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34화 (134/328)

살인의 기억 134화

11. 주유소 습격사건(17)

피가 튀고, 이빨도 날아간다. 어느 순간부터 신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풀벌레 소리에 묻힌 타격음만이 간간이 흘러나오는 현장.

수풀 속에서 뛰어나온 관우가 내 허리를 붙잡고 밀어붙인다.

“과장님! 이러다 사람 죽어요!”

잠깐만 비켜봐. 한 대만 더 때리고.

나는 관우 허리를 잡고 빙글 돌려 던져 버린 후 쓰러지려던 녀석의 머리를 잡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녀석이 피를 게워내며 흐려진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는 녀석을 빤히 바라보며 주먹을 들었다가 눈빛에서 의지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놓아버렸다. 옆으로 풀썩 쓰러져 기절하는 녀석.

관우는 다시 달려들다가 내가 녀석을 놓자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숙인다.

“헥헥, 심장 튀어나오는 줄 알았네.”

관우가 기절한 녀석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관찰하며 말했다.

“이야, 잔인도 하셔라. 얼굴을 아주 걸레로 만들어놓으셨네.”

“…….”

“다른 곳은 안 때리고 얼굴만 패셨네요?”

“…….”

“이거 완전 원한범죄 M.O인데요? 하하.”

농담을 하던 관우가 녀석을 엎어지게 한 뒤 수갑을 채운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당신이 하는 말은 당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아, 나 뭐 하냐. 기절한 새끼한테. 야! 나 원칙 말해줬다?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라?”

관우는 수갑을 채운 후 녀석의 얼굴에 물을 뿌리기도 하고, 싸대기를 날리기도 했지만 놈은 깨어나질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에 귀를 대본 관우가 안심한 얼굴로 말했다.

“죽었는 줄 알았네.”

음, 좀 심하긴 했다. 손은정 씨 기억을 보아서 그런지 꼭 원수를 상대하는 기분이 들어 오버를 한 모양이다. 나는 관우 보기가 약간 민망해 화제를 돌렸다.

“나머지 놈들 다 검거했어?”

관우가 수갑을 차고 엎어져 있는 놈을 툭툭 치며 웃는다.

“네, 이놈까지 일곱 놈. 전부 잡았습니다.”

“좋아, 작전 완료. 모두 복귀한다.”

“예!”

관우가 쓰러진 놈을 들쳐 업으며 말했다.

“야야, 이 정도로 맞은 게 다행인 줄 알아라. 너 형 안 왔으면 저승사자랑 먼 길 떠날 뻔했어. 모르지? 그러니까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고 빵에서 썩는 거야. 요즘 거기 밥도 맛있어.”

관우가 녀석을 들쳐 업고 경찰차가 있는 방향으로 내려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다시 양어장 건물 쪽으로 향했다.

검거 작전이 완료되고 아직 치우지 않은 사건 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검거 및 이송은 여주경찰서 형사들에게 맡겼는지 연주가 홀로 남아 날 기다리고 있다.

“안 죽였죠?”

그게 경찰한테 할 질문이냐? 나는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주가 눈짓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 좀 보세요.”

연주가 난장판이 된 현장을 헤치고 들어가 벽을 눈짓한다. 나는 황당한 눈으로 벽을 바라보았다. 붉은색 스프레이로 쓰여진 글귀가 보였기 때문이다.

“행동강령……?”

연주가 팔짱을 끼며 어깨를 으쓱한다.

“제대로 미친놈들이었네요.”

내 눈에 피로 쓰여진 글귀가 보인다.

최양은 같은 최고의 깡패가 된다.

배신자는 죽는다.

화끈하게 살다가 멋지게 죽는다.

잡히면 그 자리에서 죽기로 맹세한다.

연주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주 꼴값들을 떨고 있네. 마지막 네 번째 지킨 놈은 한 놈도 없잖아?”

아니지, 하나도 못 지킨 거지. 아무리 어린놈들이라도 그렇지, 롤 모델로 삼을 인간이 그렇게 없었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서로 복귀한다.”

* * *

잡힌 놈이 열한 명이나 되었기에 여주경찰서 형사들까지 취조에 동원되고, 나는 주요 용의자인 셋을 별관으로 데려왔다.

한 놈은 마지막에 내게 피떡이 되도록 맞은 녀석이고, 장발 놈과 손은정 씨 옆에 있던 다른 한 놈이다.

연주와 관우에게 각기 한 놈을 맡기고 나는 조직의 리더인 삭발 녀석과 마주 앉았다.

미리 신분증을 빼앗아 기본정보를 기재해 둔 나는 팔짱을 끼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우지영.”

삭발 놈의 이름은 우지영이었다. 나이는 22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며 중졸이라 군대도 면제다.

내년부터는 중졸도 군대를 간다고 하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놈은 징역을 갈 테니 군대는 안 가겠지.

“우지영”

나는 두 번이나 우지영의 이름을 불렀지만 녀석이 답을 하지 않는다 윽박지를 수 없었다. 녀석이 온몸에 힘이 다 빠져 축 늘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좀 심했나? 아니다, 이런 놈들은 더 맞아야 된다. 내가 일어나 다가가자, 의자를 마구 뒤로 밀며 내게 멀어지려 하는 우지영.

나는 발버둥 치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물러나는 거 보니 아직 힘이 남았네?”

“…….”

“얌전히 대답 안 하면 또 한판 하고.”

“경찰이…… 이래도 돼?”

“어, 이래도 돼. 너 같은 새끼한테 법 다 지켜가며 검거할 생각 없고.”

“고소할 거야.”

“해.”

“…….”

나는 허리를 숙여 앉아 있는 우지영의 어깨동무를 하며 속삭였다.

“테이블 아래 버튼이 있어. 저걸 끄면 영상도 사운드도 다 꺼지거든? 내 질문에 대답을 안 하면 저 버튼이 꺼지게 될 거야. 그다음은 알지?”

“…….”

우지영의 눈에 공포가 어린다. 역시 이런 녀석들은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가장 쉽다. 나는 우지영의 어깨를 툭툭 친 후 다시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행동강령. 누가 정했어?”

우지영은 눈을 뒤룩거리다 말했다.

“내가.”

“존댓말.”

“…….”

“내가 네 친구냐?”

“……제가, 했습니다.”

“애들 끌어모은 이유는?”

우지영은 입술을 깨물고 분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애들 끌어모은 후에 자금 모으고 강남 접수하려고 그랬습니다.”

“강남을 접수해? 무슨 의미야?”

“조직 만들어서 거기 접수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애들 모아서 기존 조직들과 싸워 이권을 가져오려고 했다?”

“예.”

“자금이 필요해서 주유소 털었고?”

“예.”

미친놈들인가? 강남 조폭들의 자금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거야? 고작 주유소 몇 군데 털어서 이천만 원 모아서 강남을 치려고 했다고? 멍청한 거야, 순진한 거야?

너희들이 아무리 죽을 똥을 싸서 애들 모아봐라. 강남에 있는 동네 한 군데에 있는 조폭들보다 수가 적을 거다. 이놈들아.

“손은정 씨 납치, 살해. 인정하나?”

“…….”

“버튼 꺼줘?”

우지영은 크게 호흡을 한 뒤 천천히 팔짱을 낀다. 녀석의 태도가 바뀌었다. 턱을 살짝 든 녀석이 당당한 어투로 말했다.

“내가 했습니다.”

그게 자랑이라도 되냐?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나는 순간적으로 바뀌는 우지영의 태도를 보고 그들의 행동강령을 떠올렸다. 나는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행동강령대로 하는 거냐?”

“남자답게.”

“지랄하네, 남자다운 게 뭔데?”

“죽을 때 죽더라도 당당하게. 화끈하게 살다 멋지게 갈 겁니다.”

“그게 남자다운 거냐?”

“남자니까.”

나는 노트북을 닫은 후 서류철로 녀석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퍼억!!

한 대 맞은 녀석은 날 죽일 듯이 노려본다. 하지만 금세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눈을 피한다. 나는 녀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진짜 남자다운 건 말이다. 책임감이 있는 남자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가족을 지켜내는 남자. 가족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자. 그게 남자다운 거다. 너 같은 새끼들이 말하는 남자다운 행동은 깡패 같은 행동이다.”

우지영이 고개를 돌린 채 인상을 쓴다. 그래, 쇠귀에 경 읽기이겠지.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조직원 열 한 명이 전부야?”

우지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우지영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상의 벗어.”

“…….”

“벗어.”

“이건 인권에 위배되는 거 아닙니까?”

“문신 보는 거다. 인권과 관계없어.”

우지영은 마지못해 윗옷을 벗었다. 나는 기억 속에 있는 우지영의 문신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그 일본어 문신. 사이고마데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냐?”

우지영은 자신의 가슴을 내려 보며 말했다.

“최후까지. 마지막까지.”

“그래.”

나는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

“예지력이 있나 보네.”

우지영이 상의를 탈의한 채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노트북을 옆구리에 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의 가슴을 눈짓하며 말했다.

“최후까지, 네 인생의 마지막까지 빵에서 썩을 거니까.”

“…….”

나는 멍한 얼굴의 우지영을 노려보았다. 지금 이 녀석의 표정. 하늘에 간 손은정 씨가 보고 있을까?

혹시 신이 있다면 먼저 간 손은정 씨가 이 녀석의 표정을 보고 있기를 빈다. 그리고 이 녀석의 남은 평생에 밤마다 꿈에 등장해 괴롭혀 주시기를 빈다.

* * *

서울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장영훈 본부장이 신문을 펼쳐 들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으하하! 대서특필이네, 수고했다!”

넓게 펼치고 있던 신문을 접어 테이블 위에 두는 장영훈 본부장.

“네 덕에 면 좀 섰다.”

본부장님은 지난번 오진규 경감 쪽에서 맡은 아동 납치 살인사건 때문에 골치 아팠다. 아이의 아버지인 교수가 그 사건에서 경찰의 수사가 허술해 아이가 죽었다는 칼럼을 게재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진규 경감은 일시 근신 중이라고 한다.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좋은 사람 같았는데 안됐다.

장영훈 본부장이 연신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봐라, 이거. 범인 열한 명 전원 검거! 행동강령도 공개됐어. 호오, 그냥 뒀으면 더 큰 조직이 되었을 것을 경찰의 빠른 수사와 검거 작전으로 조기에 막는 쾌거를 거두었다. 이야, 누가 썼는지 기사 한번 잘 썼네.”

장영훈 본부장이 금일봉을 봉투에 넣어주며 내민다.

“고생했다, 애들 데리고 회식이라도 해라.”

“괜찮습니다.”

“청장님이 직접 주신 거다.”

음, 강혁 아저씨가 준 거면 받아도 되겠지.

“감사합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한다, 이놈아. 으하하!”

“예, 충성.”

금일봉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몇 주나 꽤 고생했는데 애들 소고기 사 먹일 돈은 됐으면 좋겠다. 경례를 하고 일어나 나가려는 내 귀로 장영훈 본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앞으로 수고하라고, 현도경 경정.”

나는 멈칫하며 돌아보았다.

“예?”

경정? 나 경감인데. 장영훈 본부장님이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국가수사본부 과장이 경감인 것부터가 이상했다. 이번에 특진하니까 그렇게 알아. 아, 이건 청장님 지시가 아니고 내가 하는 거다?”

경정이라고? 나 고작 서른두 살인데? 이렇게 빨리 가도 되는 걸까? 문득 강혁 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미친, 인마. 내 나이가 몇인데. 이 나이에 청장 하면 정년만 빨라지지.’

음, 출세하는 건 좋은데 이러다 오십 대에 은퇴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경례를 했다.

내 표정이 진급한 것이 좋아서 그런 줄 아는 장영훈 본부장님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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