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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140화 (140/328)

살인의 기억 140화

12. 지하철 괴담(6)

병원에서 나와 주차장에 온 연주가 손톱을 뜯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사건 사이즈가 큽니다, 과장님. 이렇게 진행될 줄은 전혀 예상 못 했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을 떠도는 괴담 수사 중에 그것이 진실임을 알게 된 것도 당황스러운데 장기밀매?

청와대가 알게 되면 분명 자기들 성과 광고한답시고 대서특필을 하겠지. 사건 해결 전까지 절대 비밀로 해야 할 이야기다. 그렇지 않으면 쫓아다니는 기자들 덕에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될 것이다.

연주가 한숨을 쉬며 차 문을 열었다가 움찔하며 말했다.

“아! 시신 인상착의를 안 물었네요.”

“그냥 타.”

“제가 금방 가서 묻고 오면 되는데.”

“빨간 하이힐에, 안에 검은 스타킹을 신고 머리는 갈색 머리에 히피 펌. 붉은색 원피스 위에 단추를 푼 체크무늬 셔츠를 걸친 여자다.”

“응? 어떻게 아셨어요?”

“유재영 씨 만나고 왔잖아.”

“아! 그렇지, 참.”

미안, 사실은 내가 본 거야. 연주는 운전석에 탄 뒤 수첩을 뒤진다.

“음, 일단 목격했다는 시신의 신원을 확인해야 뭐가 진행이 될 텐데. CCTV도 없고 미치겠네.”

이럴 때는 내가 그림을 좀 잘 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억 속에서 본 여자를 손으로 그려낼 수 있다면 찾기가 좀 수월할 텐데.

아쉽게도 내가 그린 그림을 알아보는 건 나밖에 없다. 오죽하면 어린 시절 수녀님 얼굴을 그렸더니 신부님이 옆집 강아지를 그렸냐고 물어보셨을 정도다.

연주는 내가 말해준 시신의 인상착의를 수첩에 적더니 잠시 바라보다 물었다.

“그런데 이 차림새요.”

“음?”

“목격한 시신의 차림새가 좀…….”

“왜?”

“빨간 하이힐에 검은 스타킹, 붉은 원피스…… 이거 보통 사람이 일상복으로 입기는 너무 화려하지 않아요?”

“음…….”

그쪽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옷을 어찌 입는지는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주는 볼펜 끝을 이빨로 물어뜯다 말했다.

“보통 이런 차림은…….”

연주가 말을 아낀다. 화류계 여성이라 말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고인이 된 분을 모독하는 발언일 수도 있기에 말을 아끼는 것이다. 대충 알아들었으니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되겠지.

“그쪽도 염두에 두고 수사하자.”

그때, 관우에게 전화가 왔다.

“어, 관우야.”

-지하철에서 확인한 남자와 여아 신원 확인했습니다, 과장님.

빨리도 했다. 그런데 관우야 지금은 그게 급한 게 아닌 것 같다. 나는 관우에게 이쪽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관우는 대경실색해 언성을 높인다.

-자, 장기밀매? 정말입니까?

“아직 확실치 않아. 일단 의사의 증언일 뿐이니까.”

-어휴,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일단 그쪽은 좀 뒤로 미룬다.”

-예, 과장님. 그럼 전 뭐 할까요?

음, CCTV를 추적할 수가 없으니 관우 능력을 써먹을 곳이 없구나. 나는 하는 수 없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 남자와 여아. 신원 확인했으면 어떤 사정 있는지 알아봐 줘.”

현재 상황을 아는 관우는 지금은 자신이 도울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는지 알았다는 말로 통화를 종료한다.

내가 관우와 통화를 하는 동안 수첩을 뚫어지게 보며 생각에 잠겼던 연주가 말했다.

“그런데 과장님.”

“음.”

“신원확인도 그렇지만 지금 제일 의문인 건 범인들이 왜 지하철로 시신을 옮겼는가? 이거 아닌가요?”

옳다. 왜 괜히 지하철로 시신을 옮기다 목격당했냐 이 말이다. 범인들이 바보도 아니고.

언뜻 목격자들이 시신이 아닌 취객으로 볼 수도 있다고 가정해도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있을까? 도대체 범인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한 걸까?

병원 앞 주차장에서 머리를 싸고 고민하는 우리. 연주도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리고 있다.

범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장기 적출을 했든 단순 살인이든 일단 사람을 죽였다. 지하철 내에서 죽인 건 아니다. 유재영은 혼자 지하철에 앉아 있다 취객을 가장해 시신을 끌고 들어온 두 사람을 목격했다고 했다.

유재영은 양원역에서 지하철을 타 양정역에서 범인들을 목격했다.

양정역은 지하철 환승역이 아니므로 양정역 근처나 구리와 서울 중간의 어디인가에서 살인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양정역 근처는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지만 인구 밀집 지역이 정해져 있는 곳이다. 당장 약간만 외곽으로 벗어나도 강원도와 다를 바 없는 초지가 펼쳐진 동네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는 이들에게 최적의 장소이다. 그럼 살인을 한 뒤 근처 산에 가져다 묻으면 그만이다. 왜 지하철로 시신을 옮겼을까? 무슨 목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사람을 죽였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그런데 왜 사람들에게 목격될 만한 이동 수단을 탔냐 이 말이다. 사람을 죽이면 당연히 유기를 해야 하는데.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게 야산인데 도대체 왜? 산에 묻어버리면 찾기 힘들다. 물론 폭우가 오거나, 자연재해로 산사태가 일어나면 발견될 수도 있겠지만 쉽게 발견되기 어렵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연주야.”

“네.”

“장기밀매 사건 다뤄본 적 있어?”

“아뇨, 없어요. 사건자료로만 봤습니다. 과장님도 왜 굳이 지하철에 시신을 태웠는지 이해가 안 가시죠?”

“음…….”

“저도 그래요. 보통 장기밀매 조직이 시신을 매장하는 방법은 야산에 묻는 게 아니라, 바다에 가라앉히거든요.”

나도 자료로 읽었다. 드럼통에 시신을 넣은 후 시멘트를 채워 굳힌 후 먼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버린다. 시멘트가 찬 드럼통은 바다 깊숙이 떨어져 다시는 찾지 못한다고 들었다.

연주가 중얼거렸다.

“시신을 옮겼다. 그건 결국 유기하러 가는 길이었다는 뜻인데. 양원역에서 탄 사람이 양정에서 목격했다……. 결국 지하철 방향이 용산행이란 건데. 중간에 바다로 가는 길은 없어요. 설마 시신을 들쳐 업고 환승하진 않을 거고.”

나는 연주의 말을 듣다 눈썹을 꿈틀거렸다. 범인들이 사람을 죽이고 할 짓은 유기밖에 없다. 그런데 지하철로 사람을 옮겼고 환승 가능성은 적다. 여기서 잠정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중앙선 지하철역 중의 한 곳에 시신을 유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연주도 말을 하다 결론을 냈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그게 제일 합리적인 결론이네요. 그런데 중앙선 정거장이…….”

연주는 핸드폰으로 중앙선 노선도를 검색해 본 뒤 한숨을 쉰다.

“양원역에서 용산까지 전부 11 정거장인데. 여길 언제 다 뒤지죠?”

나는 순간 장영훈 본부장님이 지원해 준다는 의경 중대를 떠올리고 곧바로 본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본부장님, 접니다.”

-어, 그래. 수사는 잘 되고?

“지원이 필요합니다.”

-음?

“수사 결과 범인들이 양원역부터 용산역 사이의 중앙선 정거장에 시신을 유기했을 가능성이 발견되었습니다.”

-……정거장 몇 개야?

“열한 곳입니다.”

-사건 발생 예상일은 30일 이전이고?

“예, CCTV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알았다, 바로 지원 요청해서 전 정거장 수색하마. 청와대 보고해야 되는데 뭐 다른 건 없고?

말해야 할까? 일단 내 의무는 보고를 하는 것 까지다. 나머진 본부장님 몫이다.

“아무래도 장기밀매 관련된 사건 같습니다.”

-…….

말이 없는 본부장님.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본부장님이 한숨을 쉰다.

-증거는?

“아직은 목격자인 의사의 진술뿐입니다. 시신을 찾으면 알게 될 겁니다.”

-알았다, 수색 지휘 책임자는? 네가 직접 할 거냐?

“시신을 찾는 것뿐입니다. 의경 중대에 맡겨도 될 것 같습니다.”

-알았다, 각자 수색할 수 있도록 조치해 두마.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미치겠군. 청와대가 알면 기자들 모아 회견한답시고 다 떠들 텐데.

“수색 끝날 때까지 비밀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당연하지, 이놈아. 내가 바보로 보이냐? 걱정 말고 일단 진행해.

“예, 본부장님.”

통화 도중 핸드폰 진동이 몇 번 울렸다. 부재중 전화인가 싶어 내용을 확인하니 관우의 문자다. 내가 시킨 일에 대해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문자다.

나는 안전벨트를 하며 말했다.

“일단 중앙선 관제센터로 돌아간다. 현재 공사 중인 구간이 있는지 확인하고, 거기부터 뒤지는 게 빠를 것 같아.”

“네, 과장님.”

연주가 운전하는 차가 출발한다. 나는 관우가 보낸 문자를 대충 확인하고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으려고 하다 멈칫했다.

방금 내가 뭘 잘못 본 건가? 뭔가 아주 익숙한 화면이 스쳐 지나갔는데. 나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 관우의 문자를 확인했다.

세 장의 PDF 파일이 첨부된 관우의 문자.

[과장님, 신원확인 및 주소, 현 상황 파악 완료했습니다. 가족은 총 셋이고 엄마, 아빠와 딸이 사는 집입니다. 주소를 보니 오남리 달동네에 사는 것 같고, 아이는 올해 다섯 살입니다.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어 꾸준히 병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입니다.]

관우의 문자를 다시 한번 읽어본 뒤 방금 건성으로 본 PDF 파일을 확인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CCTV 화면과 달리 증명사진이라 얼굴이 제대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 특별한 점 없는 평범한 얼굴이다.

다음으로 아이 얼굴. CCTV에 비교적 선명히 나왔던 아이 얼굴이 맞다. 귀여운 아이는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빨간색 점퍼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런 아이가 선천성 심장질환이라니. 가여운 마음이 든다.

나는 마지막 PDF 파일을 다시 열었다. 엄마에 대한 신상정보다. 방금 건성으로 읽어본 파일이 바로 이것이다.

정보 파일에 삽입되어 있는 그녀의 사진을 다시 본 나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스톱!”

병원 주차장에서 도로로 나가려던 연주가 급정거를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무슨 일 있어요, 과장님?”

나는 액정을 뚫어지게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젠장, 연결된 사건이었다.”

연주가 조수석 쪽으로 붙으며 화면을 본다.

“왜요? 이게 누구예요?”

나는 급히 사진을 연주에게 전송 후 말했다.

“아까 고지환 씨 연락처 받았지?”

“네.”

“사진 파일 전송하고, 목격한 시신이 맞는지 확인해.”

연주의 눈이 커진다. 급히 자기 핸드폰을 확인한 연주가 물었다.

“이 여자가 목격자들이 본 시신이라고요?”

“확인해, 일단. 중앙관제센터 방문은 취소다. 바로 오남리로 가.”

연주 입장에서는 확인해 보고 움직여야 할 일이지만 내 입장은 다르다. 나는 기억 속에서 그녀를 보았다. 분명히 같은 사람이다. 괴담들이 전부 진실로 드러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현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관우의 수사가 시신의 신원을 밝혀냈다.

“밟아.”

“일단 확인부터…….”

“가면서 확인한다.”

* * *

오남리 저수지 인근에 있는 달동네. 마을 초입부터 한참을 산길을 타고 올라간 후에 모습을 드러낸 집. 도색도 되지 않아 회색 시멘트가 다 드러난 초라한 집이 보인다.

연주는 차를 멈추고 나서야 고지환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하고 눈을 크게 뜨며 액정을 보여준다.

“목격한 여성이 맞다고 합니다, 과장님!”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말없이 안전벨트를 풀고 내렸다. 차에서 내려 집을 가만히 노려보는 내 옆에 서는 연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단서가 나오네요.”

연주가 관우에게 받은 PDF 파일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말했다.

“집 명의자는 80세 이동혁. 목격된 사람은 세 들어 사는 사람이고 이름은 김정국, 38세입니다.”

시신으로 목격된 여성의 이름은 이희연, 31세. 여아는 5세 김새별이다.

나는 녹이 슨 철문 주변에 서 초인종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초인종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수밖에 없다.

쾅쾅!

“계십니까?”

쾅쾅쾅!

“경찰입니다, 안에 누구 없습니까?”

잠시 후 오래된 경첩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안에서 인기척이 난다. 누구냐 질문할 법도 한데 그냥 열리는 문.

눈 밑이 검고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사진에서 본 남자와 분명히 같은 사람이지만 지금 얼굴은 꼭 병자와 같다.

“김정국 씨 맞습니까?”

“……예.”

나는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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