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57화
13. Spree killer(연속살인자)(6)
밀양경찰서에 세워진 임시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
번거롭게 밀양경찰서에 일일이 협조 요청할 것도 없었다. 장영훈 본부장님께 전화 보고를 드리자, 일사천리로 임시 본부가 세워졌고, 작은 도시에서 발생한 대형 사건에 놀란 경찰서장이 최대한 협조하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
우리는 밀양경찰서 교통과의 지원을 얻어 밀양 시내와 외곽으로 향하는 모든 도로 CCTV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동시에 검문소를 운영해 모든 차량을 검문 중이다.
만약 서울이었다면 교통체증으로 인해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겠지만 평소 차량 통행량이 적은 지방이라 가능했다.
하지만 검문을 시작하고 만 하루가 지나서도 우리는 정병선을 검거하지 못했다.
관우를 도로교통과에 붙박이로 앉혀놓고 돌아온 임시 본부. 가운데 있는 회의용 책상에 앉은 오진규는 산더미 같은 자료와 씨름 중이고, 연주는 각종 협조 공문들을 처리하고 있다.
“연주야.”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던 연주가 고개를 든다.
“네, 과장님.”
“본부장님께 말씀드려서 24시간 전부터 경찰청데이터 베이스로 전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보고를 열람할 수 있게 했다.”
“실시간으로 확인하겠습니다.”
경찰 수사는 폐쇄적이다. 검거 및 송치 완료된 사건이 아니면 타 부서 사람이 수사 기록을 열람할 수 없게 해두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장영훈 본부장님은 사건의 개요를 듣고 나서 정병선이 밀양에서 빠져나갔을 경우 다른 지역에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 전국의 모든 경찰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보고를 열람할 권한을 부여했다.
역시 젊은 시절부터 강혁 아저씨와 함께했던 사람다운 결정이다. 이러니 아저씨가 다음 대의 청장으로 낙점하고 있는 것이겠지.
나는 연주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며 말했다.
“한 시간 간격으로 보고해 줘.”
“네, 과장님.”
나는 골머리를 싸고 있는 오진규에게 다가가 그의 옆자리에 앉은 뒤 산더미 같은 서류 중 하나를 잡았다. 서류를 넘겨보니 정병선의 어린 시절부터 열람 가능한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뭐 좀 나왔습니까?”
오진규는 잠시 기다리라는 듯 펜을 든 손을 들어 보이며 서류를 뚫어지게 본다. 잠시 그 자세로 있던 오진규가 서류를 내려놓으며 날 바라본다.
“정병선은 특수절도 등의 전과 7범입니다.”
“어디 봅시다.”
나는 정병선의 전과 기록을 확인했다.
“소년 시절에 특수폭행으로 소년원에 간 이력을 제외하면 전부 절도군요?”
오진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 시절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체격 조건이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다르죠. 여기 보세요. 키 163㎝에 55㎏입니다. 이 정도면 여성 체격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마 신체 조건 때문에 무시당하는 일이 잦았을 겁니다.”
오진규가 서류를 넘겨 보여주며 말했다.
“출생지는 충남 연기군. 5세 때 생모가 사망하고, 아버지가 재혼을 합니다.”
음? 나쁜 계모 밑에서 자라 삐뚤어졌다는 스토리일까? 오진규가 볼펜 끝을 물며 말했다.
“혹시나 가정폭력 관련된 사건이 있나 싶어서 세종경찰서의 후배에게 알아봤습니다.”
오진규가 자기 핸드폰의 문자를 보여주며 말했다.
“학대받은 기록은 없습니다만, 계모도 곧 사망합니다. 아버지는 다시 한번 재혼을 했는데 이번엔 아버지가 병을 얻어 사망했죠. 정병선은 세 번째 어머니와 약 일 년만 살았던 때라 계속 함께 살 수 없어 보육원으로 갔답니다.”
보육원? 그래, 법적 어머니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정병선의 양부모는 모두 사망한 상태. 아직 어린 정병선은 보호자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혼을 해 일 년도 안 산 새어머니 입장에서도 팔자에 없던 아들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느 보육원입니까?”
“대전에 있는 우정 보육원입니다.”
나는 정병선의 신상 기록을 보며 말했다.
“누나가 있군요?”
“네, 당시에 함께 보육원으로 이동했으며, 정병선이 8세, 누나는 여섯 살 터울이라 14세였습니다.”
“누나 쪽 연락됩니까?”
“네, 이미 해봤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오진규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툭 던진다.
“정병선이 보육원 시절,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합니다. 지켜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뒤에서 괴롭히는 것까지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19세가 된 후 보육원을 나온 누나가 공장에서 일을 하며 정병선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답니다. 누나를 기다리며 참았지만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정병선은 16세에 학교를 중퇴, 보육원에서 탈출해 서울로 가버렸다고 합니다. 그 후로는 연락이 닿지 않고요.”
누나와 마지막 연락을 한 것이 16세. 현재 정병선의 나이는 52세다. 무려 36년이나 연락 않고 산 사람에게 뭔가 얻어낼 건 없어 보인다.
“혹시 누나 쪽에서 거짓말하는 건 아닙니까?”
오진규가 고개를 저었다.
“혹시 몰라서 누나 정여선 씨의 계좌 기록도 다 뒤졌습니다. 혼자 사는 동생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본인 명의 세 개의 계좌 기록을 모두 추적했으나 정병선과 연관된 부분은 없었습니다.”
“누나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31세 때 다니던 공장의 과장과 결혼을 했고 현재 58세.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습니다. 아들은 24세인데 군 제대 후 대학을 복학한 상태이고, 딸은 이번에 지방대에 입학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추적 수사 시 맨 먼저 확인해야 할 가족관계에 대한 접점. 정병선은 양부모가 모두 사망한 상태이고 유일한 혈육인 누나와는 연락을 끊고 살았다고 한다.
“서울에 온 뒤에 뭘 하고 살았는지 확인됩니까?”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노점을 하거나, 영등포 역사에서 구두를 닦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결혼 안 했죠?”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인데 결혼 못 했죠.”
“서울에서 몇 년을 살았습니까?”
“근 30년 가까이 됩니다.”
“어디 살았는지 파악됩니까?”
오진규가 고개를 젓는다.
“서울에 와서 한 번도 주민등록상에 거주지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계좌 기록을 확인해 봤습니다만, 월세로 나가는 돈이 전혀 없었습니다.”
“노숙을 했다는 말입니까?”
오진규가 얼른 다른 서류를 가져와 말했다.
“여기 보시죠. 1998년 노숙자 일제 단속을 하던 시기에 체포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가장 심했던 시기는 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 외국인들이 한국에 왔을 때 노숙자들이 보이는 것이 부끄러웠던 대통령이 노숙자 일제 단속을 벌였다.
그 후에도 꾸준히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 노숙자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이 출동하곤 한다.
하지만 출동해서 어쩌겠는가? 집도 없는 사람들을 한겨울에 외부로 밀어낼 수는 없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에 밖에서 자라는 건 죽으라는 것이니까. 요즘엔 경찰들도 대충 단속하는 척만 한다.
“체포요?”
“예, 겨울이었는데 아마 일부러 체포됐을 겁니다.”
“일부러?”
내가 의아한 얼굴이 되자 오진규가 웃으며 말했다.
“예전엔 그랬습니다. 기록에 남든 말든 상관 안 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춥고 배가 고프면 일부러 경찰에 체포됩니다. 따뜻한 유치장에서 며칠 보내고, 국밥 주는 것도 얻어먹으려고 일부러 체포되는 거죠.”
“하.”
1998년도의 이야기이지만, 요즘도 별다를 건 없을 것이다. 당장 종로 근처 지하철역에만 가도 썩은 냄새를 풍기는 노숙자들을 금방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1998년이나 지금이나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체포기록을 확인하다 고개를 들었다.
“체포된 곳이 교회 예배실?”
오진규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당직 집사가 정병선을 발견하고 나가달라 수차례 요청했으나 들은 체도 안 하고 경찰에 신고하라고 우겼답니다. 결국 경찰이 체포해 이틀간 구금하고 풀어줬습니다.”
음, 일부러 교회에 갔구나. 자기 신고 좀 해달라고 조를 사람이 있는 곳으로. 나는 다음 장을 넘겨본 뒤 실소를 지었다.
“이건…… 하, 참.”
오진규도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황당하죠? 2년 전에 교회 예배당에서 잠을 자다 체포당한 사람이 승려 자격을 얻었다는 거. 저도 그거 보고 황당했습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에게 도망갔다가, 정작 생활은 절간에서 했네요.”
이해할 수 없는 행보였지만 아마 그만큼 삶이 절박했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맛있는 밥에 편안한 생활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굶어 죽게 두지는 않는 것이 사찰이니까.
나는 다시 서류를 보다 물었다.
“절이 어디입니까?”
“충남에 있는 사찰인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사찰이 없어져요?”
“예, 사찰 경영이 악화된 상태에서 화재가 났답니다. 이후 불자들이 합심해 사찰 재건을 도왔지만 결국 경영 악화로 사라졌습니다.”
“화재?”
오진규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정병선과 관계는 없습니다. 규율에 얽매여 생활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정병선은 스님들과 자주 다퉜고, 결국 일 년도 못 살고 절을 나갔습니다. 화재는 10년도 지난 후에 났는데, 당시 조사 결과 소원을 빌기 위해 양초를 태우려던 관광객의 실수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부상자는 없었습니까?”
“스님 몇 분과 관광객 몇이 화상을 입었습니다만,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음…….”
나는 문득 아까부터 오진규가 바라보고 있던 서류를 보며 물었다.
“그건 뭡니까?”
내가 처음 말을 걸었을 때 오진규가 뚫어지게 보고 있던 서류. 마침내 그것을 붙잡고 내민 오진규가 말했다.
“가족관계입니다.”
“가족관계?”
두 분 부모가 모두 사망했고, 누나와는 연락 두절. 가족이 더 있었단 말인가? 오진규가 서류를 넘겨주며 말했다.
“정병선에게 큰아버지가 있었습니다.”
“…….”
아버지에게도 형제가 있었을 거란 생각은 못 했다. 아니, 있었다고 해도 58세라는 정병선의 나이로 보아 이미 부계 형제는 모두 사망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남아 있었구나.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다.
하지만 서류를 받은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사망?”
내 짐작대로 정병선의 큰아버지는 이미 사망한 상태이다. 오진규가 눈짓하며 말했다.
“아래를 보면 큰아버지의 아들이 있을 겁니다.”
큰아버지의 아들이면 사촌 형제다.
“정주원 60세. 조치원 원단공장 운영.”
“예, 일단 그 사람이 남은 혈육 중 누나를 제외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조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서류를 놓으며 물었다.
“자기 친누나도 연락 끊고 살았던 사람이 사촌 형과 연락을 했을까요?”
“어느 구름에 비 올지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혹시 압니까? 어릴 때 사촌 형이 자기를 괴롭혔던 것에 앙심을 품었을 수도 있고 큰아버지에게 구박받은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죠.”
음, 옳은 말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일단 전과 기록을 좀 더 살펴보죠. 특히 교도소에 있을 때 빵 동기들에게 구타나 괴롭힘을 당한 기록부터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 그럼 일단 조치원 관할인 세종 북부경찰서 쪽에 협조 얻어서 정주원 씨를 만나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그때 키보드를 두드리던 연주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과장님.”
나와 오진규가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연주가 모니터를 눈짓하며 말했다.
“단양에서 살인사건 보고가 들어왔는데 별 연관은 없어 보이긴 하거든요.”
단양? 문득 장진수 생각이 난다.
“대충 말해봐.”
연주가 관자놀이를 긁으며 말했다.
“이게…… 두 명이 살해됐는데 둘 다 스님이래요.”
조금 전 대화가 떠오른 나와 오진규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스님이 살해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