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74화
14. 목격자(10)
엘리베이터가 없는 진영월의 빌라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동안 세 번이나 넘어졌다. 아직 몸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해 뛰었기 때문이다.
결국 1층 마지막 계단은 거의 굴러서 내려오다시피 한 나는 강혁 아저씨가 준 차 문을 열고 탄 후에 넘어지며 부딪힌 무릎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입술을 악물며 안전벨트를 채웠다.
차를 출발시키는 것과 동시에 무전을 든 나는 고함을 쳤다.
“관우야!”
보통은 전화를 하는데 지금은 그럴 정신이 없어 무전기를 들었다. 관우는 PC 옆에 항상 무전기를 켜두는 녀석이니 응답을 할 것이다.
-과장님?
역시 응답을 한다.
“지금 민지 위치 좀 알려줘!”
-민지가 누구…… 아! 목격자요?
“그래!”
보호프로그램을 가동하고는 있지만 그건 담당자들에게 맡겨둘 일이다. 일선 형사들 몸이 두 개도 아니고 증인 보호와 동시에 사건 수사를 할 수는 없기에 잠시 머리 밖으로 밀어두고 있던 목격자의 이름에 대해 떠올린 관우가 말했다.
-바로 확인하고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일단 차를 출발시키며 시간을 보았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치킨을 사러 나왔다. 거기서 진영월에 대한 단서를 얻고 집 앞을 뒤지다 KCSI를 부른 시간이 오후 세 시였다.
차에 있는 시계가 오후 네 시 삼십 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 시간이면 민지가 학교에서 하교하는 시간이다. 일단 학교 쪽으로 가는 편이 빠를 것 같다.
차를 돌려 민지 학교로 달려가는 나. 잠시 후 관우의 무전이 온다.
-과장님.
“말해.”
-보호프로그램 담당 쪽에 확인했습니다. 지금 주민지 학생 학교 교문 앞에서 대기 중이랍니다.
“학교 안까지 안 들어갔어?”
-당연히 들어갔죠. 여고라 여경이 함께 있답니다. 수업 중에는 교실 밖에서 대기하고요.
“학교 안에서 밖으로 나올 때 같이 나온다는 거지?”
-예, 맞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으면 벌써 연락이 왔죠. 학교 안인데 별일 있겠습니까?
후, 다행이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니구나. 아니지, 보호하고 있는 경찰들 때문에 겁을 먹고 접근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에서 민지를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
“일단 알았다.”
-예? 과장님 근데 그건 왜…….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 담당자들에게 민지 하교하면 교문 앞에서 대기하라고 해. 내가 직접 간다.”
-아…… 일단 알겠습니다. 오 선배님이 근처에 계시는데 연락해서 확인해 보라고 하겠습니다.
역시 관우다. 머리 좋은 녀석.
“그래, 고맙다.”
나는 액셀을 밟아 학교로 향했다. 벌써 하교하는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번에 밀려 나오는 학생들. 평화로운 하굣길이다.
나는 학교 정문에 차를 대고 뛰어내렸다. 그러자 아직 민지가 나오지 않았는지 두 명의 형사가 교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오진규가 교문 옆쪽 담벼락에서 뛰어오는 것이 보인다. 그는 나와 거의 동시에 교문에 도착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두 형사에게 물었다.
“민지 아직 안 나왔습니까?”
형사들은 날 물끄러미 보다 내 얼굴을 알아보곤 급히 경례를 하려 한다. 혹시 주변에 진영월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눈치 빠른 오진규가 얼른 두 형사의 팔을 잡아채며 검지를 입 위에 올린다.
형사들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팔을 내리며 말했다.
“아직 애 안 나왔습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학교 안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꽤 많은 수의 아이들이 나오고 있다. 오진규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형사들에게 묻는다.
“애 옆에 누가 있습니까?”
형사가 경비실을 눈짓하며 말했다.
“수위 아저씨가 남자 형사는 절대 안 된다고 어찌나 까다롭게 구는지. 할 수 없이 여경 지원받아서 들여 보냈습니다. 교문 벗어나면 바로 저희가 맡고요.”
“수상한 놈 못 봤습니까?”
형사들이 고개를 젓는다.
“급식 차 말고는 들어간 남자라곤 없습니다.”
“급식 차?”
“예, 수위 아저씨가 다 확인하고 들여 보냈습니다.”
일단 민지는 안전한 건가? 나는 숨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잠시 호흡을 했다. 그러면서도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진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주변을 지켜보고 있다. 역시 경험보다 위대한 것은 없는 모양이다.
한참 주변을 살피다 다시 학교 안을 바라보니, 운동장 건너 학교 건물의 우편에서 민지와 여경이 나오는 것이 보인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나는 허리를 펴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조금 늦었지만 오진규에게 눈인사를 한 내가 물었다.
“진영월에 대해 뭐 나온 거 없습니까?”
오진규는 짧은 시간 내에 알아낸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름 진영월, 나이 38세. 대리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소속된 회사에 연락해서 최근 진영월이 휴무였던 날짜를 확인해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출생지는 충남 보령. 아버지는 베트남전 참전군인 출신으로 대형 트럭과 버스 기사 일을 했습니다. 진영월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혼을 하고, 몇 년 후 서울로 가 재혼을 했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꽤 많은 걸 알아냈구나.
“아버지와 살았던 겁니까?”
“예, 경제 능력이 없었던 어머니 쪽에서 양육을 거부했습니다.”
“계속하세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장을 했고, IQ 검사에서 121이 나왔답니다. 이후 중학교 때 다시 검사한 기록을 보면 133이 찍혀 있습니다.”
머리가 좋은 놈이다. 하지만 그 머리로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하긴, 머리 좋다고 공부 잘하는 건 아니니까. 오진규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성격이 포악했던 모양입니다. 친구들과 폭력사건이 있었고 무단결석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학창 시절 교육부에 친구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는 신고를 한 기록이 있습니다만, 주변 진술에서는 오히려 진영월이 다른 학우들을 때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거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오진규가 말을 잇는다.
“병력으로는 야뇨증이 있었답니다.”
나는 순간 민지를 보던 시선을 오진규에게 돌렸다.
“야뇨……증?”
오진규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예. 고등학교 때도 치료 기록이 있습니다.”
야뇨증. 흔히 오줌싸개라고 불리는 병이다. 보통 사람도 누구나 어린 시절 기저귀를 떼고 한동안 밤에 실수를 한다. 그러다 점점 밤에 이불에 오줌을 싸는 일이 드물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야뇨증이 있으면 중학생이 되어도 이불에 지도를 그린다. 문제는 이것 자체가 아니다. 많은 연쇄살인범의 빅 데이터에서 어릴 때 야뇨증을 앓았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어린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어린이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야뇨증이라는 형태로 통제할 수 없는 신체 반응이 표출되는 것이다.
점점 어른이 되어가며 스스로를 통제하며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병. 하지만 진영월은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와 오진규의 표정이 동시에 일그러진 것이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았는데. 연쇄살인범 프로파일링이 나온다고?’
잠깐. 그래, 아이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는 자신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민지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연쇄살인범의 생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음, 또 있습니까?”
“고등학교 때 정학 기록이 2회 있는데 한 번은 폭행 사건이었고, 한 번은 본드를 불었답니다.”
본드. 고등학교 때 호기심으로 하던 짓을 진영월은 아직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기억 속에서도 강한 본드 냄새가 났다. 여전히 그는 어린 시절 통제 불가능했던 자신의 욕구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진규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사관으로 군대에 지원해 5년간 보병에서 기관총 사수로 근무했습니다.”
“장기복무를 했다는 말씀입니까? 자기 욕구도 통제 못 하는 인간이?”
오진규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탈영 기록이 있습니다. 영창을 다녀왔군요.”
“…….”
“폭행으로 전과 기록이 남은 부분을 조사해 봤는데, 친구와 싸운 거라고 합니다.”
“친구와 싸웠는데 징역 8개월을 살 만큼 때렸단 말입니까?”
“친구가 혼자 사는 집에 가서 PC 하드를 통째로 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싸움이 일어났고 폭행을 한 뒤 PC를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친구 관계라고 하지만 강도와 마찬가지였습니다.”
“PC 하드를? 그건 왜요?”
오진규가 혀를 차며 말했다.
“포르노 영상이 가득한 하드였답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진영월의 집에서도 무려 700편의 포르노 영상이 나왔다. 물론 남자들은 38세가 되어도 가끔 그런 영상을 본다. 하지만 진영월처럼 700편이나 되는 영상을 쌓아놓고 보는 이는 드물다.
역시 이번에도 통제하지 못한 내면의 욕구가 여전히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프로파일이 들어맞는다.
오진규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
“일단 조사한 건 여기까지입니다. 뭐가 더 나오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시간을 얼마 주지도 않았는데 엄청나게 알아냈다. 칭찬해 줘도 부족한데 미안한 표정을 짓는 오진규. 나라도 이 사람을 칭찬해 주고 싶다.
무슨 말을 해야 나이 어린 상관에게 받는 칭찬이 기분 나쁘지 않을까 고민하며 멀리 있는 민지와 여경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아, 안 돼!”
민지의 한 걸음 뒤에서 주변을 살피며 걷는 여경. 그녀의 뒤에 구멍 세 개가 뚫린 회색 벽돌을 치켜든 괴한이 달려오고 있다. 선글라스에 모자, 마스크를 쓴 남자다.
나는 총알같이 달려가며 외쳤다.
“뒤에!”
나는 사력을 다해 고함을 질렀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나는 달려가며 여경의 뒤통수를 벽돌로 내려치고 민지를 끌고 가는 남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야이 개새끼야아아아!!”
민지가 반항을 하자, 목에 칼을 들이미는 남자. 겁먹은 민지가 움찔거리며 남자가 이끄는 방향으로 끌려간다.
바닥에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움찔거리고 있는 여경이 보인다. 여경까지의 거리는 약 80미터. 나는 피똥을 쌀 만큼 빠르게 달려나갔다.
뒤에서 오진규의 발소리가 들린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외쳤다.
“오 선배! 여경 좀!”
뒤에서 오진규의 목소리가 들린다.
“담당 형사들이 오고 있습니다! 이쪽은 걱정 마시고 일단 추적하시죠! 돕겠습니다!”
나는 민지를 끌고 간 남자가 들어간 건물을 눈으로 살피며 뛰었다. 슬쩍 돌아보니 아까 교문 앞에 있던 형사들이 여경을 살피며 119를 부르는 것이 보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학교 건물의 유리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간 나는 긴 복도 끝에 또 다른 통로가 있는 것을 보았다. 30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 뒷문이 있는 것이다.
내 옆에 온 오진규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여고생을 납치해서 저기로 가진 않았을 겁니다. 분명 건물 내부에 숨었을 겁니다. 천천히 수색하시죠.”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건물 내부를 쏘아보았다. 긴 복도에 나무 문들이 늘어서 있다. 어떤 쓰임새의 건물인지 알 수 없지만 나무 문마다 각기 방이 있을 것이고 문 중에 일부는 잠겨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진규가 바로 앞에 있는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잠겨 있는 것을 보고 다음 방의 문고리를 돌리는 것이 보인다. 저 방은 열려 있었지만 안에 아무도 없는지 금세 나온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빠르게 달려 건물 중간까지 왔다. 위로 올라가는 중앙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올려 보고 있는 내 옆으로 달려온 오진규가 속삭인다.
“2층으로 올라갔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과장님은 1층을 확인해 주세요.”
“선배님.”
“예?”
오진규가 달려가려다 날 돌아본다. 나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놈은 민지를 납치한 게 아닙니다.”
“예?”
“놈은 민지를 죽이려는 겁니다. 빨리 찾아야 됩니다.”
“…….”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내 몸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속도로 뛰었다.
“민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