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64화 (163/328)

살인의 기억 164화

13. Spree killer(연속살인자)(13)

수사과의 배려로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누나와 면회를 가진 정병선은 그 후로 무척 협조적인 태도로 취조에 임했다.

그는 처음 화가 나 건강원 사장을 찌른 후 그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한다. 힘들기만 했던 자신의 인생의 끝이 결국 나락이라고 생각하니 문득 세상이 원망스러워졌고, 그 원망은 실질적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대한 분노의 칼로 변했다.

어차피 사람을 죽였으니 자신은 평생 살인자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밖에서 담배를 태우고 들어오던 부동산 사장을 보았고, 하나를 죽이나 둘을 죽이나 같은 살인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평소 워낙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이라 본래부터 미워했기에 쫓아가 죽였다고 한다.

두 사람을 찌른 후 바로 도주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망간 게 아닙니다. 룸살롱 사장을 죽이고 싶어서 간 겁니다.’

경찰에 쫓기고 있다는 걸 몰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말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뉴스를 보면 압박감이 심해질 것 같아 TV도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차피 지옥에 갈 테니 빨리 내 복수를 끝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차피 뉴스를 봤다고 해도 관련 소식은 못 봤을 것이다. 실시간 추적을 해야 했기에 엠바고를 걸어둔 사건이라 뉴스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님을 왜 죽였냐 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입으로는 부처를 찾으며 심신을 수양하겠다는 자가, 뒤에서는 저에게 근본 없는 자라며 밖에서 무슨 죄를 짓고 도망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결국 제가 절에서 쫓겨난 것도 그들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또다시 차가운 세상 속에 던져져야 했습니다. 부처님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까지 사촌 형을 죽이려 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수사과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병선과 정여선의 면담에서 사촌 형과 큰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충분히 들었기 때문이다.

정병선의 협조적인 태도로 진술 녹취 및 녹화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평화로운 경찰서 내부와 달리 외부는 난장판이었다. 장영훈 본부장님이 정병선 사건에 대한 보도제한을 해제한 직후, 대대적인 뉴스가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비단 대한민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나 살인사건은 항상 존재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왜? 정병선이 무자비한 살인범이라서? 큰 원한도 아닌 일로 사람을 죽이고 다녀서? 첫 살인이 일어난 현장에서 바로 출동한 경찰들이 실시간으로 추적한 사건이라서?

아니다.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다름 아닌 한 기자의 기사 때문이었다. 얼마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지하철 괴담 사건을 해결한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가 이번 일도 해결했다는 뉴스.

한 시민이 중대범죄 수사과가 아직 임시 운영 중이란 것을 발견하고 SNS에 글을 올렸고 청와대 게시판에 수사과를 정식 운영부서로 변경할 것을 건의하는 글에 무려 200만 명이 서명을 해버렸다.

결국 정병선을 검찰로 송치한 당일, 강혁 아저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범죄 수사과의 정식 출범을 알렸다.

그날 저녁, 포장마차.

강혁 아저씨가 콧노래를 부르며 소주를 퍼마시고 있다.

“킬킬킬, 킬킬킬킬.”

변태 같은 웃음을 흘리며 소주로 병나발을 부는 아저씨. 저렇게 좋으실까?

하긴 자신이 신설한 부서가 실적을 올려 정식 운영으로 바뀌었으니 기분이 좋을 만도 하다. 그것도 경찰 내부에서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아 청와대가 정식 부서로 인정하라는 압력을 행사할 정도가 되니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나는 아저씨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그만 좀 웃어요, 옆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잖아요.”

아저씨는 병을 들고 옆에 있던 젊은 여성들 테이블을 보았다. 하도 이상하게 웃어대고 있으니 아까 전부터 이상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두 여성.

아저씨는 소주를 슬쩍 들어 보이며 양해를 구한다.

“미안합니다, 제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두 여성은 말없이 다시 자기들끼리 대화를 시작한다.

그때, 포장마차 주인아저씨가 또 서비스를 내주신다. 이번엔 폭탄 계란찜이다. 뚝배기 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계란이 마치 노란 용암 같아 보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찜을 테이블에 올린 아저씨가 강혁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뉴스 잘 봤습니다.”

주인아저씨는 강혁 아저씨가 경찰 고위 간부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 포장마차에 보호비를 뜯어내려던 조직 폭력배를 쫓아버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마 아저씨가 경찰청장이란 건 몰랐던 모양이다. 저 무표정한 아저씨 얼굴에 약간의 놀라움이 깃든 것을 보니.

강혁 아저씨는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놓으며 말했다.

“내가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서. 한 잔만 같이 들고 가시죠?”

주인아저씨 장사해야 되는데 뭐 하는 겁니까, 지금. 하, 한숨이 나온다. 이 아저씨 벌써 취한 건가? 포장마차 주인아저씨가 의자와 나를 번갈아 보다 헛기침을 한다.

“그럼 딱 한 잔만.”

뭐? 진짜 앉는다고? 아저씨 장사 안 해요? 강혁 아저씨는 더 기분이 좋아져 소주를 글라스에 콸콸 부어 내민다. 그거 마시면 저 아저씨 오늘 장사 못 할 것 같은데. 위험한 느낌이 든 나는 얼른 작은 소주잔에 소주를 부어 먼저 내민다.

“자, 이거 드세요, 사장님.”

강혁 아저씨는 또 킬킬대며 자기가 부은 컵을 든다.

“자, 건배.”

후, 그래도 아저씨가 완전 눈 돌아간 건 아니구나. 자기 먹을 술이었나 보다. 셋이 건배를 하고 시원한 소주를 들이켠다.

강혁 아저씨가 계란찜을 맛본 뒤 주인아저씨에게 엄지를 든다.

“주인장 음식 진짜 잘한다니까. 내가 이래서 여길 못 끊지.”

“…….”

과묵한 주인아저씨는 말이 없다. 대신 날 빤히 보는 아저씨.

“왜 그렇게 보세요, 사장님?”

“…….”

사장님이 날 한참 보더니 말했다.

“지하철 괴담 해결한 형사. 자네 맞지?”

“…….”

아저씨도 기사를 봤나 보다. 나 대신 강혁 아저씨가 말했다.

“쉬, 쉬. 잠복근무 밥 먹듯이 하는 놈 얼굴이 알려지면 안 되니까.”

그게 뭐야, 그냥 아니라고 하면 되지. 그렇게 말하면 인정하는 꼴이 되잖아요, 아우.

주인아저씨가 과묵한 얼굴로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난다.

“그럼 서비스를 더 줘야지.”

아저씨는 말없이 앞치마를 툭툭 털며 또 요리를 하러 가신다.

강혁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캬, 저 양반 참 마음에 들어. 네 덕분에 안줏값 덜 들어 좋다, 이놈아.”

“그만 좀 하세요. 나 누가 내 칭찬하는 거 불편해요.”

“그럼 욕을 해주랴?”

“그건 더 싫고.”

“킥킥, 선택지가 둘뿐이니 그럼 칭찬받아라, 이놈아.”

“…….”

젠장, 말로 아저씨를 이기려 든 내가 미친놈이지.

아저씨가 다리를 척 꼬며 말했다.

“자, 이제 본론. 청와대에서 요청이 들어왔다.”

“알아요, 우리 부서 정식 출범한다는 거 온 세상이 다 아는데 뭘 또.”

“그거 말고 인마. 내가 바보로 보이냐, 다 아는 거 또 떠들게.”

“뭐 또 있어요?”

아저씨가 씩 웃으며 내 이마를 툭 때린다.

“중대범죄 수사과가 어디 소속이냐?”

“국가수사본부요.”

“그렇지. 팀원이 무려 경감 하나에 경위 둘인 화려한 팀이지.”

음, 그런가?

하긴 일반 강력계에 비해 멤버 계급이 화려하긴 하다. 보통 경감을 팀장으로 두고 경위 하나에 경장이나 경사가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 수사과는 막내 계급이 경위이니까.

강혁 아저씨가 갑자기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그런데 이게 참, 폼이 안 나.”

멤버 계급이 이렇게 화려한데 무슨 폼이 안 나요? 뭔 소리인가 귀를 기울였던 나는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물었다. 멤버 계급은 화려한데 폼이 안 난다는 말은 그들의 수장인 내 계급이 문제란 뜻이니까.

“설마 저 또 진급해요? 에이, 아니죠? 저 아직 연차 못 채웠는데 설마.”

“킬킬.”

경정 진급한 지 1년이 안 됐다. 적어도 2년 이상이 지나야 다음 계급을 노릴 수 있다. 그런데 아저씨의 능글맞은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설마 하는 마음이 맞는 모양이다.

아저씨가 병나발을 시원하게 분 후 소매로 입을 닦는다.

“이번엔 내가 범인 아니니까 그렇게 보지 마라. 청와대야, 청와대.”

나는 아저씨를 노려보며 말했다.

“진짜 저 빨리 은퇴 못 시켜서 안달 나신 겁니까?”

“킬킬, 생각해 보니까 이 자식이 나보다 더 빨리 진급하고 있네? 이거 배가 아파서 어째?”

배 아프다는 사람 표정이 왜 그렇게 좋아 보이냐고요. 강혁 아저씨가 내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나는 소주병을 노려보며 말했다.

“입 대고 마신 병으로 따라주지 마요.”

“뭐 어때, 인마. 까다롭기는.”

“까다로운 게 아니라 더러워서 그런 겁니다. 이는 닦고 다니세요?”

“당연하지, 인마! 나 하루에 두 번이나 닦아!”

“으엑! 세 번 안 닦고?”

“넌 세 번 닦냐?”

“당연하죠!”

“허! 형사가 하루에 이를 세 번이나 닦을 시간이 있어? 이거 빠져 가지고. 사건을 더 줘서 한 번도 못 닦게 만들어줘?”

“…….”

제길, 계급이 깡패구나.

내가 답을 하지 못하자 강혁 아저씨는 승리자의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나의 승리. 자, 이제 이번 사건 해결한 썰이나 풀어봐.”

“아, 뭐요. 뭐가 궁금해서 그래요?”

“다 궁금하다, 이놈아. 어디 가서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냐?”

“하…… 사람 죽은 이야기가 뭐 재미있다고.”

“인마, 내가 언제 사람 죽은 이야기 해달래? 범인 잡는 과정 묻는 거지.”

나는 자꾸 조르는 강혁 아저씨를 째려보다 할 수 없이 검거 과정과 내가 읽었던 기억들과 그것을 토대로 추리해 나아간 과정들을 설명했다.

아저씨는 말없이 소주를 마시며 빙긋빙긋 웃고 있다.

처음에는 말하기 싫었다. 아저씨가 날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하는 내내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저씨 표정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문득 내 안에 이 장면을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는 점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때였을 것이다.

학교 학예회가 있었던 날. 그날 저녁에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빠 손을 잡고 내 앞을 걸어가는 우리 반 여자아이가 재잘거리며 학예회에서 자기가 뭘 했는지 자랑했었다. 아이 아빠는 신이 나서 조잘거리는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아이고, 내 딸. 왜 이렇게 자랑스러워? 내 딸 어디 가서 자랑을 못 해 이 아빠가 몸살이 나겠네. 어떡하면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사랑해, 딸.’

나는 그 장면이 너무 부러웠다. 내게도 저렇게 자랑할 수 있는 부모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자랑을 고깝게 생각하지 않고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보아주실 부모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는 이미 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것을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사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날 바라보는 강혁 아저씨의 눈빛. 그것은 그때 내가 봤던 여학생 아빠의 눈빛과 너무나 닮았다.

나는 문득 말을 멈추고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안주를 집어 먹다 내 말이 끊기자 멀뚱한 눈으로 날 보는 아저씨.

“뭐야, 아직 안 끝났잖아?”

“…….”

“계속 안 해?”

“하하…….”

“왜 웃고 지랄이냐, 말을 하라니까? 어?”

“그냥 웃음이 나와서, 하하.”

“어? 이놈이 갑자기 왜 이래? 야 인마. 나 오늘 궁금해서 잠 못 자는 꼴 보고 싶으냐? 당장 말해!”

“하하, 수사 보고서 보시면 되잖아요.”

“인마! 네 놈이 수사 보고서를 다 구라로 쓰는데 그거 보고 궁금증이 해소가 되냐! 당장 말하지 못할까!”

“푸하하!!! 구라로 쓰라고 가르쳐 준 사람이 아저씨면서!”

포장마차에서 보이는 뿌연 서울의 밤하늘.

언제나 차갑기만 했던 서울의 공기는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부터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저 지금껏 내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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