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69화
14. 목격자(5)
안양시 만안구 풍도 치안센터.
나는 목격자와 피해자 유가족을 만나러 가기 전에 오진규에게 치안센터에 수사본부를 설치하라는 지시를 했었다.
경력이 오래된 만큼 행정업무 처리가 빠른 오진규는 이미 수사본부 설치를 완료하고 날 기다리고 있다.
두 아이 중 한 아이의 죽음이 이미 세상에 알려진 마당이라 비밀스럽게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구경을 하러 나온 사람들, 취재를 온 기자들이 치안센터 입구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순경에게 신분증을 보여주자, 총경 계급을 보고 놀란 순경이 경례를 한다.
동시에 출입하는 이들을 살피고 있던 기자들의 마이크 열 대가 동시에 내 턱을 찌를 듯 내밀어지며 질문 공세가 시작된다.
“국가수사본부 소속이십니까?”
“중대범죄 수사과 소속이 맞습니까? 이번 수사를 맡은 책임자를 알고 계십니까?”
“국민들이 궁금해합니다, 어떤 분이 수사를 맡으셨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음? 그거 난데. 나는 기자들을 힐끔 보았다. 제발 뭐 하나라도 건지고 가게 해달라는 간절한 눈빛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차갑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일선 형사입니다. 제 얼굴이 언론에 나가게 하는 방송사 관계자분은 경찰서 취조실에서 만나게 될 겁니다.”
아우성치던 기자들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나는 내 코앞에 있는 카메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카메라 내리세요.”
내 기세에 눌린 카메라 감독이 슬며시 앵글을 내린다.
강혁 아저씨가 그랬다. 기자는 귀찮은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차갑게 대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언론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멀쩡한 수사를 엎어지게 만들기도 하고, 도저히 불가능한 검거 작전을 가능하게도 만든다고 했다. 채찍을 줬으면 당근을 줄 차례이다.
나는 기자들을 보며 말했다.
“매일 아침 열 시에 국가수사본부에서 수사 진행 상황을 공유드릴 겁니다. 저쪽 주차장에 회견장을 마련해 두겠습니다.”
기자들이 재빨리 핸드폰으로 본사에 사실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것도 뉴스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 각 방송사마다 급보로 자막을 깔겠지. 그들 입장에서는 매우 의외일 것이다. 어린이 납치사건의 경우 절대 공개수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매일 열 시에 수사 진행 상황의 브리핑을 하겠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뉴스이다.
물론 이것은 두 아이 모두 이미 살해되었기에 할 수 있는 조치이다. 만약 한 아이라도 살아 있었다면 범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개수사 전환은 불가하다.
물론 이것은 내 단독 결정이 아니다. 장영훈 본부장님은 방송사 상층부에 엠바고 협조 요청을 하며, 그들을 달래기 위해 매일 기사를 주는 조건을 제시했다.
또한 기자 브리핑은 경찰청 홍보과가 직접 맡을 예정이라, 수사본부 인력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또 카메라를 드는 기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언론에 형사 얼굴이 노출되지 않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카메라를 들었던 기자가 슬그머니 앵글을 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말씀하시는 분은 국가수사본부 소속이십니까?”
“…….”
내 소속을 알아야 정확한 뉴스를 보도할 수 있기에 묻는 것이겠지만, 내가 인정하는 순간 내 얼굴이 노출된다. 나는 등을 돌리며 말했다.
“저는 경찰청 소속입니다. 그럼 이만.”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며 날 따라오려 했지만 수사본부를 지키는 순경들에게 제지된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오진규가 팔짱을 끼고 날 지켜보고 있다가 웃는다.
“기자들 겁먹겠습니다, 과장님. 표정 좀 푸시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오진규의 말이 이해가 된다. 나는 긴장 때문인지 잔뜩 굳은 얼굴이 되어 있다. 아무래도 난 기자 상대하는 쪽의 재주는 없는 모양이다.
마른세수를 하며 긴장한 얼굴 근육을 푼 나는 오진규에게 현 상황을 물었다.
“수사본부 상황 보고해 주세요.”
오진규가 주변을 둘러보라는 듯 고개를 돌린다. 수많은 인력들이 간이 테이블에 자료들을 올리고, PC를 세팅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본청에서 60명의 형사를 지원해 줬습니다. 아무래도 어린이 살인사건이다 보니, 빨리 잡아야 하니까요.”
“60명이라.”
“예, 실종 장소 근처의 전과자들 리스트를 뽑고 있습니다. 총 211명이고, 그중 성범죄 전과자는 33명입니다.”
“전원 만나보고 알리바이 확인하세요.”
“이미 지시했습니다.”
역시 오진규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진규가 물었다.
“그런데 과장님.”
“예.”
“살해된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자기들도 돕겠다고 나섰는데 어쩔까요?”
“…….”
“시민단체와 주민들도 나서겠다며 저마다 연락을 해오고 있습니다만.”
두 번째 아이도 사망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아이를 찾는 작업에 한 손 보태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다. 모두 선한 마음으로 도와준다 나서는 것이겠지만 그들에게 이미 죽은 아이를 찾으라 연극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중히 거절해 주세요.”
오진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예, 일단 범인이 두 아이 중 한 명을 죽인 살인범이란 부분을 들어 위험성을 인지시키고 철수하게 하겠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나선 분들이니 실례하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써주세요.”
“예, 과장님.”
“우리 사무실은 어디입니까?”
“저쪽 제일 끝 방입니다.”
“가 보죠.”
오진규가 알려준 방은 문 두 개가 양쪽으로 열리는 방이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빨간 딱지가 붙은 방. 이 방은 치안센터에 설치된 수사본부의 컨트롤 센터라 형사들도 허가 없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두었다는 오진규의 설명이 이어진다.
문을 열어보니, 본래 치안센터의 배드민턴장으로 썼던 공간이 보인다. 작은 코트 두 개에 설치되었던 네트는 모두 철거하고, 가운데 책상 네 개가 마주보고 있다.
연주는 사건 현장의 사진들을 화이트보드에 붙이며, 사건 진행 순서를 정리 중이고, 관우는 여전히 PC 앞에 앉아 있다. 녀석의 옆에 커다란 박스 다섯 개가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이미 사건 지역 CCTV 하드를 모조리 털어온 모양이다.
내가 들어오자 하던 일을 멈추는 팀원들.
나는 오진규가 안내해 준 자리에 앉은 후 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격자가 있다. 하지만 안면인식장애 환자라 범인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진 못한다.”
연주는 이미 그쪽엔 기대가 없었는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그럼 사람 어떻게 구분한대요? 부모님도 못 알아볼 텐데.”
“목소리로 구분한다고 하네.”
“하, 안됐네요. 자료 보니 아직 고등학생이던데. 이름이 주민지였나?”
“그래.”
나는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오 선배님은 아까 지시한 대로 전과자 전수 조사 바랍니다. 제일 오래 걸리는 작업이니 지원 온 형사들 전원 투입해서 빠르게 파악 부탁합니다.”
“예, 과장님.”
나는 연주를 보며 말했다.
“연주는 이 동네 재성 교회라는 곳에서 신도 명단 받아오고, 전과자 데이터 비교해서 신도 중에 조사해 볼 필요가 있는 사람 추려.”
연주가 메모하며 말했다.
“아이들이 교회에 다녔군요?”
“음, 엄마와 같이 다녔다. 두 아이 모두 같은 교회에 다녔고.”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관우를 바라보자, 녀석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애들 동선을 역추적하고 있습니다. 시신이 발견된 시흥시 정왕동 군자천과 수원 호매실 IC 인근 야산 출입구에 설치된 모든 CCTV도 수거해 왔습니다. 의심 차량이 발견되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음, 좋아.”
나는 다시 오진규에게 말했다.
“지원 온 형사 중에 여섯 명만 뽑아서 목격자 보호 프로그램 돌려주세요. 일반 순경으로 불안해서.”
오진규가 무슨 말이냐는 듯 날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린다.
“범인과 서로 목격한 겁니까?”
“예.”
오진규가 코를 찡그리다 이번엔 미간을 찌푸린다.
“그 아이, 안면인식장애라고 들었는데.”
나는 답을 하지 않았지만 오진규는 금세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범인이 그걸 모르겠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나는 손뼉을 한번 치고 일어나 말했다.
“밖에 기자들 봐서 알겠지만 여론 이목이 집중된 사건입니다. 수사 시에 여론은 신경 쓸 필요 없지만. 이 방의 인력들이 중대범죄 수사과 소속이란 것이 밝혀지면 안 됩니다. 지원 나온 형사들에게도 절대 비밀 유지할 수 있도록 지시해 주세요.”
나는 지시를 마치고, 방을 나섰다. 내 지시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함께 나온 오진규가 물었다.
“과장님은 어떻게 움직이시겠습니까?”
“일단 수사 총괄하면서 단독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위험한 상황이 있으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나는 오진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혼자 움직이지 말라 말릴 만도 한데, 이 사람은 얼마 전 정병선 사건 이후로 내게 철저한 믿음을 가지게 된 듯하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까 말한 주민지 보호 건만 잘 신경 써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나는 미리 마련해 둔 뒷문으로 빠져나와 아이들이 납치된 현장으로 향했다. 기자들을 피해 조용히 이동하고 있어, 누구도 내가 형사라는 걸 모르는 상황. 동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아 그런지 행인들이 적고 조용하다.
첫 번째 살해된 아이 우현지.
좀 전에 방문했던 아이 집 앞에 선 뒤 주변을 보았다.
매우 평범한 주택가이다. 양쪽에 빌라와 단독주택 등이 늘어서 있고 전봇대들이 간간이 설치되어 있는 골목. 골목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꽤 큰 도로다. 차 두 대가 비켜 지나갈 수 있는 넓은 도로이다.
나는 천천히 걸어 아이가 아빠 생일 케이크를 사러 갔다던 제과점으로 향했다.
집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거리. 열 살 아이의 걸음을 감안해도 왕복 20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이다. 제과점 방향으로 걷는 도중 우측에 놀이터가 보인다.
시소, 미끄럼틀과 정글짐이 보인다. 동네 중간에 있는 평범한 놀이터이다. 어르신들을 위한 간단한 운동기구가 있고, 작은 정자에 평상이 있으며, 할머니 몇 분이 앉아 계신 것이 보인다.
두 번째 살해된 연정이는 여기서 놀다 지나가는 현지를 보고 달려왔을 것이다. 평소 친한 동네 언니가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를 들고 가니 부러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현지는 연정이에게 케이크를 보여주며 자기 용돈으로 아빠 생일 선물을 샀다고 자랑했을 것이다.
연정이는 그저 케이크를 먹을 언니가 부러웠을 수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자신도 부모님 생일이 되면 용돈을 모아 케이크를 선물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열 살과 여덟 살.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아이들.
겪었던 것보다 겪어야 할 경험이 훨씬 많은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둘이나 죽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 의해.
머릿속에 어떤 지옥이 펼쳐져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악마에 의해.
나는 제과점을 노려보다 다시 놀이터를 지났고, 아이들이 납치된 것으로 보이는 문구점 앞에 섰다.
관우 말처럼 안쪽만 찍고 있는 문구점 앞 CCTV. 저 멀리 보이는 전봇대에 CCTV가 보이긴 하지만 빌라 사이 골목으로 빠져나가면 충분히 사각지대만 골라 탈출할 수 있는 구조이다.
붉은 차양이 있는 문구점.
아이들을 유혹하는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가득 진열되어 있는 문구점을 노려보던 내 눈에 신나게 케이크를 사서 뛰는 어린 두 소녀가 보이는 듯하다. 아이 잃은 부모들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문구점을 노려보던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주먹을 쥐었다.
‘보여라. 나는 이미 충분히 악의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