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61화
13. Spree killer(연속살인자)(10)
“과장님! 과장님!”
흐릿하게 연주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날 흔들어 깨우고 있다.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쓰러져 있다. 잠시 기절했던 모양이다.
걱정이 잔뜩 깃든 얼굴로 날 흔들어 깨우던 연주가 내가 눈을 뜨는 걸 보고는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든다.
“눈! 눈 떠요, 눈!”
옆에 앉아 있던 오진규가 급히 내 뺨을 때린다.
“과장님! 과장님 정신 차리세요!”
아, 아픕니다, 선배님. 나는 찰싹찰싹 내 볼을 때리는 오진규의 팔을 붙잡았다.
“저 괜찮습니다.”
오진규가 얼른 내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무전 받고 급히 뛰어왔는데 사람들이 몰려 있어 무슨 일인가 싶어 봤더니 과장님이 기절해 계셨습니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지난번에도 이러시더니. 그때보다 증세가 심해지신 것 같습니다.”
연주가 발을 동동 구른다.
“지난번에 손은정 씨 자동차 안에서도 혼자 손짓 발짓 하면서 기절한 것 같았어요. 이러다 우리 과장님 진짜 병원 신세 지시면 어떡해요? 과장님, 제발 병원 좀 가 보세요.”
어디 아파서 그런 거 아니라고.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한 번에 두 시점의 기억을 읽는 작업이 이토록 힘들지는 몰랐다. 그렇다고 한 번에 하나만 읽을 순 없다. 내게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보여주는 대로 읽는 것이 나의 역할. 나는 남의 기억 속에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문득 이러다 세 가지 시점을 읽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정말 병원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곧 정병선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나중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린다. 나중 일 걱정하고 살면 나중에 후회하는 법이다.
나는 오진규와 연주를 보며 말했다.
“조치원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오진규가 고개를 저었다.
“다짜고짜 여기가 아니라 조치원이라고 하시는 말씀에 무작정 병력을 분산시킬 수가 없어서 직접 만나려고 온 겁니다. 어찌 된 겁니까?”
제길, 한시가 급한데. 나는 손목시계를 보며 물었다.
“제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습니까?”
연주가 얼른 말했다.
“사람들 말로는 10분 정도였다고 했어요.”
10분. 살인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사람을 몇은 죽일 수 있는 시간이다.
정병선이 이곳에 나타났던 시간은 오후 네 시. 정병선은 차량이 없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버스터미널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이동 시간은 약 20분. 고속버스를 타고 조치원까지 두 시간가량 걸린다.
조치원 터미널에서 사촌 형 정주원의 공장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대충 30분이라고 한다면 오후 일곱 시에 이미 도착했을 것이다.
나는 급히 연주에게 말했다.
“살인사건 보고 없어?”
연주가 자기 핸드폰을 확인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없어요.”
현재 시간은 밤 열 시. 이미 살인이 벌어졌으나 누구도 알지 못한 상태일 수도 있고, 아직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일단 세종북부경찰서에 지원 요청해서 정병선의 사촌 형 정주원 씨 연락해서 보호해 달라고 해줘.”
연주는 묻고 싶은 것이 많은 눈치였으나 여러 번 나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며 생긴 맹목적 믿음이 우선한 듯 전화를 들고 구석으로 가 통화를 한다.
오진규는 그런 연주가 이해되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과장님.”
나는 아직 어지러움이 가시지 않아 잠시 허리를 굽히며 답했다.
“네, 선배님.”
“왜 정병선이 조치원으로 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변명을 시작했다.
“조금 전에 여기 스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금강 스님은 여기 안 계십니다.”
“예?”
“행사 전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기 위한 기도를 하러 강원도에 가셨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 이 절을 방문한 정병선에게도 이 사실을 말해줬답니다.”
오진규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정병선은 금강 스님이 이곳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경찰의 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이니 그에게는 시간이 없다.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이 원한을 가진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이려고 다른 곳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진규는 정병선이 정은사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해했지만 여전히 그의 다음 행보가 조치원이 될 거란 확신은 없는지 다시 물어온다.
“1차 건강원사건, 2차 룸살롱사건, 3차는 사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오늘 또다시 다른 사찰로 왔습니다. 이 사실을 나열해 놓고 보면 그가 가장 큰 원한을 가진 이들이 사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금강 스님이 여기 없다면 다른 사찰로 간 또 다른 스님을 살해하러 갔다고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질문을 던지는 오진규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이 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고민해온 문제이다.
관우와 연주만큼 친하진 않지만 오진규도 이제 우리 식구인데. 식구들에게는 내 능력에 대해 말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고민.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강혁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네 능력을 아는 사람을 최소화해라. 인간이란 짐승은 본래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네 식구들이라고 해도 널 두려워하게 될 거야. 사람은 모두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는 법이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들. 기억을 읽는 네가 혹시 자기 기억을 읽어 숨기고 싶은 것들이 드러날까 널 어려워하고 두려워할 거다. 너에게 언젠가 지키고 싶은 가족들이 생겼을 때를 제일 조심해라. 누구보다 사실을 숨겨야 할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강혁 아저씨의 말은 항상 옳았다. 그건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때는 틀리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항상 옳은 말을 했던 아저씨.
아저씨 말을 들어 나쁠 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나는 오진규와 함께 보았던 정병선의 신상명세를 떠올리고 순간적으로 변명을 했다.
“정병선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누나와 함께 보육원으로 갔습니다.”
“예, 그건 저도 압니다.”
“보육원이란 곳에 오는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입니까?”
“혈육이 모두 사망해 돌봐줄 어른이 없는 아이들…… 아!”
눈치 빠른 오진규는 이 정도만 말해도 바로 알아듣는다. 오진규가 팔짱을 끼고 턱을 쓰다듬는다.
“정병선은 원한을 에너지 삼아 움직이는 범인. 어릴 때 큰아버지가 버젓이 계시는데 보육원으로 가게 된 부분에 대해 원한이 있을 수 있겠군요. 음,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휴, 이제 된 건가? 하지만 오진규는 범인 검거를 위한 절호의 찬스를 쉽게 날릴 생각이 없는지 또 질문을 한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이미 사망했습니다. 지금 그 공장은 아들인 정주원 씨가 운영 중인데 죄 없는 사촌 형에게 대신 복수를 한다는 게 좀…….”
“살인범의 생각입니다, 오 선배님.”
“…….”
“우리가 일반인의 이해 범주 안에서 움직이니 검거를 못 하는 겁니다. 붕어빵 장사를 하다 몇 대 맞았다고 사람을 죽이는 놈입니다. 화투판에서 다툼이 일어났다고 사람 하나를 병신으로 만들고, 도주하는 사람을 따라가 죽인 놈입니다.”
“…….”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사찰을 쏘아보며 무전을 들었다.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장 현도경입니다. 이 시간부로 전 병력, 조치원으로 이동합니다. 한시가 급하니 모두 전속력으로 이동 바랍니다.”
나는 무전을 끊고 오진규를 바라보았다. 날 빤히 보고 있지만 눈에 초점이 없다. 내가 한 말의 의미를 곱씹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 안에서 놈을 쫓으면 우리는 놈을 잡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차가 있는 무역센터로 뛰었다.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오진규의 눈빛이 따갑지만 설명은 나중에. 지금은 정병선을 잡아야 할 때이다.
* * *
신호까지 무시하고 전속력으로 달려 도착한 조치원 침산리.
미리 무전으로 공장터 주변 이백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 도보 이동하라는 지시를 내렸기에 시골길의 수풀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모든 형사가 도로를 두고 수풀로 이동 중인 것이다.
관우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과장님. 세종북부경찰서에서 연락 왔는데 정주원 씨 신병 확보했답니다.”
다행이다. 아직 죽이지 못했구나.
“정주원 씨 어디 있었어?”
관우가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공장 계약 건 때문에 오후 여섯 시부터 접대 중이었는데 세종시 쪽에 있는 참치전문점에 있다가 연락을 받고 경찰서로 이동했습니다.”
후, 술이 사람을 살린 모양새인가? 오늘 접대가 없었고 그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공장이나 집에 있었다면 그는 분명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전화 좀 연결해 줘.”
“정주원 씨요?”
“어.”
관우가 연락을 해온 세종북부경찰서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정주원을 바꿔 달라 말한 후 내게 전화를 넘긴다.
“정주원 씨 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무척 당황스럽고 긴장된 상황일 것이다. 술기운이 싹 날아간 목소리를 내는 정주원의 음성에는 떨림이 있다.
“지금 밤 열한 시입니다. 이 시간에 보통 어디 계십니까?”
-지, 지금은 집에 있거나…… 헉! 지, 집에 아내가 있습니다!
나는 연주에게 눈짓을 보냈다. 연주는 금방 내 지시를 눈치채고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형사 지원을 요청했다.
“아내분도 보호 프로그램을 가동하겠습니다.”
-그, 그렇게 해주시면!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 말에 답해주세요. 이 시간에 집에만 계십니까?”
-아니요, 집에 있을 때도 있고 가끔 술을 마시러 가긴 하는데 보통은 공장에 주로 있습니다.
“밤 열한 시에 말입니까?”
-그게…… 공장을 24시간 돌리지 않으면 손해가 나서…….
“야간 작업자들이 따로 있습니까?”
-…….
“정주원 씨, 제대로 답을 해주셔야 됩니다.”
-…….
그때 옆에서 엿듣고 있던 오진규가 전화기를 달라는 듯 손을 내민다. 내가 핸드폰을 넘겨주자 오진규가 말했다.
“정주원 씨. 야간작업 시에 불법 외국인노동자 쓰는 거 다 압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죽게 생겼다고요. 빨리 답해줘야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습니다!”
-힉!! 예, 예! 맞습니다!
이런 게 경험이구나. 상대가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지 정확히 알고 그에 대한 대응을 하는 것이 바로 오진규의 가장 큰 강점이다. 오진규는 다시 전화기를 넘겨주며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다시 핸드폰을 든 내가 말했다.
“혹시 야간작업 직원 중에 정주원 씨가 현재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아는 직원이 있습니까?”
-아뇨. 부, 부지불식 간에 끌려온 거라…… 게다가 그렇게 어려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한국어 잘하는 애도 없고.
“공장에 정주원 씨 사무실은 어디 있습니까?”
-공장 들어가서 우측에 있는 철제 계단으로 올라가서 오른쪽 맨 끝 방입니다.
“잠겨 있습니까?”
-예, 열쇠는 사무실 앞 화분 세 개 중에 가운데 화분 밑에 있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아내분은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또 보호가 필요한 가족이 있습니까?”
-저, 저기 제 아들은.
“아드님이 어디 계십니까?”
-부산에 있습니다.
“그럼 괜찮을 겁니다. 혹시 모르니 부산경찰 쪽에 지원 요청해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형사님!
“예, 협조 감사합니다.”
-저, 저기 형사님!
“예?”
-벼, 병선이가 절 죽이러 온다는 게 정말입니까?
“…….”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어릴 때 보육원 간 후론 연락도 안 해봤는데.
그래, 본래 가해자는 모르는 법이다. 자신이 어린 치기에 한 말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 물론 그렇다고 사람 죽이고 다니는 쪽이 더 나쁜 놈이지만.
“이만 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