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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144화 (144/328)

살인의 기억 144화

12. 지하철 괴담(10)

KCSI 역시 기자들로 북새통이다. 시신이 이송된 것을 알아챈 기자들이 KCSI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정문 외에 따로 접근 가능한 곳이 없는 곳이라, 수많은 기자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 버렸다.

억지로 밀고 들어와 마이크를 내미는 기자들과의 힘겨루기로 녹초가 된 관우가 로비로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와, 연예인들은 이걸 맨날 겪고 사는 거 아냐? 이러고 어떻게 사냐, 사람이…….”

연주도 지친 얼굴로 소파에 앉는다.

“그러니까 돈 많이 버는 거겠지. 본인들 꿈이기도 하고. 힘들어도 그걸 버텨내야 진짜 가수가, 배우가 될 수 있는 거니까.”

관우가 눈을 흘기며 말한다.

“그걸 누가 몰라서 묻냐? 넌 가만 보면 맨날 옳은 말만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거 같아. 병원에 좀 가라, 응?”

“죽을래? 정신병원 가라는 거냐?”

“그럼 정형외과 갈래?”

관우는 또 주접을 떨다 연주에게 한 대 맞는다. 맞을 걸 알면서 매일 저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참 재미있는 녀석이다.

나는 잠시 두 사람에게 짧은 휴식 시간을 준 뒤 말했다.

“일이 급하다, 대충 쉬었으면 가자.”

“예, 과장님.”

나는 지나가던 연구원에게 물어 이번 검시 담당자를 물었다. 하지만 괜히 물어본 모양이다. 내 사건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비번이었던 목 과장님이 비상 출근해 직접 검사하셨다고 한다.

내 사건은 무조건 자신이 맡을 거란 말이 정말이었나 보다. 쉬는 날에도 나오셨다는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죄송한 기분이다.

목 과장님의 전용 부검실에 도착해 모니터실로 가자, 유리 창문 안쪽에서 LCD 화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목 과장님이 들어오라 손짓한다.

안쪽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밖에서 진입이 안 되는 곳이었기에 문 앞에 서서 기다리자, 목 과장님의 검시 보조를 하고 있던 요원이 문을 열어준다.

목 과장님이 LCD 화면을 보며 손만 든다.

“왔냐?”

“예, 과장님.”

“새끼, 형님이라고 부르라니까 끝까지.”

“아, 죄송합니다. 형님.”

목 과장님은 그제야 고개를 돌리며 웃다, 관우와 연주를 보며 다시 손을 든다.

“여, 두 사람도 왔네? 오랜만이야?”

관우와 연주도 과장님과 안면이 있어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나는 나란히 누워 있는 세 구의 시신을 보았다. 부검 때문에 발견 당시보다 더 처참한 모습이 되어 있는 시신들. 비위가 약한 관우는 아까 전부터 시신 쪽을 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중이다.

목 과장님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stomach(위), liver(간), kidney(신장), heart(심장), small intestine(소장), large intestine(대장), 돈 되는 건 모조리 뽑혔다.”

목 과장이 턱을 쓸며 말했다.

“다만 돈 되는 각막을 얻기 위한 안구적출을 생략한 건 시신을 아무도 모르게 이동시키기 위한 것 같아. 발견된 시신 세 구 모두 옷이 입혀져 상처가 가려져 있었고, 눈이 뜬 채로 매장당했다. 아마 동일한 방법으로 시신을 이동시킨 것 같다.”

나는 세 구의 시신 중 이희연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기억 속에 있던 옷차림으로 누워 있는 이희연 씨. 내가 봤던 그 얼굴이 맞다.

“사망 추정 시간은 어떻습니까?”

목 과장님이 남성의 시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1.”

이희연 씨 외에 또 다른 여성의 시신을 가리킨 목 과장이 말했다.

“여기가 2. 네가 보고 있는 사람이 세 번째다. 1번 시신은 60일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제길, 결국 CCTV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오진규 경감의 말이 생각나 목 과장님께 물었다.

“원한 살인에 대한 의심을 할 만한 건 없습니까?”

목 과장님이 고개를 흔든다. 그는 시신의 머리 쪽으로 간 뒤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보여준 뒤 말했다.

“원한 살인에서 발견되는 폭행 흔적이 전혀 없어. 여기 목 쪽 보이지?”

목에 아주 작은 멍이 있다. 그리고 멍의 가운데에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다. 목 과장님이 시신의 머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위치를 봤을 때 뒤에서 기습해 약을 목에 직접 주사한 걸로 보인다. 주삿바늘이 통과한 각도로 보았을 때 남성 시신을 기준으로 약 10㎝ 더 큰 사람인 것 같고.”

연주가 바로 수첩을 꺼낸다.

“남성 시신의 키가 몇입니까?”

“170㎝.”

“그럼 범인이 180㎝ 이상의 키를 가졌다고 보면 되겠군요?”

“그렇지.”

목 과장님이 다시 날 보며 설명한다.

“혈액검사에서 디부카인염산염(Dibucaine Hydrochloride) 반응이 나왔어. 이 사람들은 주사 후 몇 초 내에 기절했을 거야.”

목 과장님이 시신의 여러 곳을 보여주며 말했다.

“방어흔도 없는 걸 봐서 이 셋은 주사로 마취당한 후 모처로 끌려가 장기적출을 당하고 곧바로 버려진 것으로 보인다. 폭행 흔적이 전혀 없어. 이건 원한 살인의 M.O(범죄 수법)와 맞지 않아.”

오진규 경감이 말한 것이 이것이다. 그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상세 부검을 하지 않은 시신을 잠시 보았을 뿐인데 그걸 알아내다니. 역시 능력 있는 사람이다.

목 과장님이 다시 화면을 보며 말했다.

“여길 좀 봐.”

화면 속에 장기적출 시 잘라낸 혈관들 사진이 떠오른다. 전문가가 아닌 나는 그저 혈관 다발이 잘려 나가 있는 것 이상은 알아낼 수 없는 사진. 목 과장님이 말했다.

“잘린 혈관의 단면을 보면 이런 일에 매우 익숙한 놈이란 걸 알 수 있어. 이 정도 실력이면 외과의사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지.”

“그 말씀은.”

목 과장님이 날 보며 무겁게 말했다.

“범인들은 전문적으로 장기밀매를 하는 놈들이다.”

“피해자가 셋 이상일 수 있다는 뜻이군요.”

목 과장님이 다시 화면을 보며 한숨을 쉰다.

“만약 이 범인이 의대 공부를 한 놈이 아니라 진짜 장기적출로만 이 정도 실력을 쌓으려면…….”

이야기를 듣던 관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목 과장님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적어도 백 명 이상의 배를 갈라 본 놈이다.”

전문 장기밀매 조직. 사람을 백 명 이상 죽였거나, 혹은 사망자의 배를 불법으로 갈라 장기를 적출한 사람. 이놈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목 과장님께 여러 가지 부검 결과를 들은 후 로비로 나와 지시를 내렸다.

“연주는 바로 유재영 씨와 고지환 씨 소환해서 목격한 범인들 몽타주 따.”

“네, 과장님.”

나는 기억을 읽었기에 두 범인의 얼굴을 알지만 다른 경찰은 모른다. 목격자가 있으니 몽타주를 따 배포하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다.

“관우는…….”

관우가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연주를 힐끔 본 뒤 말했다.

“연주 쪽이 급하니까 너부터 가.”

연주가 관우와 날 번갈아 보다 입맛을 다시곤 로비를 벗어난다. 나는 혼자 남은 관우에게 말했다.

“관우야.”

“예?”

“넌 따로 할 일이 있다.”

“……?”

“홍연 병원에 입원한 아이 있지?”

“예, 새별이요?”

“그래, 넌 병원에 잠복해.”

관우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 된다.

“병원은 왜요?”

“마음에 좀 걸리는 게 있어서 그런다.”

“…….”

관우는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아도 내 지시가 이해되지 않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시신의 상태가 원한 살인의 형태로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살해한 자가 면식범이 아니며, 불특정 다수를 타겟으로 한 장기적출 살해범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희연 씨의 가족을 조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실 이것에 대해서는 나도 설명할 수 없다. 기억을 읽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마음에 걸리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관우가 눈을 깜빡이다 물었다.

“아이 쪽을 감시해야 되는 겁니까?”

“아니, 아버지 쪽이다.”

“아버지가 병원을 비우면 추적합니까?”

“아니, 거기 딸이 있어. 그는 병원을 비우더라도 반드시 돌아온다.”

“그럼 왜…….”

관우는 어차피 병원으로 돌아올 사람을 왜 감시하냐 질문을 던지려고 하다 멈칫하며 나를 본다.

“유사시에 즉시 체포 가능한 거리에 있으라는 뜻입니까?”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관우가 날 뚫어지게 보았다.

“김정국을 의심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

이건 거짓말할 거리를 못 찾은 것이 아니라 진짜 할 말이 없는 거다. 나는 지금 경찰이 된 후 처음으로 직감이란 놈을 따라 지시를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닐 수도 있다. 그저 내 기우일 수도 있는 일이다.”

관우는 나를 가만히 보다 씩 웃는다.

“과장님 직감은 틀린 적이 없죠.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

미안, 이번에는 진짜 헛수고일 수도 있어. 관우는 보는 눈이 많아 경례를 생략하고 고개만 숙인 후 병원으로 달려간다.

나는 잠시 녀석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희연의 남편 김정국.

나는 그에게서 뭔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무엇이냐 설명하라면 전혀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다. 살인범들의 프로파일과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이 든다.

혹여 실수였고, 헛수고였다면 그것 나름대로 괜찮다. 최악의 참혹한 결과는 아닐 테니까.

* * *

나는 KCSI에서 나와 다시 지하철로 돌아왔다.

나는 내 능력에 대해 아직도 많은 부분을 모른다.

저녁이 되어 기자들도 철수한 한산한 역사를 걸어 선로에 뛰어내린 나는 아무도 없는 선로를 걸으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배에 걸린 흉기를 보고 기억을 읽었다.

나는 개의 기억을 읽어낼 수 있었다.

나는 시신의 기억을 일어낼 수 있었다.

물론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도 읽어낼 수 있다.

결국 나는 사물에 남은 기억, 생존한 생명체에 남은 기억과 사망한 자의 기억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살해 현장에서도 뭔가 읽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지하철 선로 옆 공간이 살해 현장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곳에서 악의를 가지는 순간, 매장 시의 기억을 읽어낼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머리를 때렸다.

“바보냐? 난 이미 범인들 얼굴을 알잖아.”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읽었다. 이제 와 다시 기억을 읽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살해 현장이 그곳이라면 몰라, 단순히 시신이 유기된 곳이다. 말없이 시멘트 붓는 기억을 본다고 수사에 도움이 될 것이 없는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로 돌아 플랫폼 위로 올라왔다. 공사 중이라 일반인이 없는 플랫폼.

나는 공사 구간을 벗어나, 지하철이 운행 중인 중앙선과 1호선 환승 구간에 섰다. 퇴근 시간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 아직 포기하지 않았는지 카메라를 든 기자 몇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범인들은 지하철로 시신을 옮겼다. 범인이 지하철에 탑승한 것은 중앙선 양원역. 내린 곳은 청량리역이다.’

이 사실로 양원역이 그들의 아지트라 확신할 수는 없다. 이희연 씨가 사는 곳은 오남리. 그곳은 양원역과 크게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 근처에서 이희연을 기습해 디부카인염산염(Dibucaine Hydrochloride)으로 기절케 한 뒤 지하철로 옮겼을 수도 있다. 또한 모처에서 내렸다가 장기적출을 하고 다시 지하철로 시신을 옮겨 이곳에 매장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유재영과 고지환이 목격했을 때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므로 아지트는 양원역 인근일 확률이 매우 높다.

지나는 사람들을 멍하게 바라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 초점 잃은 눈동자 속을 지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중앙선 역으로 가고 있는 남자. 나는 저 남자를 모른다. 그런데 왜 나는 저 남자를 보게 되는 걸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약 30미터 앞에서 옆으로 틀어 중앙선 환승역으로 걷고 있다. 그러다 슬쩍 뒤를 돌아본다.

나를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놈!’

기억 속에서 본 범인 중 한 놈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했다가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급한 마음에 날려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인은 한 명이 아니다. 한 놈만 먼저 잡으면 나머지 한 놈이 튈 수도 있다.

놈은 뒤를 한번 쓱 보더니 계단을 올라간다. 그리고 계단 중간에서 다시 한번 돌아본다. 아마도 뒤를 확인하는 것이 습관인 모양이다.

나는 한 무더기의 아주머니 틈바구니에 섞여 계단을 올랐다. 계단 중간 부근을 올라갔을 때 알림음이 울리고, 내 주변 아주머니들이 뛰기 시작한다. 곧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뜻이다.

덩달아 함께 뛴 나는 플랫폼에 오르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플랫폼 제일 앞 승강장에 후드를 뒤집어쓴 놈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계단 옆에 있는 승강장에 섰다. 곧 지하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린다.

나는 녀석이 타기 전에 먼저 지하철에 탑승했다. 하지만 창문에 바짝 붙어 녀석을 노려보았다. 놈은 사람들이 모두 탈 때까지 주변을 살피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지하철을 탄다.

나는 바로 칸을 이동해, 녀석이 있는 제일 앞 칸으로 갔다.

노약자석 앞에 서서 곁눈질로 녀석을 살폈다.

놈은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전화를 붙잡고 조용히 통화 중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주변을 살피고 있다.

한번 눈이 마주칠 뻔했지만 재빨리 눈만 돌려 상단에 붙은 LED 화면을 보는 척 연기를 한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창문에 비친 녀석을 노려보았다.

‘반드시 전부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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