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65화
14. 목격자(1)
정병선 사건은 기자들에 의해 ‘살인기계’ 사건으로 명명되었다. 정병선의 어린 시절을 재조명하는 방송이 잇따르고, 어린 시절 불우했던 과거가 한 인간을 어디까지 타락시킬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방송들.
나는 그러한 여론의 움직임을 보고 한편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살인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사람을 죽이는 살인기계가 되었던 이유에 대해 조명했다면, 단순히 그를 비난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과거를 돌아보며 소외 계급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 반성과 개선안도 함께 논의되었다면 어떨까 싶다.
하지만 그건 형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아니니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생각은 없다.
총경 임명식을 치르고, 한동안 사건 배당이 없다.
워낙 여론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어, 여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지시.
사실 정병선은 누나를 만난 후 워낙 협조적이었기에 더 캐낼 것도 없어 보였다. 의미 없는 진술을 반복하라는 지시에 불복한 나는 검찰에 송치를 결정했고, 나머지는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다.
장영훈 본부장님은 연일 경찰청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피해 다닐 것을 당부했다.
은퇴한 형사 중에는 카메라 샤워를 받는 분도 계시지만 현역 형사의 얼굴이 알려지는 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총경임에도 불구하고 일선에서 사건을 지휘하니 더하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정병선을 검찰 송치 후에 한 달이나 지났지만 아직 새 사건이 배당되지 않고 있다.
관우가 사무실 의자에 눕듯이 앉아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한다.
“아함, 심심해 죽겠네. 그렇다고 사건 나라고 고사를 지낼 수도 없고. 이게 도대체 며칠째 놀고 있는 거야?”
관우가 저런 소리를 할 때면 항상 눈치를 주던 연주도 이번에는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쉬는 것도 적당히 쉬어야 좋지. 이건 너무하네.”
오진규가 커피를 들고 창문 블라인드를 손가락으로 슬쩍 들어 보인 후 모니터를 보고 있는 내게 말했다.
“기자들이 정말 하이에나 같군요. 사건을 검찰로 넘긴 게 한 달 전인데 아직도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오진규의 말을 듣고 일어나 블라인드를 들추어 보니, 아직도 서른 명이 넘는 기자들이 경찰청 앞에 대기 중인 것이 보인다.
지나는 경찰들을 일일이 붙잡고 혹시 중대범죄 수사과 소속이냐 묻고 다닌다. 물론 관우나 연주에게도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두 녀석이 수사과 소속이라고 할 리도 없는데 끈질기기 그지없는 기자들이다.
“후,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요.”
최대한 바깥 외출을 자제하라는 지시 때문에 꼼짝없이 사무실에 갇혀 있어 그런지 오진규도 꽤 무료한 얼굴이다. 커피를 든 오진규는 사무실 내에 일을 하고 있는 자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 후 TV를 틀었다.
지난 한 달간 오진규를 지켜본 결과, 그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 측면에서 방점을 찍은 인물로 보인다. 저러니 관우나 연주도 좋아하는 것이겠지.
오진규가 튼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BC 뉴스입니다. 어제 오후 02시 30분. 시흥시 정왕동 군자천 부근에서 일주일 전 실종된 10세 우 모 양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우 모 양이 납치된 것으로 예상되는 일주일 전에 함께 납치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8세 이 모 양의 행방을 추적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단서가 없어 지지부진한 수사를 보이고 있어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오진규는 뉴스를 보다 말고 TV를 끈다. 나는 무슨 사건인가 싶어 더 보고 싶었지만 오진규의 표정을 보니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진규는 수사1과가 존재하던 시절, 어린이 납치사건을 수사 중 인질인 어린이가 사망하는 사고를 겪었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어린이 납치에 관한 뉴스를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눈치 빠른 연주와 관우도 입을 닫고 딴청을 부린다.
오진규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잠시 담배 하나 태우고 오겠습니다.”
“아, 그런 거 일일이 말씀하지 마시고 편하게 다녀오세요.”
“감사합니다, 과장님.”
오진규의 표정이 좋지 않다. 매우 거북해 보이는 표정. 그에게 어린이 납치사건은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모양이다.
오늘따라 어깨를 늘어뜨리고 걷는 오진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때 품 안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한 번만 울리는 걸 보니 문자인 모양이다.
확인해 보니 장영훈 본부장님의 문자이다.
[잠깐 내 방으로 와.]
사건 배당이었다면 자리 전화가 울렸을 것이다. 보통 수사기획조정실로 가 새 사건 자료를 받으라고 하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문자다. 개인적인 볼일인 모양이다.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둘러대고 슬쩍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본부장실로 가니, 장영훈 본부장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어, 왔냐?”
“충성.”
“경례 좀 하지 말라니까, 이놈아. 거리감 느껴지게. 쯧, 앉아.”
“예.”
자리에 앉아 정자세를 하는 나. 강혁 아저씨가 다음 대 청장으로 낙점한 사람이라 생각하니 저절로 허리가 펴진다. 물론 본인은 모르는 이야기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리 머뭇거리는 걸까? 본부장님은 날 앉혀놓고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괜히 검지와 엄지를 비비던 본부장님이 말했다.
“커피?”
“아까 마셨습니다.”
“음.”
또 말이 없다. 무엇이 국가수사본부장을 저리 어렵게 만드는 걸까? 본부장님은 한참 말이 없다가 어렵사리 입을 연다.
“도경아.”
“예, 본부장님.”
“뉴스 봤냐?”
“어떤 뉴스 말씀입니까?”
“애들 납치 살인 뉴스.”
“…….”
설마 그걸 우리 쪽에 주려고? 우리 팀에 오진규가 있다는 걸 잊으신 건가? 본부장님은 내 표정을 보고 실소를 지었다.
“표정 관리 좀 해라, 인마.”
“설마 그 사건이 저희 쪽으로 배당되는 겁니까?”
본부장님이 한숨을 쉰다. 그도 오진규의 경력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반대했다. 진규 녀석이 맡기에는 아직 회복할 시간이 모자랐으니.”
납치살인이다. 게다가 아직 한 아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수사 중에 또다시 아이가 죽는다면? 그땐 정말 오진규가 경찰 옷을 벗을지도 모른다.
“꼭 저희가 해야 됩니까?”
본부장님이 날 지그시 보며 웃는다.
“그 질문. 나도 그대로 했었지.”
“누구에게 하셨…….”
나는 되묻다 말을 멈췄다. 장영훈 본부장님께 지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현 경찰청장인 강혁 아저씨가 유일하니까.
“청장님 지시입니까?”
“음.”
이해할 수 없는 지시다. 강혁 아저씨는 누구보다 오진규에 대해 잘 안다. 그런데 따뜻하기만 한 아저씨가 왜 이리 혹독한 지시를 내린 걸까?
내 표정을 바라보던 본부장님이 말씀하셨다.
“청장님께 방금 네 질문과 같은 질문을 드렸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강혁 아저씨가 뭐라고 했을까? 본부장님이 날 지그시 보며 강혁 아저씨 흉내를 낸다.
“넌 도경이가 어떤 나쁜 사건의 기억 때문에 성장을 멈추었을 때, 그대로 둘 거냐? 오진규를 이대로 두면 그놈은 평생 납치사건은 손대지 못하는 반쪽 형사로 남는다. 극복하게 해야 더 성장하는 거다.”
“…….”
옳은 말이다. 하지만 꼭 지금이어야 했나? 조금 더 시간을 주어도 괜찮을 텐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에게 선택권이 있습니까?”
“있다.”
“…….”
“하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을 거야.”
응? 왜 거절할 명분이 없다는 거지? 납치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팀원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분명한 명분이 있는데.
본부장님이 안타까운 얼굴로 시간을 본다.
“40분 전에 납치되었던 또 다른 아이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두 번째 아이마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그렇다면…….”
“그래, 납치사건이 아니라, 살인사건이다.”
납치된 아이를 구출하는 임무가 아니라, 아이를 납치해 죽인 살인범을 찾는 임무. 이건 인질을 살려야 하는 임무가 아니다.
본부장님이 말했다.
“이래도 거절이냐?”
“……맡겠습니다.”
“좋아, 청장님께 보고하마. 수사기획조정실로 애들 보내. 관할서에는 이미 언질이 들어갔으니 곧 브리핑 자료가 도착할 거다.”
“관할서에서 가만있었습니까? 안 주려고 했을 것 같은데.”
본부장님이 웃는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또 국가수사본부 이름으로 찍어 누르신 겁니까?”
본부장님이 손가락을 튕기며 검지를 까딱인다.
“아니,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더라. 중대범죄 수사과 이름이 나오는 순간 관할서가 두말 않고 물러나더군.”
“…….”
이게 언론의 힘인가? 중대범죄 수사과가 굵직한 사건을 몇 건이나 해결했다는 뉴스를 관할서 형사들도 본 모양이다. 본부장님이 웃음기를 지우고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이번 사건은 시작부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이상한 점? 이상하지 않은 살인사건이란 게 있나?
“무엇이 이상합니까?”
본부장님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사건에 목격자가 있어.”
응? 목격자가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그런데 그게 뭐가 이상합니까? 목격자가 범인 얼굴을 못 봤답니까?”
본부장님이 소파 팔걸이에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18세 여고생이 목격자다. 범인 얼굴도 봤다.”
그럼 한결 더 쉬워지는 거 아닌가? 가만, 목격자가 범인 얼굴까지 봤는데 관할서 형사들이 일주일이나 못 잡았다고? 그게 말이 돼? 관할서 형사들은 무척 노련하고 경험 많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못 잡았다면 이유가 있는 거다.
내가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리자, 본부장님이 말했다.
“자세한 건 직접 만나서 확인해. 내가 백날 말해줘 봐야 와닿지 않을 테니. 빨리 가 봐라. 지금도 살인범이 다음 납치할 아이들을 물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 번 더 질문을 하려고 하다 어차피 보고서를 확인하면 될 일이라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연주, 관우.”
심심함에 죽어가던 두 사람이 얼굴을 든다. 오진규는 아직 담배를 태우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사건이다, 수사기획조정실에 가서 사건 자료 받아와.”
사건 배당이 없어 무료함을 느꼈던 두 사람이지만 우리가 움직인다는 건 또 누군가가 죽었다는 뜻이라 인상을 찌푸린다. 연주가 물었다.
“무슨 사건인데요, 과장님?”
나는 말 없이 꺼져 있는 TV를 눈짓하고 내 자리로 돌아간다. 연주는 내 신호가 무슨 의미인지 깨닫고 한숨을 쉰다.
“하, 관우야…… 가서 오 선배님 모시고 와.”
“……후, 미치겠네.”
녀석이 마지못해 일어나는 걸 본 나는 관우가 그를 데리고 오는 도중 어떤 사건인지에 대해 대략적 설명을 할 것이라 예상하고 미리 말했다.
“관우야.”
“예, 과장님.”
“좀 전에 납치됐던 다른 한 아이 시신이 발견됐다.”
관우 눈이 커진다.
“바, 방금 발견된 겁니까? 뉴스 없던데.”
“몇 분 전이야.”
침을 꿀꺽 삼키는 관우. 그러다 뭔가 생각났는지 묻는다.
“그럼 사건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납치사건이 아니라, 살인사건이다. 그러니 오 선배님께도 잘 설명드리고.”
오진규를 데리러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관우가 얼른 달려간다.
“금방 모셔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