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72화
14. 목격자(8)
동양 스피드 빌라 앞.
아주 오래된 빌라 앞에 선 나는 네 개 동으로 나뉜 빌라촌을 올려 보았다.
풍도 임시 수사본부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 현지와 연정이 집에서는 약 8분 거리의 집이다.
나는 빌라를 노려보며 방금 치킨집 아주머니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름은 몰라요. 얼굴만 아는데.’
‘예전부터 여기 살았습니까?’
‘네, 언제부터 살았는지는 모르고. 그래도 한 오 년 전쯤 처음 봤으니까. 적어도 오 년은 이 동네에 살았다고 봐야죠.’
‘현지와 아는 사이였습니까?’
‘아…… 글쎄요. 자세히 아는 건 없고…… 그 양반이 애들을 참 좋아했어요. 근데 동네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했어요.’
‘왜 그런 겁니까?’
‘술을 자주 마셨거든. 그리고 꼭 여자애만 좋아했어요. 애를 좋아하긴 하는데 여자애들만 좋아했거든요. 변태 같다고 애 엄마들이 아주 싫어했는데 특별히 애들 해코지한 건 없어요.’
‘집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아뇨…… 아! 잠깐만!’
아주머니는 장부를 뒤지다 한 주소를 보여준다.
‘여기, 가끔 그 양반이 우리 집에서 배달시켜 먹거든요. 그날 배달하는 애가 무단결근을 해서 내가 직접 갔는데 여기가 그 양반 집이었어요.’
‘확실합니까?’
‘확실해요, 내가 배달 나가는 일이 잘 없거든. 내가 가게 비우면 누가 닭 튀긴다고. 이날도 바깥양반 오기 전까지 내가 배달 본 거라. 딱 두 번밖에 배달 안 갔어요. 그러니 정확히 기억하죠.’
나는 아주머니가 준 쪽지를 다시 펼쳐보았다. 주소가 적힌 종이와 빌라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한 나는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빌라로 올랐다.
범인은 면식범이다.
범인은 동네 사람이다.
범인은 아이를 좋아한다.
범인은 전과자일 확률이 높다.
모든 프로파일과 맞아떨어지는 놈이다. 쪽지에 적힌 주소는 3동 207호.
나는 눈으로 만약 범인이 도주했을 때의 도주 경로를 파악하며 빌라로 올라갔다.
207호 앞에 서자, 계단 앞에 나란히 보이는 두 집이 보인다. 207호와 208호이다. 철제문에 귀를 대고 안의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208호에서 대화하는 부부들의 소리였다. 207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잠시 문을 노려보다 초인종을 눌렀다.
삐—
잠시 기다려봤지만 아무 답이 없다.
삐—
삐—
삐—
초인종을 계속 눌렀지만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나는 현관문을 쿵쿵 두드리며 소리쳤다.
“안 계십니까?”
아무도 없다. 안에 사람이 있다면 인기척이라도 났을 터인데 집이 싸늘하다.
나는 현관문 주변을 보았다. 쓰레기봉투 두 개가 놓여 있고, 배달 온 신문이 있다. 요즘도 활자 신문을 보는 사람이 있구나. 집주인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바닥에 놓인 신문을 집었다. 신문 뭉텅이는 모두 네 개이다.
‘적어도 4일 이상 집이 비어 있었다.’
보지 않은 신문이 4일이나 쌓여 있다. 집주인은 어디 갔을까?
나는 쓰레기봉투를 노려보았다. 저 안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형사들은 쓰레기를 잘 뒤진다. 범인들이 은폐하려는 증거물들이 버려져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계단에 앉아 쓰레기봉투를 찢었다. 그러자 안에 있던 내용물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분리수거 따위는 하지 않고 사는지 먹다 만 컵라면까지 쏟아졌다.
코를 찌르는 냄새에 인상을 찡그렸지만 일단 뒤져야 한다. 다행히 형사들의 필수품인 라텍스 장갑을 소지하고 있다.
장갑을 끼고 쓰레기봉투를 뒤졌다. 휴지 조각들, 일회용품 껍질과 바나나 껍질 등이 나온다. 일상 쓰레기 더미들을 뒤지던 나는 어느 순간 굳었다. 하얀색 종잇조각이 보였기 때문이다.
분리수거를 하지 않아 종이, 플라스틱을 가리지 않고 흩어진 쓰레기 더미. 그 속에서 나온 찢어진 하얀 종이. 그 종이는 매우 빳빳하고 두꺼운 종이였다. 나는 천천히 종이를 붙잡고 가만히 바라보다 미친 사람처럼 쓰레기를 뒤졌다.
그리고 쓰레기 더미 속에서 몇 장의 찢어진 종잇조각들을 더 발견했다.
바닥에 종잇조각을 놓고 이어 붙인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찢어진 종잇조각 가운데에 동네 제과점 이름이 써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가 들고 있었던 케이크 상자다.’
이게 그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동네 제과점 케이크는 누구나 사 먹을 수 있으니까. 그때 207호 문이 열리며 트레이닝복을 입은 아저씨가 나오다 날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란다.
“으악! 깜짝이야!”
나는 계단에 주저앉아 아저씨를 보았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아저씨는 날 보며 오만상을 찡그리고 삿대질을 한다.
“아니! 당신 누구이길래 남의 집 앞에서! 이게 다 뭐야? 당신 쓰레기는 왜 뒤졌어? 이거 다 치우고 가! 안 치우면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야!”
나는 지금 내 꼴을 보았다. 남의 집 계단 앞에 앉아 쓰레기를 다 쏟아내 뒤지고 있는 모양새. 누가 보아도 이상하게 보인다. 하지만 지금 내 정신은 모조리 케이크 상자에 가 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물었다.
“옆집에 사는 사람 아십니까?”
아저씨는 갑자기 벌떡 일어난 나 때문에 놀라 물러난다.
“뭐, 뭐야?”
“옆집 사는 사람에 대해 아시냐고 물었습니다.”
생각보다 내 덩치가 커서 그런지 아저씨가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난 재빨리 장갑을 벗고 신분증을 꺼내 내밀었다.
“경찰입니다.”
“아?”
내 신분증을 보고 나서야 물러나는 것을 멈춘 아저씨. 내가 벌인 난장판을 다시 한번 본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옆집에 누가 삽니까?”
아저씨가 207호 문을 보며 말했다.
“거기는…… 진 씨가 사는 곳인데.”
“혼자 삽니까?”
“예, 그런 걸로 압니다.”
혼자 사는 남자가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사와 혼자 먹었다. 이상하다. 물론 내가 안 그런다고 남도 안 그러는 건 아니지만 나는 혼자 살며 단 한 번도 커다란 케이크를 사와 혼자 먹어본 기억이 없다.
“진 씨라고 하셨죠? 이름은 모르십니까?”
아저씨가 잘 모른다는 얼굴을 하다 문득 바닥을 본다. 신문 뭉치 아래에 우편물들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저씨 눈길을 보고 바로 내 실수를 알아차렸다. 우편물을 보면 바로 알아낼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급히 허리를 숙여 우편물을 확인한 나는 즉시 전화를 들었다.
“관우야, 동양 스피드 빌라 207호로 KCSI 요원들 보내고, 즉시 집주인인 진영월에 대해 알아봐.”
잠시 후, 207호 앞.
장영훈 본부장님께 긴급 압수수색영장을 신청 후 강제로 따고 들어간 집에 KCSI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오진규, 연주, 관우까지 연락을 받고 뛰어온 현장.
오진규와 연주가 서로의 자료를 교환하며 대화한다. 오진규가 전과자 데이터를 주며 말했다.
“진영월은 전과 1범이었어. 재성교회 신도 명단에 있어?”
“네, 선배. 여기 있어요. 6년 전에 등록했고. 그런데 전과 1범이 끝이에요?”
“그래.”
“죄목은요?”
“폭행으로 징역 8개월.”
“폭행으로 8개월이나 살았으면 꽤 심각했던 모양이네요.”
“그런 것 같아.”
오진규의 말을 듣고 나니 새삼 내 지시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통감했다. 성범죄 위주의 전과자부터 조사하라 했으니 달랑 전과 1범에 폭행 전과를 가진 사람은 후 순위로 밀렸을 것이다.
그때 진영월의 방 컴퓨터를 조사하던 관우가 혀를 차며 말한다.
“허, 대단하네. 이 사람.”
연주가 자료를 들고 방으로 가 물었다.
“왜?”
“이거 봐.”
연주가 모니터를 보고 인상을 찡그린다.
“에이, 더러운 새끼.”
오진규도 방에 들어가 묻는다.
“왜 그래?”
관우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성욕은 인간의 기본 욕구지만 이건 좀 심하네요. 컴퓨터에 야동이 700편도 넘습니다.”
“어디 봐.”
일본어로 쓰여진 파일 제목들. 몇 개를 클릭해 영상을 재생해 보는 오진규. 연주는 소리도 듣기 싫은지 귀를 막고 방에서 나온다.
잠시 후 굳은 얼굴로 나온 오진규가 날 보며 말했다.
“이 새끼, 소아성애자 맞는 모양입니다. 전부 애들 상대로 찍은 영상입니다.”
유포는 물론 소지만 해도 중범죄가 되는 소아성애 영상들. 만약 진영월이 범인이 아니라 해도 이 조사는 가치가 있다. 그때 KCSI 요원이 지나가다 말했다.
“과장님.”
“네.”
“생활반응 체크 결과 적어도 5일 이상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문은 4일 치가 쌓여 있었다. 그러니까 5일 전 아침에는 집에 있었다는 뜻.
“화장실 쪽 조사 중입니까?”
“시약 반응 체크 중입니다.”
나와 오진규가 동시에 화장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약을 모두 뿌린 요원 한 명이 불을 끄고 문을 닫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곧 소리가 터져 나온다.
“반응 나왔습니다!”
나와 오진규가 동시에 화장실로 뛰었다. 문을 열자 요원이 어두운 화장실에 조명을 가져다 대는 것이 보인다. 다량의 피가 튄 자국이 보인다.
“젠장…….”
진영월. 이 새끼가 범인이다. 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KCSI로 보내서 두 아이 혈액과 대조해 주세요.”
“예, 과장님.”
나는 굳은 얼굴로 거실로 나왔다. 날 따라 거실로 모인 팀원들을 바라본 나는 즉각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진영월을 찾는 것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연주야, 전국에 수배 내려.”
“예, 과장님.”
“관우는 진영월의 명의로 된 핸드폰, 차량 확인해서 추적해.”
“네.”
마지막으로 오진규를 보자, 그가 먼저 말을 건다.
“그런데 과장님. 이 새끼가 범인인 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
습관적으로 말문이 닫힌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이번 일은 기억을 읽은 것이 아니다.
“애들 사주려고 치킨집에 갔다가 아주머니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범인으로 의심 가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소문을 듣고 와보신 겁니까?”
“예.”
“수색영장 신청이 받아들여진 이유가 있었을 텐데.”
나는 KCSI 요원이 수거 중인 쓰레기를 눈짓하며 말했다.
“집 앞 쓰레기봉투에서 제과점 케이크 상자 조각이 나왔습니다.”
오진규는 수거 중인 쓰레기를 보다 놀랍다는 얼굴로 날 돌아본다.
“대단하십니다……. 진술 하나도 놓치지 않으셨군요.”
지금 팔자 좋게 칭찬 듣고 있을 시간이 없다.
“빨리 움직입시다. 오 선배님은 진영월에 대해 더 알아봐 주세요. 어디로 갈지 예측해야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팀원들이 흩어진다. 아직 KCSI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
가만히 조사가 끝난 구역에 서 있던 나는 화장실을 노려보았다. 다량의 혈흔 반응이 나온 화장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온몸이 조각나 발견된 현지의 시신.
열 살이 된 어린아이는 바로 저곳에서 온몸이 토막 난 것이다. 그 어린아이가 그토록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연정이는? 고작 여덟 살 먹은 연정이는 언니가 죽임을 당하고 시신이 토막 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까? 아니면 이미 죽임을 당해 보지 못했을까?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우발적인 살인이든 아니든 이 새끼는 이미 인간이 아니다. 짐승이라 부르기도 아까운 악마다. 화장실을 무서운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는 나는 손이 하얗게 변하도록 주먹을 쥐었다.
KCSI 요원들이 오가느라 부산한 현장.
나는 점점 느리게 지나는 주변 환경 속에서 서서히 흑백으로 물들어가는 색감을 느꼈다. 화장실을 노려보는 내 시야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한다.
‘반드시 잡아서 죽여 버린다. 씨X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