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73화 (172/328)

살인의 기억 173화

14. 목격자(9)

기나긴 어지러움의 터널 끝.

하얀 점을 향해 날아가던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앞뒤가 빌라로 꽉 막힌 답답한 전망의 베란다 창문이었다.

나는 지금 멍하게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 밖에서 어느 가족의 단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평화로운 분위기와 상반되게 내 마음은 무척 혼란스럽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천천히 올려 바라보았다. 손에 피가 묻어 있다. 단순히 묻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 손을 잡고 피를 쏟아버린 것처럼 흠뻑 젖어 있다.

‘나는…… 나는…….’

턱이 바들바들 떨린다. 온몸이 벌벌 떨리는 야릇한 느낌.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무척 곤란하다.

‘내가 무슨 짓을…….’

나는 천천히 뒤를 보았다. 잠이 든 것처럼 조용히 누워 있는 아이. 여덟 살의 연정이가 3인용 소파에 누워 있다. 아이의 목 부근에 피로 새긴 손자국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잠이 든 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가 무릎을 꿇고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감돌던 손이 차갑게 식어 있다. 나는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을 내 볼에 비비며 눈물을 글썽인다.

‘이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저 조금만 즐기고 싶었다. 이 귀여운 아이들을 조금만 더 만지고 싶었다. 하지만 현지가 반항을 했다. 날 발로 차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현지의 입을 막고 옆집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옆집 사는 아저씨는 꽤 괜찮은 사람이지만, 아줌마는 다르다. 어찌나 예민한지 TV 볼륨이 조금만 커도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다. 아이 고함 소리가 들렸을까?

나는 현지 입을 꽉 틀어막고 숨을 죽였다. 혹시 옆집 아줌마가 오면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제발. 제발 오지 않기를.

나는 현지 입을 틀어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숨을 멈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하고 있던 내 귀로 미세한 대화 소리가 들린다. 옆집 사람들의 대화 소리인지, 베란다 밖에서 나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시끄럽다고 달려와 문을 두드리진 않는다. 안심한 나는 그제야 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지야,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

나는 화들짝 놀라 현지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뗐다. 현지가 축 늘어져 있다. 이 작은 아이가, 그토록 귀엽던 아이가 잠이 든 것처럼 몸에 힘이 빠져 스르르 쓰러져 버린다.

나는 놀라 쓰러지는 현지의 머리를 받쳤다. 하지만 힘없는 현지는 내 손에서 빠져나가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간다.

그때 언니가 쓰러지는 것을 본 연정이가 커튼 뒤에 숨어 있다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어, 언니…… 언니이…… 으아…… 으아아아앙!!!’

안 돼! 너까지 이러면 안 돼, 지금 누가 와서 이 꼴을 보면 어쩌라고. 나는 스프링처럼 튕겨 커튼 뒤에 숨은 연정이를 잡았다.

연정이는 안 가려고 발버둥 치며 커튼을 꽉 붙잡는다. 어린아이 힘으로 날 이길 순 없지만 이대로 당겨 버리면 커튼이 다 뜯어질 것이다. 커튼 봉이 떨어지며 큰 소리가 날 것이고 그럼 또 옆집 아줌마가 달려올지도 모른다.

나는 연정이 몸을 움켜잡고 속삭였다.

‘연정아, 연정아. 그러지 마. 아저씨가 미안해, 응?’

하지만 연정이는 내 마음도 모르고 겁에 질려 발버둥을 친다.

‘으아앙!! 현지 언니, 언니!’

나는 급히 연정이 입을 막았다. 너무 몸부림을 치니 입을 막았는지 코를 막았는지도 모를 노릇이지만 일단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손바닥을 쫙 펼쳐 아이 얼굴을 꽉 눌러 뒤에서 압박했다. 작은 손가락으로 내 손을 떼어 내려 발버둥 치는 연정이. 그러다 아이가 내 손가락을 물었다.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거슬린다. 나는 결국 연정이가 잡고 있던 커튼으로 아이 머리를 둘둘 감고 목 부근을 꽉 붙잡았다.

‘쉿! 쉿! 제발!’

연정이는 발버둥 쳤지만 다행히 소리를 멈췄다. 아니, 내지 못한다고 해야 한다. 발버둥 치던 연정이는 결국 힘을 잃고 축 늘어진다.

나는 쓰러진 연정이 몸을 안고 가만히 숨을 죽인 채 주변 동태에 귀를 기울였다. 몇 분쯤 지난 후 옆집 아줌마가 뛰어오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진 나는 연정이 얼굴에서 커튼을 빼 소파에 눕혔다.

축 늘어진 두 아이.

아이들에게 참 미안하다. 그러게 소리만 안 지르면 되는 일이었는데. 조심스럽게 연정이를 눕힌 나는 바닥에 있는 현지 곁에 가 무릎을 꿇고 앉아 현지 배를 흔들었다.

‘현지야, 현지야. 아저씨가 미안해. 대신 맛있는 간식 줄게, 어때?’

현지는 아무 답이 없다. 그러다 배 위에 올려져 있던 아이의 팔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현지……야?’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현지의 목을 만져보았다. 맥이 없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못 느낄 수도 있다.

나는 현지 코에 귀를 대보았다. 몇 분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만 현지는 전혀 숨을 쉬지 않는다. 나는 그때 비로소 내가 이 귀여운 천사를 죽였음을 알았다.

나는 벌렁 뒤로 자빠져 현지의 시신에게서 멀어지려 발버둥 쳤다.

‘으아…… 으어, 으아아…….’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진짜 해 끼칠 마음 따위는 없었는데. 그저 조금만 만지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을 굴렀다. 이마를 바닥에 쿵쿵 찧었다. 도대체 왜? 왜 죽어버린 거지? 아니야, 내가 이런 게 아니라고. 연정이라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나는 바닥에 고개를 박고 있다 잠든 연정이를 보았다. 소파 위에 곱게 누운 내 아기 천사.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연정이의 손을 잡았다.

‘연정아…… 아저씨가…… 넌 알지? 아저씨가 너희 놀아주려고 하던 거…… 넌 알지? 일부러 그런 거 아닌 거…… 너 알지?’

연정이는 깊이 잠이 든 모양이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어서 연정이를 깨워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연정아, 연정아!’

몇 번을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연정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또다시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나는 연정이의 작은 손을 내 볼에 대고 한 손을 아이 가슴에 올렸다. 두근두근…… 하는 심장 뛰는 소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내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아…… 아아…….’

연정이까지 죽었다. 나는 주먹을 들어 내 머리통을 마구 내려쳤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 이런 개새끼! 천사 같은 아이들을!’

나는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올 때까지 스스로를 때렸다. 스스로 지쳐 버릴 때까지 얼굴을 후려 갈기던 나는 결국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헐떡거렸다. 한쪽 눈을 잘못 때렸는지 많이 아프다.

나는 소매로 눈가를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인생 조졌네…….’

이제 난 어떻게 될까?

아이 둘을 죽였다. 교도소 있을 때 들었다. 사람 한 명 죽이면 15년 받는다고 했다. 둘을 죽였으니 30년인가? 아니, 그보다 많을 수도 혹은 적을 수도 있겠지. 무기 징역이나 사형받는 놈들도 있다고 들었으니까. 하, 교도소라니. 또 거길 가라니. 죽기보다 싫다.

교도소에 수감된 8개월간의 기억. 그것은 내게 꿈에도 보기 싫은 기억이다. 그런 곳을 또 가라고? 싫다. 차라리 죽고 말지. 그냥 죽어버릴까? 그래, 이런 인생 더 살아서 뭐 한다고. 감옥에서 평생 썩을 바에 차라리 죽어버리자.

나는 베란다를 뒤져 밧줄을 찾았다.

어디다 걸지? 커튼 봉에 걸면 안 돼. 저건 내 몸을 못 버틸 거다. 나는 온 집 안을 뛰어다니며 목을 맬 곳을 찾았다.

하지만 집에서 내 체중을 버틸 만한 물건을 찾지 못했다. 나는 한참을 밧줄을 들고 뛰어다니다가 제풀에 지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누구에게 물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고.

숨어버릴까? 아냐, 숨어도 경찰이 금방 찾아낼 거야. 우리나라 경찰들이 얼마나 능력이 좋은데. 집에서 아이 시신이 나오면 나는 즉시 도망자 신세가 될 것이고 내 실력으로는 고작 반나절도 못 버틸 거야. 어떡하지? 나 어떻게 해야 돼?

나는 문득 중얼거렸다.

‘시신이 나오면?’

그럼 시신이 안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잠깐만. 다시 생각해 보자. 살인사건은 시신이 나와야 성립이 되는 거야. 그런데 시신이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천천히 현지 시신을 보았다. 잠든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 키우는 사람도 아닌 내가 잠든 아이를 업고 나가면 동네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다. 어떻게 해야 조용히 시신을 처리할 수 있지?

나는 아직도 손에 쥐고 있는 밧줄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래, 밧줄. 아까 베란다 광에서 밧줄을 꺼낼 때 줄 톱이 있었지. 자르자! 잘라서 가방에 넣는 거야. 그럼 가능해!

그때 나는 반쯤 미쳐 있었다.

현지 시신을 끌고 화장실로 가 여섯 시간이 넘게 잘랐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당연히 쉽지 않았다.

하나 밖에 없는 여행가방에 차곡차곡 피를 뺀 조각들을 쌓고 지퍼를 닫으니 딱 알맞다. 그런데 나는 지금 너무 지쳤다. 어디에 버리든 조금 멀리 나가 대충 버려야 할 것 같다. 당장 기절할 것처럼 피곤하다.

나는 멍하게 베란다를 바라보며 조금 전 일을 생각하다, 현관문 앞에 놓인 여행가방을 보았다. 저 안에 현지의 시신이 있다.

다시 아직 잠든 것처럼 소파에 누워 있는 연정이를 보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연정아, 미안해. 아저씨가 지금 너무 지쳐서. 넌 내일 보내줘야 할 것 같아. 현지 언니부터 먼저 보내고 돌아와서 오늘 밤은 아저씨랑 같이 자자. 혼자 둬서 미안해.’

나는 비틀거리며 걸어가 현지가 든 가방 손잡이를 잡았다. 톱질을 하다 전완근이 전부 털려 버렸는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어디 산에 가서 묻어주고 싶었는데. 안 될 것 같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집에서 멀어진 후 대충 버리는 것이다.

현지에게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 지금 버리지 않으면 이 조각난 아이와 밤을 보내야 하니까.

나는 다시 한번 연정이를 바라본 후 신발을 신고 가방을 잡았다. 오늘은 현지만. 내일은 연정이도 보내주고 도망치자.

시간을 버는 동안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타면 될 거다. 인천이나 목포 쪽에 중국으로 가는 배가 있다고 들었다. 모았던 돈을 몽땅 쓰는 한이 있어도 도망쳐야 된다.

‘두 아이 시신만 안 나오면 내가 범인이란 걸 밝혀내는 데 시간이 걸릴 거야. 내가 도망칠 시간은 충분해. 조바심 내지 말자.’

현관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쇠의 느낌이 손을 타고 전달되자 문득 기억의 조각 하나가 뇌리를 파고든다.

나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기억에 숨을 들이켰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거실 쪽을 바라본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아이를 데려갈 때 날 보고 있던 그 여고생…….’

제길! 생각이 짧았다.

그 여고생이 나에 대해 증언하면 경찰이 날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이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여자애까지 죽여야 도망갈 수 있어.’

죽인다, 죽여 버린다. 그리고 난 반드시 도망을 갈 거다. 다시는 교도소에 안 갈 거다. 나는 반드시 한국을 탈출할 거다.

현관문이 열리며 계단을 비추는 센서 등이 켜진다. 밝은 불빛을 올려 보는 그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 * *

“과장님, 과장님?”

누군가의 목소리. 나는 구역질 나는 어지러움을 참으며 눈을 떴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누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KCSI 요원이 날 건드리며 말했다.

“어디 안 좋으십니까?”

“크…….”

나는 극심한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말했다.

“예…… 괜……찮습니다.”

“아…… 저희 조사 끝나서 철수하려고 하는데.”

“예…… 그러세요.”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주저앉은 자세로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님을 떠올리고 고개를 번쩍 들며 고함을 버럭 질렀다.

“민지! 민지가 위험해!”

안면인식장애가 있던 목격자. 19세 여고생 주민지. 그 아이가 위험하다. 진영월이 아이를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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