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55화
13. Spree killer(연속살인자)(4)
단순히 신경을 긁은 것에 그친 게 아니라, 저토록 무시를 당했다면 나라도 화가 났을 것 같다.
나는 기세 좋게 달려들었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바닥을 나뒹굴어야 했다. 달려들며 머리채를 잡으려고 했지만 간단히 손을 쳐낸 움직임으로 내 팔을 날려 버린 남자는 벌떡 일어나 발로 가슴을 차버렸다.
아프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
도대체 평소에 얼마나 운동을 안 하고 살았길래 고작 구둣발에 한 번 차였다고 갈비뼈가 몽땅 나가 버리는 고통이 느껴지는 걸까?
‘컥!!!’
남자가 쓰러진 내 몸 위로 올라와 주먹을 날린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어디서!’
퍽! 퍽!
두 대를 더 때린 남자는 내 멱살을 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운다. 고작 그거 맞았다고 몸에 힘이 쭉 빠져 버린 나는 나보다 훨씬 큰 남자를 올려보며 마지막 자존심을 짜냈다.
‘개새끼가…….’
‘뭐? 이 새끼가 돌았나?’
남자는 멱살을 잡은 채로 또다시 날 패기 시작한다. 아프다, 진저리 나게 아프다.
중학교 시절 처음 운동을 시작하고 형사 아저씨들에게 메치기를 당했을 때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는데.
가해자의 기억을 읽으며 그의 고통을 여과 없이 느끼고 있는 나는 그가 얼마나 아팠는지 느끼고 있다.
‘커억!! 쿨럭! 쿨럭!’
피 섞인 기침을 하기 시작하자, 화투를 들고 앉아 있던 다른 남자가 말린다.
‘어이, 그러다 죽이겠네. 그쯤 해 둬, 이 씨.’
날 패고 있던 남자가 거칠게 멱살을 놓으며 손을 턴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재수 없게 이따위 새끼까지 사람 우습게 아네, 아 짜증 나. 나 담배 한 대 피우고 올 테니 패 돌리지 마!’
이씨가 문을 열고 나간다. 유리문 앞에서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찾은 이 씨가 불을 붙이는 것이 보인다. 말리던 남자가 쓰러진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그러게, 엉기지 말라니까. 자네는 몸도 약한데 그럼 쓰나?’
말리며 히죽거리는 이 새끼가 더 밉다. 이 새끼도 은근히 날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저 안 약합니다.’
남자가 실소를 지으며 내 가슴을 검지로 꾹 누른다.
‘으으…….’
남자는 웃으며 손을 뗀다.
‘이거 봐. 남자가 고작 이렇게 했다고 아파하니 무시를 당하지. 쯧쯧.’
남자는 돌아서서 뱀탕 냄비에 불을 올리며 말했다.
‘가서 장사나 해. 괜히 여기 있다가 이 씨 열 오르게 하지 말고. 아, 자네 어차피 장사 못 하나? 남의 터에서 장사하다 또 맞았다고 하던데. 하하. 그렇게 해서 먹고살겠어?’
철저한 무시. 나는 속에 불길이 치솟았다. 눈이 돌아 뵈는 게 없어진 나는 바닥을 더듬어 아무거나 잡히는 걸 잡았다.
‘나 무시하지 말라고, 이 병신들아!’
나는 최대한 빠르게 내 손에 들린 물건으로 남자의 등을 찔렀다. 그러자 몸이 활처럼 휜 남자가 신음을 하며 벽으로 밀려 나간다.
응? 이럴 리가 없는데. 내 힘으로 등을 때렸다고 이 사람이 밀려나? 나보다 덩치도 훨씬 큰데. 그제야 내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바라본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건강원 주인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식칼. 아무거나 움켜쥐었던 내 손에 칼이 들려 있다.
나는 놀라 벽을 붙잡고 비틀거리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잔뜩 인상을 쓰고 허리를 새우처럼 굽힌 남자는 손을 뒤로 젖혀 상처를 만져본 뒤 피 묻은 손을 보고는 날 노려본다.
‘이 개 뼉다구 같은 놈이 은혜도 모르고.’
뭐? 개 뼉다구? 은혜를 몰라? 네놈이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남자는 비틀거리며 내게 걸어온다.
‘넌 이제 인생 엿 된 줄 알아. 경찰 부를 테니 비켜…….’
경찰? 인생이 엿 된다고? 나는 다시 내 손에 들린 칼을 바라보았다. 그래, 난 방금 사람을 찔렀다. 씨X, 평생 가게도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장사하면서 근근이 먹고 살았는데. 이제 그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지게 생겼다.
나는 충혈된 눈으로 핸드폰을 찾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칼을 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씨X…….’
어차피 엿 된 인생이라면 이렇게 끝낼 순 없다. 적어도 날 무시한 새끼 하나는 죽이고 빵에 들어가야 억울한 마음이라도 없을 거다.
‘이…… 이이이이이!!!!!!’
나는 등에 난 자상 때문에 허리를 잔뜩 숙인 남자의 뒤로 달려들어 다시 등을 찔렀다.
푹!
‘컥!’
푹, 푹!
‘으! 으으!!!’
칼이 들어갈 때마다 남자의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살인에 미친 살인마가 아니니까.
영화를 보니 살인을 할 때의 쾌감은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 않다. 그저 내 속에 일어나는 분노가 조금씩 밖으로 밀려 나가는 기분만 든다.
나는 뒤에서 남자의 목을 잡았다. 피가 잔뜩 묻은 손이라 미끄러웠지만 힘이 빠진 남자의 목을 틀어쥐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칼로 사람을 찌르는 것보다 이쪽이 더 만족도가 높다. 그동안 날 무시했던 사람의 목을 틀어쥐고 그의 위에 군림한 이 기분. 그래, 이것이 내가 바라왔던 것이다.
이런 땐 어떤 말을 해야 될까? 나는 뒤에서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이런 날이 올진 몰랐지?’
‘…….’
‘지옥에서 만나자, 씨X 새끼야.’
나는 칼을 앞으로 내밀고 수차례 남자의 가슴을 찔렀다. 다섯 번, 여섯 번쯤 찌르고 나서 보니 남자가 옆으로 스르르 쓰러진다.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느껴진다. 평생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았던 내 마음에 강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정말 멋진 일이 일어났다.
‘키…… 키키키키.’
희열이 차오른다. 그때 밖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급히 고개를 돌리자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던 이 씨가 유리창 밖에서 안의 상황을 보고 굳어 있는 것이 보인다.
저 새끼도 이젠 날 무서워하겠지? 이빨에 피가 잔뜩 고인 채로 히죽 웃어주자, 이씨가 비틀거리다 뒤로 마구 도망가는 것이 보인다.
히히, 가지 마. 너까지 죽여야 돼. 아니, 기왕 이렇게 된 거 다 죽이자. 나 한 번이라도 무시했던 새끼들 다 죽이고 가는 거야. 어차피 엿 된 인생 더 떨어질 곳도 없어.
나는 유리문을 발로 차며 주차장을 건너 수풀 방향으로 도망 중인 이 씨를 쫓아갔다.
* * *
“과장님? 과장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범인의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오진규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신이 뱀으로 장난을 치는 바람에 내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들고 있던 국자를 집어넣고 날 흔들고 있다.
“아…… 괜찮습니다.”
오진규가 날 살피다 미안한 얼굴을 한다.
“죄송합니다, 장난이 지나쳤습니다.”
“아닙니다, 선배님.”
어지러움 때문에 비틀거리자 얼른 날 부축하는 오진규. 내가 이렇게 될 거란 생각은 못 했는지 더 미안한 얼굴로 내 눈치를 본다. 괜찮아요, 선배님. 당신 때문에 이런 게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나는 기둥을 붙잡고 잠시 쉬다 번뜩 정신이 들었다.
‘가만, 이 자식이 마지막에 생각했던 말…….’
나는 본인의 기억을 읽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이 씨를 따라가 죽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생각은…….
‘히히, 가지 마. 너까지 죽여야 돼. 아니, 기왕 이렇게 된 거 다 죽이자. 나 한 번이라도 무시했던 새끼 다 죽이고 가는 거야. 어차피 엿 된 인생 더 떨어질 곳도 없어.’
나는 코끝을 찡그렸다.
이 자식. 여기서 끝낼 생각이 아니다. 나는 급히 오진규에게 말했다.
“선배님! 식당 아주머니 빨리 좀.”
오진규는 내 상태가 안 좋다고 생각했는지 내 옆을 지키며 연주에게 전화를 건다. 어차피 연주가 주변에 있을 테니 아주머니를 모시고 와달라고 한 오진규는 날 부축해 화투들이 놓인 평상에 앉히고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아아, 조금 더 쉬면 괜찮아집니다. 가끔 이러니 걱정 마세요.”
“가끔 이러세요? 병원 가서 정밀검사 한번 해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 괜찮아요 정말.”
오진규는 미안함과 걱정이 엉킨 얼굴로 날 살핀다. 그때 지시를 받고 식당 아주머니를 데려온 연주가 문을 열고 눈짓한다.
밖을 보니 아까 너무 충격을 받은 아주머니는 차마 현장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서 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난 뒤 목을 한번 돌려준 후 문을 열고 나갔다.
아주머니가 겁먹은 얼굴로 올려 보는 것이 보인다.
“아주머니.”
“……네?”
“부동산 하는 아저씨 있죠?”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하자 손으로 입을 가리는 아주머니. 하지만 고개는 끄덕이신다.
“그 사람 키가 얼마나 됐어요?”
조금 전에 KCSI로 보냈기에 시신의 신장 분석 전이라 묻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입을 막고 겨우 말했다.
“펴, 평소에 자기가 180이 넘는다고 항상 자랑했어요.”
180㎝. 50대 아저씨 키로는 꽤 큰 편이긴 하다. 그가 멱살을 잡았을 때 시선의 위치가 꽤 아래에 있었던 범인. 나는 대략적인 키를 가늠한 뒤 겁을 집어먹고 있는 아주머니를 데리고 식당 쪽으로 걸으며 물었다.
“혹시 여기 자주 출입하던 남자들 중에 키가 170㎝ 안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아주머니는 현장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점에 조금 안심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응, 두 명 정도 있어요. 정확한 키는 모르겠는데.”
“두 명이요? 누구입니까?”
아주머니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저쪽에서 중국집 하는 김 사장이 아마 170 안 될 거예요. 그리고 정 씨. 시내에서 붕어빵 장사 하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중국집 사장과 붕어빵 장사. 나는 다시 물었다.
“혹시 둘 중 뚱뚱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주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떻게 알았어요? 김 씨가 뚱뚱해요.”
중국집 사장은 뚱뚱하다. 뚱뚱한 사람은 몸에 지방이 많고 그것은 외부 충격을 감해준다. 내가 느낀 고통은 분명 마른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이었다.
“정 씨라는 사람 몸은 어떻습니까?”
“정 씨? 정 씨는 호리호리하지. 몸무게가 60㎏도 안 될걸? 아주 말랐어요.”
이놈이다. 이놈이 범인이다.
“혹시 이름 아십니까?”
아주머니는 검지로 이마를 긁는다. 아마 이름은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다 뭔가 생각났는지 말했다.
“아! 잠깐만 기다려요.”
아주머니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 사진 한 장을 꺼내 온다.
“여기.”
나는 아주머니가 준 사진을 받아 자세히 보았다. 약 스무 명 정도 되는 남녀가 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게 뭡니까?”
“그거 재작년에 여기 상인연합회가 단체로 등산 갔던 사진인데. 정 씨도 있어요, 여기 왼쪽에서 다섯 번째.”
나는 다시 사진을 바라보았다.
매우 마르고 키가 작은 남자. 정말 남자들 세계에서 무시당할 수 있는 왜소한 몸을 가졌다. 아주머니가 내 손에 들린 사진을 뒤집으며 말했다.
“그때 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거든. 인화해서 각자 한 장씩 주려고 뒤에 이름 적어놨어요.”
나는 사진 뒤에 빼곡히 적힌 이름들을 보았다. 이름 중에 정 씨는 두 명이다.
“이 중에 누구입니까?”
아주머니가 아래쪽에 적힌 이름을 가리켰다.
“이 사람일 거예요.”
나는 이름을 확인한 뒤 연주를 보았다.
“이름 정병선. 바로 수배해!”
연주가 얼른 답을 하며 뛴다.
“네 과장님!”
상황을 지켜보던 오진규가 어이없는 눈빛을 한다. 현장 조사 중에 갑자기 멍해서 정신을 잃은 것 같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더니 어지럽다며 비틀거리던 사람.
그런데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주머니를 데리고 와 몇 가지를 묻고 바로 정병선이란 사람이 범인이라며 수배하라고 한다.
게다가 지시를 들은 부하 직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배를 하러 뛰어간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오진규의 귀로 도경의 중얼거림이 들린다.
“빨리 잡아야 돼. 이 자식이 또 누굴 죽이러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