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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159화 (159/328)

살인의 기억 159화

13. Spree killer(연속살인자)(8)

정은사로 긴급 출동하는 차 안.

나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정병선은 오정사에서 새벽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에 살인을 저질렀다. 살해한 시간은 소위 ‘살인하기 좋은 시간’. 인적이 가장 드문 시간에 살인을 저질렀다. 지금은 밤 아홉 시. 곧 살인하기 좋은 시간이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정병선에게 그런 것이 의미가 있을까?’

정병선의 동기는 자신의 삶에서 무시를 당하거나, 화가 났던 일들에 대한 복수다. 그런데 살해 대상은 폐쇄적인 생활을 하며 사찰 깊은 곳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스님들이다.

새벽 세 시이건, 오후 세 시이건 대상의 주변에 아무도 없는 시간은 반드시 존재한다. 즉, 정병선에게 살인하기 좋은 시간 따위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혹시 주변에서 동태를 관찰 중인 정병선에게 들킬 수 있기에 정은사에서 조금 떨어진 무역센터에 차를 세운 우리 팀은 도보로 정은사까지 이동했다.

나는 사찰 입구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사람이 왜 이리 많아?”

정은사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사찰이라 본래 사람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이건 평소에 보던 것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많다.

연주가 뛰어가 사찰 입구에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돌아왔다.

“며칠 뒤에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서 스님 공양 음식을 가져온 불자들이 많답니다.”

“우란분절?”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라 불교 행사는 잘 모른다. 대충 들어보니 불자들이 음식을 해 치성을 드리는 날인가 보다.

“언제래?”

“내일모레요.”

큰 행사인가 보다. 모레가 행사인데 이틀 전부터 이 난리인 걸 보니. 정병선은 과연 이 난리통에도 살인을 저지를까?

오진규가 바지춤을 끌어올리며 물었다.

“어디 보자, 잠복하는 애들이…… 아, 저기 있네.”

오진규가 가리키는 곳. 불교에서 쓰이는 연꽃 등을 든 남자의 귀에 이어 잭이 있는 것이 보인다.

어떤 형사는 양초에 불을 붙이고 있고, 또 어떤 형사는 치성을 드리고 있다. 다들 본래 종교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잠복한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다.

오진규가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백 명이 넘게 잠복한다고 하더니, 엄청 많네.”

저 많은 인파에 형사 백 명이 더해졌다. 평소보다 붐비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한 광경이다.

나는 일부러 입구에서 향과 쌀을 구입한 뒤 불자 행세를 하며 사찰 안으로 들어갔다. 석등 앞에 색색 가지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싼 음식들이 쌓여 있다. 치성을 드리기 위해 직접 만들어 온 음식들인가 보다.

향 냄새가 강해 음식 냄새는 나지 않는다. 나는 제일 처음 보이는 건물 뒤로 돌아가 말했다.

“오 선배님. 오정사 출신 스님들 파악했습니까?”

“네, 한 분입니다. 원주 스님인데 법명은 금강입니다.”

오정사 출신의 금강 스님. 이분은 왜 정병선과 원한이 생겼을까? 나는 사찰 지도를 펴며 물었다.

“금강 스님 거처가 어디죠?”

오진규가 사찰의 맨 끝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지, 부주지, 총무, 교무, 재무, 원주 스님까지는 여기 머문다고 합니다.”

사찰에도 계급 비슷한 게 있는 모양이다. 제일 좋은 구석 자리는 높아 보이는 직책을 가진 스님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나는 그들의 거처 바로 앞에 있는 건물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도 스님들 거처입니까?”

“네, 오른쪽은 시자, 다각, 지객 스님들 거처이고, 왼쪽은 종두, 법고, 별좌, 공양주 스님의 거처랍니다. 맨 앞쪽에 있는 건물은 외부인들에게 공개되어 있는 숙소이고요.”

“외부인에게 공개하는 숙소가 있습니까?”

“예, 템플 스테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외부인이 신청해 사찰에서 며칠 묵게 해주는 시스템이죠.”

여기가 제일 의심스럽다. 만약 뒤쪽의 사찰에 진입하려는 마음이라면 외부에 공개되어 있어 외지인이 돌아다녀도 의심하지 않는 이곳이 제일 적당하다.

외곽은 지원 나온 잠복 형사들이 있으니 우리는 가장 확률 높은 곳에서 대기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오 선배님과 연주는 외부 공개 숙소에서 잠복합니다. 가급적 템플 스테이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불자 복장으로 대기해 주세요.”

“예, 과장님.”

“관우는 관제실로 가. 시내에 있는 사찰이라 CCTV가 많은 편이다. 실시간으로 전체 모니터하면서 정병선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나오면 무전으로 알려줘.”

“예, 과장님.”

“다들 움직이세요.”

세 사람이 흩어지고 혼자 남은 나. 지도를 뚫어지게 보며 현재 형사들이 잠복한 구간을 빨간 펜으로 칠해본다. 이 방법으로 포위하면 정병선이 정은사에 발을 들인 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모든 통로에 잠복 형사가 매복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한번 동선을 체크한 뒤 밖으로 나왔다. 티 나게 주변을 살필 수 없어 향 하나를 들고 석등 쪽으로 걸어가며 주변을 살폈다.

경건한 표정으로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 오랜만에 절에서 만난 지인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특별히 수상해 보이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이 작전의 목표는 정병선의 검거이다. 혹시 사찰 측에 협조 요청을 했을 시 어설픈 승려들의 연기로 정병선이 눈치챌 수 있기에 사찰 측에 협조를 구하지 않고 왔다. 그래서인지 불자들을 대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스님들의 얼굴이 밝다.

연주와 오진규는 외부 공개 숙소로 보내고, 관우는 관제실로 보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바로 정병선의 타겟인 금강 스님 옆이다.

나는 불교용품 판매점 주변에 있는 스님에게 허리를 숙였다. 합장을 하는 스님이 웃으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시주님.”

“잠시 따로 이야기 나눌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신분증을 꺼낼 순 없다. 나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눈짓했다.

“판매점 안으로 들어가시죠.”

몇 발자국만 이동하면 되는 거리라 그런지 별 의심 없이 안으로 들어오는 스님.

나는 판매점에 들어온 후 눈으로 상점 안을 살폈다. 정병선으로 보이는 인물은 없다. 카운터 옆에 있는 작은 공간에 들어온 나는 신분증을 꺼냈다.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장 현도경입니다.”

“…….”

스님이 약간 놀란 표정이 된다.

“경찰분이 여긴 무슨 일로…….”

“중요 범죄자가 이곳으로 올 수 있다는 첩보가 있어 확인차 왔습니다.”

지금 이 사찰에 잠복 형사 백 명이 있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스님의 입이 무겁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자기 목숨이 걸린 일이니 어쩌면 순식간에 사찰 내부에 소문이 날지도 모르니까.

스님이 눈을 감고 합장을 한다.

“나무 관세음…….”

스님이 잠시 기도를 올린 후 물었다.

“소승이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지금 금강 스님은 어디 계십니까?”

스님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금강 스님 말씀이십니까?”

“예.”

“금강 스님은…….”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스님의 반응을 보았다. 매일 보는 얼굴일 텐데 왜 저런 표정일까? 스님이 날 보며 말했다.

“지금 강원도에 계십니다만.”

응? 강원도? 거긴 왜?

“여기 안 계신다는 말씀입니까?”

“예…… 우란분절 전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기 위해 수련 기도를 가셨습니다.”

금강 스님이 여기 없다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언제 가셨습니까?”

“그저께 가셨습니다.”

“언제 돌아오십니까?”

“내일 밤에는 오실 겁니다. 모레 새벽에 행사를 주관해야 하니까요.”

나는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빠졌다. 어쩌면 더 좋은 상황일 수도 있다. 목표가 없다는 건 위험에 빠질 사람이 없다는 뜻도 되니까.

그때 스님이 중얼거린다.

“그럼 아까 왔던 시주님도 경찰이었을까요?”

나는 스님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그게…… 아까 오후에도 누가 금강 스님을 찾아왔었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스쳐 가는 생각에 급히 물었다.

“혹시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었습니까?”

스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랬습니다.”

큰일이다. 정병선이 금강 스님이 없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스님이 내 손에 들린 신분증을 눈짓하며 말했다.

“스님들 위치를 함부로 발설하진 않습니다. 지금은 신분증을 보여주시니 강원도에 가셨다고 말했지만, 어제는 그저 외부 일로 절에 안 계시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말은 안 하셨습니까?”

“예, 언제 돌아오시냐 묻길래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만.”

정병선은 금강 스님이 사찰에 없다는 걸 알았다. 강원도에 갔다는 건 모를 테니 강원도까지 쫓아가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제길, 여기가 아니다.”

잘못 짚었다. 아니, 우리가 몰랐던 이 스님과 정병선의 대화 때문에 일이 틀어졌다는 편이 옳다. 내가 인상을 쓰자 스님이 내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바다는 쉬이 비에 젖지 않는 법입니다, 시주. 마음속 번민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경계하시기를.”

후, 스님. 지금 제 속이 어떤 줄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스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러고 보니 어제 그 시주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응? 정병선에게 무슨 말을 했다는 거지?

“무슨 말을 하셨습니까?”

스님이 합장을 하며 말했다.

“아주 피곤해 보였습니다. 눈도 붉고 오랜 시간 쉬지 못한 시주 같아 보였지요. 무엇인가 덧없는 목표를 좇는 얼굴이었습니다. 혹시 소승의 작은 한마디가 도움이 될까 싶어 말씀드렸습니다.”

“무슨 말씀이었습니까?”

스님이 손에 든 염주를 굴리며 말했다.

“흔들리는 건 당신의 눈이다. 활시위를 당기는 손이다. 명중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마음이다. 과녁은 늘 제자리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그게 살인범에게 할 소리입니까? 황당했지만 스님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하신 말씀이다. 스님이 말을 잇는다.

“그렇게 말하니 혼자 제가 한 말을 중얼거리더군요. 뭔가 생각이 난 것 같기도 하고, 깨달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생각이 나고 깨달은 것 같았다? 도대체 뭘?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음,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가버렸습니다.”

“어디서 말씀 나누셨습니까?”

“아까 시주님을 처음 만난 용품점 앞에서 우로 삼십 보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급하다. 혹시 정병선이 여기로 오지 않는다면? 경찰 병력이 정은사에 집중되어 있는 동안 이놈은 또 다른 곳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있을 수도 있다.

내 얼굴이 일그러지자 스님이 다시 나를 붙잡는다.

“시주님.”

“예?”

스님이 내 눈을 빤히 보며 말했다.

“당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당신의 마음이 당신을 휘두를 겁니다. 명심하십시오.”

“…….”

“그럼 이만, 나무 관세음보살.”

나의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면 그 마음이 나를 휘두른다.

솔직히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라 사찰에 거부감이 있는 나지만 이런 말씀들은 정말 좋은 것 같다. 급해서 두방망이질 치던 내 가슴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다.

나는 다시 한번 나가신 스님 방향으로 정중히 허리를 숙여 보인 후 불교용품점을 나서 정병선과 스님이 대화했다는 곳을 찾았다.

용품점 입구에서 우측으로 삼십 보. 그곳에는 사찰의 쪽문이 있다. 다가가 주변을 보니 쪽문 차양 바로 아래가 CCTV 사각지대이다.

정병선은 일부러 여기서 주변을 지나던 스님을 붙잡고 금강 스님의 위치를 물은 것이다.

나는 정병선이 서 있었을 장소를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정병선. 지금도 어디에서 사람을 죽이고 있는 거냐? 살면서 화가 났던 사람을 전부 죽이는 것이 너의 정의라고 생각하는 거야?’

만약 모든 이가 화가 난다고 사람을 죽인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무간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정병선은 자신의 억울했던 삶 속에 피어난 분노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미친 살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빨리 잡아야 된다.

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쪽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곧,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오색찬란하게 걸려 있는 연꽃 등이 흑백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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