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27화
11. 주유소 습격사건(10)
문신 업체 사장은 내가 내민 수첩을 보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봐요.”
내가 수첩을 더 가까이 들이밀자, 사장이 인상을 쓴다.
“가뜩이나 짜증 나는데 뭐 하는 거냐고!”
내가 잠시 물러나자, 연주가 서류를 보며 말했다.
“문신 업체 이름은 잉크 스튜디오. 이 사람 이름은 강성호, 나이는 33세입니다.”
강성호의 머리는 매우 짧다. 삭발을 하다 만 것같이 짧은 머리는 반은 핑크색이고, 반은 초록색으로 염색을 했고 티셔츠 위로 드러난 목 부근부터 문신이 시작되어 티셔츠 속으로 번져 있다.
아마 옷을 벗겨놓아도 옷을 입고 있는 사람 같아 보일 것 같다.
우진이 옆에서 거든다.
“문신 업체는 불법이라, 당연히 탈세와 보건법 위반입니다.”
대한민국은 문신 사업이 합법화되어 있지 않다. 문신이란 것이 꼭 조폭들이 상대를 겁주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문신업자는 범죄자나 마찬가지다.
강성호가 비틀린 표정으로 말했다.
“잡아가든가, 안 무서워.”
관우가 CCTV 분석을 하다 말고 고개를 삐딱하게 꺾으며 말했다.
“어이, 아저씨. 당신 잡으려고 하는 거 아니야. 협조 좀 하지?”
강성호가 침을 뱉으려는 표정을 짓자, 관우가 손가락을 까딱인다.
“어어, 아저씨. 경찰서에서 침 뱉으면 벌금 물어. 침 한번 뱉고 몇만 원 물고 싶어?”
강성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침을 꿀꺽 삼킨다. 그는 우리를 둘러보다 내가 이곳의 우두머리임을 알아챘는지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본다.
나는 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 속에 원망과 열등감이 있다.
나는 저 눈빛을 잘 안다. 나 역시 저런 눈을 하고 살아간 적이 있으니까.
그는 자신의 행위가 예술로 인정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서양 국가에서는 문신이 합법이다. 자신이 대한민국이 아닌 그런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예술가 소리를 듣고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하필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문신한 사람을 범죄자로 낙인 찍는 국가에 대한 원망도 있을 것이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에 죄가 없음에도 경찰만 만나면 움츠러들어야 하는 삶 때문에 빛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모양이다.
내가 쫓는 범죄자는 강성호가 아니다. 솔직히 나는 문신을 혐오스러워하는 편이지만, 내가 싫다고 남들도 싫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내가 그를 범죄자로 보고 있지 않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수첩을 내린 나는 강성호 앞에 의자를 끌어 앉으며 말했다.
“강성호 씨.”
“예.”
“어디서 공부하셨습니까?”
“예?”
나는 강성호의 목을 눈짓하며 말했다.
“타투 말입니다.”
“…….”
“외국에서 공부하신 것 같은데.”
“왜요?”
“한국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 같아 보이지 않아서 그럽니다. 외국에서는 문신이 합법화된 곳이 많으니 그곳에서 배우셨겠죠, 아닙니까?”
“…….”
강성호는 답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표정이 많이 풀린 것처럼 보인다. 여주경찰서 형사들에게 잡혀와 범죄자 취급을 받다가 자신이 하는 일을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 할 수 있는 일로 봐주니 기분이 좀 풀리는 모양이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그의 답을 기다렸다. 강성호는 잠시 우리 팀원들을 두리번거리다 말했다.
“네덜란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덜란드라. 좋은 곳이겠네요. 전 가 본 적 없지만.”
강성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솔직히 전 세계에서 문신이 국법으로 금지된 곳은 단 두 곳밖에 없습니다. 아십니까?”
“예, 일본과 대한민국이지요.”
“그러니까요! 아니, 전 세계에 나라가 몇 개인데 딱 두 나라 중에 한 곳이 하필 내가 태어난 나라라니. 내 참.”
“답답하시겠습니다.”
“답답하죠, 뭔 사건만 나면 경찰들이 와서 문신 사진 들이밀고 이놈 아는지 묻고. 그래요, 솔직히 조폭 애들이 우리 주 고객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일반 애들도 와서 합니다. 몇 년 전부터는 조폭 애들보다 일반인 상대 매출이 더 높아졌을 만큼 대중화된 건데 도대체 언제까지 불법으로 규정할 건지.”
나는 한동안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중간에 연주에게 눈짓으로 수갑도 풀어주라 지시했다. 강성호는 수갑을 푼 손을 만지작거리다, 한숨을 쉰다.
“전 진짜 잘못 없습니다. 분명히 경고를 했어요.”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의사가 아닌 이상 문신을 불법 의료행위로 본다. 시술 중 쇼크사했다면 그것은 시술업자의 잘못이다.
하지만 지금 죄를 추궁해선 안 된다. 내가 계속 이야기해 보라는 듯 눈짓하자, 강성호가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오전 11시쯤에 그놈이 찾아왔습니다.”
내가 연주를 보자, 연주가 서류를 넘기며 말을 보탠다.
“성명 최영진. 태평로 김태현 밑에 있는 조폭입니다.”
강성호가 얼른 끼어든다.
“저는 진짜 경고했어요! 용 문신 그거 한 번에 하다가 진짜 죽는다고!”
용 문신? 음, 그러니까 최영진이란 놈이 객기를 부리며 여러 날에 나눠서 해야 할 문신을 하루에 다 받다가 쇼크로 죽었다는 건가? 아무리 무식해도 그렇지, 객기를 부릴 곳이 없어 고작 문신 업체에 부렸단 말인가?
“하루에 얼마나 하신 겁니까?”
“원래 밑그림 먼저 그리고, 테두리 작업한 다음에 속을 채웁니다. 근데 그 새끼가 남자가 무슨 이런 걸로 엄살을 떠냐며 거들먹거렸습니다. 같이 온 놈들이 히죽거리며 그럼 하루에 다 받아보라고 부추겼고, 그놈이 거기 홀랑 넘어가 객기 부린 겁니다.”
객기를 부린다고 그냥 해주는 게 제정신이냐? 의사가 환자 상태가 안 좋은데 억지로 수술해 달라고 한다고 시켜주는 거 봤냐? 욕이 튀어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참은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조폭이니 강성호 씨를 협박했겠군요.”
“맞습니다! 안 하면 가게 다 때려 부수겠다고. 자기 무시하는 거 아니면 오늘 다 하라고 고함을 치고 막…….”
“음, 그건 담당 형사님께 전달해 드리죠.”
정상참작은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에게 죄가 없는 건 아니야. 강성호는 내가 자기 편을 들어주자 표정이 나아진다.
내가 관우 쪽으로 눈짓을 보내자 눈치 빠른 녀석이 얼른 커피를 타 강성호에게 내민다.
“자자, 아저씨. 이거 한잔하시고 마음 좀 가라앉혀요. 많이 놀랐겠네.”
강성호는 마침 목이 말랐는지 말했다.
“고마운데, 찬물 없습니까?”
“갖다줄게요.”
관우가 정수기에서 차가운 물을 떠주자, 벌컥벌컥 들이켠 강성호는 소매로 입을 훔치다 내 손에 든 수첩을 본다.
“아까 그거 뭐였습니까? 그림 같았는데.”
나는 얼른 수첩을 펼치며 말했다.
“이 문신을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수첩을 자세히 본 강성호가 물었다.
“내가 한 건 아닌데.”
음, 잘못 짚었나? 하긴 아무리 불법이라고 해도 대한민국에 문신 업체는 꽤 많다. 당장 바깥만 돌아다녀도 문신한 일반인이 꽤 보이는 세상이니까.
강성호는 수첩을 자세히 보다 물었다.
“문신 상태가 어땠습니까?”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내가 읽은 기억 속의 문신을 그대로 그려둔 것이라 문신 상태를 묻는 모양이다.
“조잡해 보였습니다.”
“조잡해요? 어느 거요, 뱀이요?”
“예.”
“글자는?”
“글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폭들 문신과는 좀 달랐습니다.”
강성호가 실소를 지으며 수첩을 돌려준다.
“그럼 전문가 솜씨 아닙니다.”
나는 수첩을 받아 들며 물었다.
“아마추어 솜씨라는 겁니까?”
“예, 적어도 자기 가게 가진 사람은 아닐 겁니다. 뱀 그림은 몰라도 글자까지 조잡하게 그리는 놈이 무슨 가게를 한다고.”
음, 문신 업체를 들쑤셔서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가? 어디서부터 조사해야 될까? 난감한 표정으로 수첩을 뚫어지게 보는 날 힐끔 본 강성호가 말했다.
“태평 자영농고 알아요?”
모른다. 우진이 쪽을 바라보자, 녀석이 나서며 말했다.
“아까 양아치 놈들 많은 학교 중에 하나입니다. 농업고등학교고요.”
강성호가 말했다.
“거기 뒤져봐요. 거기 놈들 하나같이 꼴통인데 별짓을 다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3학년에 1년 꿇은 놈 하나 있는데 그놈이 애새끼들 20만 원에 문신 새겨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가게 와서 그놈이 한 문신 지우고 간 녀석한테 들었습니다.”
농고에 다니는 3학년 학생. 1년을 꿇었다면 나이는 성인이다. 조사해 볼 가치가 있겠다.
“이름 아십니까?”
“모릅니다, 그냥 3학년이란 거밖에.”
직접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말했다.
“협조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해 주신 부분으로 수사에 큰 도움을 받았다는 건 담당 형사님께도 꼭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뭐, 전달해 봐야 불법 시술로 사람을 죽였다는 죄목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연주는 이분 다시 본관으로 모시고 가고, 관우는 CCTV 계속 추적해. 우진이는 나와 농고로 간다.”
* * *
여주 태평 자영 농고 앞.
나는 학교 앞에 서서 멍한 얼굴이 되어 있다.
이게 진짜 학교가 맞는 걸까?
무슨 놈의 학교 담벼락에 이렇게 많은 낙서가 있지? 게다가 하나같이 욕설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야한 그림들투성이다.
학교 정문 옆 자전거 보관소에는 자전거들 대신에 오토바이들이 세워져 있고, 대부분 불법 개조한 바이크다.
정문 바로 옆에 교복 치마를 입고 상의는 사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우진이 차에서 내리며 겸연쩍게 웃었다.
“좀…… 심각하죠?”
“…….”
“후, 주민 신고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애새끼들이 워낙 말을 안 들어 먹어서. 사실 여기 졸업한 놈들 중에 대학 가는 놈은 15%도 안 됩니다. 나머진 취업을 하거나 조직 쪽으로 빠지죠. 그래도 우리 반장님이 여기 놈들 중에 경찰서 들락거리는 놈 몇 갱생시켜서 취직시켜 놓긴 했어요.”
내가 아는 학교와 너무도 다른 학교. 솔직히 이렇게 심각한 학교는 처음 봤다. 정문 안쪽으로 보이는 운동장에 경비 아저씨가 한데 모아둔 담배꽁초가 산처럼 쌓여 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문 쪽으로 다가가자, 쪼그리고 있던 여학생 세 명이 손을 들며 날 부른다.
“저기 잘생긴 오빠.”
우진이 먼저 고개를 돌린다.
“왜?”
여학생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말고, 옆에 잘생긴 오빠.”
우진의 얼굴이 붉어진다. 녀석 겨우 고등학생 여자아이한테 휘둘리면 어쩌냐. 내가 여학생 쪽을 바라보자, 셋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꺅꺅거린다.
“꺄, 진짜 잘생겼어.”
“완전 분위기 쩌네.”
“솔까말 대존잘, 인정?”
뭔 소리냐, 이게. 대충 잘생겼다는 소리인가 본데. 뒤에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여학생들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내게 윙크를 하며 손가락 두 개를 든다.
“오빠, 담배 좀 사주면 안 돼요?”
“…….”
“돈 줄게요. 요 앞 편의점 알바가 존나 까탈스러워서.”
조금 떨어진 곳에 편의점이 보인다. 원치 않게 편의점 알바가 일을 참 잘한다는 정보를 얻었군. 여학생이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응? 한 갑이면 돼요. 필라멘트 1미리. 오케이?”
나는 가만히 여학생을 바라보다 천천히 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여학생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와, 오빠가 사주게요?”
나는 여학생의 손을 잡고 그 위에 내 신분증을 올려놓았다. 처음에는 뭔가 싶어서 눈만 깜빡이던 여학생은 내 신분증을 보고는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이 된다.
“아, X 됐네.”
뭐가 돼? 여자애가 그런 거 되는 거 아니다, 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