수사하고 있는 가족 같은 연주와 관우. 그리고 또 한 사람. 내 버팀목이자, 정신적 지주인 강혁 아저씨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처음 팀장이 되라며 세상 사는 법을 알려주신 강혁 아저씨. 아저씨가 가르친 가장 큰 것은 절대 내부에 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여주경찰서 관할 형사들이 내부 사람들이다. 이들을 적으로 돌리면 수사가 어려워진다. 물론 그들이 먼저 날 물어뜯는다면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먼저 고깝게 굴진 않을 것이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연주에게 싱긋 웃어준 후 별관 사무실 문을 열었다. CCTV 분석을 하며 햄버거를 먹고 있던 관우가 손을 번쩍 든다.

“다녀오셨습니까!”

“어, 성과는 좀 있고?”

관우가 햄버거를 문 채 빙긋 웃는다.

“손은정 씨가 납치되었던 시기에 영상을 찾아냈습니다.”

나와 연주의 눈이 동시에 동그래졌다. 실종전담팀의 전문가들이 그렇게 뒤져도 못 찾은 걸 어떻게? 나는 관우 자리로 달려가 모니터를 돌렸다.

“어디서?”

“손은정 씨 댁 주차장이요.”

연주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뭔 소리야? 실종전담팀이 CCTV 영상 다 긁었는데. 내가 직접 확인했지만 그런 영상은 없었어.”

관우가 씩 웃으며 입에 묻은 햄버거 부스러기를 닦는다.

“내가 누구냐? 나 정관우야, 이 사람아.”

관우가 자기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당시 실종전담팀이 주차장에 주차된 다른 차량의 블랙박스까지 싹 털었죠. 하지만 별거 없었습니다. 왜?”

관우가 실종전담팀이 확보한 CCTV와 블랙박스 영상을 동시에 돌리며 말했다.

“이렇게 보면 주차장 전방위가 다 나온 것 같죠?”

여덟 개의 화면이 동시에 재생되고 있는 모니터. CCTV가 여섯 개이고, 나머지 두 개가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이다.

나는 여덟 개의 화면을 번갈아 보며 집중했다. 하지만 별다른 점이 없다. 손은정 씨가 살던 빌라는 구석진 곳에 있어 차량 이동도 그리 많지 않았다.

연주가 화면을 뚫어지게 보다 물었다.

“뭐가 있다는 거야?”

바로 그때, 블랙박스 영상에 파란색 트럭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트럭 뒤에는 생수통이 가득하다. 운전자의 얼굴도 보인다. 차 안에 있는 건 운전석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 혼자다. 별로 수상한 점은 없다.

나는 트럭을 뚫어지게 보다 다른 화면을 보았다.

“어?”

내 탄성을 들은 관우가 씩 웃는다.

“역시 과장님은 바로 아시네.”

하지만 나만 눈치챈 것이 아니다. 연주도 즉시 눈치챘는지 모니터를 제 앞으로 끌어와 여덟 개의 화면에 나온 시간을 일일이 확인한다.

“이거 동일시간 화면이지?”

“어.”

연주가 방금 트럭이 지나간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그 트럭. 여기만 찍힌 거야?”

관우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빙고.”

나는 천천히 허리를 펴고 팔짱을 꼈다.

“CCTV 사각지대가 있었다는 건데.”

“맞습니다. 여기 보세요.”

관우가 설계도면을 꺼낸다. 미리 계산을 마치고 사각지대를 표기해 둔 관우.

손은정의 빌라에 설치된 주차장 CCTV는 빌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한 대, 차가 들어오는 출입구에 한 대, 나머지는 주차하는 쪽을 비추고 있다.

“여기, 입구에는 CCTV가 있는데 출구는 사각입니다. 방금 트럭은 여기, 출구 바로 옆자리에 있다가 나간 겁니다. 맞은편에 주차되어 있던 승용차 블랙박스에만 찍힌 거죠.”

연주가 설계도와 화면을 비교해 보다 말했다.

“그러니까 범인이 이 트럭이 서 있던 자리에 주차를 했다면 안 찍혔을 수도 있다?”

관우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출구를 봐. 밖에서 들어올 수가 없어. 차단기가 있으니까. 여기 들어오려면 반드시 입구로 들어와야 하고, 입구에는 CCTV가 있어.”

연주가 다시 설계도와 화면을 비교해 보다 중얼거렸다.

“차로 들어온 게 아니다?”

관우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렇지. 범인들은 빌라 담을 넘어와 CCTV 사각에 숨었어. 차에서 내리는 손은정을 납치해 다시 담을 넘어 빌라 밖으로 끌고 간 거야.”

그래서 CCTV상에 아무것도 없었던 거다. 관우가 영상을 보며 말했다.

“자, 여기 보면 트럭을 찍었던 승용차가 밤에 나가지? 그럼 이 자리가 비어 있었을 거야. 자, 가정을 해보자. 이 차가 나가고 난 뒤 손은정 씨 차량이 들어와 트럭이 주차된 자리에 주차를 했다고 생각해 보는 거야.”

관우가 키보드를 타격하자, 손은정의 차량이 빌라로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사실 이 화면은 예전에 봤다. 실종전담팀은 손은정의 차량이 집으로 돌아온 후에 그녀가 실종되었기에 집을 샅샅이 조사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집에서는 아무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손은정의 차는 빌라로 들어오는 모습만 찍히고 사람도 사라지고, 차도 사라졌다.

관우는 다각도의 관점에서 CCTV를 분석해 구멍을 찾아낸 것이다. 대단한 녀석. 관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사람을 납치해서 담을 넘은 놈들이 멀리 갈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니지. 그건 말이 안 돼. 사람 끌고 가는 걸 동네 사람들이 볼 수도 있으니까.”

연주가 빨리 말하라는 듯 눈을 흘긴다.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말하지?”

관우가 킬킬거리며 화면을 전환한다. 그러자, 주황색 빌라 주차장에 남자 셋이 손은정의 입을 막고 질질 끌고 가는 영상이 나온다.

연주가 모니터에 달라붙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여기 어디야?”

관우가 목 뒤로 깍지를 끼며 말했다.

“빌라 세 집 건너 다른 빌라.”

“세 집 건너?”

“어, 근데 다 붙어 있어. 담 넘으면 옆 빌라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구조야.”

화면 속 손은정 씨는 기절을 했는지 몸이 축 늘어져 있다. 세 명의 범인은 손은정 씨를 질질 끌고 가 차에 태운다. 구형 소나타다. 이놈들이 범인이 확실하다.

관우가 화면을 멈추며 말했다.

“자, 여기서 두 명은 손은정 씨를 데리고 소나타에 타고 한 명은 남지?”

연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 한 명이 다시 손은정 씨 빌라로 돌아가 렉서스를 끌고 사라졌다는 거네.”

“빙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관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수고했다. 얼굴 나왔지?”

“물론입니다, 셋 다 나오진 않았고, 제대로 찍힌 건 한 명입니다.”

“확대해 봐.”

“예!”

관우가 확대해 주는 영상. 나는 확대하며 계단 현상이 일어나 쪼개진 사진이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뚫어지게 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그놈이다. 손은정의 기억 속에 있던 장발. 내 옆에 있다 머리를 때려 옆으로 쓰러지게 만들었던 그놈이다.

“좋아, KCSI로 보내서 신원확인 돌려.”

“예, 과장님!”

나는 관우의 어깨를 다시 한번 두드려 주었다. 대단한 놈. 넌 현장 안 나가고 안에만 있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녀석이다. 정말 데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최우진이 수갑을 찬 문신 업체 사장을 데리고 오는 것이 보인다. 관우는 온몸이 문신인 남자를 보더니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뭐야, 범인 벌써 잡아온 겁니까?”

연주가 쿡쿡거리며 웃는다.

“범인 아니고, 문신 업체 사장.”

관우가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와, 진짜 범인같이 생겼다.”

우진에게 사장을 자리에 앉히라는 신호를 보낸 나는 수첩을 꺼내 그의 앞에 앉았다.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날 노려보는 사장 앞에 수첩을 꺼낸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문신. 본 적 있습니까?”

문신 시술 중 사람이 죽어 끌려온 사장은 생각지도 않은 질문에 잠깐 눈빛이 흔들린다.

“뭐요?”

나는 수첩을 내밀며 말했다.

“자세히 봐요. 이 문신 본 적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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