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28화
11. 주유소 습격사건(11)
물러나 있던 나머지 두 여학생이 슬금슬금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우진이 벌써 뒤를 잡고 있다. 울상이 되는 아이들.
하지만 내 신분증을 든 여학생은 그냥 한숨만 쉬며 신분증을 돌려준다.
“하, 아저씨. 나 정학 한 번 더 당하면 퇴학인데. 그냥 한번 봐줍시다?”
참, 부모가 누구인지 애 키우기 힘들겠다. 나는 신분증을 돌려받으며 말했다.
“정학을 많이 당했나?”
입맛을 다신 여학생이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두 번.”
“담배?”
여학생이 실소를 지으며 운동장을 눈짓한다.
“저기 꽁초 안 보여요? 담배로 정학당하면 이 학교 학생들 다 없어지지. 안 그런 애가 없는데.”
“…….”
뭔 대단한 사고를 친 모양이구나. 이런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다니. 여학생은 무표정한 내 얼굴을 보고는 포기했는지 한숨을 쉰다.
“아, 원장님께 뭐라고 하지.”
원장? 교장도 아니고 선생도 아니고 원장? 날 힐끔 바라본 여학생이 입맛을 다시며 주변을 본다.
“빽 차 어디 있어요? 타게.”
“…….”
“차 없어요? 걸어가요?”
하는 폼을 보니 파출소 꽤 다녀본 모양이다.
“안 잡아간다.”
여학생의 눈이 동그래진다.
“정말?”
“질문 몇 개 답해주면.”
“질문? 뭐요?”
“여기 3학년 학생 중에 애들 문신해 주는 놈.”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학생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진다.
“그, 그, 그런 사람 없어요.”
있구나. 네 표정을 보면 알지. 그 녀석은 애들 사이에서 무서운 놈으로 통할 거야. 그러니 네 얼굴이 그렇게 되겠지.
“이름만 알면 돼.”
“…….”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여학생. 우진이가 막고 있던 두 여학생 중 한 명이 울상으로 말했다.
“경찰 아저씨. 하나 걔 고아예요. 성진이 오빠한테 걸리면 두들겨 맞을 거라고요. 하나는 부모님도 안 계셔서 지켜줄 사람도 없는데 너무 하잖아요.”
고아? 아까 그래서 원장님 이야기를 했구나. 보육원에 사는 모양이다. 하나는 무서운 눈초리로 친구들을 째려본 뒤 날 노려본다.
“못 들은 걸로 해요. 내가 고아인 것과는 상관없으니까.”
나는 가만히 하나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아주 오래전의 나를 보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름 말할 거니, 경찰서 갈 거니?”
“…….”
나는 하나의 답을 기다렸다.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인데. 부디 엇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는 입술을 깨물며 머뭇거린다. 사실 하나 입에서 듣지 않아도 괜찮다. 좀 전에 두 친구 중 하나가 성진 오빠라고 말했다. 성까지 들었으면 좋겠지만 일단 성진이란 이름을 알았으니 찾기 쉬울 것이다.
나는 단지 하나가 직접 범죄자의 이름을 말해주기를 바랐다.
“그 오빠…… 무슨 죄 지었어요?”
“아직 몰라.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
하나는 잠시 더 고민한 뒤 말했다.
“아저씨 진짜 내가 말했다고 하면 안 돼요.”
“그래.”
“고……성진이요.”
“고맙다.”
나는 바로 돌아서서 정문 쪽으로 갔다. 우진은 잠시 아이들을 노려보다 따라붙는다. 우진은 뒤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어디 있는지도 물어보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름 말하기도 어려워하는 애들이 잘도 말해주겠다, 인마. 나는 말없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 일단 경비 아저씨를 찾았다. 하지만 경비실은 비어 있고 아저씨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 교무실로 가자.”
수업 시간인지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복도를 걷다 보니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있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교실 안에서 떠드는 아이들. 가뭄에 콩 나듯 가끔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도 보이긴 한다. 대부분 맨 앞줄에 있는 학생들이다.
수업 중에 기타를 치고 있는 녀석도 있고, 맨 뒷자리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 녀석들도 있다.
우진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하, 완전 똥통이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교무실 문을 열었다. 교무실 풍경은 보통의 학교와 같다. 나는 트레이닝복 차림에 턱수염이 거뭇거뭇 있는 남자 선생에게 다가갔다.
선생은 날 보더니 움찔 놀라며 위아래로 본다. 엉거주춤하게 일어난 선생이 말했다.
“겨, 경찰?”
음? 아직 신분증도 안 보여줬는데. 경찰이 자주 찾아오는구나. 선생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머리를 마구 긁었다.
“경찰 맞아요?”
내가 신분증을 꺼내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 선생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죄송합니다. 이번엔 어떤 녀석입니까?”
“고성진이란 학생을 찾습니다.”
“하…….”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 녀석은 수업도 안 들어옵니다.”
“학교에 없습니까?”
“아뇨, 학교에는 오는데 수업은 안 들어오고 학생부실에 있습니다.”
응? 불량 학생이 수업에 안 들어오는 건 알겠는데 갑자기 무슨 학생부실? 거긴 불량학생들 단속하는 곳 아닌가?
“학생부실은 5층입니다. 안내해 드릴까요?”
“아뇨, 됐습니다.”
“그게…… 혹시 난동이라도 부리면…….”
교내에서 경찰이 학생 잡겠다고 난리를 피우면 반드시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함께 가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답 없는 학생들도 문제지만 포기해 버리는 선생은 더 문제다.
나는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을 쏘아 보내며 돌아섰다.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 저기…….”
선생은 완전히 썩은 사람은 아니었는지 쫓아온다. 계단을 올라 5층에 도착하자 음악실과 미술실, HR실이 보인다. 여기는 일반 교실이 없는 층인가 보다.
저 멀리 오른쪽에 학생부실이라고 적힌 교실 하나가 보인다. 선생은 언제 꺼냈는지 몽둥이 하나를 꺼내 들고 날 앞서간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설마 저런 걸로 애들 패는 건 아니겠지? 저거 맞으면 죽을 것 같은데. 선생은 학생부실 문을 벌컥 열며 소리쳤다.
“고성진!”
선생이 연 문. 그곳에서 하얀 연기들이 뿜어져 나온다. 불이 난 건 아니다. 저건 담배 연기다. 실내가 얼마나 담배 연기로 꽉 차 있길래 불이 난 것처럼 연기가 밀려 나올까?
선생이 부실 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친다.
“너 이 새끼! 내가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무슨 말이냐, 저게.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피우라고 했다는 건가? 정말 선생 맞아? 안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 씨X. 알았다고요.”
“씨X? 씨X? 너 지금 욕했냐?”
“아, 뭐요. 그냥 혼잣말인데.”
나는 학생부실 옆에 서서 고개만 내밀고 고성진을 바라보았다.
학생부실 책상 끄트머리에 의자를 놓고 앉아 의자 앞쪽 다리를 위로 들고 몸을 젖힌 상태로 건들거리는 고성진.
선생님이 왔음에도 테이블 위에 있는 담배와 라이터, 재떨이를 치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녀석의 목 부근에 있는 문신을 보았다. 조잡한 문신이다. 내 기억 속에 있는 뱀 문신은 아니었지만 신체에 꽤 많은 부분이 문신으로 뒤덮여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등에도 문신이 가득하다. 고성진은 덩치 좋은 나와 우진을 보더니 엉거주춤 일어나 선생을 본다.
“누구예요?”
선생이 물러나며 말했다.
“이 새끼야, 경찰이지 누구야? 너 또 무슨 사고 쳤어?”
고성진의 얼굴이 굳어진다. 나는 녀석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손은정의 기억을 읽을 때 봤던 얼굴이 아니다. 나는 의자를 하나 잡고 질질 끌어 녀석의 앞에 두었다.
“우진아.”
“예, 과장님.”
“선생님 잠깐 모시고 나가 있어.”
“예, 선생님? 잠시 나가시죠.”
선생은 한심한 얼굴로 고성진을 한 번 째려본 뒤 우진과 함께 나간다. 고성진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눈알을 뒤룩거린다.
나는 그의 앞에 앉으며 이마를 만졌다.
“여기 5층이다. 문은 저거 하나야. 밖에 형사가 있으니 나가봐야 잡힌다. 도망갈 궁리하지 말고 질문에 답하는 게 서로 좋다.”
“…….”
침을 꿀꺽 삼키는 고성진이 말했다.
“뭐, 뭐요? 질문이 뭔데요.”
나는 고성진을 무심한 얼굴로 보며 말했다.
“가슴에 사이고마데(さいごまで)라는 일본어, 어깨에 천지신명(天地神明)이라는 한자. 목부터 허리까지 내려오는 뱀 문신을 가진 놈.”
고성진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진다. 녀석은 바로 내 시선을 피하며 코를 만진다.
“몰라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고 하긴 하는데 다 티가 난다. 이 녀석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기다란 쇠꼬챙이와 잉크들이 난잡하게 널브러져 있다.
“너 여기서 애들 문신 새겨준다고 하던데.”
“누, 누가 그래요!”
“소문에.”
“뜬 소문이에요. 저 그런 거 안 합니다.”
“그래?”
“예, 진짜 아닙니다!”
손사래 치는 손등에도 조잡한 문신이 잔뜩 있는 놈이 저걸 거짓말이라고. 그때 문이 드르륵 열리며 우진이 한 아이 뒷목을 잡고 들어온다.
“과장님.”
고성진은 아이 얼굴을 보더니 마구 눈을 깜빡인다. 뭔가 신호를 보내는 모양이다. 범법자라고 해도 애는 애인가 보다.
“음?”
“이 녀석이 얼쩡거리길래 잡았는데 왜 왔냐고 물어보니 뭔 리 터치인가 뭔가 받으러 왔답니다.”
나는 다시 고성진을 보고 싱긋 웃었다.
“이래도 아닌가?”
고성진의 얼굴이 구겨진다. 녀석이 우진에게 잡혀 있는 학생을 보며 으르렁거린다.
“너 이 씨X 새끼. 나중에 보자.”
학생이 울상이 되며 말한다.
“혀, 형…… 저는 형이 지금 오라고 해서 온 건데…….”
“입 닫아 씨X놈아.”
나는 우진에게 지시를 내렸다.
“데리고 나가.”
우진이 뒷목을 잡은 학생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몇 살인데 벌써 이런 짓이야, 뭐가 되려고.”
다시 둘만 남은 교실. 나는 손깍지를 끼고 고성진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질문을 해야 거짓말을 할 터인데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니 결국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고성진이 먼저 입을 연다.
“아, 전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일본어 할 줄도 모르는데. 뭘 문신을 새겨요.”
응, 넌 그냥 그림을 그렸겠지.
“뱀 문신은?”
“…….”
“말하는 게 좋을 거다. 1년 꿇었다고 하던데. 졸업할 생각이 있으니 꿇어도 학교 나오고 있는 거 아냐? 학교 잘리고 싶지 않으면 말해라.”
“하, 씨X.”
고성진이 거칠게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게, 한 일 년 전에…….”
고성진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졸업생 형이라고 찾아왔는데 전 한 번도 못 본 사람이었어요.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배달 일 한대요.”
“이름은?”
“이름은 모르고 다른 애들이 그 형을 오로치라고 불렀어요.”
“별명인가?”
“그런 것 같아요.”
“애들이 몇 명이었지?”
“처음 온 건 넷이요.”
“다 같은 문신을 했나?”
“예.”
“네가 모든 문신을 해줬나?”
“예…… 재미가 들렸는지 상처 아물면 바로 다시 왔어요. 또 해달라고.”
“얼마 받았어?”
하나 말로는 고성진이 20만 원을 받고 문신을 해준다고 했다. 고성진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돈 안 받았어요.”
“끝까지 거짓말할래?”
“진짜로 안 받았…… 아니, 못 받았다고요!”
못 받았다? 고성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 새끼들 존나 무서운 새끼들이라고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진짜 또라이 새끼들. 그런 새끼들 돈 받으면 집 갈 때 뒤통수 가려워서 못 받아요. 괜히 칼이라도 맞으면 누가 깽값 준다고.”
일단 고성진은 범죄자 패거리는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드디어 놈들의 꼬리를 잡았다. 나는 의자를 바싹 끌어 앉으며 말했다.
“그 녀석들에 대해 아는 거 전부 말해.”
움찔한 고성진이 침을 꿀꺽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