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31화 (131/328)

살인의 기억 131화

11. 주유소 습격사건(14)

마음 같아서는 이 나쁜 놈들을 치료해 주고 싶지 않았지만, 검거 과정에서 무기를 든 용의자를 제압하며 부상을 입힌 건 넘어갈 수 있어도 검거 후 치료해 주지 않는 건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연주의 의견에 따라 범죄자 취조 전에 의사를 불러 치료를 받게 하기로 했다.

도주 위험이 있는 범죄자들이므로 병원에 양해를 얻어 의사와 간호사 두 명이 직접 경찰서로 와 치료를 하도록 한 나는 찰과상뿐이라 의사가 잠시 진료를 보고 간호사에게 드레싱을 맡기고 간 하나와 마주 앉았다.

하나는 납치당했다. 이것은 분명한 범죄이다. 범죄자들이 지은 죄를 추가해야 하므로 하나의 진술도 필요하다. 나는 노트북을 펼치고 치료 중인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하지만, 한시가 급해서 치료 중에 진술 좀 받겠습니다.”

간호사는 고개만 끄덕이며 드레싱에 집중한다. 나는 날 빤히 보고 있는 하나에게 물었다.

“언제, 어디서 납치당했지?”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가 납치했지?”

“아까 봤던 애들 중에 장발 새끼랑 성진 오빠요.”

“폭행당했나?”

“네.”

“얼마나?”

“머리채 붙잡혀서 끌려 다녔고, 얼굴 한 대 맞았어요. 소리 지른다고.”

이 새끼들이 고등학생 여자애 얼굴을 때려? 망할 새끼들이. 나는 순간 욕지거리가 나올 뻔했지만 입맛을 다시며 참았다. 아무리 그래도 여고생 앞에서 욕을 하긴 좀 그러니까.

그런데 하나 표정이 이상하다. 납치당했던 순간에 대해 진술을 하는 사람은 보통 공포에 젖어 있는데 이 아이는 왜 이리 싱글싱글 웃고 있을까?

“왜 웃어?”

“웃는 거 싫어요?”

“아니? 웃을 타이밍이 아니니까 묻지.”

“그냥.”

뭐가 웃기냐, 도대체. 내 얼굴에 뭐 묻었나? 나는 슬쩍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다시 고개를 돌리자 하나가 바퀴 달린 의자를 슬쩍 끌며 내게 다가온다.

“아저씨.”

“왜?”

“싸움 쩔더라.”

“…….”

“아저씨, 뭐 특수부대 나오고 그런 거예요? 강철부대 아저씨들처럼?”

강철부대가 뭐냐?

“그게 뭐야?”

“에이, TV도 안 봐요?”

“어.”

“힉? 진짜 안 봐요?”

“집에 TV 없다.”

아니지, 원래 고시원 옵션에 TV가 있긴 하지. 소리를 3으로 해놔도 옆방 사는 놈이 조용히 좀 살자고 벽을 쳐대서 못 봐 그렇지. 하여간 안 본다.

하나는 고려시대 사람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내 손을 본다.

“아저씨도 손 다쳤네.”

“별거 아니다.”

하나는 간호사를 보며 말했다.

“언니, 이 아저씨 주먹도 치료해 주시면 안 돼요?”

간호사가 내 손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약을 챙긴다.

“어떻게 다치셨어요?”

“…….”

하나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사람 패다가 다쳤어요, 아저씨. 하하.”

뭘 그렇게 쓸데없이 솔직하고 그러냐? 간호사도 실소를 짓더니 내 손에 약을 바르고 드레싱을 해준다.

이다음 진술부터는 간호사가 들어서는 안 되는 내용이기에 치료를 받으며 잠시 기다린 나는 간호사의 드레싱이 끝나고 난 뒤 말했다.

“치료 끝났으면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중요한 수사기밀이라.”

“아, 네.”

간호사가 자리를 비켜주자, 나는 하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표정이 심각해지자 하나는 표정에서 웃음을 지우며 바로 앉는다.

“하나야.”

“네.”

“너 납치한 놈들 말이다.”

“네.”

“그냥 동네 양아치가 아니다.”

“알아요.”

“알아?”

“네, 엄청 무서운 오빠들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어요.”

네 나이 애들이 무섭다고 해봐야 사람이나 패고 다니는 거 아냐? 이 새끼들은 살인범이라니까. 나는 한숨을 쉰 뒤 말했다.

“고성진이 그놈들과 한패였던 건 나도 몰랐다. 미리 알았으면 네가 이런 꼴 안 당했을 텐데. 미안하다.”

하나는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다 문득 멈칫하더니 날 빤히 본다.

“성진 오빠가 한패라고요?”

“그래.”

하나는 잠시 생각해 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것 같아요.”

응? 이게 무슨 소리야? 하나는 기억을 떠올리다 말했다.

“그 장발 놈과 성진 오빠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장발이 성진 오빠 엄청 무시했어요. 이따위 일도 혼자 해결 못 하고 자기들 부른다고. 계속 고따위로 나오면 안 받아줄 거니 잘하라고.”

안 받아줘? 무슨 말일까?

하나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아, 성진 오빠 말인데. 장발 놈한테 한 대 맞기도 했어요. 막 욕하면서, 병신이라고.”

음, 그렇다면 고성진은 장발 놈의 단체에 들어가고 싶어 발악을 한 놈이라고 봐야 하나? 그럼 일단 살인사건의 공범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데.

“너 때린 사람은 누구야?”

“장발이요.”

“고성진은?”

“오빠는 안 때렸어요.”

음, 아주 쓰레기는 아닌 건가? 곧 쓰레기가 될 예정인 놈인가? 일단 고성진 쪽을 공략해 보는 것이 좋겠다.

“나머지 놈들 중에 얼굴이나 이름 아는 놈 있어?”

“있어요. 노란 머리요.”

노란 머리. 초록색 패딩을 입은 바로 그 녀석이다. 내게 업어치기를 당해 벽에 내다 꽂혔던 그 열일곱 살 먹은 꼬마.

“어떻게 알아?”

“걔, 저랑 같은 학년이었어요. 올해 여름부터 갑자기 학교 안 나왔고.”

“같은 학교 다닌다고?”

“네, 지금은 퇴학당했고.”

“원래 어떤 놈이었지?”

“안 친해서 확실하진 않고 소문에는 아빠가 감옥에 있고, 엄마는 술집 나간다고 들었어요. 맨날 싸움만 하고 다니는 애라 가까이 가기 싫었고.”

음, 불행한 유년 시절이라. 범죄자들에겐 항상 스토리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 속아 동정하면 안 된다. 그건 역경을 헤치고 밝은 빛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력을 다해 몸부림치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실례다.

그보다 더한 일을 겪은 이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불행한 일이 연속해 발생한다고 하여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범죄자는 분명히 잘못된 자들이다.

“그래, 고맙다. 더 아는 건 없지?”

“음, 체육관 도착한 뒤에 들었는데 고성진이 아저씨가 학교 밖으로 나가다 우리와 말하는 걸 5층 창문에서 봤다고 했어요. 친구들이 아저씨 찾아갈 테니 분명히 여기로 올 거라고. 핸드폰도 일부러 켜놓은 거라고 했어요.”

음, 그러니까 함정을 팠다? 허, 고작 스무 살 남짓한 애들에게 쥐어 터지려고 내가 중학교 때부터 현역 형사님들과 체육관에서 피똥 싸게 훈련한 줄 아냐?

“그래, 고맙다. 이제 그만 가. 오늘은 보육원 돌아가지 말고 여기 있고.”

“어…… 왜요?”

나는 눈짓을 하며 말했다.

“저놈들 패거리가 더 있어. 지금 나가면 위험할 수 있다.”

하나는 그제야 두려운 표정을 짓는다. 다 잡은 줄 알았는데 패거리가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제야 겁이 나는 모양이다.

나는 고성진의 취조부터 하기 위해 노트북과 수첩을 챙겼다. 날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하나가 물었다.

“아저씨.”

“어.”

“아저씨는 어릴 때부터 공부 잘했어요?”

“어.”

“와, 부럽다. 부모님이 학원도 많이 보내줬어요?”

“…….”

“잘 사는 애들 그렇던데. 학원도 다니고 휴일에 집에 과외 선생님도 오게 하고. 가끔 드라마 보면 과외 선생님이랑 방에서 공부하고 엄마가 과일 잘라주고 그러잖아요. 난 그게 그렇게 부럽던데.”

하나는 창문 밖을 아련한 얼굴로 보며 말했다.

“나도 그런 집에서 태어났으면 공부 열심히 해서 아저씨 같은 경찰이 될 수 있었을까요?”

“…….”

하, 이런 꼬마한테 내 이야기를 하는 건 별로 안 내킨다. 하지만 하나는 열일곱이다. 아직 안 늦었다. 지금 바뀌면 아이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강혁 아저씨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꼰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술만 마시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 내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 한심해 보이는 애들 바꾸겠다고 잔소리하면 꼰대 소리만 듣는 거다. 애들 지 알아서 잘 큰다. 부딪히고 깨져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 게 인생이야. 똥 찍어 먹기 전에 그게 똥이라고 백날 말해봐라. 꼰대 새끼 잔소리한다는 소리밖에 더 듣나. 웃기는 건 그 말을 하는 어른이란 것들은 지가 호의로 잔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랄하고 자빠졌네. 애들 앞에서 우쭐대려고 나 때는 말이야 어쩌고저쩌고하는 주제에.’

강혁 아저씨의 말이 맞다. 애들 앞에서 나 때는 이랬다 요즘은 왜 이러나 모르겠다 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보면 아이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보다 나 때는 이런 시절도 버티고 살았어. 넌 고작 그걸로 죽는소리를 하는 거냐? 날 봐라. 난 잘 버티고 이렇게 잘살고 있다며 우쭐거리는 마음이 숨어 있다. 결국 제 잘난 척인 것이다.

하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잔소리는 아닐까? 가뜩이나 살짝 삐뚤어진 아이 같은데.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

“공부는 부모가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하는 거다.”

하나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보육원 안 가 봤죠? 거기 얼마나 시끄러운데. 애들 막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그런 곳에서 공부하기 힘들어요. 그렇다고 독서실 갈 돈도 없고.”

하나는 목 뒤로 깍지를 끼며 한숨을 쉰다.

“뭐, 아저씨가 알 리가 없지. 보육원 한 번 구경도 못 한 사람들이 고아가 뭐 벼슬이냐,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 한두 번 들어본 것도 아니고.”

“…….”

마음이 조금 아파졌다.

그렇다고 이 시국에 씨알도 안 먹힐 계도를 할 생각은 없다. 나는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여기 있어.”

“네, 네. 꼼짝 않고 있을게요. 일 보세요.”

나는 하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결국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섰다.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한심하다 화내지 않고 좋은 말로 바른길로 갈 수 있게 할 기회가.

* * *

취조실.

이빨이 몽땅 빠져 솜을 물고 있는 고성진이 취조실로 들어오는 날 보고 벌떡 일어나 차려 자세를 한다. 나는 녀석을 힐끔 보고 테이블 위에 짐을 올려놓은 뒤 자리에 앉았다.

아직 서서 얼어 있는 녀석을 올려 본 나는 눈짓하며 말했다.

“앉아.”

“예!”

고성진이 군인처럼 자리에 앉는다. 역시 이런 류의 녀석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구나. 나는 노트북을 펼치며 말했다.

“아까 같이 있던 녀석들과 한패야?”

하나의 진술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었지만 한 번 더 확인해야 한다. 고성진은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아뇨, 우리 동네에서 잘나가는 형들인데……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아까 학교에서는 왜 거짓말했어?”

“…….”

“너 아까 학교에서 그놈들한테 이 새끼 저 새끼 하면서 말했지? 다음 진술할 때 그놈들한테 말해줄까?”

“헉, 혀, 형사님!”

“그럼 말해.”

고성진이 오만상을 찌푸린다. 하지만 입술만 달싹이고 말을 하지 못한다. 어지간히 겁이 나는 모양이다.

“안심해.”

“…….”

“그놈들 이번에 잡히면 얼굴 볼 일 없어.”

고성진이 무슨 소리이냐는 듯 고개를 든다.

“아저씨, 스무 살 넘은 형들도 있는데 십 대 애들도 있어요. 촉법소년 몰라요? 소년원 갔다가 금방 나올 텐데 보복이라도 당하면…….”

나는 고성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역시 이 녀석은 한패까지는 아니구나.

“그놈들. 살인을 했다.”

고성진의 눈이 커졌다.

“사, 사, 사, 사, 사…….”

“공범이 되고 싶지 않으면 아는 거 다 말해.”

고성진이 놀라 눈알을 뒤룩뒤룩 굴린다. 자신을 협박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지 파악하는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 속에 손은정의 시신 사진이 있다. 고성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지, 진짜 사, 사, 사람을 죽였다고요?”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도, 납치, 살인이다. 보복당할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소년원 갈 놈들도 몇 년 안에 다시 나오기 힘든 중범죄다. 이대로 가면 너도 공범이다. 그러니 말해.”

“…….”

녀석들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큰 두려움을 심어주자 당황한 고성진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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