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43화
12. 지하철 괴담(9)
청량리역으로 달려가는 차 안.
실시간으로 보고되고 있는 현장 상황을 전달받은 연주가 브리핑을 한다.
“발견된 시신은 총 세 구랍니다. 여성 시신 두 구, 남성이 한 구이며, 모두 복부에 장기적출 흔적으로 보이는 자상이 있답니다.”
이상하다. 하필 청량리역이라고? 청량리역은 유동 인구가 매우 많은 역이다. 아무리 늦은 시간에 막차라고 하더라도 하필 그런 곳에 시신을 유기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눈은?”
“세 구 모두 안구적출 흔적은 없답니다.”
이 부분도 평범한 장기밀매와 다르다. 각막은 매우 비싸게 거래되므로 장기밀매 조직은 안구를 적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발견된 시신 세 구 모두 안구는 온전하다.
연주가 말을 잇는다.
“손가락 끝이 모두 절단되어 있으며 치아가 모두 뽑힌 상태랍니다.”
“음.”
운전 중인 관우가 룸 미러로 뒤를 보며 말했다.
“범인들이 그리 똑똑한 놈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관우가 저런 말을 하는 이유. 그것은 손가락 끝을 잘라 지문 채취를 막고, 치아를 모두 뽑아 치과 기록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게 만든 범인들의 우매함 때문이다.
지문과 치과 기록으로 시신의 신상정보를 파악하던 시절은 90년대에 이미 끝났다. DNA 기술을 비롯해 온몸을 스캔해 병원 기록을 확인하는 기술이 개발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지능적이지 않은 범인. 게다가 범인의 수는 최소 둘 이상. 장기밀매와 관련된 조직의 소행일 확률이 높다.
우리 차가 청량리역에 도착하자, 아수라장이 된 역 출입구를 볼 수 있었다. 구경 나온 사람들과 개인방송을 하는 이들, 기자들까지 뒤섞여 고함을 치고 있는 현장. 어찌나 심각한 상황인지 차량까지 통제하고 있다.
청량리역에 들어오는 버스 외에는 어떤 차도 역사 앞에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에 신분증을 내밀고 역사로 진입하는 우리 차량은 당연하게도 기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아직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플래시를 터뜨리는 기자들. 운전 중인 관우는 인상을 쓰며 앞을 보기 위해 눈 위를 가린다.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다다라서야 순경들이 기자들을 통제한다.
우리는 일부러 주차장 맨 끝까지 들어가 주차를 한 뒤 차에서 내렸다.
저 멀리서 우리 쪽을 보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 연주가 말했다.
“잠시만요, 통제되고 있는 구역 쪽으로 가는 게 맞겠네요.”
연주는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본 뒤 말했다.
“백화점 쪽에서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전면 통제 중이랍니다. 기자도 없고. 그쪽으로 가시죠.”
청량리역은 백화점과 연결되어 있다. 백화점에서 지하철로 연결된 통로는 순경들에 의해 완벽히 통제되고 있다.
지하철 승객들은 굳이 백화점을 나와 청량리역 정문으로 들어가야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경찰이 굳이 이쪽으로 올 리가 없기에 기자들이 없어 비교적 한산한 통로.
우리는 통제 중인 순경들에게 신분증을 보여준 뒤 기자들을 피해 안쪽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나는 빠르게 걸으며 물었다.
“시신 발견 장소는?”
연주가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KTX-이음 공사 구간입니다.”
“그게 뭐지?”
“청량리-안동 구간을 평일 7회, 주말 8회로 운행하는 기차로 기존 청량리-안동 무궁화호를 대체하려고 만든 구간이랍니다.”
이것이다. 굳이 유동 인구 많은 지역에 시신을 유기한 이유.
한번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하철 공사.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어 출입하는 인력을 일일이 검열하기 힘든 지하철 공사장. 이곳은 어쩌면 시신을 유기하기 매우 적합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발견했을 때 시신의 상태는?”
“굳은 시멘트 안에 있었답니다.”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시멘트 안에?”
“네.”
“그런데 어떻게 발견했어?”
“선로 옆쪽에 일반적으로는 없는 사각형 시멘트 구조물이 있는 것을 확인한 수색 지휘자가 공사 담당자들에게 물었는데 아무도 구조물의 쓰임새를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설계도까지 가져와 확인해 보았지만 구조상 전혀 필요 없는 시멘트 구조물이었답니다.”
연주가 핸드폰 화면을 밀어 올려 보고 내용을 확인 후 말했다.
“이후, 공사책임자 참관하에 시멘트 구조물 파괴 작업 진행 중 머리카락이 나왔고, 즉시 전체 파괴 작업을 진행, 세 구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수색 지휘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로 승진하겠구나. 웬만해선 그냥 지나치고 말 일을 끝까지 파낸 공로는 인정해 줘야 한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시신 발견 현장으로 갔다. 워낙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이라 중간에도 여러 번 순경들이 신분증을 요구했다. 이건 잘하고 있는 거다. 앞뒤 안 가리는 개인 방송 BJ들이 어느 경로로 침투할지 모르니까.
나는 공사 작업 중인 선로 앞에 서서 최종 신분증 확인을 하는 순경에게 물었다.
“수색 책임자 좀 봅시다.”
순경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선로 아래쪽에 허리를 숙이고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
“저기 계십니다.”
“예, 고맙습니다.”
“충성.”
나는 선로 아래로 뛰어내린 후 허리 숙인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수색 책임자이십니까?”
허리를 숙이고 뭔가를 보던 남자가 고개를 든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놀라 소리쳤다.
“오진규 과장님?”
해체된 수사 1과의 과장, 오진규다. 그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오진규는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씩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현 경감…… 아니, 경정님. 그리고 저 이제 과장 아닙니다.”
연주와 관우도 꽤나 놀란 얼굴이다. 하지만 오진규 과장과 친분이 없기에 쉽게 말을 붙이지는 못한다.
나는 오진규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반지를 보았다. 라텍스 장갑을 낀 그가 선로 아래에서 발견한 반지인 모양이다.
“그거 증거품입니까?”
“모르죠? 일단 나오는 건 다 넘겨보는 것이 정석이니까.”
옳은 말이다. 저게 단순 유류품인지, 피해자의 유품인지는 조사해 보아야 안다.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 모른다는 속담처럼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는 모든 물건은 언뜻 보기에 전혀 쓸모 없는 것 같아도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는 반지를 조심스럽게 증거물 봉투에 넣고 있는 오진규 경감을 보며 물었다.
“설마 의경중대로 가신 겁니까?”
의무경찰 중대장도 경감 계급이다. 하지만 국가수사본부 수사과장이라는 직함을 수행하며 일선 수사를 진행하던 사람을 의무경찰 부대에 넣었다고? 그건 말도 안 된다.
오진규 경감은 유괴사건 수사 중 납치당한 아이가 사망하는 사고를 겪었다. 나중에 보고서를 보았지만 수사 오류는 없었다. 납치범의 90%는 이미 몸값을 요구하기 전에 아이를 살해한다.
오진규 경감은 하필 맡은 사건의 피해자 부모가 사회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 화살 받이가 된 케이스다. 엄밀히 말해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이렇게 둬도 되는 걸까? 능력이 아깝지 않은가.
오진규 경감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될 뻔했죠. 하지만 경찰청장님이 막아주셨습니다.”
아! 강혁 아저씨구나! 그래, 아저씨라면 이런 사정을 알고도 사람을 썩힐 사람이 아니지, 암! 내 표정에 안도감이 스치는 것을 본 오진규 경감이 웃으며 말했다.
“동대문 경찰서 수사과로 발령받았습니다. 이쪽은 제 관할이라 수색 지시를 받고 지휘차 움직인 것이고.”
이제 알겠다. 어쩐지 꼼꼼하게 수색했다 했더니 오진규 경감이 지휘했기 때문이었다.
몸 사리는 대한민국 경찰이 시멘트 구조물까지 파괴해 가며 수색할 생각을 했기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수색대를 지휘하는 것이 오진규 경감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다.
“다행입니다.”
오진규 경감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당신은 어쩐지 느낌이 좋은 사람입니다. 처음 봤을 때도 그렇게 느꼈는데.”
당신도 그런 거야? 나도 어쩐지 당신이 참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한 번도 함께 수사한 적이 없었지만 어쩐지 이 사람은 믿고 등을 맡겨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진규 경감이 KCSI 요원에게 증거품을 넘긴 후 말했다.
“제가 안내하죠, 이쪽입니다.”
시커먼 구멍. 아직 공사 중인 지하철 선로는 매우 을씨년스럽다. 다행스럽게도 수색을 위해 간이 조명을 설치해서 중간중간이 밝기는 했지만 여전히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오진규 경감. 그를 따라 안쪽으로 약 60미터를 들어가자, 선로 옆에 작은 공간이 보인다.
오진규 경감이 처음 나타난 공간을 눈짓하며 말했다.
“지하철 선로 옆에 이렇게 작은 공간이 설치되어 있는 이유는 화재와 같은 위급 상황 시 지하철에서 뛰어내려 선로에 내리게 되었을 때 혹시 뒤에 오는 열차와의 충돌에서 피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겁니다.”
아이러니하다. 사람을 살리려 만들어 둔 공간에서 사람이 죽었다. 오진규 경감이 십여 미터를 더 간 뒤 멈춘다.
“여깁니다.”
이미 시신은 KCSI가 이송하고, 부서진 시멘트 조각들이 널브러진 곳. KCSI가 쳐둔 폴리스라인 안쪽으로 피 묻은 시멘트 구조물이 뻥 뚫려 있는 것이 보인다.
시신을 파낼 때 뽑힌 피해자들의 머리카락이 피에 절어 시멘트에 늘어 붙어 있는 것을 본 관우가 속이 안 좋아지는지 인상을 쓰며 물러난다.
오진규 경감이 시멘트 구조물을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최초 출동한 KCSI 대원의 말에 따르면 시멘트가 시신의 기도까지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즉, 사망 후에 이곳에 옮겨져 시멘트를 부어 굳혔다는 뜻입니다.”
“시신이 세 구입니다. 저희가 쫓던 피해자는 30일 이전에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시신도 마찬가지입니까?”
“애들 시켜서 CCTV 확보해 놨습니다. 그건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경감님.”
“원래 제가 할 일인걸요, 뭘.”
“또 알려주실 건 없습니까?”
오진규 경감은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다 다시 시멘트 구조물을 바라본다.
“저도 뉴스 봤습니다. 지하철로 시신을 옮겼다는 괴담. 그게 진짜라는 뉴스가 나오고 나서도 사실 믿지 않았습니다. 어느 멍청한 경찰이 애들 장난에 놀아난다고 생각했죠.”
순간적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오진규 경감은 날 비꼴 생각이 아니었는지 즉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건을 맡은 것이 국가수사본부 수사국이라는 뉴스를 본 순간, 진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세히 말하지 않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오진규 경감 본인이 없는 수사국. 이 사건을 맡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걸 알고, 내가 맡은 사건이 거짓일 리 없다고 인정한 것이다. 나를 깎아내리는 발언이 아니라 에둘러 나를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오진규 경감은 다시 한번 시멘트 구조물을 보며 말했다.
“경찰로 살아오며 지금껏 많은 시신을 봤습니다. 이번 시신에 대해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입니다.”
“그게 뭐죠?”
오진규 경감이 우리 셋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원한이 없는 살인입니다.”
나는 눈을 빛냈다. 사건은 장기적출로 인해 사람을 살해한 것. 즉, 범인들은 피해자들에게 원한이 없고, 사람 몸을 돈으로 보는 놈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경찰이고, 경찰은 편협한 시선으로 사건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오진규 경감이 씩 웃으며 말했다.
“KCSI로 가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