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56화
13. Spree killer(연속살인자)(5)
나는 식당 아주머니를 붙잡고 다시 물었다.
“정병선이 붕어빵 장사를 한다고 하셨죠?”
“네, 그렇게 들었어요.”
“혹시 어디서 장사하는지 아십니까?”
“아뇨, 잘 모르는데. 아마 석정로 근처 가면 상인들이 알걸요?”
“석정로요?”
“응, 번화가인데 거기서 리어카 몰고 떠돌아다니며 장사한 지 5년쯤 됐다고 들었어요.”
지켜보던 오진규가 말했다.
“붕어빵 장사들은 자기가 장사할 구역 몇 군데를 정해놓고 거기만 다닙니다. 사람들이 거기 붕어빵 장사가 있다는 걸 알아야 사러 오니까요. 몇 군데 쑤셔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경험 많은 오진규. 역시 이런 때 도움이 된다.
“바로 가시죠.”
연주에게 CCTV를 챙기러 간 관우를 데리고 시내로 오라는 지시를 한 뒤 오진규의 차를 얻어 타고 시내로 향했다. 나는 운전 중인 오진규에게 물었다.
“석정로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여기서 한 오 분이면 갑니다.”
차로 오 분. 우리가 식당에 들어올 때 건강원 앞에는 하얀 트럭 한 대만 있었다.
즉 정병선은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차로 오 분 거리라면 도보로 이동한 정병선이 지금쯤 이미 시내에 있을지도 모른다.
“빨리 가죠.”
오진규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더 묻지 않고 가속한다.
시내에 도착해 영남루 앞에 주차를 한 뒤 무작정 아무 상가나 문을 열고 붕어빵 리어카에 대해 묻기 시작한 우리.
간판 수를 보면 번화가가 분명했지만 요즘 장사가 되지 않는지 문을 닫은 상가도 많고, 그나마 버티고 있는 가게도 손님 하나 없다.
여기저기 붕어빵 리어카에 대해 묻고 다니던 도중 오진규가 소리를 지른다.
“과장님! 여깁니다!”
얼른 그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옷가게로 뛰어들어 가자 아주머니가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나는 신분증을 보여주며 물었다.
“붕어빵 리어카 보셨습니까?”
“어……? 그게 오늘은 못 봤는데.”
“오늘 말고. 원래 어디에 주로 있습니까?”
“어…… 요 앞에 노래방 하나 있죠? 지하에 있는 거.”
오진규가 달려나가 노래방 위치를 확인한 뒤 말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 옆에 리어카 놓고 판 겁니까?”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리고 저쪽 룸살롱 앞에 있을 때도 있어요. 월요일만 여기서 장사하고, 매일 다른 곳으로 가던데.”
매일 다른 곳으로 간다. 주 6일 장사한다고 하면 여섯 곳이 있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룸살롱은 어디 있습니까?”
아주머니가 옷가게 문을 열고 왼쪽을 본다.
“저기, 한 이백 미터 떨어진 곳에 무지개 간판 보이요?”
꽤 멀다. 불이 꺼져 있는 간판이 보이긴 한다.
“저 앞에서 장사했습니까?”
“네, 맞아요.”
일단 노래방 주인을 먼저 만나고, 룸살롱으로 가는 편이 좋겠다. 그때 오진규가 물었다.
“그런데 과장님. 붕어빵 장사 하던 곳은 왜 뒤지는 겁니까? 용의자 특정하셨으면 집을 덮치거나 잠복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요?”
“누군가 정병선을 무시했다면 그건 아마 그가 가게 없이 떠도는 붕어빵 장사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럽니다.”
“……예? 그게 무슨 말…….”
나는 얼른 노래방으로 가다 멈칫했다. 노래방 앞에서는 월요일만 장사했다? 나는 다시 아주머니를 보고 물었다.
“룸살롱 앞에서는 무슨 요일에 장사했는지 아십니까?”
아주머니가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말했다.
“금요일에 했던 것 같은데.”
눈썹을 꿈틀거린 나.
금요일 룸살롱 앞. 일주일 중 손님이 가장 많은 날이 금요일이다. 그런데 그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했다? 노래방에 비해 가격대가 비싼 룸살롱에 오는 손님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유흥업소 출입을 할 땐 주변을 살피는 유부남이 많은데 떡하니 입구 앞에 목격자가 있는 건 더 싫을 거다.
여긴 작은 동네이니 한 다리만 건너면 언제 내 가족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갈지 알 수 없으니까.
나는 얼른 오진규에게 말했다.
“먼저 룸살롱부터 갑니다.”
옷가게에서 나오는 것과 동시에 우리 앞을 지나던 차가 급정거를 하며 창문이 열린다. 관우를 태우고 온 연주가 고개를 내민다.
“과장님! 선배님! 타세요!”
나는 차 문을 열고 몸을 던지며 외쳤다.
“직진해! 이백 미터 앞에 저 무지개 간판 앞에 내린다.”
차가 금방 이백 미터를 주파해 룸살롱 앞에 서자, 나는 문을 열며 외쳤다.
“진입한다, 다들 총기 소지 확인!”
관우와 연주가 바로 총을 꺼내 든다.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오진규였지만 그도 일단 지시에 따라 총을 꺼내고 지하에 있는 룸살롱으로 뛴다.
아직 영업 시간 전이라 불이 꺼진 룸살롱. 하지만 문이 열려 있다.
나는 유리문을 몸으로 열고 안으로 뛰어들어 가며 외쳤다.
“경찰이다!”
일부러 외친 것이다.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범인의 행동을 멈추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룸살롱은 어둡고, 조용하다.
나는 총을 겨눈 채 뒤따르는 연주와 관우에게 지시를 내렸다.
“모든 방 다 확인해.”
“네, 과장님!”
“네!”
연주와 관우가 총을 들고 뛰어나가며 문을 하나씩 연다.
오진규도 말없이 문을 열고 다닌다. 도대체 여기 왜 왔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수사과에 온 이상 한 명 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오진규. 별생각 없이 문 하나를 열었던 그는 눈을 크게 뜨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기!”
나는 복도를 노려보고 있다 오진규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갔다. 열린 문을 통해 룸으로 들어가자, 테이블 아래에 하얀색 골프 복장을 한 남자가 목에서 피를 꾸역꾸역 내뿜으며 덜덜 떨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남자의 목을 누르며 압박한 오진규가 외쳤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빨리 119 불러, 관우야!”
“예, 선배님!”
오진규가 빠르게 남자를 살피며 외친다.
“자상 여섯 개! 치명상은 목으로 보이며, 복부에 세 곳, 손에 한 곳! 손은 방어흔으로 보입니다!”
젠장, 늦었다. 조금 더 판단이 빨랐다면 이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하진 않았을 텐데. 우리는 119가 도착할 때까지 남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행스럽게도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숨이 넘어가지 않은 남자. 응급처치를 받고 이송되는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는 오진규가 자기 손을 바라본다.
목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오던 피를 막느라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손. 남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안 여러 번 느꼈다. 이 남자는 조금만 늦었으면 반드시 죽었다.
즉사한 것이 아닌 것을 보니 목의 상처는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상처다. 하지만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진규가 눈을 돌려 초조한 얼굴로 뭔가를 기억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도경을 보았다.
문득 연주와 관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과장님 수사 방식은 어때?’
‘그게…… 직접 보시기 전엔 말해도 못 믿으실걸요?’
‘하하…… 아마 보시면 놀라실 겁니다.’
이것이구나. 그때 두 사람이 자신에게 했던 말의 의미가. 오진규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 남자가 살아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도경의 덕분이다. 범인을 잡는 형사를 넘어 사람을 살리는 경찰.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경찰이란 직업의 원론적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 * *
구급대원들이 남자를 데리고 병원으로 간 뒤의 현장. 이번에는 KCSI 요원들이 연락을 받고 왔다.
나는 기억을 더듬었지만 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일단 그가 붕어빵 장사를 했다던 여섯 곳에 모두 인력을 파견해 주인들이 무사한지 확인했다.
순경들을 지휘해 확인 작업을 마친 관우가 다가와 말했다.
“다른 곳은 이상 없었습니다.”
“CCTV는?”
“땄습니다, 잠깐 분석했는데 좀 보시죠.”
관우가 노트북을 열고 내 옆에 바싹 붙어 앉는다. CCTV는 룸살롱 앞 도로 전봇대에 설치된 공용 CCTV다. 검은색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정병선이 신문지에 둘둘 만 칼을 들고 룸살롱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오진규가 옆에 앉아 노트북을 자세히 보다 말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행동이 없습니다. 누가 자신을 보든 말든 상대를 죽이러 온 놈들이 보통 이러죠.”
옳은 말이다. 정병선은 처음부터 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여기 온 것이다. 자신을 무시했던 상대가 바로 룸살롱 주인이었던 것이다.
주변 상인을 탐문하고 돌아온 연주가 보고를 한다.
“옆의 편의점 사장님 말로는 룸살롱 사장이 여기서 장사하는 건 허락해 줬는데 매번 하인 대하듯이 했답니다. 가끔 때리기도 했다는데.”
관우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때려? 사람을 왜 때려? 저 사람 조직폭력배야?”
오진규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룸살롱 장사하면서 조직과 완전히 연결점이 없을 순 없지. 본인이 조직폭력배일 수도 있고.”
관우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 살았어?”
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긴급수술 중.”
“건강원 주인아저씨는?”
“수술은 끝났는데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
“하…… 사건 다 끝나고 돼지국밥 한 그릇 빨고 서울 가서 좀 쉬려고 했더니 이게 무슨 난리야.”
오진규가 물었다.
“관우야, CCTV상에서 정병선이 룸살롱에 들어온 시간이 어떻게 돼?”
관우가 다시 화면을 본 뒤 말했다.
“지금부터 44분 전입니다. 우리가 여길 덮친 건 34분 전. 정병선은 우리가 들어오기 직전에 주인을 찌르고 도주한 것 같습니다.”
44분. 이번엔 어디로 갔을까? 또 누가 그의 원한을 샀을까? 빨리 잡지 않으면 계속 사람이 죽어갈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말했다.
“밀양경찰서 지원 요청하고 수배 전단 뿌려. 한 건의 살인과 두 건의 살인미수 혐의다.”
“네, 과장님.”
“요청할 때 밀양시에서 벗어나는 모든 도로에 검문소 설치하라고 지시하고.”
“네!”
어쩌면 늦을 수도 있다. 검문소 설치 요청을 하고, 허가가 난 뒤 인력들이 파견되어 실제 검문이 시작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두 시간 이상.
만약 정병선이 두 시간 전에 밀양을 벗어난다면 우리는 연속살인마를 잡기 위해 전국을 대상으로 수사망을 넓혀야 한다. 그러면 더 잡기 힘들어진다.
실시간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는 자다. 반드시 빨리 잡아야 한다.
기억을 읽고 얻어낸 정보로 죽어야 할 사람을 살렸다. 하지만 기억에 도움을 받는 건 여기까지. 더는 정보가 없다. 나는 즉시 오진규에게 말했다.
“오 선배님.”
“예, 과장님.”
“연주에게 정병선 신상명세 받아서 어디로 움직일지 예측 부탁드립니다.”
오진규는 맡겨두라는 듯 자기 가슴을 친다.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나는 연주를 보며 말했다.
“연주는 오 선배님께 정병선 신상정보 전부 넘기고, 밀양경찰서에 연락해서 만약 두 시간 내에 검문소에서 정병선 검거 실패하면 수배 전단을 전국으로 확대하라고 지시해.”
“네, 과장님!”
나는 마지막으로 관우를 보았다.
“정병선에게 자기 소유 차가 있어?”
관우가 신상명세를 확인 후 고개를 젓는 것이 보인다.
“만약 밀양 밖으로 이동했다면 대중교통을 탔을 가능성이 높다. 시외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있으니 관우는 시외버스터미널 CCTV 분석해서 정병선 찾아내.”
“네, 과장님!”
나는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다들 잘 들어요.”
오진규가 섞여 있으니 존대를 해서 지시하는 나.
“범인 정병선은 지금 실시간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빨리 움직여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다들 피곤하겠지만 조금만 더 힘냅시다.”
오진규, 연주, 관우가 동시에 외친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일단 밀양경찰서에 협조를 얻어 여기서 임시 수사국을 운영합니다. 모두 움직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