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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141화 (141/328)

살인의 기억 141화

12. 지하철 괴담(7)

김정국은 내 신분증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다. 한참 뚫어지게 신분증만 바라보던 김정국이 문을 조금 더 열며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김정국을 노려보았다.

집에 경찰이 찾아왔다. 그리고 아내인 이희연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 날짜는 지금부터 한 달 이전.

즉, 아내가 한 달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 집에 경찰이 찾아온 것이다. 응당 내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는 불안감부터 들어야 옳다. 그러나 김정국은 초췌한 얼굴로 그저 무슨 일이냐 물어온다.

나는 김정국의 얼굴을 살폈다.

올해 38세인 김정국. 하지만 그의 얼굴은 마치 50대 중년의 얼굴 같다. 얼굴에는 버짐이 피어 있고, 언뜻 보이는 손가락 끝에는 손톱마다 검은 기름때들이 잔뜩 끼어 있다. 아무리 손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로 보인다.

나는 집 안쪽을 쓱 보았다. 마당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약 한 평 남짓한 시멘트 바닥의 마당. 집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부서져 있고, 사람 사는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저분하다. 지붕 끝에 잔뜩 낀 거미줄만 보아도 흉가로 보기에 충분한 집이다.

“따님과 함께 사시는 것으로 알고 왔습니다만.”

딸 김새별은 5세 여아다. 학교를 가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어린이집에 가기에도 애매한 오후 시간이다. 그런데 집 어느 곳에서도 아이 인기척이 나질 않는다.

김정국은 눈 밑이 검게 죽은 얼굴로 말했다.

“입원 중입니다.”

입원. 관우가 보내준 파일에 김정국의 딸인 김새별은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치료 중이라고 쓰여 있었다. 연주가 끼어들며 물었다.

“다섯 살 먹은 딸이 병원에 혼자 입원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김정국이 연주를 힐끔 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병원에 있다가 애 자는 틈에 옷가지 좀 가지러 온 겁니다.”

“아…… 힘드시겠네요. 병수발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괜찮습니다.”

나는 연주와 대화하는 김정국을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다.

아무래도 아내가 집을 나가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다. 보통 이런 때는 이 사람이 아내의 사망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또한 아내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아 자주 가출을 하는 케이스일 수도 있다. 워낙 자주 나가니 이번에도 저러다 말겠지 하는 일종의 포기한 사이.

하지만 지금은 아픈 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때이다. 아무리 막 나가는 엄마라도 딸이 입원할 정도로 아픈데 가출을 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나는 마당으로 발을 디디며 말했다.

“아내분이신 이희연 씨 관련으로 왔습니다.”

“…….”

“잠시 집을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김정국은 가만히 날 바라보다 물러난다.

“그러세요.”

“…….”

이번에도 묻지 않는다. 경찰이 아내 이름을 언급했다. 그럼에도 그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아내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물어오지 않는다. 명백히 비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렇다고 지금 그에게 당신 아내가 사망했다 말할 수는 없다. 아직 시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을 읽었기에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만약 수색 중 시신이 발견되지 않으면 사망을 증명할 수 없게 된다.

오늘은 김정국의 집과 그의 주변을 탐문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다 부서진 돌계단 두 개 위에 있는 문. 어찌나 열고 닫았는지 나무로 만든 문의 방첩이 걸리는 부분이 부서져 있다. 저런 문은 있으나 마나이다. 겨울이 되면 저 틈으로 찬 바람이 숭숭 들어올 것이다.

코딱지만 한 거실에 밥상이 펼쳐져 있으나, 그 위에는 TV 리모컨만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매우 작은 TV는 요즘도 저런 TV를 보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오래된 모델이다. 방은 단 두 개.

나는 먼저 현관에서 가까운 방문을 열었다. 안방인 모양이다.

침대는 없고 밖이 남의 집 담벼락으로 꽉 막힌 창문 바로 아래 이불이 펼쳐져 있다. 천으로 만든 간이 장롱 두 개와 서랍장 하나가 전부인 안방.

하지만 간소한 살림에 비해 무척이나 지저분하다. 바닥에는 소주병들이 널브러져 있고, 먹다 만 컵라면 속에 곰팡이가 잔뜩 끼어 버려져 있다. 음식물 썩는 냄새가 역해 인상을 찌푸린 나는 소매로 코를 막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시 방에서 나와 또 다른 방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아이 방인 모양이다. 나는 아이 방 문을 열자마자 눈을 빛냈다.

간소한 안방과 달리 핑크색 벽지가 발라져 있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침대와 작은 책상, 동화책과 장난감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방이다. 안방의 모습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딸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딸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지고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인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나는 딸 방을 둘러본 뒤 문을 닫고 나왔다. 거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김정국이 시간을 보며 말했다.

“이제 됐습니까?”

“예, 협조 감사합니다.”

“그럼 그만 가시죠. 다시 병원에 가 봐야 할 시간이라.”

“예, 감사합니다.”

나는 현관으로 나와 신발을 신은 후 다시 한번 김정국에게 허리를 숙였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

허리를 편 나는 김정국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김정국 씨.”

“예.”

“아내에게 어떤 일이 있어 경찰이 찾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김정국의 표정. 이상하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로 말할 줄 알았다. 내 상식으로 아내를 걱정하지 않는 남편이라면 이미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진 사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김정국의 표정은 내 예상과 다르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슬픔이란 감정이 스쳐 간다.

김정국은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문을 닫는다. 작은 마당에 멀거니 서 있던 연주가 속삭였다.

“뭔가 이상하죠?”

“…….”

“이웃집 탐문 좀 해볼게요.”

“관우한테 연락해서 아이 병원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주소 보내라고 해줘.”

“네, 과장님.”

연주가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며 밖으로 나간다. 나는 한참 마당에 서서 김정국의 집을 바라보았다.

딸을 무척 사랑하는 아빠.

안방이나 거실의 살림살이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이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 방에는 예쁜 물건이 가득하다. 또한 그중 무엇도 낡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모두 딸의 물건을 사주는 아빠가 분명하다.

그런 사람이 아내의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또한 아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알 수 없는 슬픔이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한참 김정국의 집을 바라보다 밖으로 나오자, 바로 옆집 아주머니와 대화 중인 연주 목소리가 들린다. 팔짱을 끼고 현관문에 기대 있던 아주머니가 날 곁눈질하며 말했다.

“저 집이요? 아이고, 말도 마요. 저 집 여편네가 어찌나 개차반인지 동네 소문이 자자해.”

연주가 얼른 수첩에 메모를 하며 물었다.

“정확히 어떤 이야기 때문인지 아세요?”

“음, 이건 소문이긴 한데. 저 집 여자가 술집에서 일하던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술집이라면.”

“룸이요, 룸.”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김정국의 집을 바라보았다.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이다. 룸에서 일하던 여성이 이렇게 가난한 남자와 결혼할 확률은 무척 적다.

이희연은 외모도 상당히 예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돈 많은 재벌의 첩이 되었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런 집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연주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디서 들으셨어요?”

“그냥 동네 아줌마들 수다에서 나온 이야기지 뭐. 근데 내가 봐도 좀 그래. 가끔 밤에 지나갈 때 보면 야시시한 옷을 입고 다녔거든. 동네 남자들이 자기 보면 씩 미소 지으면서 꼬리 살랑살랑 흔들고. 룸에서 일하던 여자이든 아니든 행실이 좋지 않아서 동네에서 평판이 별로 안 좋았지.”

기억 속에 있던 이희연 씨의 모습도 그랬다. 물론 주부라고 하여 펑퍼짐한 옷만 입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신 상태였던 이희연의 겉모습은 평범한 주부라고 보기 어려웠다. 맞벌이하는 보통의 가정에서 회사를 다니는 엄마였다고 해도, 그런 차림으로 회사에 다녀왔다고 보긴 어렵다.

김연주가 물었다.

“이희연 씨가 근래에도 일을 하셨나요?”

“나야 모르지. 근데 그 여자는 맨날 우리 저녁 먹을 때쯤 나갔어. 그리고 오후 늦게 일어나곤 했지. 그걸 보고 사람들이 확실히 술집에서 일한다고 생각한 거고.”

“남편과 사이는 어땠습니까?”

“좋을 리가 있겠어? 그렇게 사는데.”

“싸움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김 씨가 워낙 사람이 조용하고 착해서.”

“그럼 어떻게 아세요?”

아주머니가 자기 집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아저씨가 가끔 김 씨와 소주 한잔하거든. 요 밑에 보면 쪼끄만 슈퍼 있잖아. 거기 평상에 앉아서 새우 과자 놓고 한잔해. 근데 술 마시자고 집에 갈 때마다 마누라가 없길래 물어봤다고 했어.”

“뭐라고 하셨는데요?”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

“김 씨가 속이 깊은 사람이라 자세히 말해주진 않는데.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야. 소문에는 여자가 바람이 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외도를 했다는 말씀이세요?”

“소문이야, 소문. 그 여자는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아무도 자세한 건 모를걸?”

“딸에 대해서도 아십니까?”

“새별이? 아휴, 작은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병을 주셨는지 참. 그래도 이번에 수술한다고 하던데?”

“네, 입원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수술하는 거군요?”

“응, 다행이지? 애가 엄청 귀엽고 애교도 많아서 동네 사람들이 다 예뻐 하거든.”

“네, 그러네요.”

연주는 몇 가지를 더 물은 다음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와 말했다.

“일단 이희연 씨 소문은 별로 좋지 않네요.”

나도 들었다. 연주가 볼펜을 물고 생각해 본 뒤 말했다.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이희연 씨는 업소에서 일한 것 같고, 바람을 피웠을 거란 증언이 있는 걸 봐서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다고 봐야 될 것 같아요. 남편 김정국 씨는 아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도 없는 것 같고.”

“…….”

“일단 시신을 찾은 후에 김정국 씨에게 다시 알려야 하겠죠?”

“…….”

“과장님?”

나는 생각에 잠겼다, 연주를 보았다.

“연주야.”

“네?”

“김정국 씨 집 말이다.”

“네, 과장님.”

“사진이 없었다.”

“네?”

연주는 잠시 눈을 굴리다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봤어요. 아기 사진과 아빠와 어디 놀러 가서 찍은 사진도…….”

연주는 말을 하면서 눈치챘는지 눈이 커진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다시 김정국의 집을 노려보며 말했다.

“집에 이희연 씨 사진이 없었어. 단 한 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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