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76화 (175/328)

살인의 기억 176화

14. 목격자(12)

확인은 나중에.

일단 붙잡는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의 오금을 차 무릎을 꿇리는 동시에 모자를 벗겼다.

급식 담당자가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이다 모자가 날아간 아르바이트생 얼굴을 보며 눈을 크게 뜬다.

“다, 당신 누구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민지 고함 소리에 놀란 오진규가 급히 달려와 아르바이트생 얼굴을 확인한다. 놀란 얼굴의 오진규가 즉시 아르바이트생의 팔을 꺾어 바닥으로 찍어 눌렀다.

“이 새끼, 진영월 맞습니다!”

민지가 소리를 지르며 마구 물러난다.

“꺄아아아악!”

아직 칼로 협박당했던 때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민지가 공포에 질린다.

나는 오진규에 의해 체포되고 있는 진영월을 바라보다 민지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제 끝났다, 민지야.”

“…….”

소리를 지르던 민지가 부르르 떨었지만 고함을 지르는 것은 멈췄다.

나는 민지 어깨를 두드려 준 뒤 엎드린 진영월의 머리 쪽으로 가 쪼그리고 앉았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고 있는 진영월을 가만히 바라본 나는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거짓말 안 했다. 아이는 목소리로 사람을 기억한다. 지금처럼 말이지.”

“크윽!”

오진규가 무릎으로 등을 찍어 누르고 있어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한 진영월은 무척 당황한 얼굴이다.

* * *

풍도 치안센터 임시 수사본부.

수많은 카메라가 플래시를 터뜨리고 상의로 얼굴을 가린 진영월이 수갑을 찬 채 차에서 내린다.

범인이 목격자를 죽이려 학교에 잠입했다가 검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기자들이 몰렸다.

일부러 지원 나온 형사들에게 진영월의 이송을 맡기고 뒷문으로 들어온 오진규와 나는 기자들이 더 이상 들어올 수 없는 건물 안에서 진영월을 인계받았다.

연주가 수갑을 찬 진영월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린다.

“너냐?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간 아이들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한 놈이?”

“…….”

“대답해, 개새끼야.”

진영월은 고개를 숙이고 묵묵부답이다. 오진규가 진영월의 등을 밀며 말했다.

“그쯤 해. 취조실로 간다.”

오진규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직접 취조하실 겁니까?”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오진규가 다시 물었다.

“기자들 브리핑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홍보실 직원에게 체포 경위 알려주세요.”

“네, 그건 제가 하겠습니다.”

“민지 신상은 철저히 보호해 주시고.”

“예.”

민지는 여경과 함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가는 길에 민지 부모님께 연락을 했으니 병원으로 오실 것이다.

관우가 나서 진영월을 취조실에 넣어두고 밑 준비를 마친 후 잠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던 내게 보고한다.

“취조 준비 끝났습니다, 과장님.”

나는 마시던 커피를 놓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취조실로 가는 길에 마주친 수많은 형사들. 각 서에서 지원 나온 형사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관우가 내 옆에 붙어 있다 슬쩍 말했다.

“다들 한 말씀 해주시길 바라는 것 같은데. 짧게 한 말씀 하시죠, 과장님.”

뭔 말을 하냐? 설마 미국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서류 집어 던지며 승리를 자축하자는 건 아니겠지?

나는 내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형사들을 바라보았다. 총 60명이 넘는 형사들의 시선이 내게 꽂혀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다들 수고한 사람들이긴 한데. 그렇다고 오글거리게 이상한 소린 하기 싫다.

가만히 형사들을 바라보던 나는 짧게 말했다.

“아직 사건 안 끝났습니다. 대기하세요.”

형사의 본분은 범인을 잡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 일을 했을 뿐이다. 어떤 칭찬도 필요하지 않다.

나는 몸을 돌려 취조실로 향했다. 관우의 황당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여러 명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익숙하지 않다. 내가 강혁 아저씨도 아니고.

나는 도망치듯 취조실로 향했다. 강혁 아저씨는 이런 일을 매일 하고 살겠지? 자기 밑에 형사들 힘 나게 해주려고 온갖 힘 나는 말을 짜내는 것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쪽에 재능이 없는 모양이다. 그 짧은 말을 하는 것도 힘든 걸 보니.

취조실 문을 열자, 진영월이 수갑을 찬 채 앉아 있다. 내 얼굴을 본 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혀, 형사님…….”

애처로운 목소리. 아마 녀석의 머릿속에 아까 민지를 납치했을 때 내가 했던 말이 맴돌고 있을 것이다. 다른 이는 몰라도 나만은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

나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켠 뒤 그의 앞에 앉아 물끄러미 놈의 눈을 보았다.

내가 말을 하지 않자 진영월이 먼저 몸을 내밀며 말했다.

“저는…… 저는 정말 그런 의도로 그랬던 게 아닙니다. 형사님은 제 마음 아신다고 하셨잖아요.”

“…….”

진영월이 벌떡 일어나 내 손을 붙들고 말했다.

“예? 형사님은 아시죠? 진짜 전 그럴 생각까진 없었습니다, 형사님!”

나는 일어난 진영월을 노려보며 말했다.

“앉아.”

“형사님!”

“앉으라고 했다.”

“…….”

진영월이 머뭇거리다 털썩 주저앉는다.

나는 진영월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처음부터 아이들을 죽일 목적으로 납치한 게 아니란 거. 나도 안다.”

진영월이 반색하며 날 바라본다.

“그, 그렇죠? 아시는 거죠?”

“그래서?”

내 반문. 자신을 이해해 주는 형사를 만나 반가워하던 진영월의 얼굴에 의문이 어린다.

“예……?”

나는 진영월을 노려보며 말했다.

“현지를 몇 조각으로 잘랐는지는 기억해?”

“…….”

“네 놈이 군자천에 버린 현지 시신 중 일부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난 현지 시신 다 찾을 때까지 널 놔주지 않을 거다. 기억해 내라. 기억하지 못하면 넌 평생 나와 이렇게 마주 보고 있게 될 거다.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도 나는 널 찾아갈 거다. 네 꿈에도 찾아갈 거다. 피 흘리는 현지와 연정이 손을 잡고 네 녀석이 자는 내내 널 노려볼 거다.”

“…….”

진영월이 침을 꿀꺽 삼키며 슬그머니 눈을 피한다.

“그게……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시신을 처음 잘라보니 힘이 들었겠지. 몇 시간이나 잘랐으니 힘이 없었을 거다. 그래서 현지 시신은 군자천에 대충 버렸지. 다음 날 버린 연정이 시신은 야산에 매장했고.”

진영월이 금세 울 듯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했습니다! 저는 애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잘 묻어주고 싶었는데…… 현지 시신을 처리할 때는 제가 너무 지쳐서 그랬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래서 이 개새끼야. 애들 죽여서 잘 묻어주면 뭐가 달라지냐?”

“…….”

진영월의 고개가 툭 떨어진다. 진영월은 뭐가 그리 억울한지 눈에 눈물까지 고여 있다. 이쯤에서 당근을 줄 차례이다.

“검찰에 네가 처음부터 아이들을 죽일 의도가 없었다는 건 전해준다.”

진영월의 고개가 번쩍 들린다.

“저, 정말이십니까?”

“대신.”

“대신?”

“현지 시신 조각을 다 찾아야 전해준다.”

“…….”

“최대한 기억을 짜내는 게 좋을 거다.”

진영월이 머리를 쥐어뜯는다. 정신없을 때 버린 위치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어 대는 진영월.

“그, 그게. 천에 내려가는 세 군데 입구 중에 제일 왼쪽 다리 위에서 세 조각을 떨어뜨렸고, 하, 하수구 안에 좀 버리고…….”

나는 진영월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납치, 살인, 유사 성행위에 의한 소아 성추행, 사체 훼손, 시신 유기. 그의 죄목은 엄청나다. 아이들을 일부러 죽였건 아니건 그에게 구형될 형량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 순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사람들에게 자기가 애들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악마가 사람이 되는 게 아님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멍청한 새끼인 것이다.

“그, 그러니까 가방에서 머리를 꺼냈다가 현지 얼굴을 보고 놀라서 놓쳤는데 그게 굴러가서 물속으로…….”

* * *

며칠 뒤 고시원 뒤 포장마차.

해 질 녘 노을이 지는 도시 풍경을 보며 소주를 들이켠 강혁 아저씨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캬, 소주 맛 죽이네. 너도 한잔 받아라.”

입맛이 쓰다. 사건은 해결했고, 목격자의 안전도 확보했지만 어린이가 둘이나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굳은 얼굴로 술을 마셨다.

주인아저씨가 틀어 놓은 TV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온다.

[삼 일 전 경찰은 아동납치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진 모 씨를 긴급 체포한 바 있습니다. 진 씨는 경찰 취조에서 자신의 범행 전체를 인정했으며, 아직 발견하지 못한 이 모 양의 시신 조각을 찾는 부분에 협조하겠다 밝혔습니다. 삼 일에 걸친 수색으로 하수구 정화조로 흘러간 이 모 양의 사체가 모두 발견되었으며, 시신은 KCSI 조사 후 유가족들에게 양도될 예정입니다. 한편 이번 사건을 해결한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는 목격자였던 주 모 양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습격해 온 범인을 추격해 검거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지하철 괴담 사건에 이어 또 한 번 대한민국 경찰 수사의 위신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에 청와대는 중대범죄 수사과의 성과에 대해 공개적으로 찬사를…….]

나와 내 팀을 칭찬하는 뉴스였지만 어쩐지 듣고 싶지 않다. 나는 괜히 주인아저씨께 역정을 냈다.

“아저씨, 조용히 술 마시고 싶은데. 뉴스 좀 끄면 안 돼요?”

과묵한 주인아저씨는 날 힐끔 보더니 말없이 TV 리모컨을 눌러 끈다. 강혁 아저씨가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힘드냐?”

“…….”

“경찰 되라고 종용한 내가 미워지냐?”

“…….”

그런 거 아닙니다. 그저 그 어린아이들 죽음이 슬픈 것뿐입니다. 강혁 아저씨는 말없이 술을 들이켜는 날 가만히 보며 말했다.

“너, 이번 사건 해결할 때 읽은 기억 말이다.”

“…….”

“범인 놈이 애들 시신 자르는 거 본 거냐?”

하, 생각도 하기 싫다. 다행스럽게도 현지 시신을 다 자른 후의 기억이기에 망정이지 자르는 장면의 기억을 봤다면 난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뇨.”

“후, 다행이네. 총무과에 이야기해서 비용 처리 할 테니까 너 정신의학과 좀 가 봐라.”

“저 안 미쳤습니다.”

“누가 미쳤다고 했냐? 미친놈은 매가 약이지, 병원에 왜 보내?”

“…….”

“내 말 듣고 가서 상담받아. 앞으로 주기적으로 가 보고. 그러다 진짜 큰일 난다.”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못 하니 잔소리하지, 인마.”

“알았어요.”

“약속했다?”

“…….”

“구라 치면 뒤진다?”

“알았어요.”

강혁 아저씨는 한동안 날 관찰하다 말했다.

“여경은 괜찮다. 전치 8주 나왔고, 유급휴가 처리에 병원비 전액 지원 나가니 걱정 말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을 텐데.”

여경의 계급은 순경이었다. 아직 계급이 낮은 경찰이 험한 일을 당하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일인지 모르고 경찰이 되겠다 나섰다가 현실을 깨닫고 관둬 버리는 경찰은 생각보다 많다.

강혁 아저씨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개뿔, 최대한 빨리 복귀하겠다고 병원에서 말리는데 운동 시작했단다. 아주 바람직해, 아주 좋은 경찰이 될 거야, 그 녀석은.”

좀 안심이 된다. 안면도 없는 경찰이었지만. 또 앞으로도 마주칠 일도 없겠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경찰 일에 임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 사회가 안전해지니까.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드는 내 이마를 젓가락으로 톡 때린 강혁 아저씨가 외쳤다.

“그러니까 너나 병원 가, 인마!”

“아씨, 아파요!”

“젓가락이 뭐가 아파, 이 자식아. 네놈이 여주에서 때린 새끼들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받느라 교도소 못 보냈는데 고작 젓가락이 아프냐!”

“…….”

제길, 주유소 털던 그놈들 이야기구나. 좀 심하게 패긴 했지. 강혁 아저씨가 청장이 아니었으면 난 진급이 아니라 징계를 먹었을 것이다. 나는 눈치를 보며 빨갛게 부은 이마를 만졌다.

“알았다고요.”

강혁 아저씨는 테이블 위에 젓가락을 툭 던지며 팔짱을 낀다.

“내일 당장 병원 가서 상담받아, 알았어? 안 그럼 확 징계 먹여 버릴 테니까.”

“…….”

겁을 준다고 하는 말인가 본데 전혀 안 무섭다. 그저 날 걱정하는 따뜻한 아저씨 마음이 저녁노을 속에 묻어 내 마음에 닿고 있을 뿐이다.

“하…… 하하.”

“처웃지 마, 인마. 정들어.”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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