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58화
13. Spree killer(연속살인자)(7)
충북 단양 오정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관할서 형사들과 KCSI 요원, 기자들과 구경꾼들을 밀어내며 폴리스 라인 안쪽으로 들어간 나는 형사로 보이는 젊은 남성을 불러 세웠다.
“저기.”
형사는 바쁘게 오가는 와중에 부르는 것이 짜증 났는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예?”
이런 때는 빨리 신분증 보여주는 것이 낫다. 내가 신분증을 내밀자 경정이라는 계급에 놀란 형사가 부동자세로 경례를 한다.
“충성!”
“쉬어요.”
“예!”
“어떻게 된 겁니까?”
다짜고짜 어찌 된 거냐 물었다. 관할서 형사 입장에서는 타 관할 형사가 현장에 와서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탐탁지 않을 것이지만 경정 계급에는 그런 반항심을 깔아뭉갤 힘이 있다.
“예, 경정님. 새벽 세 시경 수행 중인 스님이 발견했답니다. 이쪽입니다.”
직접 현장으로 안내하는 형사. 그는 중간에 마주치는 형사들의 의문스러운 눈빛에 마구 눈을 깜빡인다. 괜히 나서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긴 경정 계급이면 군대로 쳤을 때 중령 계급쯤 되니까 현장에 나와 있는 일선 형사들 중에 나보다 높은 사람은 없겠지.
형사는 사찰 뒤편에 있는 스님들의 생활공간으로 안내했지만 한참을 더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 건물 하나를 넘으면 뒤는 산뿐인 곳에 도착한 형사가 말했다.
“여기입니다.”
“꽤 깊숙한 곳이군요.”
“주지 스님이신 석정 스님의 거처입니다.”
주지 스님?
“주지 스님이 피해자입니까?”
“예, 주지 스님과 교무 스님이 살해됐습니다.”
주지 스님이 거처하던 건물 주변에 KCSI 요원들이 집중되어 있다.
우리는 발싸개와 장갑을 착용한 뒤 문을 열었다. 바닥에 핏자국들이 보이지만 이미 시신은 과학수사대로 이송되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핏자국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용된 흉기는 뭘로 보입니까?”
“칼입니다. 석정 스님은 복부와 목에 여섯 군데에 자상을 입었고, 교무 스님은 일곱 군데입니다.”
두어 번 찌른 것이 아니라 무려 여섯과 일곱 번을 찔렀다. 전형적인 원한살인의 형태이다.
“발견자는 누구입니까?”
“지금 서로 임의 동행해 모시고 갔는데, 서로 가서 만나보시겠습니까?”
“아뇨, 대략적인 설명만 부탁합니다.”
형사가 다시 문을 열자, 고즈넉한 사찰의 풍경이 보인다. 기와 위로 보이는 범종을 가리킨 형사가 말했다.
“사찰은 항상 새벽 세 시에 범종을 울립니다. 특이하게도 이 사찰은 주지 스님인 석정 스님이 직접 매일 새벽에 종을 울리셨는데 오늘따라 종소리가 울리지 않아 혹시 스님이 아프신 건 아닌지 확인하러 온 수행스님이 발견하고 신고했습니다.”
“수행스님은 혼자였습니까?”
“아뇨, 스님 두 분이었습니다.”
“여기 CCTV 어디 있습니까?”
“서에서 다 걷어 갔습니다.”
그때, 오진규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만상을 쓴 그가 말했다.
“과장님.”
“예, 선배님.”
“하.”
표정을 보니 역시 우리 생각이 맞았던 모양이다. 한숨을 쉰 오진규가 말했다.
“두 스님 모두 10년 전 충남 오정사 화재 때 그 절에 계시던 분들이랍니다. 이 절에 온 지 올해로 딱 10년째라는 정보입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10년 전의 그 절에서 정병선은 스님들과 다투며 악의를 품었던 것이다.
나는 잠시 안내를 맡았던 형사를 바라보다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경정 계급에 놀랐던 형사는 내가 내민 명함을 보고 대경한다.
“구, 구,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
나는 명함 지갑을 품에 넣으며 말했다.
“본부를 통해 정식 공문 보낼 테니 이 사건 저희 쪽으로 이관해 주시죠. 우리가 추적하고 있는 범인의 살인 패턴과 동일합니다.”
“…….”
내 명함을 붙들고 침을 꿀꺽 삼키는 형사.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오 선배님. 당시 오정사에 있었던 스님들 명단 전부 확보해 주시고, 지금 어디서 근무하시는 분들인지 파악해 주세요.”
“예, 과장님.”
도경이 나가고 탐문을 하느라 현장을 처음 보는 오진규가 잠시 주변을 살피다 넋이 나가 있는 형사를 보고 실소를 짓는다.
“그만 정신 차리고, 가서 과장님 지시나 따르시죠? 사건 이관하라는 말 못 들었어요?”
형사는 오진규의 나이를 보고 계급을 짐작한 뒤 경례를 한다. 신분증도 보지 않고 경례부터 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형사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면…… 지난번 지하철 괴담 장기 밀매 사건 해결했던 그…….”
전 국민적으로 알려진 사건이라 이 형사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오진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방금 나간 저분이 해결한 사건이지.”
“헉.”
“그러니까 빨리 움직여야 되겠죠?”
“헉! 아, 알겠습니다!”
명함을 신줏단지 모시듯 손에 꼭 쥔 형사가 달려나간다. 오진규가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짓다 다시 현장을 보고는 심각한 얼굴이 된다.
“정병선은 자신을 무시하고 다퉜던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 살해할 작정이다. 그 대상은…….”
누구일까?
일단 확실한 건 10년 전 오정사에서 생활했을 때 자신과 다퉜던 스님들이다.
또 예상해 볼 수 있는 건 보육원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동기들.
그리고 교도소 시절의 빵 동기들도 대상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떠돌며 장사를 하던 시절에 자신을 무시했던 주변 상인들도 가능하다.
오진규가 머리를 거칠게 긁으며 한숨을 쉰다.
“젠장,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쑤셔야 될지 모르겠네.”
* * *
동일범의 소행이란 것은 의외로 빠르게 밝혀졌다. KCSI 조사 결과, 건강원 살인사건에서 쓰인 흉기와 사찰 살인사건에서 쓰인 흉기가 동일하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범인은 셋을 살해했으며 살인미수 한 건이 있는 중대 범죄자다.
장영훈 국가수사본부장님은 사찰 살인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란 이야기를 듣자마자 전국 경찰에 비상동원령을 내려 정병선을 수배했다. 이제 전국의 경찰이 그를 쫓게 되었다.
밀양경찰서 임시 수사본부.
나는 오진규와 함께 정병선의 기록을 분류하며 수시로 지시를 내렸다.
“오 선배님. 정병선이 자란 보육원이 지금도 존재하죠?”
“예, 있습니다.”
“정병선이 있을 시절에 원장이나 보육교사들이 그대로 근무하는지 확인해 주세요.”
내가 자란 보육원은 다른 곳과 달랐다. 아이들끼리 폭행하는 일도 없었고, 신부님이나 수녀님들도 항상 사랑으로 대해주셨다.
나는 내가 자라며 보고 들은 환경이 전부라 생각했지만 사회에 나와 가끔 보육원 출신들과 마주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어떤 보육원에서는 보육교사가, 또는 원장이, 함께 자란 보육원 동기들이. 그들이 행하는 폭력에 노출되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만약 정병선이 보육원 시절의 원한을 갚으려 한다면 교사와 원장, 동기들 전원을 보호해야 한다.
오진규가 금세 말했다.
“이미 조사했습니다. 당시 원장은 지병으로 4년 전에 별세했고, 보육교사들도 은퇴한 상태입니다. 교사는 총 셋이고 한 명은 호주로 이민을 갔고, 둘은 제주도에 있습니다. 쫓기고 있다는 걸 아는 정병선이 제주도에 비행기를 타고 갈 리는 없으니 목포나 고흥 쪽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편일 확률이 높습니다. 여객선 터미널에 경찰 인력 배치해 검문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스님들은 어떻습니까?”
오진규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스님들 쪽이 제일 골치 아픕니다. 전부 산속에 들어앉아 나올 생각을 안 하니, 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파악하기 힘드네요. 일단 명단에 있는 스님들 전부 만날 수 있도록 지시한 상태입니다.”
“혹시 모르니 보호 프로그램 가동하시죠.”
“예, 인력 배치하겠습니다.”
“교도소 쪽은 어떻습니까?”
“정병선이 교도소 시절 여러 번 폭행을 당해 이감됐답니다. 방을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녔는데 한 번이라도 마주친 전과자 수가 서른 명이 넘습니다.”
제길, 전과자까지 지켜줘야 하는 상황인가? 그중 갱생이 가능한 잔바리 범죄자도 있을 수 있으니 할 수 없다.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일단 인력 파견해서 전원 만나보고 인터뷰 따라고 해주세요. 어디서 단서가 나올지 모릅니다.”
“예, 과장님.”
옆에 경험 많은 오 선배가 있으니 일이 술술 풀린다. 가끔 내가 말하기 전에 이미 일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역시 이러니 수사1과 과장까지 했겠지.
바로 그때, 교통과에 있어야 할 관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과장님!”
나와 오진규, 구석에 있던 연주까지 관우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관우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정병선 꼬리 잡았습니다!”
나는 즉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어디야?”
“정은사입니다!”
정은사? 그거 삼성동에 있는 절 아냐? 정병선이 서울까지 왔다고? 설마, 이 새끼. 거기서도 살인을 저지른 거야?
아냐, 피해자가 나왔다면 연주 쪽에서 보고가 나왔을 것이다. 전국 살인사건 보고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는 쪽은 연주이니까.
관우가 보고했다는 건 CCTV로 찾아냈다는 것이다.
관우가 연주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아까 연주가 충남 사찰 살인사건 범인이 정병선이란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혹시나 해서 따로 사찰 몇 개 CCTV를 확인했는데 정은사 불교용품 판매점 CCTV에서 정병선으로 보이는 인물을 확인했습니다.”
역시, 관우. 이 자식은 보물이다.
“보자.”
발견하자마자 보고하러 뛰어왔는지 노트북을 가져오지 않은 관우. 우리는 교통과로 달려가 관우 PC 앞에 우르르 몰려갔다. 갑자기 국가수사본부 인력들이 몰려 들어오자 눈이 동그래진 교통경찰들.
관우가 PC에 앉아 화면을 재생시키자, 불교용품점 구석에 설치된 각도의 화면이 나온다. 오진규가 몸을 내밀며 물었다.
“언제 화면이야?”
“오늘 오후 네 시경입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은 오후 여덟 시. 고작 네 시간 전이다. 삼성동에 있는 절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불교용품점.
그때,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관우가 화면을 멈추고 말했다.
“이놈입니다.”
지금 화면상으로는 상대가 정병선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왜소한 체구와 옷은 비슷한 것 같다. 관우가 다시 화면을 재생시키자, 염주 등을 만져보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러다 화면 방향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다시 숙이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관우는 다시 화면을 뒤로 돌렸다가 남자가 CCTV를 힐끔 보는 부분에서 화면을 멈춘다.
“여기.”
오진규가 놀란 얼굴로 관우를 본다.
“이걸 발견했다고? 이 짧은 순간에 사람 파악하는 게 가능해?”
오진규는 관우 능력을 처음 보았으니 저런 반응이 당연하다. 저 녀석은 삼백 척이 넘는 배 중에 용의 선박을 발견해 내는 놀라운 놈입니다, 오 선배.
연주가 화면에 달라붙어 자세히 얼굴을 확인 후 말했다.
“정병선 맞는 것 같습니다.”
나는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계속 돌려.”
관우가 화면 재생 버튼을 누르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그냥 나가는 정병선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고개를 최대한 숙이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이다 사라졌다.
오진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거…….”
오진규가 날 바라본다. 굳은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다 그와 눈이 마주친 나. 우리는 서로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음을 눈치챘다. 오진규가 날 보며 말했다.
“CCTV 위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살해할 대상이 여기 있는 겁니다. 살인 전에 주변 지형을 파악하고 있는 겁니다.”
순간 적막이 흐른다. 살해범이 대상 주변을 파악하고 있는 소름 끼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잡아야 됩니다. 또 놓치면 다시 누군가 죽을 겁니다.”
내가 눈짓을 보내자, 눈치 빠른 오진규가 바로 핸드폰을 들고 국가수사본부에 지원을 요청하며 외친다.
“서울 삼성동 정은사에 사복경찰 배치해 주십시오! 아뇨, 순찰차 말고! 전원 사복경찰로 잠복합니다! 정병선이 거기 나타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