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71화 (170/328)

살인의 기억 171화

14. 목격자(7)

풍도 치안센터 임시 수사본부에 돌아온 나는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연주를 찾았다. 하지만 사무실에는 CCTV 분석을 하던 관우만 앉아 있다.

“연주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던 관우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재성교회 갔습니다, 아까 지시하셨던 교인 명단 받으러 가서 아직 안 왔습니다.”

제길, 마음이 급하다.

“오 선배님은?”

관우가 왜 그러냐는 얼굴로 물었다.

“아까 지원 온 형사들과 인근 거주 전과자 만나러 가라고 지시하셨는데.”

아, 그랬지. 반나절도 안 지났는데 벌써 일이 끝났을 리가 없다. 연주 쪽은 몰라도 오진규 쪽은 며칠은 소요될 것이다.

아까 인근에 거주 중인 전과자가 몇이라고 했더라? 총 거주 전과자 211명에, 성범죄 전과자는 33명이라고 했었다.

우리는 동네에 이런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음을 모른다. 매일 얼굴을 보고 사는 앞집 사람도 어떤 전과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사는 것이 우리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이라는 법률 안에서 개인 사생활을 보호한답시고 범죄자 인권을 보호하고 일반 시민을 위험에 노출시킨다.

물론 그렇다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인권은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갱생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 사회구성원으로 선량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중범죄자에 전과가 중첩되어 3범 이상이라면 사회 격리 조치가 되어야 맞는 것이 아닐까?

전과가 쌓인다는 것은 곧 죄를 지어 형을 살고 나와서도 또 범죄를 저질렀단 뜻이다. 그들은 언제 또다시 죄를 저지를지 알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중대범죄는 전과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나는 일단 자리에 앉았지만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다 문득 범인이 처음부터 아이들을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떠올렸다.

이 자식은 적어도 아이들을 살해할 목적으로 접근하는 류의 범인은 아니다. 어떤 우발적인 일이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자신의 비틀린 욕구를 채우다 실수로 아이를 죽였을 확률이 높다.

두 아이 모두가 그랬는지, 혹은 한 아이를 실수로 죽인 후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벌인 일이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실수라는 것을 알게 되어 나머지 한 아이도 비밀엄수를 위해 죽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범인이 또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약속이 될까?

범인에게 어떤 트리거가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어떤 아이가 또 범인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던 트리거를 건드리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어디서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내 불안한 얼굴을 관찰하고 있던 관우가 목 깍지를 끼며 말했다.

“과장님.”

“…….”

“과장님.”

“왜?”

“식사는 하셨어요?”

“…….”

“안 하셨죠?”

“대충.”

“뭐 드셨는데요?”

“…….”

“안 드셨잖아요.”

지금 밥이 문제냐? 관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식사하고 오세요. 잠깐 머리 식히시고. 팀원들이 괜히 있습니까?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 각자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 일은 당장 할 수 없어요.”

관우 녀석 말이 맞다. 내가 지금 조급해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나의 이런 모습이 오히려 수사본부를 방해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관우가 일어나 내 팔을 붙잡는다.

“나가서 식사하고 오세요, 과장님.”

후, 그래 관우 녀석 말 듣자. 연주와 싸울 때는 항상 어린애 같던 관우가 오늘따라 커 보인다. 나는 관우 손을 잡고 일어난 뒤 한숨을 쉬었다.

“그래, 뭐 좀 먹고 올 테니까. 소식 들어오는 거 있으면 바로 보고해.”

“예, 과장님. 맛있고 뜨거운 거 드세요. 속이 따뜻해야 사람이 버팁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콜 할게요.”

나는 관우 어깨를 두드려 주며 물었다.

“넌 뭐 좀 먹었냐?”

관우가 웃으며 자기 자리를 눈짓한다. 언제나 관우와 함께하는 햄버거와 콜라 세트가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항상 미안하다.

외근하는 형사들도 제대로 된 밥을 먹고 다니진 않는다. 보통 빨리 먹고 수사를 하기 위해 국밥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관우처럼 햄버거에 콜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은 없다.

어쩌다 한 번 햄버거를 먹는 건 괜찮지만 관우는 보통 수사 시작부터 끝까지 CCTV와 데이터 분석을 하기 때문에 며칠이나 끼니를 햄버거로 때우는 일이 많다. 이럴 때마다 녀석에게 미안해진다.

“올 때 다른 거 좀 사올 테니 기다려.”

“저 배불러요.”

“뒀다가 나중에 먹으면 되지.”

“하하, 그러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하하.”

관우 어깨를 두드려 준 뒤 밖으로 나왔다. 사실 입맛은 없다. 뭘 먹어야 움직일 힘이 생기니 억지로 먹는 것뿐이다.

정문에 진을 친 기자들 때문에 형사들 출입구로 만들어둔 뒷문으로 나와 멍하게 거리를 보며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도중, 전화가 울린다.

얼른 핸드폰을 보니 연주 번호가 찍혀 있다.

“어, 연주야.”

-과장님, 교회에서 신도 명단 확보했습니다.

“바로 복귀해서 오 선배가 뽑아둔 전과자 명단과 대조해. 겹치는 놈부터 확인한다.”

-네, 바로 복귀합니다. 한 십 분쯤 걸려요.

“그래, 수고했다. 밥은 먹었고?”

-아뇨, 아직.

“나 밥 먹으러 나왔는데 들어갈 때 뭐 사가지고 가마.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치킨?

“하하, 알았다. 그럼 그냥 치킨 사서 바로 갈 테니 같이 먹자.”

-네, 과장님.

이 녀석들이 있어 다행이다. 그래도 두 녀석들, 아니, 이제 오진규까지 셋이다. 내 식구들과 있으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주변을 보며 치킨집을 찾았다.

아이들이 납치된 동네와 가까운 곳에 설치된 임시 수사본부. 나는 동네를 강타한 흉흉한 사건에 인적이 드물어진 길거리를 천천히 걸어 치킨집을 찾았다.

핸드폰으로 위치 검색을 해볼까 하다 나온 김에 바람이나 쐬자는 심정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 나는 현지의 집을 지나쳐 연정이가 납치된 놀이터를 지났다.

현지가 마지막으로 들른 제과점을 지나 몇 미터를 가자 골목 왼쪽에 치킨집 하나가 눈에 띈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은 아니지만 저런 동네 프라이드 치킨집이 더 맛있다.

오래된 치킨집 문을 열자 문에 걸린 방울이 딸랑 소리를 낸다.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하나도 없다. 주방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아주머니가 웃으며 친절하게 말한다.

“어서 오세요, 뭐 드릴까?”

“프라이드 한 마리 주세요.”

“네, 포장?”

“네.”

“몇 분이 드세요?”

“셋이요.”

아주머니가 포스에 주문을 입력하다 날 본다.

“아직 결혼 안 하셨죠?”

“예?”

그런 건 갑자기 왜 물어? 아주머니가 날 훑어보며 말했다.

“애 아빠 같지는 않아서.”

“왜 물으시는지.”

“호호, 별건 아니고. 혹시 애들 먹이려고 사는 거면 한 마리로 다 먹일 수 있는데 성인 셋이면 한 마리론 부족하다고 알려주려고 그래요.”

“아.”

생각해 보니 내가 남을 위해 치킨을 사본 게 처음이구나. 보육원 때는 수녀님이 튀겨주지 않으면 구경도 못 했고, 대학 시절에는 학교 다니며 공부하고, 입에 풀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경찰이 되고 난 후엔 가끔 고시원 부엌에서 혼자 치킨과 맥주를 마신 기억이 전부다. 이렇게 생각하니 알려준 아주머니가 고마워진다.

“아…… 그럼 두 마리 주세요.”

“호호, 어른 셋이구나?”

“예.”

“그럼 양념 하나, 프라이드 하나 어때요?”

“음, 좋습니다.”

“네, 잠깐만 있어요. 금방 튀겨줄게요.”

아주머니가 행주에 손을 닦으며 준비를 하러 간다. 미리 밑준비가 끝난 닭을 튀김기에 넣는 순간 아주머니 전화가 울린다. 가게 전화가 아니라 개인 핸드폰이다.

아주머니는 핸드폰을 어깨에 끼고 튀김을 뒤집으며 전화를 받는다.

“어, 어어. 아냐, 손님 없어. 포장 손님 한 명.”

조용한 가게. 나는 남의 전화를 엿듣는 취미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들린다. 괜히 빤히 보고 있다가 오해받을까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주머니 통화 소리가 들린다.

“응, 말도 마. 동네에 그런 사건 있은 후로 손님이 똑 끊겼어. 어떤 미친놈이 그 어린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했는지 정말. 우리 애도 요즘 밖에 못 나가게 해. 놀이터도 못 가게 하니까 애가 집에서 자꾸만 보채네. 은지 엄마는 어때? 그래? 응, 그렇지? 아이고, 이게 무슨 난리인가 몰라.”

일상적인 소음들. 밖에는 배달 오토바이가 다니는 소리가 나고, 닭이 튀겨지는 소리와 아주머니 수다 소리가 들려온다. 경찰로 살고부터 이런 일상적인 소음들이 오히려 생소하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신음 소리와 구해달라는 소리. 범죄자들의 악의에 찬 고함 소리가 오히려 더 익숙해진 내 삶.

나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일상의 소음 속에 앉아 턱을 괴고 가만히 휴식을 취했다.

그때 아주머니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응? 누구? 동네에 그런 소문이 돌아? 응, 응. 다시 말해봐. 누구라고? 아, 그 사람? 어, 에이. 설마. 그 여편네들이 뭘 안다고 누가 범인인 것 같다고 소문내고 그래? 아줌마들 헛소리하는 게 하루 이틀이야? 뭐? 진짜?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현지가 원래 예뻐서 동네 어른들이 다 귀여워했는데 그 사람만 의심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 응, 누가 보기라도 한 거야? 에이, 그게 뭐야?”

동네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돈다. 각자 자기가 형사라도 된 양 자기 생각을 떠들어대고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바로 들려온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뭐? 전과자라고? 그 양반이? 어머나, 우리 집에도 몇 번 왔는데 진짜 전과자야? 어떻게 알아? 아! 은지 엄마 바깥양반이 시청에서 일하지? 은지 아빠가 그래? 정말? 아이고, 무서워서 어떡해? 그래서? 그 사람 지금 어디 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튀김을 뒤집고 있던 아주머니가 어깨에서 흘러내린 핸드폰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며칠 전부터 안 보인다고?”

아주머니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통화한다.

“어, 어어. 혹시 우리 집에 치킨 사러 오면 내가 알려줄게. 응, 그런데 무섭다. 보통 사람 같았는데 전과자였어? 휴, 이래서 어떻게 마음 편히 살아, 그래. 이웃 사람도 못 믿게 생겼네. 알았어, 나 지금 포장해야 되니까 이따 다시 전화할게. 그래, 그래. 응. 응.”

아주머니가 다 튀긴 닭의 기름을 빼고, 일부를 양념을 끓여둔 프라이팬에 넣어 잘 섞는다. 두 마리를 따로 포장해 날 부르기 위해 고개를 돌린 아주머니. 그녀의 눈앞에 신분증을 내민 내가 서 있다.

“어……?”

아주머니가 신분증과 나를 번갈아 보며 말을 더듬는다.

“방금 그 이야기 자세히 좀 부탁합니다.”

아주머니들 사이의 수다에 진짜 경찰이 관심을 보이니 당황하는 아주머니. 포장된 두 마리 닭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주머니에게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수사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방금 이야기 중에 나온 전과자라는 사람. 이름 아십니까?”

아주머니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이름은 몰라요. 그냥 동네 사람인데.”

하긴 동네에서 인사하며 지내는 사람끼리 이름을 모르고 사는 일은 부지기수다. 아니, 오히려 이름을 아는 쪽이 더 희귀할 것이다. 나는 신분증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뭐든 좋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전부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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