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52화
13. Spree killer(연속살인자)(1)
경찰의 사건은 검찰에 송치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물품에서 여죄를 밝힐 추가 증거가 나올 경우 검찰에 보고서를 전달해야 하기에, 수사과는 아직 바쁘다.
관우가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다 머리를 긁으며 TV를 보았다. 소리를 죽여둔 뉴스 채널에서 인천 앞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신 수색 작업을 보도 중이다.
“일곱 중에 지하철역에서 발견된 셋 빼고, 넷 중에 둘 발견. 아직도 둘의 시신은 못 찾았네.”
사건을 빠르게 처리하라는 강혁 아저씨의 말을 지키고 난 뒤 나는 이로 인해 아저씨가 청와대의 압력을 받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지영이 기자들에게 한 충격적인 말이 엄청난 이슈가 되고, 바로 이어진 시신 수색작업까지 큰 화제가 되니 검찰에 빠르게 송치한 부분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둘의 시신만 먼저 발견된 후 이틀간 추가 발견 소식이 없다. 어쩌면 이미 발견하고도 조금 더 이슈가 되도록 숨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주가 모니터에 고개를 파묻고 있다가 말했다.
“과장님, 범인 중에 둘이 중국에 정기적으로 오간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주로 배로 이동했는데 아마 적출한 장기를 판매한 루트가 중국 쪽인 것 같아요.”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심장과 신장 같은 장기는 적출 즉시 이식을 해야 효과가 있다. 중국을 통해 장기밀매 루트를 확보하고 이식 수술을 받을 환자를 배로 한국에 입국시켰을 거야. 반드시 국내에 불법이식 수술을 한 병원이 있다.”
연주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쪽 추가 수사는 검찰이 맡는다고 하던데.”
아, 그랬지. 이번 담당 검사는 끈질기기로 명성이 높은 사람이니 반드시 추적해 주리라 믿는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검찰과 경찰이 서로 반목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나처럼 살인사건 위주로 수사를 하는 팀에 있는 사람은 의외로 검찰과 부딪힐 일이 적다. 재벌 비리에 연관된 사건이 아니라면 검찰과 충돌할 일은 거의 없는 모양이다.
“그래, 그럼 추가 증거 나온 부분만 보고서 보내고 완료하자.”
손이 부족해 나까지 보고서 작업에 매진하기를 세 시간.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보고서를 끝마친 우리는 검찰로 메일을 보낸 후에 굳었던 몸을 풀었다. 관우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으다다다! 와, 피곤해. 우리 사건도 끝났는데 한잔 안 합니까, 과장님?”
연주가 눈을 흘긴다.
“야, 또 주정 부리다 기절하려고? 아서라, 아서.”
“아니거든! 그때는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거거든!”
“무슨 컨디션이 술 마실 때마다 안 좋아!”
“오늘은 완전 괜찮거든!”
또 싸운다, 이 녀석들. 나는 둘을 보며 실소를 지었다.
“간단하게 한잔하자, 그럼.”
관우가 얼른 말했다.
“포장마차 콜?”
관우와 연주는 날 따라 몇 번 포장마차를 가 본 후 그곳의 팬이 되었다.
높은 언덕길 위에 있는 포장마차라 서울 시내가 다 내려 보이는 좋은 풍경은 백화점 꼭대기 레스토랑보다 좋은 뷰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포장마차로 오자, 장사 준비를 하는 주인아저씨 모습이 보인다.
넉살 좋은 관우가 인사를 하고 친한 척을 했지만 아저씨는 평소처럼 무뚝뚝한 얼굴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슬쩍 눈인사를 하는 아저씨. 이런 변함없는 것들이 점점 좋아진다.
오징어 삼겹살 볶음과 차돌박이 된장찌개, 계란찜을 안주로 시키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우리. 관우가 쓴 소주 한 잔을 털어 넣고 오만상을 쓰며 말했다.
“크~~~ 죽인다. 오늘따라 술이 달면서도 쓰네.”
연주가 안주를 집어 먹으며 물었다.
“과장님, 새별이는 언제 보육원으로 가요?”
“아마 육 개월은 걸릴 거야. 이식 수술을 한 아이이니 면역억제제 복용 문제도 있고 해서 절차가 복잡할 거다.”
“음…… 이식 수술하면 평생 그 약 먹어야 되죠?”
“아무래도 그렇지. 자기 장기가 아니라 면역체계 문제가 생기니까. 약으로 억제해야 될 거야.”
“후, 약값도 꽤 들 텐데. 불쌍하다, 새별이.”
아이와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이 없지만 김정국을 감시하며 고작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산소마스크를 쓰고 숨을 헐떡이는 것을 지켜봤던 관우는 마음이 무척 안 좋은 얼굴이다.
“가끔 보육원 가서 잘 있나 살펴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그래, 그것이면 됐다. 그것도 안 하는 나 같은 인간도 있는데 뭘. 하, 그러고 보니 수녀님들께 엄청 죄송하네. 자주 찾아오지도 않는 놈이 이런 부탁이나 하고. 아무래도 근 시일 내에 한번 가 보는 편이 좋겠다.
그때, 아이 생각을 하며 초점 잃은 눈빛으로 소주잔을 들던 내 시선 위로 검은 그림자가 생긴다. 주인아저씨가 또 서비스를 주시는 건가 해서 고개를 돌린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어……?”
날 따라 고개를 돌린 연주와 관우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플라스틱 의자가 뒤로 넘어진다.
“충성!!”
“충성!! 근무 중 이상 무!”
강혁 아저씨가 빙긋 웃으며 서 있다. 아저씨는 관우 어깨를 만지며 말했다.
“근무 중? 근무 중에 술 마시는 거야, 지금?”
관우가 당황해 말을 더듬는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퇴근은 했는데 말이 이상하게 나와서…….”
강혁 아저씨가 관우를 가리키며 날 본다.
“도경아! 이 새끼 근무 중에 술 처먹는다!”
되지도 않는 농담을 하며 웃는 아저씨. 연주와 관우가 감히 먼저 앉지 못하고 주변을 뒤져 플라스틱 의자를 준비한다. 그러자 강혁 아저씨가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편다.
“의자는 두 개 부탁해.”
응? 누굴 데려왔나? 그제야 아저씨 뒤에 누군가 서 있음을 알아챈 나는 고개를 빼고 뒤를 보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진규 경감님.”
강혁 아저씨가 오진규를 데려왔다. 그는 약간 멋쩍은 얼굴로 엉거주춤 서 있다 실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한다.
“또 봅니다.”
그의 손을 맞잡은 나. 우리 팀에 올 거라 생각하니 벌써 반가운 마음이 든다.
“앉으시죠.”
나는 관우가 가져온 의자를 내 옆자리에 바싹 당긴 후 자리를 권했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술잔이 돌아가고, 한 잔 두 잔 술이 오가며 분위기가 풀어진다.
강혁 아저씨는 관우 놀리기가 재미있는지 자꾸 말실수를 유발시켜 놀리는 중이고, 연주는 강혁 아저씨 편에 붙어 관우 놀리기에 합세한다.
관우만 식은땀을 흘리며 자꾸만 구해달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지만 미안하게도 지금 내 신경은 오진규에게 가 있다.
나는 오진규의 잔을 채워준 후 말했다.
“와주시겠습니까?”
다짜고짜 던진 질문. 하지만 상대도 내가 무슨 의도로 이 질문을 던졌는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오진규는 말없이 내 잔을 채워주고는 잔을 든다. 그와 함께 잔을 들어 살짝 부딪히고 술을 털어 넣자, 그는 다시 말없이 잔을 채워준다. 또다시 말없이 드는 한 잔.
오진규는 술 석 잔을 연거푸 따라주고 함께 마신 후에 지그시 날 바라본다. 그의 표정에 수만 가지 말이 담겨 있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 이 제안은 탐탁지 않을 것이다.
본래 같은 과장의 입장에 있다 밑으로 들어와야 하는 상황. 게다가 나는 그보다 한참 후배에 나이도 어리다. 나라도 이런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진규는 내가 생각한 부정적인 생각 중 어떤 것도 입에 담지 않는다. 서로 눈을 마주치고 말없이 바라보기를 일 분여.
마침내 오진규가 입을 연다.
“합시다.”
나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 진짜 남자다. 내가 하기는 하는데 이런 부분은 좀 조심해 주십시오 하는 부탁도 없다. 하면 하는 것이다. 더 이상 필요한 말은 없다.
오진규는 내 미소를 보고 마주 웃으며 강혁 아저씨를 힐끔 본다.
“듣자 하니 곧 총경 다실 것 같고. 청장님과 이리 가까우시니 저도 든든한 뒷배 한번 누려보죠, 뭐.”
농담을 하는 걸 보니 확실히 마음의 결정을 한 모양이다. 나는 웃으며 강혁 아저씨를 보며 짓궂게 말했다.
“에이, 청장 뒷배야 뭐 고작 2년이 전부일 텐데요.”
관우 놀리기에 여념이 없던 강혁 아저씨가 순간적으로 몸을 굳힌다. 돌처럼 굳은 아저씨가 날 가자미눈으로 째려보자, 오진규가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 청장님 놀리는 경정이라. 재미있군요.”
나는 날 째려보는 아저씨를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왜요, 임기 2년이라는 소리는 본인이 맨날 하시면서.”
강혁 아저씨가 날 째려보다 잔을 내민다. 채워달라는 뜻인가 보다. 내가 병을 들어 잔을 채워주자 한 잔 쭉 들이켠 아저씨가 입을 닦으며 말했다.
“내 임기 끝난다고 네가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우와, 뭐냐 이 스토커 데이트 폭력 범죄자 같은 말은. 나는 짐짓 소름이 돋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 놔주시게요?”
강혁 아저씨가 소름 돋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킬킬.”
“왜 그렇게 웃어요?”
“킬킬.”
음흉한 웃음을 짓는 아저씨. 내가 과장된 표정으로 팔을 쓰다듬자 오진규가 웃음을 터뜨린다. 청장님이 이런 사람이란 걸 모르는 오진규는 이 모든 모습이 새로운 모양이다.
아저씨가 병을 내민다. 내가 잔을 내밀자, 소주를 따라주는 아저씨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인마, 넌 못 벗어나.”
“아오, 그런 소리 좀 하지 마세요. 소름 끼치게.”
“킬킬, 내 임기 끝나면 누가 청장이 될 거 같으냐?”
응? 그걸 내가 어떻게 알…… 응? 나는 순간적으로 스쳐 가는 생각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저씨는 국가수사본부장을 역임한 뒤 청장이 되었다. 그렇다면 다음 청장은…….
“설마 장영훈 본부장님이?”
강혁 아저씨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그래, 어차피 넌 내 손바닥 안에 있는 거야. 영훈이 임기 끝나면 또 내 사람이 그 자리를 꿰찰 거다, 킥킥.”
“오, 하느님!”
“킬킬, 하느님도 어쩔 수 없어 이놈아. 넌 내 새끼다, 으하하!”
“아, 진짜 싫다! 2년만 참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크하하! 네놈의 영혼은 내 것이다, 으하하!”
초등학생들도 안 할 장난을 치는 우리. 아저씨와 내 모습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우린 그렇게 오랫동안 술잔을 기울이며 장난을 쳤다.
* * *
오진규는 다음 날부터 중대범죄 수사국으로 왔다. 아침에 출근한 나는 일찍 나와 있는 오진규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선배님.”
나는 오진규에 대한 호칭을 선배님으로 정했다. 내 팀원이지만 그래도 한참 선배인 사람이니 존중이 필요하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진규는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그렇다고 이름을 막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을 이해했는지 결국 호칭을 수용했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오진규가 얼른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좋은 아침입니다, 과장님.”
아이고, 저렇게까지 예의 안 차리셔도 되는데. 나는 마주 허리를 숙이며 내 자리로 갔다.
언뜻 보니 오진규 자리에 이미 컴퓨터가 있는 것이 보인다.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은 내가 물었다.
“일찍 출근하셨나 보네요?”
오진규가 자기 컴퓨터를 보며 멋쩍게 웃는다.
“아뇨, 사실은 관우가 새벽에 나와서 다 준비해 줬습니다. 전 출근해서 그냥 자리에 앉은 것 말고는 한 게 없어요, 하하.”
오, 역시 우리 관우. 싹싹하기로는 대한민국 일 등인 녀석이다. 그때 사무실 문을 열고 전화기와 비품 박스를 들고 들어오는 연주가 인사하는 것이 보인다.
“과장님 오셨어요?”
“어, 연주 안녕. 그건 뭐야?”
“오 과장…… 아니, 오 선배님 비품이요.”
연주도 일찍 와서 챙겨주고 있었구나. 하긴 오진규는 두 사람과 나 사이의 다리가 될 사람이니 잘 챙겨주어 나쁠 건 없겠지.
내 사람들이 서로 좋은 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는 것이 무척 뿌듯하다. 서로 반목하고 다투면 범인 잡을 시간에 관계 수습을 하고 있는 한심한 상황이 되었을 텐데. 알아서 잘해주니 기분이 좋다.
오진규 PC의 인터넷을 잡으러 갔던 관우까지 돌아오고 아주 평온한 오전 시간을 보낸 우리.
기존 사건의 보고서를 끝내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관우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기지개를 켠다.
“아, 좋다. 평온하고. 점심은 뭘 먹을까요? 사건도 없고 한가한데 오늘은 좀 멀리 있는 맛집 가 볼까요?”
바로 그때, 내 자리의 전화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린다. 연주가 인상을 잔뜩 구기며 외쳤다.
“어이구 저 화상! 입이 방정이지. 말 떨어지자마자 바로 전화 울리는 거 봐.”
내 자리의 전화가 울린다. 핸드폰이 아닌 자리의 전화가 울린다는 건 본부장님의 콜이란 뜻이다. 그것은 곧 우리 팀에 새 사건이 배정된다는 의미이다.
나는 찌그러지며 자기 입을 때리고 있는 관우를 보며 웃음 지었다. 수화기를 든 내 귀로 장영훈 본부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건 배정이다, 수사기획조정실로 애들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