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39화 (139/328)

살인의 기억 139화

12. 지하철 괴담(5)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몇 시간이 지난 겁니까?”

“여덟 시간이요. 막차 시간이라 정확히 기억합니다.”

나는 공익요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친구는 내가 경찰이란 것을 안다. 경찰은 CCTV를 요구할 수 있다. 게다가 사건이 일어난 것이 2주 전이라고 했다. 여기서 근무하는 이가 CCTV 보관 기간이 30일이란 걸 모를 수 없다. 결국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는 결론이다.

‘혼자도 아니고 어린아이를 여덟 시간이나 세워놨다고?’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보다 물었다.

“아이가 몇 살로 보였습니까?”

“어…… 한 다섯 살쯤으로 보였습니다. 여자아이였고요.”

이상하다. 너무 이상하다. 손을 잡고 있었다면 딸일 확률이 높은데. 어떤 아버지가 다섯 살 먹은 딸을 여덟 시간이나 지하철역에 세워둔다는 말인가? 나는 바로 관우에게 눈짓했다.

“진술받은 시간에 CCTV 자료 확보해.”

관우가 볼을 긁는다. 이상하긴 해도 현재 수사와는 관련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공익요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동학대 사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친 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난다.

“알겠습니다, 과장님.”

나는 공익요원들과 함께 잠시 휴게실에서 기다렸다. 그들의 퇴근 시간이긴 하지만 관우가 CCTV로 대상을 확인 후 그들이 본 사람들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관우이니 대상 시간을 정확히 아는 만큼 금방 발견해 낼 것이다.

예상과 같이 관우는 나간 지 오 분도 안 되어 프린트된 서류와 CCTV 저장장치를 들고 나타나 공익요원들이 앉은 테이블에 놓는다.

프린트된 용지에 지하철 역사 내에 설치된 CCTV에 찍힌 남자와 그의 손을 잡고 있는 여아의 모습이 담겨 있다. 관우가 물었다.

“이 사람들 맞아요?”

공익요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쉰다.

“휴, 맞습니다.”

관우가 공익요원의 반응을 살핀 후 물었다.

“왜 안심하신 표정 같죠?”

“아…… 그게.”

공익요원이 잠시 우물쭈물하다 약간 창피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사실 CCTV를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나서 못 봤거든요.”

관우가 눈알을 굴리다 실소를 흘린다.

“본인은 분명히 봤는데 CCTV에는 아무것도 없으면 무서우니까요?”

“…….”

공익요원의 얼굴이 붉어진다. 귀신이라도 본 건 아닌지 걱정했던 모양이다. 관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귀신 아니고 사람들이니까. 꼬마는 아주 귀엽게 생겼는데 뭘.”

관우의 말에 프린트에 인쇄된 여아 사진을 보는 나. 녀석 말처럼 아주 귀엽게 생긴 아이다. 하지만 남루한 차림새와 어딘가 모르게 창백해 보이는 아이는 동정심을 일으키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나는 관우에게 프린트를 내밀며 말했다.

“찾을 수 있겠어?”

“일단 얼굴, 신체 스캔해서 전과자 데이터부터 돌려볼 건데. 거기 없으면 동선 거꾸로 따야 됩니다. 애가 있으니 빙빙 돌아가진 않았을 겁니다. 세 시간만 주세요.”

대단한 녀석. 사람 찾는 데 겨우 세 시간이라니.

“좋아, 바로 움직이자.”

“예, 복귀할 건데. 같이 가실 겁니까?”

“음, 일단은.”

관우와 함께 주차장으로 오는 길. 일단 서로 복귀하려 했으나 차에 타기 직전 연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과장님, 의사 찾았습니다.

벌써? 연주 녀석도 정말 능력 있구나. 가만히 앉아서 시키기만 해도 팽팽 돌아가는 수사국. 이걸 내가 했어도 이렇게 빨리 찾아낼 수 있었을까? 찾아는 냈을 것이지만 시간이 두 배는 걸렸을 거다.

“병원 주소 보내줘, 수고했다.”

연주에게서 주소를 받아 관우 차를 얻어 타고 병원 앞에 내렸다.

이름은 종합병원이지만 작은 빌딩의 세 개 층을 사용하는 규모 작은 병원이다. 3층부터 6층까지 병원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에 내리자 미리 대기 중이던 연주가 손을 든다.

“과장님 여기.”

환자들이 대기하는 소파에 있던 연주 곁에 앉은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연주를 보았다.

“벌써 찾았어?”

연주가 씩 웃으며 리스트를 들어 보인다. 리스트에 이미 방문한 것으로 보이는 병원 이름과 주소가 빨간 펜으로 그어져 있었는데 이 병원 이름은 세 번째에 위치해 있다.

“운이 좋았어요. 맨 아래 리스트였음 이틀은 걸렸을 텐데.”

그렇다 해도 리스트의 병원이 몇 개인데 이틀 만에 찾아? 그것도 대단하다.

“의사 봤어?”

“네, 아까 잠깐. 본인인지 확인하고 전화드렸어요.”

“인터뷰는?”

“과장님 오시면 한다고 했어요.”

“어디 계셔?”

“환자 보고 계세요. 잠깐만요.”

연주가 로비로 가서 말을 전하자, 미리 협의된 바가 있는지 직원이 바로 전화를 든다. 잠시 통화를 하던 직원이 말했다.

“현재 진료 중인 환자만 보시고 만나신답니다. 한 층 위에 6번 진료실에 가시면 됩니다.”

진료 시간 중이라 일터에서 보자고 하는 모양이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간 우리는 6번 진료실 앞에서 대기했다. 벤치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셋쯤 있었지만 문을 열고 나온 간호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속삭였다.

“경찰이시죠?”

괜히 병원에 경찰이 들락거리면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 우린 적당히 말을 숨기고 고개만 끄덕였다. 간호사가 주변 눈치를 보며 속삭인다.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안내로 진료실에 들어가자 하얀 가운을 입은 안경 쓴 의사가 앉아 있다 일어나며 악수를 청한다.

“고지환입니다.”

나는 악수를 한 뒤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지하철에서 봤을 때는 안경을 쓰지 않았었다. 나는 신분증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예의 바르게 청했다.

“실례지만 잠시 안경 벗은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초면에 다짜고짜 안경을 벗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칫 무례하게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고 예의 있게 말했다.

고지환은 잠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더니 안경을 벗어 얼굴을 보여준다.

“됐습니까?”

기억에서 본 얼굴이 맞다. 나는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예, 됐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물어볼 만도 한데 고지환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안경을 쓰고는 자리를 권한다.

“앉으세요. 그쪽 형사님도.”

이 의사는 지하철에서 시신을 알아보았다. 나는 그것을 안다. 하지만 연주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연주는 미리 준비를 해왔는지 가방을 뒤져 여러 사진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린 후 말했다.

“실례지만 괴담이 사실인지 확인을 해야 해서.”

의사는 사진을 훑어본 뒤 미소를 짓는다.

“이 사진 중에 시신을 찾으라는 겁니까?”

나는 연주가 뭘 하는지 몰라 멀뚱하게 있다가 고지환의 말을 듣고 나서야 사진을 보았다. 여덟 장의 사진. 그중 둘만 시신이다. 고지환은 과연 대상이 시신임을 정말로 알아본 것일까? 나도 궁금하다.

고지환은 사진을 뚫어지게 보다 검지로 한 장의 사진을 위로 민다.

“시신.”

맞다. 아주 깨끗한 모습으로 사망한 시신. 저건 2년 전 종로 경찰서 시절에 보도블록에서 돌연사한 시신의 사진이다.

겉으로 보기에 영락없이 정신을 잃은 취객 같아서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순경들도 한참 흔들어 깨우다 나중에 시신임을 알았다고 했던 이의 사진이다. 고지환은 정말 한눈에 그걸 알아보았다.

또 하나의 시신도 알아낼 수 있을까?

고지환이 또 하나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민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건 저혈당 쇼크로 기절한 사람의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고지환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아닌 것부터 추려보죠.”

고지환은 고민 없이 여러 장의 사진을 밀어 올린다. 하나, 둘, 셋…… 여덟 장 중 미리 뽑은 한 장을 제외하고 다섯 장을 더 밀어 올린 고지환. 이제 남은 건 두 장이고 그 안에 진짜 시신이 있다.

고지환은 한참 시신을 바라보다 한 장을 밀어 올린다.

“시신으로 보이네요.”

그가 밀어 올린 사진. 정말 시신이다. 연주는 놀랍다는 얼굴로 입을 떡 벌린다.

“진짜 알아보시는군요. 의사들은 다 그런가요?”

고지환이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밀어 올린다.

“의사 나름이겠죠.”

연주가 날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난다. 이제 연주도 이 사람을 믿게 되었다. 나는 고지환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유재영 씨에게 들었습니다.”

“유재영 씨?”

“아, 당신이 데리고 내린 사람 이름입니다.”

“아, 그분 성함이 유재영 씨였군요.”

그래,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다. 기억 속에서도 의사와 유재영은 서로 통성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보았던 시신에 대해 알려주시겠습니까?”

고지환은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약간 얼굴을 찡그린다.

“음…… 초기 사체 변화라고 아십니까?”

당연히 안다. 생물이 죽으면 심장이 멎고 뇌 등의 기관이 활동을 정지한다. 체온을 유지하던 혈액의 순환이 정지하면서 몸이 차갑게 식으며, 이에 따라 사후경직이 발생한다.

핏기가 빠져나가기에 피부의 색도 핏기가 없어진다. 또한 몸 안을 돌던 피가 중력에 따라 아래로 쏠리면서 시반(屍斑)이 생긴다.

시반, 경직, 체온 저하를 법의학에서는 ‘초기 사체 변화’라고 부른다. 경찰이라면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예, 압니다.”

고지환이 습관인 듯 제스처를 섞어가며 말한다.

“우리가 가끔 보는 창백한, 혹은 핏기 없는 사람들과 초기 사체 변화를 일으켜 핏기가 빠져나간 시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경동맥. 즉, 목에서부터 얼굴로 가는 혈관이 푸른색으로 변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목격하신 시신이 그런 상태였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시신 주변에 있는 두 명의 인물은 어땠습니까?”

고지환이 두 사람의 인상착의를 설명한다. 이것도 유재영의 진술과 일치한다. 고지환은 진술을 마치고 검지와 엄지를 비비며 말했다.

“이건 확실하지 않은데 말입니다. 음, 이걸 말씀드리는 것이 수사에 도움이 될지 오히려 혼란을 드릴지 잘 모르겠네요.”

“그건 저희가 판단하겠습니다.”

고지환이 날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그게, 유재영 씨를 설득해 데리고 나가려고 그의 옆에 앉았을 때 말입니다. 맞은편에 있던 여성의 시신이 정면에서 보였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약간 고개를 위로 들고 있었고 말입니다.”

기억에서 본 시신도 그런 상태였다. 몸에 힘이 없어 좌석에 몸을 파묻고 반쯤 누워 있던 시신. 눈을 아래로 깔고 있어서 마치 유재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었다.

“네, 그런데요?”

고지환이 잠시 고민한 뒤 말했다.

“언뜻 봐서 확실하진 않지만 콧속에 반점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얼이 빠졌다.

“예……?”

고지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멀리서 봐서 확실하진 않습니다. 혹여 수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 말씀드리는 겁니다.”

“…….”

고지환은 얼어붙어 있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 시간을 확인한다.

“제가 할 진술은 여기까지입니다. 유재영 씨를 데리고 내린 후 그 길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그들을 만난 적은 없고요. 환자분들이 기다리고 계셔서 그런데 더 물어보실 것이 있으십니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지환을 바라보았다.

“콧속에 반점이 있었다는 건.”

고지환은 제 입으로 말하기 싫은 이야기인지 살짝 인상을 썼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형사님은 바로 아시네요. 콧속에서 반점이 발견되는 경우는…….”

고지환이 나와 연주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를 적출한 경우입니다.”

콧속 반점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미 알아챘지만 그의 입으로 들으니 더 충격적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를 적출했다고?

살짝 물러나 앉아 있던 연주가 충격받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장기밀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