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32화
11. 주유소 습격사건(15)
별관 사무실.
하나의 친구들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연주, 관우, 하나만 남은 사무실.
관우는 CCTV를 확인하다 뭔가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 화면을 빤히 보고 있는 하나가 보인다.
“왜 여기 있냐?”
“심심해서.”
“이게 재미있어 보여?”
“네, 게임 같고 재미있는데.”
“게임은 젠……. 하, 재미 하나도 없거든?”
“왜요, 재미있어 보이는데.”
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화면에 집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나가 손가락을 화면에 대며 말했다.
“여기 있다!”
관우의 눈에 도로 우편에서 우회전하는 소나타의 모습이 보인다. 뒤를 이어 렉서스도 따라가고 있다. 관우가 하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야, 이 차 쫓는 거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몰라요, 히히. 계속 그 차만 나오던데.”
“재미있으면 네가 할래?”
“그래도 돼요?”
“그래도 되긴! 저리 가!”
하나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일어난다. 관우는 씩씩거리다 좀 미안했는지 종이봉투에서 햄버거 하나를 꺼내 내민다.
“배 안 고프냐? 먹어라.”
하나는 마침 배가 고팠는지 얼른 햄버거를 받아 포장지를 깐 뒤 다시 자리에 앉는다. 관우가 가자미눈을 하며 말했다.
“저기 가서 먹어.”
“저기 의자는 딱딱해서.”
“하, 그래. 먹어라, 먹어.”
관우는 기왕 방해받은 김에 잠시 쉴 생각인지 자기 몫의 햄버거를 꺼내 문다.
캔 콜라를 하나에게 던져준 관우가 햄버거를 먹기 시작하자 하나가 입가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닦으며 말했다.
“아저씨.”
“왜?”
“아까 그 아저씨요. 싸움 잘하는 아저씨.”
“어.”
“그 아저씨 높은 사람이에요?”
“어.”
“오, 진짜? 젊어 보이던데. 계급이 뭐예요?”
“경감.”
하나는 핸드폰을 꺼내 경찰 계급을 검색해 본 뒤 인상을 쓴다.
“순경, 경장, 경사, 경위…… 다음에 경감이네. 아직 위가 훨씬 많은데? 별로 안 높은 거 아니에요?”
관우가 햄버거를 물고 실소를 짓는다.
“야, 그 아저씨가 국가수사본부 수사국 과장이다. 계급이 문제가 아니란 거지. 금방 올라갈 거다. 워낙 능력 있는 사람이라.”
“워, 국가수사본부? 엄청 멋진 이름인데?”
관우가 씩 웃으며 스스로를 가리킨다.
“이 몸도 국가수사본부 소속이시다.”
“와, 멋지다.”
“으하하! 그래?”
“그럼 저 언니도?”
하나가 연주를 가리키자, 관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 맞아.”
“멋있다.”
연주는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귀가 쫑긋거리는 것이 몰래 엿듣고 있다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하나는 연주를 힐끔거리다 물었다.
“경찰 되려면 경찰대 나와야 돼요?”
“아니? 나 경대 출신 아닌데.”
“응? 그럼 경찰대 왜 가요? 점수 엄청 높던데.”
“거기 나오면 경위부터 시작이야. 경찰 간부 되려면 경대 출신이 좋거든.”
“아, 그런 거구나.”
“너 공부 잘하냐?’
“반에서 5등 안에는 들어요.”
“너네 학교 공부 잘해?”
“아뇨, 전국 꼴찌일걸요.”
“킥킥, 전국 꼴찌 학교에서 반 5등이야?”
“치.”
하나는 볼을 부풀리다 물었다.
“그럼 그 과장 아저씨는 경대 출신?”
“어, 그러니 경감이지.”
“아저씨는 어떻게 경찰 됐는데요? 경대 출신도 아닌데.”
“난 아시안 게임 태권도 특채.”
“와, 대박. 저 언니는요?”
“연주는 공채. 근데 쟤도 킥복싱 여자 동양 챔피언 출신이다. 걸리면 죽는 거야. 개기지 마라.”
연주가 고개를 획 돌리며 눈을 흘긴다.
“내가 너냐? 아무나 패고 다니는 무식한 인간으로 보여 내가?”
“난 뭐 아무나 패냐? 영현 선배면 몰라. 낄낄.”
하나가 연주를 보며 물었다.
“공채? 그건 뭐예요, 언니?”
연주가 다시 노트북을 보며 말했다.
“경찰 공무원 시험.”
“그거 어려워요?”
“어.”
“공부 엄청 잘해야 돼요?”
“어.”
“경찰이면…… 음, 정학 같은 거 당하면 못 가요?”
연주가 다시 고개를 돌린다.
“정학당했어?”
하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럼 안 돼. 문신 있어도 안 돼.”
“문신은 없는데…….”
“정학 있으면 일단 자격 요건 미달이야.”
“힝.”
“왜, 경찰 되고 싶어?”
“뭐…… 좀 멋진 거 같아서. 근데 아마 안 될 거예요. 저 보육원에 있거든요.”
연주와 관우가 동시에 하나를 바라본다. 하나는 이런 시선에 익숙한 모양인지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전 공부 시켜줄 부모님도 없고, 보육원 원장님께 학원 보내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정학 없어도 힘들겠죠, 아마?”
연주가 하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노트북으로 고개를 돌린다.
“지랄.”
하나가 갑자기 들려온 욕설에 놀란 얼굴이 된다. 관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연주를 탓한다.
“야, 넌 애한테 지랄이 뭐냐, 지랄이.”
“…….”
관우가 하나에게 말했다.
“야.”
“네?”
“우리 과장님도 고아다, 인마.”
하나가 놀란 얼굴이 된다.
“네……?”
“고아라고. 부모님 얼굴도 몰라, 생일도 보육원 수녀님이 정해줬어. 갓난아기 때 버려져서.”
“…….”
하나는 눈이 튀어나올 표정이다.
“그 아저씨가 고아라고요? 그렇게 높은 사람인데? 아니 그런데 아까는 왜 아무 말도…….”
“무슨 말 했는데?”
“아니, 뭐 그냥…….”
관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우리 과장님. 학원 한 번 안 가본 양반이야. 보육원에서 애들 밤에 잘 때 공부한 사람이다. 그래서 경찰대 수석 졸업까지 한 양반이지. 혹시라도 과장님 앞에서 신세 한탄하지 마라. 한심한 인간 취급 받는다.”
하나의 얼굴이 붉어진다. 자신이 도경 앞에서 한 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한심한 눈빛이 아닌 마음 아픈 눈빛으로 보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 * *
겁을 잔뜩 먹은 고성진이 두서없는 말을 쏟아낸다.
“그, 그게. 집 나와서 아는 형 자취집에 얹혀 살 때였는데. 밤에 배달 알바를 잠깐 했거든요? 거기서 만났어요. 형들이 밤에 바이크 끌고 나와서 사무실에서 대기 중에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처음에 뭣도 모르고 덤볐다가 존X 맞았거든요.”
나는 가만히 고성진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때 처맞고 나서 배달 일 그만두려고 했는데 사장 새끼가 사람 모자란다고 하도 전화를 해대서 다시 나갔는데 그 형들이 먼저 말 걸었어요. 문신해 준다는 소문 들었는데 자기네도 해줄 수 있냐고. 볼 때마다 때릴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친한 척하길래…… 좋다고 했어요.”
고성진은 침을 튀겨가며 설명을 한다.
“우리 학교 졸업생 중에 존X 무서운 형이 있었는데 내가 그 형들과 함께 있을 때 가까이 오는 거예요. 존X 쫄아 있었는데 그 형이 이쪽 형들한테 90도로 인사하는 거 보고 같이 어울리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강한 놈들과 함께 있어서 같이 강한 놈이 되고 싶었다는 거구나.
“아지트 있지?”
“그렇다고 들었는데 가 본 적은 없어요.”
“몇 명이야?”
아까 학교에선 열 명이라고 했다. 고성진이 잠시 속으로 숫자를 세어본 뒤 말했다.
“열한 명이요.”
“다 배달 일 해?”
“지금은 안 나와요.”
“언제부터?”
“두 달쯤 전에 한꺼번에 그만뒀어요. 사장 새끼가 존X 지랄했는데 다 씹고 안 나오던데요.”
“이번에 잡힌 놈들 다 한패야?”
“네.”
“그럼 넷 잡았고, 일곱이 더 남은 거 맞아?”
“아마 그럴 거예요.”
“아지트에 대해 아는 거 전혀 없어?”
고성진이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은 정말 모르는 걸까? 나는 한번 더 으름장을 놓았다.
“너 하나 납치할 때 저 새끼들 불렀지? 이걸로 너 공범으로 몰 수도 있어.”
고성진이 찔끔한다.
“아까 죄목 들었지? 살인이 끼어 있어. 살인범 되고 싶어?”
“아, 아뇨!”
“그럼 기억 짜내.”
고성진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뜯는다. 녀석들과 대화 중에 들었던 작은 힌트라도 좋다. 작은 것이라도 기억해 내라. 나는 팔짱을 끼고 고성진을 기다렸다.
녀석은 한참 생각을 하다 멈칫하더니 고개를 번쩍 든다.
“마, 맞아요! 바이크 타고 배달 대기하다 자기들끼리 낚시 장비 이야기를 했어요.”
“낚시?”
“네, 근데 이렇게 말했어요. ‘숙소 앞 저수지에 요즘 고기가 안 나온다’.”
나는 팔짱을 풀었다. 고기가 나오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녀석들이 말한 ‘숙소’는 아지트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저수지 근처에 아지트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시간을 힐끔 보았다. 밤 11시다.
“하나 납치할 때 장발 놈한테만 연락했어?”
“예? 네…….”
“다른 놈들은?”
“전화번호 모르는데.”
만약 장발 녀석이 다른 패거리들에게 하나를 납치하러 간다고 말했다면 지금쯤 일당이 검거당했다는 것을 알고 튀었을 수도 있다.
“다른 놈들도 네가 벌인 일 알고 있어?”
고성진이 급히 고개를 젓는다.
“아뇨, 지용이 형이…… 아, 저기 머리 긴 형 이름이 지용이에요. 다른 형들이 알면 나 죽일 거라고. 다시는 이런 일로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어요. 자기 밑에 애들만 데리고 나온 거라고.”
됐다. 다른 놈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 거다. 빨리 아지트를 발견하면 모조리 검거할 수 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취조실 문을 열고 소리쳤다.
“관우!”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관우가 고개를 내민다.
“예, 과장님!”
“인근에 저수지 목록 다 가져와.”
“저수지요? 알겠습니다!”
관우는 자리로 돌아와 재빨리 여주 저수지 목록을 확인했다. 총 네 군데. 리스트를 프린터로 뽑으며 원래 하던 CCTV 분석을 이어서 하던 중 관우의 미간이 좁혀진다.
화면을 멈췄던 관우가 키보드를 연타해 화면을 확대시킨다. 가만히 화면을 보던 관우가 프린트가 된 리스트를 뽑아 화면과 번갈아 본다.
네 개의 저수지 목록.
그리고 소나타와 렉서스가 달려가는 도로 위에 표기된 표지판.
표지판에 적힌 글귀와 동일한 단어가 저수지 목록 중에 있다. 관우가 벌떡 일어나 취조실로 달려간다.
“과장님! 찾았습니다!”
* * *
수많은 경찰차의 불빛들.
무려 스무 대의 경찰차가 출동했다. 관우가 찾아낸 저수지 이름은 해경 저수지. 이름은 저수지이지만 예전에는 붕어 양어장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폐업 후 버려져 있다고.
늦은 밤이라 시골 도로에는 차가 없다. 수많은 경찰차가 출동하자, 밤길을 드문드문 걷던 사람들이 돌아본다.
나는 무전을 들어 뒤 차에 지시를 내렸다.
“모두 경광등 끕니다.”
범인들이 멀리서 불빛을 보고 도주할 수 있다. 내 지시가 떨어지자 뒤에서 번지던 불빛들이 일제히 꺼진다. 하지만 밤이라 헤드 라이트까지는 끌 수 없다.
나는 운전 중인 관우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수지 입구까지 들어가지 마. 입구 앞 도로에 주차하고 도보로 들어간다. 한 놈도 놓치면 안 돼.”
“예, 과장님.”
“뒤가 없는 놈들이야. 조심해.”
“하하, 압니다. 경찰 불러내서 죽이려고 하던 놈들인데 오죽하겠습니까? 그래도 저 스무 살 놈들한테 맞고 다닐 정도는 아니니 걱정 마세요.”
저수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자 차를 주차시키는 관우. 뒤따르던 형사들도 눈치껏 우리 뒤에 바짝 주차를 하고 내린다. 관할서 형사들을 포함해 서른 명이 넘는 순경들이 내려 내 앞에 선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총기는 없고, 칼이나 배트, 각목이나 쇠 파이프는 가지고 있을 겁니다. 웬만해서는 몸으로 막아요.”
“예!”
“거기 넷은 입구 막고, 저쪽 넷은 저수지 뒤쪽 막아주세요.”
“예!”
순경들이 내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 움직인다.
“형사님들은 조용히 진입합니다. 목표는 일곱 명. 한 놈도 놓치지 않습니다.”
“예.”
“나머지 순경분들은 일대를 포위합니다. 앞쪽과 뒤뿐 아니라 주변에도 도주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삼 미터 간격으로 전부 포위하세요.”
“예!”
순경들이 사라지고 관할서 형사들 여섯과 우진을 포함한 우리 넷이 남았다. 형사 열이면 충분히 때려잡을 수 있다. 나는 저 멀리 불이 켜진 양어장 건물을 노려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진입.”
형사들이 순식간에 흩어지며 몸을 숙이고 전진하는 것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