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42화 (142/328)

살인의 기억 142화

12. 지하철 괴담(8)

“관우에게 답 왔어? 새별이 입원한 병원이 어디야?”

“휘경동 서울 홍연 병원입니다.”

“휘경동?”

“네.”

휘경동에는 회기역이 있다. 그리고 그곳은 지하철 중앙선 역이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며 물었다.

“아까 지원 요청한 거 출동 나갔겠지?”

“의경 중대요? 음, 지금쯤 수색 중일 건데. 가는 길에 들러볼까요?”

“그래.”

그 많은 역사 중에 하필 우리가 들러볼 회기역에서 시신이 나올 가능성은 적다. 회기역은 환승역이라 유동 인구도 많기 때문에 시신을 유기할 환경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수색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체크하러 가는 것이다.

회기역 8번 출구. 연주와 인근 무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출구로 온 나는 내 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잃었다.

출구 옆에 늘어선 의경 버스들. 그 앞에 정렬해 있는 의경들. 이건 예상한 일이다. 하지만 출구를 꽉 메우고 있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은 예상 밖이다.

모두의 손에 카메라가 들려져 있다. 출구 앞에는 리포터들이 각자 카메라 앞에서 현장 상황까지 중계 중이다.

연주도 입을 떡 벌리고 주변을 보며 중얼거린다.

“이게 도대체…….”

그때 가장 가까이 있는 리포터가 중계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현장에 나와 있는 김나연 기자입니다. 국민들의 청원에 응답한 청와대가 경찰 수사 인력을 동원해 수사를 약속하고 며칠이 되지 않아 괴담이 진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 범인들이 시신을 지하철역에 유기했을 거라는 추측을 기반으로 대규모 수사인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청와대는 이번 일이 국민들의 힘으로 사회 안전을 지키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발표로 민심 얻기에 나섰습니다.”

리포터의 말을 듣고 얼굴을 일그러뜨린 순간 품 안에서 전화가 울린다. 장영훈 본부장님이다.

“하…… 여보세요.”

-어디야?

“후, 회기역 앞입니다.”

-젠장, 벌써 봤구나. 미안하다, 최대한 막아보려고 했는데 청와대 홍보실이 가만있질 않았다.

“전부 다 보고하신 겁니까?”

-내가 미쳤냐? 적당히 보고했는데 의경 중대 쪽에서 정보가 샌 거 같다. 시신 찾는다는 걸 숨길 순 없으니 일단 지시를 했는데 그쪽에 청와대와 연결된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민정수석이 직접 전화가 와서 따지는데 부인할 수가 있어야지.

하, 장영훈 본부장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강혁 아저씨가 알면 본부장님 싸대기를 날릴지도 모르겠다.

“알겠습니다, 다른 역도 이런 상황입니까?”

-나도 현장 보고 받고 알았다. 모든 역이 다 이 모양이다. 기자 놈들 중에 지들이 직접 시신 찾겠다고 경찰보다 한발 먼저 움직여 수색하는 놈들도 있고, 스트리밍하는 BJ 놈들도 화제성 때문에 속속들이 모이고 있다. 순경들 파견해서 현장 통제하라고 지시는 해놨고.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그래, 미안하게 됐다. 기자들 질문하는 건 좀 피해 다니고. 아직 명확한 증거가 안 나왔으니 최대한 입 단속해라.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연주를 돌아보니 통화 소리를 듣고 대충 상황을 짐작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일단 수색 작업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확인만 하죠.”

연주와 내가 8번 출구로 들어갈 때만 해도 기자들은 우리가 그저 지하철 이용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줄 알고 길을 내어주었다. 지하철을 수색한답시고 이용객을 막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 내에 들어가 통제된 구역에 설치된 폴리스라인에서 신분증을 꺼내는 순간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마이크를 내민다.

순간적으로 내 앞에 쑥 들어온 마이크가 열 개가 넘는다. 남의 귀에 바짝 붙어 소리를 질러대는 만행을 저지르는 기자들.

“이번 사건의 담당 형사 맞습니까?”

“괴담이 실제 사건일 수 있다는 판단은 누가 한 겁니까? 말씀 좀 해주세요!”

“지금 입장하시는 분의 신분을 밝혀주십시오! 경찰 관계자이십니까?”

“국가수사본부 관계자 맞습니까? 대답해 주세요!”

“모든 국민에게는 알 권리가 있습니다! 대답해 주시죠!”

알 권리는 개뿔. 니들이 밥 처먹고 살 수 있는 권리를 구걸하고 있는 거지. 나는 기자들을 한번 노려본 뒤 순경이 올려주는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의경들이 둘씩 조를 이뤄 수색하고 있는 현장. 수색 구역은 주로 CCTV가 없는 지하철 선로 안쪽 공간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통로 주변이나 직원들이 상시 다니는 구역에 시신을 유기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한 역사에 한 개 중대가 투입되어 있다. 5개 중대를 투입했으니 하루에 5개 역을 수색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삼 일 안에는 무엇이든 발견해 낼 수 있겠지. 물론 여기 시신이 유기되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연락을 받고 회기역으로 온 관우도 기자들의 행태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는다.

“너무 시끄러워서 시신도 도망갈 지경이네. 이래 가지고 무슨 수색을 한다고. 거기! 저 사람 저거 영상 찍잖아! 막아요, 막아!”

순경들이 재빨리 뛰어가 라이브 방송 중인 BJ를 끌어낸다. 그는 순경들에게 붙잡혀 나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방송을 하고 있다.

“시청자 여러분! 국가가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아니면 왜 방송을 못 하게 하겠습니까?”

어, 그래. 숨기는 거 맞아. 시신이 나와야 사건이 있는 거다. 공식적으로는 아직 사건이 성립하지 못했으니 그만 떠들어, 이 새끼야.

나는 골치가 아파 미간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우린 병원으로 간다.”

연주가 물었다.

“새별이 보러 가는 건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자리를 떴다. 여기 조금만 더 있으면 머리가 깨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관우, 연주와 함께 차를 타고 홍연 병원으로 와 로비로 가자, 관우가 신분증을 꺼내며 직원에게 새별이 병실을 물었다. 6층 6인실에 입원해 있다는 새별이.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향했다. 소아 전문 병동인지 아픈 아이들이 오가는 병원. 6층에 내리자마자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아픈 아이들 모습이 보인다.

뇌 수술을 했는지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아이부터, 창백한 얼굴의 아이, 사고가 났는지 다리 없는 아이도 보인다. 아픈 환자들은 누구나 마음 아프지만 그것이 어린아이였을 때는 특히 더 슬픈 것 같다.

또한 아이들의 부모들의 표정은 더욱더 슬프다. 내 아이가 걱정할까 억지로 웃음 짓는 부모들의 심정은 어떨까?

우리는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말없이 병실로 갔다. 아이들 6명이 있는 병실이라 당연히 시끄러울 줄 알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여섯 명의 아이들 모두 가만히 누워 있고, 슬픈 얼굴의 부모들이 곁에 앉아 있다. 아이들이 조용한 것이 아니라, 떠들 힘이 없는 중환자들이 입원한 곳인 모양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좀 전에 헤어진 김정국을 보았다.

침대 옆의 간이병상에 앉아 식은땀을 흘리며 잠들어 있는 아기의 이마를 만지는 김정국. 사랑과 슬픔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동자 속에는 오직 딸의 모습만으로 가득 차 있다.

아픈 아이를 인터뷰하러 온 것이 아니라, 현재 딸의 상황과 수술 여부를 확인하러 온 것이기에 우리는 멀리서 그 모습을 확인 후 주치의를 만났다.

이후에 원무과장의 인터뷰까지 마친 우리는 병원 1층 로비에 앉아 머리를 맞댔다.

주치의를 만난 관우가 말했다.

“일단 새별이 병증은 심방 중격 결손. 운동 시 호흡곤란, 심방 부정맥, 피부 긴장도 저하, 심 잡음, 잦은 상기도 감염, 청색증이 나타날 수 있고, 새별이의 경우 선천적 질환이기 때문에 이미 병증이 장시간 진행된 상황이랍니다. 수술은 일주일 뒤인데 아이 상태가 좋지 않아 연기될 수도 있답니다.”

관우가 수첩을 꺼내 읽는다.

“주치의 말로는 최근에는 수술하지 않고 심도자를 넣어 결손을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도관을 통해서 기구를 넣고 결손을 막아주는 비수술적 치료인데 문제는 아직 소아에 대해서는 장기적 추적 관찰을 한 적이 없어, 이 케이스는 수술적 치료를 해야 한답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관우 이야기를 듣다 물었다.

“수술 후 생존율은?”

“수술을 하면 거의 100%에 가까운 수술 성공률 및 생존율을 보이는 수술이랍니다. 40대 이후의 성인 환자에게는 수술 위험과 후유증이 다소 높아지는데 30대 이하는 100% 완치된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원무과장을 만나고 온 연주가 말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수술 비용이 꽤 든답니다. 게다가 수술 종료 후 1인실에 입원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총 이천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수술비와 입원, 치료비를 합쳐 이천만 원. 어떤 사람에게는 목숨값으로 턱없이 싼 가격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엄두도 못 낼 금액이다. 김정국 씨에게는 어떨까?

연주가 볼펜을 딸깍딸깍 누르며 말했다.

“김새별 양은 생후 3개월 차부터 이 병원에 다녔답니다. 그동안 수차례 수술을 권유했는데 가정 형편 때문에 못 받다가 이번에 받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아버지가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고 하네요.”

생후 3개월. 지금 아이는 다섯 살이다. 이천만 원이라는 수술비를 모으기 위해 무려 4년을 고생했다는 것이다.

“김정국 씨 무슨 일 하는지 확인했어?”

연주가 다시 수첩을 넘기며 말했다.

“원래 자동차 수리공이었답니다. 국내 굴지의 자동차기업 서비스 센터에서 일했는데, 3년 전에 정리해고 되었고, 남양주 인근의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일을 했는데 딸 병이 악화된 후에 그만두고, 가끔 바쁠 때 아르바이트만 했답니다. 현재 무직으로 확인되는 이유는 아르바이트비를 현금으로 받아 소득 신고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톱에 기름때가 있었구나.

“전과는 없고?”

“네, 김정국 씨는 깨끗합니다.”

“이희연 씨는?”

“전과는 없는데 1년 전에 경찰에 출두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유는?”

“술 마시고 돈을 못 내겠다는 손님을 신고한 여종업원이었습니다.”

음, 술집에서 일했던 것이 맞는 모양이다.

“그래서 고소했나?”

“아뇨, 가해자가 술에서 깬 뒤에 술집에서 고소를 진행하고, 가해자의 회사에 알리겠다고 협박하자, 술값을 내고 합의로 마무리됐답니다.”

“다른 건 없고?”

“네, 경찰에 남은 기록은 이것뿐입니다.”

보통 이런 식의 수사는 예전 사건에서 합의한 사람을 조사하는 것이 옳다. 원한을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장기밀매 조직의 일은 원한범죄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조사는 해야 한다.

“그때 합의한 남자, 사진 좀 보여줘.”

정식으로 고소장이 들어왔기 때문에 사진이 남아 있다. 손 빠른 관우가 얼른 노트북을 열어 사건 파일을 검색 후 내민다.

나는 신상명세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본 뒤 됐다는 듯 손을 저었다. 내 기억 속 두 남자의 얼굴과 다르다.

“연주는 일단 이 사람 주변 좀 파. 현재 이희연 씨에게 원한을 가졌을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모조리 조사해야 돼.”

“네, 과장님.”

이희연에게 원한을 가질 수 있는 사람. 나는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관우.”

“예.”

“김정국 씨 주변 좀 파.”

“예?”

관우는 잠시 놀라는 듯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꽤 많은 사건 전례를 알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가족으로 인한 범죄는 생각보다 많다. 원한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확률 높은 사람은 타인보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때 연주가 품에서 울린 전화를 본 뒤 얼른 받는다.

“네, 김연주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연주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 나와 관우를 보며 무겁게 말했다.

“청량리역에서 시신이 발견됐답니다.”

결국 나왔구나. 이제부터 이 사건은 괴담이 아닌, 공식적인 진짜 사건이 된 것이다.

“바로 간다.”

관우와 내가 벌떡 일어나자 연주가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과장님.”

“왜?”

“발견된 시신이…… 한 구가 아니라고 합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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