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33화 (133/328)

살인의 기억 133화

11. 주유소 습격사건(16)

허리를 바짝 숙이고 조용히 접근하는 건물.

달빛에 비친 양어장 물이 잔잔하다. 정말 고기가 있는지 물거품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곳도 있는 곳.

풀 벌레 소리가 찌르르 울리는 이곳은 악마들의 보금자리답지 않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관우가 풀숲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건물을 노려보다 속삭인다.

“건물 입구가 두 군데입니다.”

내 눈에도 보인다. 나는 일렬로 수풀 뒤에 자리 잡은 형사들에게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 뒷문 쪽으로 접근을 지시했다.

정문은 나와 연주, 관우, 우진이면 충분하다. 건물은 단층 슬라브 지붕으로 된 간이 건물 같다. 아마 양어장이 영업을 하던 시기에 저곳에서 낚시에 필요한 물품을 판매하거나 대여해 주었을 것이다.

건물 외벽은 낙서로 가득하다. 아직은 어둡고 멀어 보이지 않지만 붉은 스프레이로 글도 적혀 있고, 그림도 그려져 있다.

여주경찰서 형사들이 몸을 숙이고 후문 쪽으로 접근하는 것을 본 나는 빠르게 발을 놀려 정문 옆 벽에 몸을 기댔다. 내 뒤를 바짝 따라온 관우, 연주, 우진도 반대편 벽에 선다.

“연주는 혹시 모르니 총기 꺼내.”

몸으로 막는 것도 한계가 있다. 혹시 몸으로 막지 못하는 지경이 되면 지원사격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총을 꺼내고 가장 후미에 선다.

관우가 건물 벽 끝에 붙어 반대편에 있는 형사들과 눈빛을 교환한 뒤 날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일부러 큰 소리를 지르며 문을 발로 찼다.

“진입!”

옆문에 있는 여주경찰서 형사들이 동시에 진입할 수 있도록 큰 소리를 낸 것이다. 쇠로 된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활짝 열리고, 건물 안의 전경들이 보인다.

낡은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 남자들. 어디서 주워 온 것 같아 보이는 가구들 위에 술병이 널려 있고, 얼마나 청소를 안 했는지 바닥은 쓰레기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각자 흩어져 쉬고 있던 녀석들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너 뭐야!”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근데 뭐냐? 여주경찰서 형사들이 진입해야 할 옆문이 덜컹거리기만 하고 열리지 않는다. 잠가두었던 모양이다. 뭐, 알아서 돌아 정문으로 오겠지.

내 뒤에서 몸이 날랜 관우가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간다.

소파에 앉아 있다 일어나며 야구 배트를 든 놈의 가슴팍을 발로 차며 다시 쓰러뜨린 관우가 옆에서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녀석의 등을 차고 뛰어올라 천장에 있는 파이프를 붙잡는다.

갑자기 사라진 관우를 찾느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녀석의 목 위에 내려앉으며 그대로 무릎으로 양어깨를 찍어버린 관우.

순식간에 둘을 처리한 관우가 손바닥을 탁탁 털며 말했다.

“얌전히 가자, 응? 형아 CCTV 보느라 눈이 빠질 것 같거든? 빨리 끝내고 잠 좀 자자고.”

남은 녀석들이 그사이에 각자의 무기를 든다. 우진이 녀석들을 훑으며 말했다.

“쇠 파이프, 각목, 야구 배트. 다 몸으로 막을 수 있는 무기입니다, 과장님.”

“잡아.”

“예!”

우진과 관우가 날뛰기 시작한다.

우진은 그저 싸움 좀 하는 형사 정도였지만 관우는 예상외다. 태권도 아시안게임 특채를 딱지치기해서 딴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듯 붕붕 날아다니며 발차기를 먹여대는 관우.

파워는 좀 모자라 보이지만 스피드가 워낙 빠르고, 모자란 파워를 발차기로 보완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오는 발차기에 또 한 명이 벌렁 쓰러진다. 관우 녀석은 사무실에 앉아 데이터 분석만 맡겨두기는 아까운 인재다.

그때 한 놈이 내게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나는 손을 늘어뜨리며 녀석의 자세를 보았다. 쇠 파이프를 머리 뒤로 두고 내려치려는 자세. 저렇게 돌진하는 녀석을 제압하는 건 간단하다. 타격 시 지지대로 쓰는 앞무릎을 타격하면 곧바로 쓰러진다.

나는 몸을 옆으로 틀며 녀석의 자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곧 허탈함에 웃음을 지었다. 그리 위협적인 무기가 없음을 확인한 연주가 총을 집어넣고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몸무게가 100㎏은 가뿐히 넘을 것 같은 덩치를 연주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옆에서 팔꿈치로 턱을 가격당해 비틀거린 녀석은 정신을 차리지 못해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연주는 골반을 앞으로 빼고 양 주먹을 머리 위까지 든 이상한 자세를 취한다. 아, 연주가 킥복싱을 했다고 했지? 그런데 자세는 어쩐지 무에타이에 가까운데.

돼지 녀석은 자기를 때린 것이 여자라는 걸 알아채고 열이 잔뜩 받아 고함을 지르며 무기를 휘두른다.

“으아아아!! 씨X년이!”

연주는 백 스텝으로 뒤로 훌쩍 뛰어 물러나더니 쇠 파이프가 지나간 후에 다시 달려들어 녀석의 안쪽 정강이를 로우 킥으로 가격한다.

워낙 무거운 녀석이라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다리가 쭉 찢어지며 고관절에 충격이 갔는지 사타구니를 붙잡고 뒤로 자빠져 버린다.

“으헉!”

연주가 붕 뛰어오른다. 나 저 장면 UFC에서 봤는데. 스탠딩 타격을 하다 상대가 쓰러지면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 쓰러진 상대를 덮쳐 가는 파이터의 모습이 보인다.

연주는 공중에서 이미 팔꿈치로 녀석의 얼굴을 조준하고 있다. 나는 다음 장면을 안 봐도 어찌 될지 알 것 같아 다른 곳을 보았다. 하지만 곧 끔찍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이구, 저 돼지 놈 이빨 다 나갔겠네.

그사이 여주경찰서 형사들이 등 뒤로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옆문이 잠겨 다시 정문으로 뛰어들어 온 것이다.

나는 그들 사이에 서서 내 기억 속에 있던 녀석들이 여기 모두 모여 있는지 확인했다.

먼저 손은정의 기억 속에 있던 장발은 이미 잡았고, 반대편에 서 있던 놈은 맨 처음 관우에게 가슴을 맞고 쓰러진 녀석이다.

나는 눈으로 손은정을 뭍을 때 직접 땅을 파던 일본어 문신 녀석을 찾았다.

먼저 관우에게 맞아 소파와 함께 뒤로 자빠진 후 다시 일어나 덤비다가 여주경찰서 형사들에게 짓눌려 바닥에 엎드린 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녀석.

관우가 양어깨를 찍어버린 후 부들부들 떨며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는 녀석.

연주에게 일격을 당하고 바닥에 기절해 있는 돼지.

아직 우진과 격투 중인 놈이 하나. 저쪽은 아직 제압은 못 했지만 하는 걸 보니 금방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팀이 상대하고 있는 건 이렇게 넷이다.

상황을 보던 범인들 중 두 명이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창문을 깨고 도주하려 하다 여주경찰서 형사들에게 발목을 붙잡힌다.

깨진 창문에 몸이 긁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발버둥을 치며 소리치는 두 녀석. 저쪽도 끝났다. 일반인도 아니고 형사들 여럿에게 붙잡혔으면 도망갈 곳은 없다.

그런데…… 일본어 문신을 한 놈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방으로 쓰이는 공간이 우측에 가려져 있다.

나는 재빨리 식탁을 뛰어넘어 주방을 확인했다. 냉장고가 하나, 싱크대가 하나. 나머진 전부 쓰레기들과 곰팡이 핀 음식물 찌꺼기들이다.

코를 찌르는 냄새에 고개를 돌린 나는 다시 주변을 확인했다.

“젠장.”

냉장고 옆에 작은 창문이 있다. 그리고 창문은 활짝 열려 있다. 녀석은 절대 놓치면 안 된다. 기억 속에서 녀석은 이 단체의 리더였다. 대가리를 못 잡으면 헛수고다. 조직원은 얼마든지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 들자마자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 * *

십 분 뒤.

상황이 정리되자, 여주경찰서 형사들이 모든 범죄자들을 검거 후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전부 몇 놈이야?”

“어디 보자, 하나, 둘…… 여섯인데? 한 놈 어디 갔어?”

“제길, 한 놈 튀었잖아!”

“찾아!”

돼지 녀석 얼굴을 발로 밟고 있던 연주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과장님이 잡으러 가셨어요.”

여주경찰서 형사들의 얼굴이 흙빛이 된다.

“빨리 지원 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혼자서는 힘들 텐데.”

관우가 기절한 돼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싸대기를 찰싹찰싹 때린다.

“야.”

찰싹찰싹.

“야.”

찰싹찰싹.

“인마.”

돼지 녀석이 가늘게 눈을 뜨자 관우가 묻는다.

“너네 총 있냐?”

돼지 녀석이 인상을 쓴다. 관우가 다시 싸대기를 찰싹찰싹 때린다.

“있어?”

찰싹찰싹. 찰싹찰싹.

세게 때리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열 받게 찰싹거리며 뺨을 때리는 관우. 이가 다 부서진 돼지가 열이 받아 소리를 지른다.

“없다고!”

관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일어난다.

“없으면 없는 거지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관우가 어이없는 눈으로 자신을 보는 여주 형사들을 보며 씩 웃는다.

“총 없는 놈이면 됐습니다.”

여주경찰서 형사들이 서로를 보며 물었다.

“그래도…… 칼이라도 휘두르면 부상의 위험도 있고.”

연주가 누워 있던 돼지 녀석을 뒤집어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네, 일단 가긴 가야죠. 과장님이 그 새끼 죽이기 전에 말려야 되니까. 관우야, 네가 가.”

“오케이.”

관우가 달려나간다. 여주경찰서 형사들이 구석에서 자신이 체포한 녀석에게 수갑을 채워 돌아오는 우진을 보며 물었다.

“야, 과장이란 사람이 그렇게 대단해?”

“…….”

우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는다.

“살살하실 겁니다. 아마도…….”

어두운 저수지 주변 수풀 속.

빠르게 도망치느라 온갖 잡음을 다 내며 달려가는 녀석을 쫓는 나는 특별히 추적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조용한 이곳에 수풀 헤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녀석도 내가 쫓고 있음을 알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풀 속에 작은 공터가 나왔다. 녀석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철조망을 붙잡고 기어오르고 있다.

나는 달려가 그대로 철조망을 걷어찼다. 그러자 반동 때문에 흔들리는 철조망에서 떨어지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놈.

나는 목을 풀며 쓰러졌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놈에게 다가갔다.

“너냐?”

“X……발.”

“너야?’

“뭐가, 이 새끼야.”

삭발을 하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녀석. 내 기억 속에 있던 바로 그 녀석이다. 나는 손가락을 풀며 말했다.

“손은정 씨 기억하지?”

“…….”

“납치해 돈 갈취한 것도 부족해서 산 사람을 생매장시킨 놈. 너 맞지?”

녀석은 눈알을 굴리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바위를 집어 들고 달려온다.

“이 개새끼가! 아가리 안 닥쳐!”

바위로 내 얼굴을 찍으려는 녀석. 나는 몸을 슬쩍 피했다. 저렇게 무거운 바위는 무기로 쓰기 힘들다. 무게가 무거워 순간적인 궤도 변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무게 때문에 바위를 놓친 녀석은 몸을 틀며 내게 주먹을 날린다.

공중에서 날아오는 주먹에 팔을 걸어 팔짱 낀 자세로 만든 나는 녀석에게 속삭였다.

“너 스무 살 넘었냐?”

“놔! 놓으라고, 씨X 새끼야!”

녀석이 다른 손으로 내 옆구리를 친다. 일단 한 대는 맞아주마.

“아프다, 스무 살 넘었냐고.”

“X까, 씨X놈아. 그래, 넘었다!”

팔짱을 건 나는 씩 웃으며 녀석에게 윙크를 했다.

“애가 아니네?”

“지랄하네! 놔!”

녀석이 발버둥을 치며 팔짱을 풀고 물러난다. 나는 주먹을 풀며 미소를 지었다.

“애가 아니니까 살살할 필요 없겠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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