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54화
13. Spree killer(연속살인자)(3)
KCSI와 관할서가 출동해 난장판인 현장.
본래 이 사건의 관할은 밀양경찰서이다. 하지만 사건의 최초 발견자가 형사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국. 끗발로 관할서가 우릴 이길 수 없으니 얌전히 사건을 넘겨주는 관할서 형사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나는 발싸개를 하고 장갑을 착용 후 건강원으로 들어왔다.
현장을 면밀히 확인하고 있던 오진규가 핏자국 옆에 쪼그리고 있다가 일어나며 말했다.
“병원에서 연락 왔습니까?”
나는 핏자국을 보며 말했다.
“병원 후송해서 응급실로 들어갔는데 의식은 없답니다. 긴급수술 중인데 생사는 장담할 수 없고요.”
오진규가 쯧 소리를 내며 말했다.
“식당 주인아주머니 말로는 후송된 사람이 건강원의 주인이랍니다. 밖에서 과장님이 발견하신 시신은 요 앞 부동산 중개인이고.”
이미 대략적인 신상 조사를 마쳤구나. 역시 오진규다. 나는 현장을 둘러보다 화투 패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말했다.
“한 사람은 심각한 부상, 또 한 사람은 사망. 범인까지 총 셋 이상이 이 자리에 있었군요.”
오진규가 옆에 서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화투를 치다 다툼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찌르고 나머지 한 사람은 도주하는 걸 따라가 죽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발적인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
부상을 입고 발견된 자가 아직 죽기 전에 현장에서 도망간 범인. 그는 아마 부상자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상자를 먼저 찌르고, 그걸 보고 도주하는 또 한 사람을 따라가 살해 후 그 자리에서 바로 도망갔을 확률이 높다.
이 모든 것이 내가 화장실에 가고, 일행이 식당 안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오진규가 관할서 순경들에게 말했다.
“범인이 아직 멀리 도주하지 못했을 겁니다. 주변 차량 통제하고 검문하세요.”
“예!”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지시를 대신 해주는 오진규. 아주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나는 남겨진 화투를 보며 물었다.
“화투 칠 줄 아십니까?”
오진규가 손가락을 비비며 웃는다.
“도박꾼들 잡으려고 타짜 흉내 좀 내고 다녔죠.”
아마 도박 하우스 일망타진을 위해 도박꾼 흉내를 내며 잠복해 본 경험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남겨진 화투 패를 눈짓하며 물었다.
“무슨 게임입니까?”
오진규가 장갑 낀 손으로 화투를 몇 개 뒤집어 본 뒤 말했다.
“도리짓고 땡이네요.”
무슨 게임인지 모른다. 뭐 안다고 수사에 도움이 될 건 아니다. 내가 게임을 물어본 이유를 눈치챈 오진규가 얼른 말을 덧붙인다.
“룰상으로는 최대 8명도 할 수 있지만 그럼 패가 잘 안 떠서 보통 다섯 명 이하일 때만 하는 게임입니다.”
“둘이서도 합니까?”
“음, 둘이서는 잘 안 하죠.”
그럼 이 자리에 있던 셋 이상이 같이 게임을 했다는 거다. 게임을 하던 이들끼리 다툼이 벌어질 일이 무엇일까? 한 사람이 속임수를 썼다가 걸렸거나, 속임수를 쓰려 했을 수도 있다.
“이런 현장 경험 있으십니까?”
오진규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음, 이렇게 살인까지 가는 경우는 저도 처음입니다. 광주에서 도박판에서 속임수 쓰다 걸린 놈이 현장에서 도끼에 팔이 잘린 경우는 봤습니다만.”
으, 도박판 쪽도 살벌한 세계구나. 속임수 좀 썼다는 이유로 사람 팔을 자르다니.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관우를 찾았다. CCTV가 있는지 확인하라는 지시를 하려는 의도였다. 눈치 빠른 오진규가 한발 앞서 말했다.
“좀 전에 관우가 CCTV 설치 지역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연주가 식당 아주머니에게 건강원을 운영하는 주인과 평소 자주 화투를 치는 사람들에 대해 탐문 중이고요.”
역시 내 새끼들. 알아서 잘하고 있구나. 그때 아주머니를 탐문하러 갔다던 연주가 들어오며 말했다.
“과장님,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송된 피해자가 수술 중에 발작을 일으켰답니다.”
나는 살짝 코끝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래서?”
“일단 수술 중단하고 약물로 심장박동 돌리고 있는데 성공할지는 미지수랍니다.”
“후, 일단 알았다. 식당 주인분께 알아낸 건 없고?”
연주가 수첩을 열며 말했다.
“평소 여기가 동네 아저씨들이 놀며 시간 보내는 곳이랍니다. 여기서 놀면 주인이 정력에 좋은 한약도 내주고 한다는 소문이 나서 남자들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쓴다고 하네요. 화투도 치고 장기나 바둑도 두며 놀러 오는 사람이 대여섯쯤 된답니다.”
“그 사람들 전부 신상명세 확보해.”
“네, 관할서에 요청하겠습니다.”
연주가 나가자 오진규가 핏자국 앞에 앉으며 말했다.
“우발적 살인 같아 보이긴 하는데, 이상합니다. 보통 이런 현장에서는 도주하는 사람까지 쫓아가서 죽이진 않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 일반적으로 원한살인일 때 나오는 패턴인데 말입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살인자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그때 은색 통 중 하나에서 김이 끓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어?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삑! 하는 고음과 함께 희뿌연 김이 배출되는 것이 바로 손쓰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라 다룰 줄 모르는 나는 일단 통 주변을 살폈다. 가스나 전기로 돌리는 것일 테니 끄는 스위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얼른 다가와 뚜껑에 붙은 손잡이를 돌리고 열어버리는 오진규. 동시에 뜨거운 김이 공중으로 확 솟구치며 역한 냄새가 퍼져 나온다.
나는 소매로 코를 가리고 인상을 쓰며 통 안을 보았다.
“뭔데 냄새가…… 윽!”
통 속에 뱀이 잔뜩 있다. 시장에 가면 아주머니가 대야 가득하게 미꾸라지를 넣고 파는 것과 같은 광경. 미꾸라지 대신 푹 삶아진 뱀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보인다. 뱀에 무늬가 있어 더 역하게 보이는 모습.
나는 겨우 진정되었던 속이 다시 울렁이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오진규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실소를 짓는다.
“참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시신은 아무렇지 않게 보시면서 이런 건 징그러워하시니, 하하.”
음, 그건 다른 이야기이지요.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은 안 무섭지만 살해당한 시신이 귀신으로 일어날까 두려워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할까요?
오진규가 긴 국자로 뱀탕을 휘휘 젓고 말했다.
“뱀이 정력에 좋다는 건 근거 없는 소리라고 하던데. 요즘도 땅꾼이 있는 모양이군요. 뱀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으, 그렇게 하지 마세요. 국자가 닿을 때마다 뱀 머리가 탕 위로 올라오는 게 보이잖아! 껍질도 반쯤 벗겨진 놈들 머리 보기 역겨워요!
내 속도 모르는 오진규가 국자로 뱀 한 마리를 퍼 올리곤 자세히 본다.
“이야, 고 녀석 살이 야들야들하게 잘 익었네.”
으, 토 나오려고 한다. 형사들 사이에서는 현장 증거물 중 먹을 것이 있다고 해도 손대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 현장 증거를 먹으면 삼 년 재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침을 삼키고는 있지만 저걸 먹진 않을 거다. 설마…… 먹지 않을 거죠?
국자에 담긴 뱀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 뱀술 담그던 병 속에서 몸부림치던 뱀 생각이 나버렸다. 아무래도 나는 그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이다.
으, 진짜 싫다. 하느님은 왜 뱀 같은 걸 만드신 걸까? 음, 아닌가? 어릴 때 수녀님이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이브를 꼬셔 선악과를 먹게 만든 악마가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혹시 뱀은 하느님이 아니라 악마가 만든 놈들이 아닐까? 정말 싫다.
세상에서 다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망할 것들. 아이러니하게 뱀을 좋아해서 직접 키우는 사람도 있다는데 난 꿈도 못 꿀 일이다. 죽은 뱀도 이렇게 무서운데 살아 있는 녀석들을 보면 난 아마 몸이 굳어버릴 것이다.
“그만…… 넣어두시죠.”
오진규가 날 보며 히죽 웃는다. 내가 뱀을 무서워한다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오진규는 오히려 국자를 내 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형사가 이런 거 무서워해서 씁니까? 자, 한번 보세요. 자주 봐야 안 무섭습니다. 초임 때 KCSI 부검 교육 끝나고 내장탕 드셨죠? 이런 게 바로 그런 겁니다. 자주 봐서 내성 생기게 해야죠.”
“으!”
진짜 싫다. 세상에 뱀이란 뱀은 다 죽었으면 좋겠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오진규가 내미는 뱀을 노려보는 나.
바로 그때, 히죽히죽 웃는 오진규도, 핏물로 점철되어 있던 현장도 모두 흑백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도는 세상을 온몸으로 느끼는 나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젠장, 뱀에게 악의를 가져도 보이는 거냐?’
황당한 상황. 하지만 사건을 해결해야 할 형사 입장에선 어떤 방식으로 읽어내든 기억을 읽을 수 있는 기회는 소중하다.
‘그래, 보여봐라. 설마 끓는 물 속에 삶아지며 죽어가는 뱀 기억이 보이진 않겠지.’
* * *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 깨어지고 더해지고, 나누어지던 세상이 끝나는 순간 나는 주변을 보았다.
내 손에 화투 패가 들려 있고, 장판이 깔려 있는 평상에 나 외에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내 왼편에 앉은 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패가 무엇인지 보려 했지만 그는 슬며시 손목을 꺾는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그가 식당 밖 수풀에서 사망해 발견된 사람임을 눈치챘다.
왼편 사람의 패를 확인하는 것에 실패한 나는 우편을 보았다. 그런데 내 우측에 있던 인간의 눈길이 내 손에 들린 패에 와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움찔 놀라며 손목을 꺾었지만 이미 늦어버린 모양이다. 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패를 그렇게 들고 있으면 나 잡아 잡수쇼 하는 거지.’
나는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내 패 봤죠?’
남자는 껄껄 웃으며 패 한 장을 내려놓는다.
‘내가 보려고 봤나, 보이는 걸 어째.’
나는 신경질적으로 패를 던지며 말했다.
‘씨X.’
왼편에 있던 사람이 내가 던진 패를 보며 물었다.
‘죽는 거야?’
‘예. 하…….’
‘돈 안 돌려줘. 네 잘못이니까.’
‘알았다고요!’
‘개평은 주지, 낄낄.’
나는 짜증이 나 돌아앉았지만 승부는 궁금했다. 곁눈질로 두 사람의 판을 보니, 결국 왼쪽 편이 이기는 것이 보인다. 크게 웃으며 판에 놓인 동전들을 끌어모은 남자는 삼백 원을 던져주며 말했다.
‘자 개평.’
이 양반이 지금 장난질을 치나, 판에 천 원인데 고작 삼백 원을 줘? 나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까 제가 이겼을 때 오백 원 드렸잖아요. 오백 원 줘요.’
남자가 날 째려보더니 삼백 원을 빼앗아 간다.
‘싫으면 말아, 줘도 지랄이네. 개평이야 주는 놈 마음이지.’
‘아! 알았으니까 그냥 줘요.’
‘싫어, 짜증 나서 안 줘.’
‘아 좀!’
내가 그의 손에서 돈을 빼앗으려 하자 동전을 숨겨 버린 남자가 말했다.
‘아무도 안 놀아주는 새끼 불쌍해서 같이 놀아줬더니 더럽게 기어오르네.’
나는 멈칫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남자가 뭘 보냐는 듯 말했다.
‘뭐?’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들어놓고 몰라? 너 같은 새끼는 같이 놀아주는 것도 감지덕지해야지, 어디서 개평 가지고 불만이야?’
‘…….’
우측에 있던 사람이 패를 섞으며 실소를 짓는다.
‘그래, 이 씨 말이 맞아. 우리니까 자네와 놀아주지. 누가 자네 같은 사람과 놀아주나? 어서 기본이나 깔아. 패 돌리게.’
맞장구치는 우측 남자. 나는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말 취소하시죠.’
두 사람이 나를 보며 웃는다.
‘뭐? 이 자식이 돌았나, 푸하하. 취소해? 뭘 취소해? 어쭈? 노려보네. 한 대 치겠다?’
‘어이, 괜히 이 씨한테 개기다 맞지 말고 그쯤 해. 빨리 패나 돌리게.’
화가 끓어오른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이 떨릴 만큼 화가 난다. 그때 왼편 남자가 내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며 소리를 지른다.
빠악!
‘이런 씨X놈이 같이 놀아주니까 우리가 네 친구 같아? 눈 안 깔아? 불쌍한 새끼 적선하는 셈 치고 놀아줬더니 아주 눈깔이 돌았네.’
머리가 띵할 정도의 강한 충격. 나는 뒤통수를 가격당하자 마자 그대로 눈이 뒤집혔다.
‘이 개 같은 새끼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