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38화
12. 지하철 괴담(4)
서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국.
사무실로 들어온 날 돌아본 관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야, 능력 있는 우리 과장님!”
나는 유재영의 진술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느라 굳은 얼굴로 내 자리로 가다 멈춰 섰다.
“뭐?”
관우가 모니터를 돌려주며 말했다.
“유재영 씨가 좀 전에 글을 올렸습니다. 수사 나온 형사님이 정말 진중한 자세로 인터뷰해 줬다고. 반드시 해결해 줄 것같이 믿음직스러운 형사가 왔다고 말입니다.”
“…….”
“좀 전에 본부장님이 왔다 가셨는데 청와대 쪽에서도 잘했다고 칭찬이 나왔답니다. 기분 좋아 보이시던데 과장님 안 계셔서 그냥 돌아가셨습니다.”
자기 자리에 앉아 있던 연주가 고개를 들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저 같으면 가자마자 싸대기를 갈겼을 텐데. 우리 과장님은 역시 처세술도 좋으세요. 혼자 가신다고 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상대가 SNS에 인터뷰 태도에 대해 지껄일 것도 미리 아신 거죠?”
“…….”
지금 그런 것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이놈들아. 나는 굳은 얼굴로 테이블을 짚었다.
“연주야, 관우야.”
“예, 과장님.”
나는 심각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
“아무래도 이거 진짜인 것 같다.”
연주와 관우는 순간 말문이 막힌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관우와 눈빛을 교환하던 연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뭔가 확실한 게 나왔어요?”
“…….”
확실한 게 나왔지. 그런데 말해주지는 못해. 미안하다. 나는 가만히 연주를 바라보았다. 관우 역시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 한숨을 쉬며 모니터를 제 쪽으로 돌린다.
“과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어디부터 조사하면 됩니까?”
녀석, 믿어줘서 고맙다.
“7월 19일, 12시 13분. 중앙선 양원역이다.”
관우가 키보드를 두드리다 멈칫하더니 달력을 본 후 인상을 쓴다.
“오늘 9월 3일인데. CCTV 없을걸요?”
“일단 중앙선 관제센터로 가서 확인해 줘.”
관우가 마지못해 일어나며 말했다.
“확인 대상은요?”
“일단 유재영 사진 확인하고, 그 사람부터 찾아. 맞은편에 있던 세 남녀가 타겟이다.”
“알겠습니다, 과장님.”
꼬치꼬치 캐물을 만도 하건만. 관우는 말없이 내 지시를 따라 중앙선 관제센터로 간다. 연주는 남아서 멀뚱히 우릴 보고 있다 관우가 자리를 비우자 말했다.
“과장님.”
후, 아무래도 연주에겐 다른 핑계가 필요한 모양이다. 뭐라고 말할까? 거짓말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대충 둘러대야지.
“그게…….”
“전 뭘 할까요?”
“응?”
“관우는 관제센터로 갔고, 전 뭘 할까요?”
“…….”
연주가 씩 웃으며 엄지를 세운다.
“과장님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뭔가 또 감이 빡 오신 거죠?”
“어…….”
“어차피 이거 우리 과에 할당된 일이니까 움직여야죠. 아무 목적도 없는 것보다 과장님이 확신해 주시니 동기부여가 되네요.”
연주가 일어나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전 뭘 할까요?”
녀석. 관우처럼 벌떡 일어나 움직이진 않았지만 날 믿어주고 있구나. 좀 미안하다. 난 언제나 두 사람에게 거짓말만 하는데 날 이렇게 믿어주니 말이다.
“사람을 찾아야 돼.”
연주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 손가락을 튕긴다.
“의사?”
“응.”
연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음, 의사라는 것밖에 모르는데. 어느 역에서 탔는지 아세요?”
“양정역.”
“음, 거기 병원이 있었나? 그 동네는 달동네인 걸로 아는데. 힌트 더 없어요?”
“신경외과 전문의라고 했어.”
연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PC를 조작해 뭔가를 검색하곤 고개를 저었다.
“양정 근처에는 신경외과가 없습니다. 전문의라 종합병원에 다닌다고 해도 가장 가까운 게 구리시에 있는 대학병원이고.”
직장에서 퇴근하고 지하철을 탄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럼 그가 양정역에서 탔다는 사실이 신상정보 유추에 전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뭐가 있을까? 유재영에게 들은 정보. 그리고 내가 읽은 기억. 그중 의사를 찾아낼 단서가 없을까?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기억에 집중했다.
지하철 내에 앉아 있던 나. 문이 열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 뛰어들어왔던 남자. 정장 차림에 크로스백. 또 뭐가 있었지? 다시 기억을 돌려 지하철에서 내린 후를 떠올려 본다.
유재영은 의사에게 화를 내며 멱살을 잡았다. 의사는 그런 유재영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 약 봉투가 들려 있었다. 여기다, 여기가 힌트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 약 봉투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청…… 청…….”
청 뭐라고 써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흐릿하다. 눈을 감고 중얼거리는 날 바라보던 연주는 뭔가 떠오르는 듯 키보드를 두드린다.
난 한 글자밖에 말 안 했는데 뭘 눈치챈 거지? 연주는 모니터를 눈짓하며 말했다.
“중앙선이라고 했죠?”
“어.”
“중앙선 역 중에 청으로 시작하는 역은 하나뿐이죠.”
청으로 시작하는 역? 아, 약봉지에 써 있는 건 병원 이름일 테니 지역명이 먼저 붙었을 확률이 높겠구나. 연주가 모니터를 돌려주며 말했다.
“청량리요. 여긴 병원 많아요. 신경외과나, 신경외과 전문의가 있을 만한 병원을 추려보고 찾아내겠습니다. 혹시 이름 같은 건 모르시죠?”
“응, 미안.”
“괜찮아요, 이런 일 한두 번도 아니고.”
연주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검색에 열중한다. 음, 청량리에 있는 병원 다 뒤지려면 고생 꽤 하겠다.
* * *
장영훈 본부장님의 방.
기분이 좋은 본부장님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우리 도경이가 서비스 마인드 넘치는 형사였구나! 청와대에서도 진정 국민을 위한 형사라며 칭찬을 했어. 덕분에 내 면이 섰다, 녀석아.”
“…….”
“하하, 부끄러워하긴. 잘했다, 잘했어.”
“본부장님.”
“그래.”
나는 본부장님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거 진짜인 것 같습니다.”
“뭐? 하하하! 이 녀석이 지금 뭐라고…….”
웃어넘기려던 장영훈 본부장님의 눈이 커졌다. 말을 하다 멈칫한 본부장님이 날 보며 미간을 찌푸린다.
“읽은 거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부장님은 인상을 쓰며 고심에 빠졌다.
“그러니까 누군가 진짜 지하철로 시신을 옮겼다?”
“예.”
“도대체 왜? 사람들 눈에 띄는 방법으로 시신을 옮길 이유가 없지 않나?”
“…….”
“너라면 그렇게 할 거야?”
아니다. 혹자는 말한다. 경찰이 살인자가 되면 못 잡는다고. 경찰 수사 방법을 뻔히 다 아니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경찰이 아니라 일반인이라고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답을 하지 못하는 날 빤히 보던 본부장님이 턱을 괸다.
“하, 다른 놈이 말했으면 미친놈 취급하며 넘길 텐데. 말한 놈이 너라니. 이거 그냥 넘길 수도 없고.”
장영훈 본부장님은 내 능력을 아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본부장님은 날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지원 필요해?”
“아직 괜찮습니다. 확실해지는 것이 있으면 요청드리겠습니다.”
“괴담이 진짜면 거기 나온 의사도 실존해?”
“예.”
“하, 이거 공개수사로 전환해서 의사를 찾는다고 할 수도 없고.”
“…….”
안 그래도 현재 여론은 반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실제로 움직이는 경찰을 칭찬하는 사람들. 그리고 수사 시작이 공개되자마자 국민 혈세를 엉뚱한 괴담에 낭비한다며 공격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래도 저래도 어차피 욕을 먹는 것이 경찰인가 보다. 이 상황에 공개수사 전환까지 하면 여론의 다툼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장영훈 본부장님이 턱을 괴고 고민하다 말했다.
“일단 알았고. 지원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라. 청와대는 어차피 보여주기 수사를 할 작정이야. 대규모 수색 인원이 동원될 일이 있다면. 어쩌면 더 좋아할 수도 있다. 국민들에게 성의 있는 수사 중이라는 광고가 될 테니까.”
“얼마나 동원 가능합니까?”
“의경 5개 중대까지.”
“참고하겠습니다.”
장영훈 본부장이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괴담이 진짜였다……. 경찰이 국민의 힘에 의해 움직였고, 결국 해결해 냈다. 결과만 좋으면…… 이야, 이거 청와대에서 알면 춤을 추겠군.”
그 사람들이 춤을 추든 자빠지든 알 바 아닙니다. 물론 일이 잘 안 되거나 지지부진하면 청와대가 압력을 넣을 것이니 본부장님이 괜히 미리 알리지 않을 것이다. 난 내 할 일에만 집중하자.
* * *
두 시간 후, 병원을 검색하던 연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프린트되고 있는 서류를 뽑아 들고 말했다.
“청량리역 반경 5㎞ 내에 있는 병원 중 신경외과 전문의가 있을 만한 곳 리스트를 뽑았습니다.”
“몇 곳이야?”
“서른한 곳이요.”
“후, 시간 좀 걸리겠네.”
“막상 하면 또 금방 해요. 저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때 관우에게 전화가 온다. 나는 연주에게 잠시 기다리란 신호를 보내고 전화를 받았다.
“그래, 관우야.”
-과장님, 예상대로 CCTV 데이터는 없습니다.
하, 결국 그렇게 됐구나.
“그래, 알았다.”
-그런데 과장님. 여기 지하철 공익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
“뭐?”
-그게……
관우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이것도 괴담 비슷한 거라 말씀드리기가 좀.
괴담? 조금 전까지 괴담이라 믿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이야기 길어?”
-어, 좀 깁니다.
“어느 역에 있어?”
-청량리역이요.
“그리 가마. 지하철 공익 교대하고 퇴근하면 잡아놔.”
-예, 과장님.
나는 연주의 차를 얻어 타고 청량리역에 내렸다. 관우도 차를 가져왔으니 돌아갈 땐 녀석 차를 타면 된다.
역에서 내려 중앙관제센터에 오자, 공익근무요원들이 보인다. 관우는 젊은 공익요원들 속에 섞여 신나게 농담을 하다 날 보더니 발딱 일어나 손을 든다.
“과장님, 여기요.”
나는 관우에게 내 이야기를 미리 들었는지 약간 얼어 있는 공익요원들을 바라보았다. 사람은 총 여섯.
나는 공익요원들을 둘러보며 관우에게 물었다.
“누구야?”
관우가 두 사람을 지목하며 말했다.
“여기 두 친구입니다.”
관우가 이미 보여줬겠지만 다시 한번 내 신분증을 보여준 나는 두 사람에게 눈짓했다.
“여기 조용히 이야기할 곳이 있습니까?”
공익요원이 한쪽을 가리킨다.
“저기 직원 휴게실이 있는데.”
“거기로 잠깐 가죠. 나머지 분들은 돌아가도 좋습니다.”
두 사람과 관우를 데리고 휴게실에 들어온 나는 중앙에 있는 동그란 탁자에 앉은 후 팔짱을 꼈다.
“들어볼까요?”
공익요원이 서로 눈치를 본다. 서로 네가 말하라는 듯 눈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두 사람. 결국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나선다.
“그게…….”
“네,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한 2주 전 이야기입니다.”
별로 소득이 없는 그저 그런 무서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괴담 중 사실이 있다고 생각하니 어떤 것도 그냥 넘길 수가 없다. 공익요원이 말했다.
“저희는 4조 2교대 근무인데 출근을 하면 제일 먼저 순찰을 돕니다. 담당 구역을 한 바퀴 쭉 돌면서 이상 없는지 확인하고 이전 근무자와 인수인계를 하는데 평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출근한 시간은 오후 네 시쯤이었고.”
꽤 자세하다. 게다가 말하는 본새를 보니 직접 겪은 이야기인 것 같다. 나는 그의 말을 끊지 않고 경청했다.
공익요원이 말을 잇는다.
“직원 전용 계단으로 내려가 선로 쪽으로 갔는데 1번 열차 칸 앞에 어떤 아저씨가 아이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인 채로 서 있더군요. 열차 기다리나 보다 하고 다른 곳으로 순찰을 갔습니다. 그사이 열차가 세 번 정도 지나갔고요. 순찰을 마치고 다시 직원 전용 계단으로 왔는데 아저씨와 애가 아직도 1번 칸 앞에 서 있더군요. 그래서 그냥 열차 타고 여기서 내릴 누군가를 기다리나 보다 했습니다.”
직원은 침을 삼킨 후 말을 잇는다.
“그런데…… 올라와서 근무를 서고 밥을 먹고…… 서류 작업을 하고, 여기 직원분들 심부름도 다 끝내고 이제 퇴근 직전이었습니다. 마지막 순찰을 한 번 돌려고 직원 전용 계단으로 내려갔는데…….”
직원이 약간 무서운지 몸을 떨며 말했다.
“그, 그 아저씨와 애가 아직도 거기 서 있었습니다.”
응?? 몇 시간 동안 거기 그냥 서 있었다고?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