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62화 (161/328)

살인의 기억 162화

13. Spree killer(연속살인자)(11)

조치원 원단공장.

백 명의 형사들이 원단공장 주변 수풀에 몸을 숨기고 있다. 모두 쥐 죽은 듯 숨을 죽이고 있지만 이곳은 전혀 조용하지 않다. 밤새 돌아가는 공장의 소음, 밝은 불빛은 지금 시간을 잊게 만든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마다 의사소통을 하는 소음. 영어를 쓰는 이는 없다. 모두 동남아나 네팔 등에서 온 노동자로 보인다. 그나마 안전모는 제대로 씌우고 일을 시키는지 안전장비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는 노동자들.

수풀 속에서 공장을 노려보는 오진규가 시간을 보며 말했다.

“벌써 새벽 한 시인데. 정말 여기로 올까?”

관우와 연주가 수풀 속에 앉아 공장을 보고 있다. 관우가 오진규의 말에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과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 과장님 말씀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

맹목적인 믿음. 사이비 종교 신도라도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싶다. 오진규가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정병선이 정은사로 올 거란 예상을 한 것도 과장님이야. 결과적으로 틀렸고.”

“…….”

“아, 그렇다고 과장님 탓하는 건 아니다. 그 상황에선 나도 같은 판단을 내렸고. 사람이란 게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정은사로 출동한 건 근거가 확실했다. CCTV상에서 살해 대상을 물색하는 놈을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라. 정병선이 공장으로 올 수 있다는 추측의 근거는 있지만 확신의 근거로는 부족해.”

관우는 말없이 공장을 노려본다. 대신 연주가 말했다.

“맞아요, 이번엔 달라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그래서 더 믿어요.”

“응?”

오진규가 무슨 말이냐는 듯 연주를 바라보자, 다시 공장터로 고개를 돌린 연주가 말을 잇는다.

“아무 근거도 없이 갑자기 자기 직감대로 행동하는 때의 과장님은 귀신 같아요. 그때 비로소 과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지켜보세요, 선배님.”

“…….”

아직 수사과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오진규는 연주와 관우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아랫사람에게 이런 믿음을 가지게 하는 상사가 능력 없을 리는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바로 그때 수풀 속에 있던 형사 한 명이 급히 주먹을 번쩍 든다. 그와 동시에 모든 형사의 눈길이 공장으로 돌아간다.

관우가 주먹을 꽉 쥐며 시력을 돋운다.

“왔다.”

오진규가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확실해? 잘 안 보이는데.”

관우가 CCTV를 관찰할 때처럼 눈을 크게 뜨고 공장으로 향하는 검은 그림자를 주시한다.

“검은 옷, 검은 모자. 옆구리에 끼고 있는 신문 두루마리.”

공장에서 나오는 강한 빛 때문에 외부에서 접근하는 이는 실루엣만 보임에도 불구하고 관찰력 좋은 관우는 바로 그가 정병선임을 알아챈다.

마침내 검은 실루엣이 공장 앞에 서자, 밝은 빛 속의 뒷모습이 보인다. 정말 관우가 말했던 옷차림이 보인다.

오진규가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린다.

“정말…… 여기 나타났다고?”

도대체 현도경이란 사람. 어떤 경찰일까? 이걸 어떻게 알아낸 걸까? 지금껏 그래도 자신이 1과장이고, 도경이 2과장이었다는 과거를 떠올리며 사실 능력만 놓고 보면 자신이 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싹 달아난다. 도경은 자신 따위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엄청난 경찰이었다.

오진규는 노련한 형사답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작게 무전을 날린다.

“전 병력 스탠바이. 용의자로 보이는 인물이 공장으로 들어갔다. 사장실에 잠복 중인 과장님 쪽에서 놓치면 우리가 나서야 하니, 소리 죽여 전진하고 공장 정문과 후문 모두 봉쇄한다.”

* * *

밝은 사무실.

나는 지금 사무실에 홀로 잠복 중이다. 연주가 위험하다며 셋 이상의 잠복을 건의했지만, 그럼 인기척이 난다. 예민한 사람은 사무실 내에 다수가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기에 거절했다.

솔직히 정병선은 특수병과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무기도 식칼이다. 혼자 있다고 그런 범인 한 명 제압 못 하는 형사는 없다.

나는 평소 정주원이 입은 공장 유니폼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그가 집무를 보는 책상에 앉아 있다.

창문 블라인드는 일부러 열어두었다. 밖에서 들어올 정병선이 사촌 형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야 진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 정, 후문을 모두 막는다고 해도 탁 트인 공간에서 검거하는 것보다 밀폐된 사무실에서 검거하는 쪽이 편하다.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에서 오진규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펜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드디어 놈이 왔다. 기계 돌리는 소음이 시끄러워 밖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인기척을 느꼈다. 분명 놈은 지금 창문 밖에서 안을 보고 있을 것이다.

나를 죽이러 온 사람이 가까이 왔다. 그것은 무척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잠시 후, 문고리가 서서히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좀 더 고개를 숙였다. 정주원과 나는 덩치부터 달랐기 때문에 최대한 그와 비슷해 보이려 의자에 몸을 묻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정주원이 14세 때부터 한 번도 보지 못한 사이이니 모습이 바뀌어도 알아보지 못할 거란 생각도 든다. 나이 차가 있으니 얼굴만 잘 가리면 되겠지.

문이 열린다. 하지만 기계 소음에 묻혀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온 신경을 문 쪽에 집중하고 있기에 알아챈 것이다. 나는 내 맞은편에 있는 장식장 유리를 통해 정병선의 접근을 지켜보았다. 갑작스레 공격을 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내 책상에 칼이 내리꽂힌다.

쾅!

나는 슬쩍 물러나면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때 책상 위에 꽂힌 칼 양쪽으로 손톱 사이에 피가 끼어 있는 손 두 개가 놓인다.

“형!!!!!!!!!”

“…….”

나는 고개를 숙이고 모자 챙을 깊숙이 내리 눌렀다. 나를 형이라 부르는 사람. 상대는 정병선이 확실하다. 정병선이 머리를 내밀며 다시 외친다.

“강주원!!!!!!!”

“…….”

나는 시선을 슬쩍 들어 내 앞에 꽂힌 칼을 보았다.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칼. 하지만 피해자들의 굳은 피가 엉겨 붙어 있는 칼은 무척 괴기스러워 보인다.

그때 정병선의 손이 꽂힌 칼의 자루 부근을 잡는 것이 보인다. 이때다. 정병선의 유일한 무기는 칼이다. 저것만 사용 불능으로 만들면 검거는 쉬워진다.

나는 번개처럼 사장 명패를 잡아채 칼자루 끝을 내려쳤다.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빼는 정병선. 하지만 칼은 명패를 망치 삼아 책상 깊숙이 꽂혀 버린다.

물러난 정병선이 인상을 쓰며 주변을 본다. 정주원이 평소 골프를 치는지 한쪽에 놓인 골프채를 발견한 그는 채 하나를 꺼내 들고 외쳤다.

“예전의 일. 단 하루도 잊어본 적 없어. 힘을 가지면 다 죽이고 싶었는데.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점점 힘이 없어졌지. 하지만 이제 알았어. 나는 몸에 힘이 없는 게 아니라 대가리에 힘이 없었던 거라는 걸. 이제 달라. 난 형을 반드시 죽일 거야.”

나는 천천히 일어나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원한에 찬 정병선의 눈이 일그러진다.

“넌 누구……야?”

자기보다 훨씬 늙어 있어야 할 형이 건장한 몸을 가진 삼십 대 초반의 젊은이가 되어 있다. 정병선이 놀란 눈빛으로 주변을 마구 두리번거린다.

“겨, 경찰이냐!”

정병선은 자신보다 훨씬 체구가 큰 날 발견하고는 뒷걸음질을 친다. 손에 골프채를 쥐고 있음에도 빈손인 내 체구만 보고 이미 마음이 죽어버린 정병선. 그는 마구 뒷걸음질을 치며 문 쪽으로 향한다.

나는 그런 정병선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거길 나가면. 누가 있을 것 같습니까?”

“…….”

문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눈치를 보던 정병선의 몸이 굳어진다. 스스로 생각해도 형사가 혼자 움직일 리 없다는 걸 떠올린 모양이다. 이제 그는 어떻게 나올까?

마지막이니까. 이제 곧 검거될 테니까. 마지막 원한의 불꽃을 내게 내뿜을까? 죽자고 덤벼올까?

나는 눈으로 정병선의 자세를 파악했다. 날 가르친 형사님들이 항상 강조했다. 상대의 자세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 어디로 공격이 날아올지 예측이 된다고.

하지만 공격을 대비하던 내 예상과 달리 정병선은 골프채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형사님! 한 번만 놓아주세요!”

“……뭐?”

“한 번만! 딱 한 번만 그냥 못 본 척해주세요!”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는 그제야 정병선의 눈을 자세히 보았다.

스님의 말처럼 복수라는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먹지도, 자지도 않고 복수를 하러 돌아다니던 정병선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마른 몸은 더욱 말라 있었고, 씻지도 못했는지 목 부근에 아직도 핏자국이 남아 있다.

정병선은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골프채를 꽉 잡는다.

“나…… 나 아직 죽여야 될 사람이 남았습니다!”

“…….”

“나중에! 나중에 형사님께 직접 찾아가 자수할게요. 제발 한 번만!”

나는 순간적으로 정병선이 무작위로 아무나 살해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대화했던 사람들 모두 무사했다. 오직 자신의 삶 속에 원한을 가졌던 사람들만 죽였던 정병선. 그는 자신을 잡으러 온 형사에게 덤비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범죄자에게 연민을 느껴서는 안 된다.

나는 책상을 돌아 정병선에게 다가갔다. 잔뜩 긴장해 골프채를 꽉 쥔 정병선이 천천히 물러나며 울부짖는다.

“제발! 제발 형사님!”

나는 정병선 쪽으로 계속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는 만큼 뒤로 물러나던 정병선은 어느새 사무실 모서리에 있는 옷걸이에 등을 부딪힌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정병선. 하지만 그의 눈빛은 내게 덤빌 생각이 아니다. 그저 제발 복수를 하게 해달라 애원하는 눈빛이다.

“정병선 씨.”

“…….”

“정은사에서 만난 스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죠.”

“…….”

“흔들리는 것은 네 마음이다. 활시위를 잡은 손이다. 과녁은 처음부터 흔들림이 없었다.”

정병선은 오늘 오후에 들었던 이야기라 그런지 기억하는 눈빛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스님이 말한 과녁은 당신이 목표로 삼은 살해 대상이 아닙니다. 원한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고, 칼을 잡은 손이란 뜻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

정병선의 마음 대신,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며 말했다.

“보육원에서 나와 홀로 서울에서 살아남았던 당신의 과거를 생각해 보세요. 전과 7범이긴 하지만 대부분 절도였습니다. 절도 총액이 백만 원도 안 되는 소액. 당신은 먹고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싸웠습니다.”

골프채를 잡은 정병선의 손에서 슬쩍 힘이 빠지는 것이 보인다. 나는 골프채를 달라는 듯 손을 뻗으며 말했다.

“당신의 전과 중 특수폭행은 단 한 건. 피해자는 절도로 소년원에 갔을 때 방 동기였습니다. 누나가 있다는 것을 안 동기가 누나를 향한 성적 농담을 했고, 당신은 화가 나 망치로 그를 내려쳤습니다.”

정병선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한다. 나는 말을 이었다.

“자료를 보니 그때도 망치를 거꾸로 잡고 때렸다고 하더군요. 상대가 많이 다칠까 두려워 그랬을 겁니다.”

나는 정병선에게 한 발 다가가며 말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사람을 죽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스스로를 잃었습니다. 거울을 보세요.”

정병선의 고개가 스르르 돌아가 장식장 창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다. 붉게 충혈된 눈. 피가 튄 자신의 얼굴. 정병선의 골프채가 힘없이 떨어진다. 유리에 비친 모습을 보며 한쪽 손으로 자기 얼굴을 만지는 정병선의 몸이 떨린다.

나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돌아오세요. 너무 늦었지만 이제 당신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골프채 이리 주세요.”

툭.

내 말에 골프채를 바닥에 툭 떨군 정병선이 얼굴을 감싸며 주저앉아 울부짖는다.

“으아아아아!!!!!!!”

나는 천천히 정병선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얼굴을 감싸고 울부짖던 정병선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바뀐다.

주저앉았던 그가 쏜살같이 내 쪽으로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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