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53화
13. Spree killer(연속살인자)(2)
우리 팀에 부족한 경험적 측면을 보완해 줄 인물. 오진규를 데려온 내 선택은 그가 수사과에 배정된 첫 사건부터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첫 사건은 조직폭력배 간의 다툼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범인은 강남을 나눠 먹고 있는 다섯 개의 조폭 계파 중 한 곳의 인물로 이름은 강주원이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은 강남 룸살롱의 화장실.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추적한 이 사건에서 가장 활약한 것은 다름 아닌 오진규였다.
그는 강주원이 본래 순박한 시골 출신의 인물이었으며, 조직폭력배임에도 순진한 성격이었고, 고향에 있는 어른들에게 설마다 선물을 보냈다는 사실과 평소 순한 성격으로 누구를 죽이기까지 할 사람이 아니었다는 주변 증언을 듣더니,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런 녀석들은 경찰에 추적당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의 말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옳았다. 관우는 CCTV 분석을 통해 룸살롱에서 살인을 저지른 강주원이 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 방향으로 도주했음을 알아냈고, 연주는 주변 인물 탐문을 통해 강주원이 룸살롱에서 난동을 피우는 상대 조직과 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음을 알아냈다.
당시 사건을 목격했던 웨이터 말에 따르면 사건에 쓰인 흉기도 평소 지니고 다니는 칼이 아니라, 과일 안주의 껍질을 까는 과도였다고 한다.
위험 때문에 보통 웨이터들이 가져와 과일을 깎아주고 다시 가지고 나가는 물건인데 웨이터가 과일을 가지고 왔을 때 다툼이 일어났고, 상대가 던진 재떨이에 맞은 강주원이 웨이터가 가져온 칼로 찔렀다고 했다.
여기까지 들은 오진규는 강주원의 신상 조사를 통해 그의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에 잠복했다. 아무리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고 있다지만 모든 폭력배가 살인자는 아니므로, 죄책감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를 들어 행한 일이다.
그리고 잠복 4일째 마침내 잔뜩 술에 취해 목에 걸 밧줄을 들고 부모님 산소로 올라오던 강주원을 검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역시 내 선택이 옳았다.
오진규의 연락을 받고 강주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그의 부모님 산소가 있는 밀양으로 내려가는 차 안.
CCTV 분석을 통해 강주원의 차량이 남밀양 톨게이트를 통과했다는 것을 알아낸 수준까지 수사를 했던 관우가 운전을 하며 감탄성을 내뱉는다.
“캬, 오 선배님 진짜 대단하다. 이건 정말 경험이 아니면 설명을 못 하지. CCTV 분석 결과도 없이 단순히 경부고속도로를 탔다는 정보만으로 부모님 산소로 올 거란 예측을 하다니. 와, 진짜.”
나와 함께 뒷좌석에 타고 있던 연주도 맞장구친다.
“나이 많다고 꼰대 짓도 안 하시고, 힘든 일 있으면 다 도와주시는 분이야. 솔직히 막내가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이 없진 않았는데. 오 선배님은 전혀 윗사람 같지 않다, 그렇지?”
나는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나는 이번 사건에서 기억을 읽지 못했다. 강주원이 저지른 살인이 우발적인 살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도 있었지만 연주의 탐문 결과 강주원이 평소에 조직폭력배답지 않게 상인들의 편의도 잘 봐주고, 설사 상부와 충돌이 있더라도 상인들을 필요 이상으로 핍박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알고 나자 도저히 상대에게 악의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불안함. 악의를 가지지 못하는 범죄자의 등장 시 수사를 풀어나갈 사람이 없다는 점. 그러한 불안이 이번 충원으로 시원하게 해결된 기분이다.
이미 검거가 완료되었기에 밀양 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는 강주원.
우리가 밀양 경찰서에 도착하자 로비 밖으로 나와 있던 오진규가 손을 드는 것이 보인다.
관우가 제일 먼저 뛰어간다.
“선배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연주도 허리를 숙이며 밝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진규가 빙긋 웃으며 내게 눈인사를 건넨 후 말했다.
“유치장에 있는데, 보시겠습니까?”
나는 오진규를 보며 빙긋 웃었다.
“본인인지만 확인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죠. 이송할 때 하더라도 배는 채우고 싶네요.”
오진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디 보자, 어디로 모셔야 되나? 음,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밀양은 돼지국밥이 유명합니다.”
연주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돼지국밥은 부산 아닌가요?”
관우가 침을 흘리며 끼어든다.
“바보야, 돼지국밥계의 양대 산맥이 부산과 밀양 아니냐. 부산은 맑게 끓이고 밀양은 진하게 끓인다고. 오 선배님. 여기서 먹으면 오소리감투도 나오죠?”
“당연하지.”
“으! 침 나온다. 빨리 확인하고 밥 먹으러 가죠!”
오소리감투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밀양 경찰서장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유치장에서 강주원 본인임을 확인한 뒤에 다시 차를 타고 근처 식당으로 이동하는 우리.
관우는 운전을 하며 창문을 연다.
“이야, 여긴 완전 시골이네. 밀양도 시내는 번화하던데 조금만 교외로 나오니 이런 곳이 나오네요.”
연주가 창문에 붙어서 말했다.
“와! 저거 봐. 건강원이다. 나 어릴 때는 저런 거 많았는데. 요즘엔 거의 못 본 것 같네.”
오진규가 팔짱을 끼고 웃는다.
“여긴 아직 뱀이 많아서 건강원에서 뱀탕이나 뱀술 내려서 팔기도 해.”
연주가 인상을 쓴다.
“웩! 개소주도 비려서 못 먹겠던데. 전 어릴 때 개소주가 진짜 개를 담가서 만드는 건 줄 알았어요.”
오진규가 웃으며 말했다.
“개고기와 한약재가 들어가긴 하지만 개로 담그진 않지.”
으, 듣다 보니 토 나온다. 어릴 때 동네 아저씨가 뱀으로 술을 담그는 걸 본 적이 있다. 아저씨는 큰 청주병에 살아 있는 뱀을 욱여넣은 후에 거기 소주를 붓고 뚜껑을 닫아버렸다. 뱀은 병 속에서 괴로워하며 뚜껑을 머리로 마구 박다가 결국 알코올에 기절해 죽는다.
너무 어릴 때라 그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르자. 병 속에 갇힌 귀여운 강아지가 떠올라 버렸다. 그렇게 담그는 것이 아니란 말을 분명히 들었지만 상상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속이 안 좋아져 꼭 멀미를 하는 것 같다. 다행히 오진규가 건강원의 우측 바로 옆집을 가리킨다.
“저기로 가면 된다.”
다행이다, 내릴 수 있겠구나. 조금만 더 차에 있었으면 관우 차에 토할 뻔했다. 주차장이라고 할 것도 없는 흙밭에 차를 주차하고 내린 우리. 나는 조금 전 상상 때문에 아직 속이 좋지 않다.
“먼저 들어가시죠. 전 화장실 좀.”
파리한 내 얼굴을 보고 멀미 증상이란 것을 알아챈 연주가 얼른 다녀오라며 손짓한다.
관우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아이고, 곧 맛있는 거 먹을 건데 속이 안 좋으셔서 어째. 일단 들어가서 과장님 몫까지 주문해 두죠. 어차피 이런 집은 메뉴도 하나일 텐데.”
세 사람이 식당으로 먼저 들어가 자리를 안내받기도 전에 주문을 마친다. 사람이 별로 없어 창가의 제일 좋은 자리에 앉은 세 사람. 연주가 관우와 함께 수저를 세팅한 후 오진규에게 물을 따라주며 물었다.
“강주원 체포 시에 격투는 없으셨어요?”
오진규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만취 상태였어. 수갑 채울 때 고개도 못 드는 상태라 위험 상황은 없었다.”
“와, 진짜 대단하시다. 경험에 의한 예측 수사라니.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으셨던 거예요?”
“음, 그랬지.”
“진짜? 몇 번이나요?”
“한 일곱 번?”
“와, 다 잡으셨어요?”
“아니, 둘은 현장에서 자살한 거 못 막았고, 다섯은 잡았어.”
관우가 물을 들이켜며 감탄한다.
“캬, 역시 형사는 경험! 지금까지 몇 명이나 잡으셨어요?”
오진규는 세보지 않았다는 듯 잠시 생각해 본 뒤 말했다.
“한 오백 명?”
관우와 연주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서로를 바라본 두 사람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한 오십 명 되나?”
“그렇게 안 될걸…….”
오진규는 말없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잡으면 되지, 뭘. 젊은 나이에 수사과장까지 되신 현 과장님 밑에 있는데 당연히 그렇게 되지 않겠어?”
관우와 연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진규는 도경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모르기에 물었다.
“과장님 수사 방식은 어때?”
연주와 관우가 다시 서로를 바라보다 다시 어색한 웃음을 건다.
“그게…… 직접 보시기 전엔 말해도 못 믿으실걸요?”
“하하…… 아마 보시면 놀라실 겁니다.”
오진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보니 도경의 능력은 의심할 바 없지만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을 거란 말이 대체 무슨 뜻일까?
그때 식당 아주머니가 밑반찬을 세팅하며 말했다.
“양파 찍어 먹을 간장이 똑 떨어져서. 옆에 건강원에 가서 좀 빌려 올 테니 혹시 손님 오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해줄래요? 바로 옆집이라 금방 다녀와요.”
맛집이긴 한데 워낙 외진 곳에 있어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인가 보다. 손님이 몇 없는 것을 보니. 연주가 얼른 다녀오시라 권하자 자리를 비우는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식당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던 일행이 다시 잡담을 나누기 시작한 지 약 일 분.
맛있는 식사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던 바로 그때, 방금 나간 아주머니의 날카로운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아악!!!!!!!!!”
오진규의 반응이 가장 빨랐다.
총알처럼 식당 밖으로 튀어나간 오진규는 식당에 들어올 때 미리 주변 지형을 살폈는지 헤매지도,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곧장 건강원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간다.
물을 마시다 비명성을 듣고 사레가 들린 관우를 챙겨 뛰어나온 연주가 오진규가 건강원의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을 보고 따라와 문을 열었다가 그대로 굳는다.
각종 한약재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
놀란 식당 아주머니가 자빠져 얼굴을 가리고 있다. 한쪽에 주인이 쉬는 곳으로 보이는 아랫목이 있고 근처에 사람 한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이 보인다. 수차례 칼로 찔렸는지 언뜻 다섯 군데가 넘는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오진규가 달려가 자상을 입은 자를 살핀 후 소리쳤다.
“아직 살아 있다! 빨리 구급차 불러!”
“네, 선배님!”
연주가 전화기를 찾다가 인상을 쓴다. 식당에 전화기를 두고 왔기 때문이다.
관우와 오진규도 식당에 상의를 벗어두고 온 것을 본 연주가 식당 방향으로 뛴다.
그때 화장실에 갔던 도경이 식당 밖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것을 본 연주가 손을 마구 휘두르며 소리를 지른다.
“과장님! 여기! 사람 죽어가요!”
도경은 자신을 돌아봤지만 움직이지 않고 다시 한 곳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일단 사람 살리는 것이 급했던 연주가 식당으로 들어가 119를 부른 후에 다시 뛰어나와 도경에게 달려간다.
“과장님! 건강원에서 칼부림이 났어요! 아직 살아 있기는 한데…….”
도경에게 달려가던 연주는 식당 주변에 난 갈대 수풀까지 뛰어오다 자기도 모르게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도경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 누군가 엎어져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도망을 치다 뒤에서 습격을 당한 형태로 누워 있는 사람. 뒤에서 보기에도 이건 시신이다. 자상이 난 것이 뒷목이었기 때문이다. 저곳을 깊이 찔린 사람은 절대 살아 있을 수 없다.
“과……장님?”
차가운 얼굴로 시신을 바라보고 있던 도경이 돌아보며 말했다.
“사건이다, KCSI 연락해. 우리가 발견했으니 우리가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