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48화
12. 지하철 괴담(14)
고요한 주택가.
순찰차 세 대에 나눠 태운 범인들과 형사 둘, 순경 여섯을 먼저 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인근 주택에 잠복시킨 후 박사라는 놈을 기다리는 우리.
아지트로 쓰던 주택 1층 건물의 한 방에 불을 끄고 들어가 몸을 숙이고 있는 나와 관우, 연주는 작은 창문으로 밖을 주시하며 숨을 죽이고 있다.
그때 누군가의 진동 소리가 들린다.
우웅…… 우웅…….
연주가 관우 뒤통수를 때리는 걸 보니 녀석의 전화인가 보다. 관우는 미안한 얼굴로 얼른 전화기를 무음으로 바꾸다 눈을 크게 뜬다.
“과장님?”
창문 밖을 주시하던 내가 녀석을 보자, 관우가 말했다.
“저기, 저 병원에서 여기 오면서 김정국 감시 부탁한 순경에게서 온 전화인데.”
똘똘한 녀석. 급한 상황에서도 내 지시를 잊지 않았구나.
“조용히 받아.”
“예.”
관우가 구석으로 가 몸을 숙이고 나직하게 전화를 받는다.
“어, 어. 뭐?”
처음에는 작게 전화를 받던 녀석의 언성이 약간 높아지자, 연주가 바닥에 굴러 다니는 쓰레기 페트병을 관우 등 쪽으로 던진다. 등에 쓰레기를 맞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통화를 계속하던 관우가 급히 전화를 끊는다.
“일단 알았어, 계속 거기 있다가 상황 보고해.”
관우가 얼른 허리를 숙이고 달려와 속삭인다.
“과장님.”
“음?”
“김정국이 자살을 시도했답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잠복 중이라는 것도 잊고 관우를 돌아본 나. 연주도 놀란 눈치다.
“김정국이 갑자기 왜?”
관우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유는 모릅니다. 오늘 딸 수술 날이라 새벽부터 일어나 애 금식 확인하고, 알레르기 테스트하고 검사하는 것까지 보고 왔는데 갑자기 자살이라니.”
“상태는?”
“6층에서 뛰어내렸답니다. 복합 골절이라고 하는데 머리는 무사해서 생명에는 지장 없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뛰어내린 곳이 병원이라 응급처치가 잘된 모양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딸이 이제야 기다리던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왜 자살을 시도한단 말인가? 엄마도 죽은 마당에 아빠까지 없는 어린아이 혼자 어찌 살라고.
“넌 바로 병원으로 가.”
“예? 여기는 어쩌고요?”
“연주와 내가 검거한다. 다른 형사들도 잠복해 있으니 걱정 말고 빠져나가. 안 걸리게 조심해서.”
관우는 잠시 고민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허리를 잔뜩 숙이고 살며시 문을 연다.
날랜 녀석이라 여기 벽에 붙었다가 저기 벽에 붙었다가 하며 조심스레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
연주가 관우 모습을 보다 물었다.
“그런데 과장님.”
“어.”
“한 놈 더 있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속으로는 뜨끔했지만 이것에 대한 변명은 미리 준비했다.
“아까 파마머리 놈이 통화하는 거 들었다. 장기적출을 전문으로 하는 한 놈이 더 있어. 박사라고 불리는 놈인데 한 시간 반 뒤에 온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근데 얼굴 모르는데 어떻게 범인인 거 알고 잡죠? 지하실로 내려간다고 무작정 애먼 사람 잡았다가 뒤에서 오던 진범이 눈치채고 튈 수도 있는데.”
미안, 그럴 일은 없어. 난 얼굴을 아니까. 근데 여기서는 뭐라고 변명을 해야 되는 거지?
나는 눈을 빛내며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리던 연주를 힐끔거리다 창문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급히 고개를 숙였다. 덩달아 허리를 숙인 연주.
나는 슬쩍 눈만 들어 창문 밖을 보았다.
갈색 티셔츠에 청바지. 베이지색 워커를 신고 큰 가방을 멘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두워 얼굴이 식별되지 않는다.
나는 창문 위로 눈만 드러내 놓고 놈을 주시했다. 놈은 우리가 숨은 방을 지나 계단 쪽으로 뚜벅뚜벅 걷고 있다.
연주가 속삭인다.
“쳐요?”
“…….”
“어떻게 해요, 과장님?”
나는 뚫어지게 놈을 주시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다다른 놈. 그때 놈이 계단이 어두웠는지 옆에 있는 전깃불 스위치를 켜는 것이 보인다. 순간적으로 밝아진 계단 앞.
뒤따르는 놈이 없는지 뒤를 보는 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기억 속에 있던 얼굴과 일치함을 알았다.
“쳐.”
나는 말을 하자마자 몸을 튕기며 문을 벌컥 열었다. 뒤에서 연주가 무전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용의자 출연! 용의자 출연! 전원 검거작전 시작합니다!”
주변에 잠복해 있던 다른 형사들도 이놈이 올라오는 걸 보고 있었을 것이다. 무전을 들으면 바로 달려오겠지. 나는 지하실로 내려간 놈을 따라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계단 끝까지 내려오자 가방을 들고 복도를 바라보고 있는 놈의 뒷모습이 보인다. 총을 꺼낸 나는 그의 등을 겨누며 말했다.
“경찰이다, 손들고 무릎 꿇어.”
놈은 평소와 다른 복도의 모습을 보고 상황을 이미 짐작했는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가방을 내려놓은 후 양손을 든다.
“이쪽으로 돌아서.”
녀석이 천천히 돌아선다. 날카로운 눈빛. 쭉 찢어진 눈매가 기억 속의 얼굴과 정확히 일치한다.
“네놈이 박사라는 놈인가?”
“…….”
“이희연 씨, 네놈이 죽였나?”
“…….”
뒤에서 뛰어내려 온 연주가 놈에게 총을 겨눈다. 박사는 연주를 힐끔 본 뒤 날 노려본다.
나는 총구를 겨눈 채 천천히 놈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막다른 길이다. 도망갈 곳 없으니 순순히 투항해.”
박사는 양손을 든 채 별 움직임 없이 날 노려보고 있다.
나는 총을 들고 접근하며 말했다.
“다시 묻는다. 이희연 씨 알지?”
박사는 손을 든 채 말했다.
“안다.”
“네가 죽였으니 모를 수가 없겠지.”
“내가 안 죽였다.”
“여기 증거가 한가득이야, 이 새끼야. 이제 와 거짓말해 봐야 아무도 안 믿어줘.”
“내가 안 죽였다.”
지랄. 도둑질한 놈이 잘도 내가 도둑이라고 하겠다, 이놈아. 너 같은 놈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이 자식 자백시키려면 또 지루한 취조를 해야 할 모양이다.
나는 총구를 녀석의 머리에 겨눈 채 옆으로 돌아 팔을 잡았다. 동시에 팔을 뒤로 꺾은 후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양손에 수갑을 채웠다.
“너를 현 시각 부로 살인, 납치, 불법 장기적출, 불법 장기판매 혐의로 체포한다. 너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체포적부심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근데 다 하지 마, 이 새끼야. 어차피 돈 낭비이니 그 돈 있으면 빵에 예치금 넣는 쪽이 나을 거다.”
내 무릎에 등이 눌려 엎드려 있던 놈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살인은 안 했다고.”
그래, 그럼 나머지 다섯 놈이 죽이고 넌 장기적출만 했겠지. 어차피 무기징역이야, 인마. 나는 녀석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이놈은 특별히 반항을 하지 않는다. 팔을 만져보니 근육이 없는 앙상한 팔이다. 운동이나 싸움질을 하는 녀석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반항을 안 하는 걸까?
조금 늦게 도착한 형사들이 이미 체포된 놈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녀석을 밀며 말했다.
“이놈도 이송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다행히 마지막 놈은 별 수고하지 않고 잡았다. 나는 손바닥을 툭툭 털며 연주를 보곤 씩 웃었다.
“전원 검거 완료.”
아직도 입안에서 나는 피 때문에 이빨이 붉어져 있는 날 보는 연주는 한심한 얼굴로 한숨을 쉰다.
“어휴, 내가 진짜 과장님 때문에 내 명에 못 죽지. 아오, 내 팔자야.”
“…….”
* * *
박사를 태우고 돌아온 국가수사본부.
이곳은 시신이 발견되었던 청량리역보다 더 난리가 난 상태이다. 일부러 흘렸는지 청와대가 보고를 듣고 기자들에게 발표를 해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지하철 괴담의 진범이 잡혔다는 소식에 대한민국의 기자라는 기자는 다 와 있는 것 같다.
눈 부시게 터지는 플래시 불빛 앞에서 차에서 내린 나는 눈을 찡그리고 수갑 찬 박사를 끌고 수사국으로 들어갔다. 기자들의 외침 소리가 소음에 섞여 들려온다.
불행 중 다행일까? 기자들이 질문하고 싶은 대상은 내가 아니라, 박사다.
“산 사람에게 장기적출을 한 것이 사실입니까!”
“지금까지 몇 명을 죽인 겁니까!”
“이름을 밝혀주실 수 있습니까!”
“형사님! 잠깐만요, 잠깐이면 됩니다!”
기자들 때문에 진입이 힘들 때 수사본부 인력들이 우르르 나와서 길을 터준다. 나는 쏟아지는 플래시 속에서 최대한 얼굴을 지켰다. 잠복해야 할 형사 얼굴이 전국적으로 팔릴 순 없기 때문이다.
범죄자인 박사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걷는데 형사인 나는 고개를 숙이고 걷는 아이러니한 상황.
나는 수사국에 들어온 후에 겨우 얼굴을 들었다.
“후.”
나는 연주에게 물었다.
“다른 놈들은?”
“따로 구금해 두었답니다.”
“관우 연락해서 김정국 씨 상태 알아봐 줘.”
“네, 과장님. 취조는 누구부터 하실래요?”
“이놈부터 하지, 뭐.”
나는 박사의 등을 툭 밀며 말했다.
“걸어.”
연주가 관우에게 연락을 하러 자리를 비우자, 박사 놈이 실실 웃기 시작한다. 왜 웃는 거지?
“뭐가 웃기냐, 평생 빵에서 썩을 생각 하니 기분이 좋지? 그래, 거기도 살 만하다.”
“킬킬…….”
녀석은 실실 웃으며 걷다가 멈추더니 날 돌아본다.
“김정국이 놈. 어떻게 됐는지 물어도 되나?”
“……?”
웃음기 있는 놈의 얼굴. 그런데 이놈이 김정국 씨를 어떻게 알지?
“뭐……?”
“킬킬…… 궁금해서 말이야.”
박사가 김정국 씨를 안다. 이게 무슨 의미이지?
“왜 묻지?”
“킬킬…….”
녀석은 혼자 웃다가 말없이 다시 걷기 시작한다. 나는 놈의 뒷모습을 노려보다 다시 걸었다. 놈을 취조실에 앉힌 나는 맞은편에 앉은 후 녀석을 노려보았다.
“이름.”
“…….”
“이름.”
“정서영.”
“나이.”
“39세.”
“만으로.”
“37세.”
“직업.”
“…….”
“직업.”
놈은 가만히 날 노려보고 있다. 나는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놈의 이름과 나이를 입력했다. 그러자 같은 이름과 나이를 가진 사람들이 쭉 나열되는 것이 보인다.
“직업 없어? 그럼 주소.”
“…….”
“주소 말하라고, 새끼야.”
정서영이 입술을 달싹이다 말했다.
“강서구 마곡동.”
나는 데이터베이스에서 강서구 마곡동에 사는 37세 정서영의 이름을 검색어로 넣었다. 셋으로 좁혀진 대상. 그중 두 명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의 정서영을 찾아낸 나는 인상을 구겼다.
“직업이…… 의사야?”
정서영은 말없이 날 바라보고 있다.
사람 살리는 공부를 한 의사라는 놈이 멀쩡한 사람의 장기를 적출해 죽였다고? 거기다 그 장기를 가져다 팔기까지? 너무 황당해 헛웃음을 흘린 나는 키보드를 두들기며 물었다.
“아까 살인은 안 했다고 했지.”
“그렇다.”
“미친놈. 부검 결과 발견된 시신들은 모두 살아 있는 채로 장기적출을 당했다.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 사람의 장기적출을 했다는 말이다. 이래도 네가 죽인 게 아닌가?”
정서영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건 육체가 혼을 잃은 거다. 진짜 죽음은 신체에 있지 않다.”
이건 또 무슨 궤변일까?
“무슨 소리지?”
정서영이 날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인간의 진짜 죽음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영혼이 죽음을 맞이할 때. 비로소 그것이 진짜 죽음이라 할 수 있다. 이희연 그 여자처럼 말이지.”
정지영의 헛소리에 잠시 시간을 투자하려던 내 눈이 커졌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