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79화 (178/328)

살인의 기억 179화

15. 기묘한 시신(1)

대한민국 서대문구 경찰청장실.

전화를 내려놓은 강혁이 관자놀이를 만지며 한숨을 쉰다. 오랜만에 그의 방에 놀러 온 장영훈 본부장이 전화 통화를 엿듣고 물었다.

“심각하다는 판단입니까?”

강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사실 예전부터 걱정은 했지만 정신과 의사가 심각하다고 말할 정도일 줄은 몰랐군.”

장영훈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래도 도경이 놈을 보면 그런 걱정이 기우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처럼 여전히 심성이 바르고 곧은 녀석이고, 업무 스트레스는 다른 형사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강혁은 장영훈의 말을 듣고 그를 째려본다.

“야.”

“예?”

“너 이 새끼. 네 딸이 경찰이 됐는데 어? 꿈에서 살인범이 돼가지고 사람 토막 내고, 피해자가 되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는 기억 본다고 생각해 봐. 그래도 그런 소리 할 거야, 어?”

“…….”

강혁이 소파 팔걸이를 주먹으로 툭툭 때리며 말했다.

“내가 사건 하나 끝날 때마다 그 녀석 데리고 포장마차에 괜히 가는 줄 알아? 이번엔 또 무슨 기억을 읽었나, 얼마나 참혹한 기억을 읽었을까? 만약 내가 그런 기억을 읽었다면 돌아버렸을 것 같은데. 이 어린 녀석이 괜찮을까? 난 항상 그런 걱정을 가지고 간다.”

“아…….”

장영훈은 이제서야 강혁이 왜 그렇게 도경을 감싸는지 깨달은 표정이다.

사실 청장은 대한민국 경찰 전체를 이끄는 자인데 도경을 편애하는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는 점을 걱정했던 그였다.

본인도 도경을 좋아하지만 다른 형사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혁의 그런 편애는 사랑보다 걱정이었다.

강혁은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말했다.

“급한 사건 없지?”

“급하지 않은 사건이란 게 존재는 하겠습니까? 범죄를 저지른 놈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잡아야 하는 것이 경찰의 숙명인데.”

“국가수사본부가 맡을 만한 사건 없지 않아?”

“지금은 없습니다만 언제 터질지 모르죠.”

“일단 최대한 중대범죄 수사과에 사건 배당하는 건 미뤄. 지금 도경이 상태가 안 좋아. 본인이 모르는 거지 저러다 저놈 대가리 터진다.”

“음, 도경이 하나 빼는 건 괜찮지만 나머지 인력들까지 놀리는 건 좀. 우리 공무원입니다, 청장님.”

“나머지는 적당히 다른 부서 지원업무로 돌려.”

“도경이가 납득할까요?”

“납득 못 하면? 싫으면 경찰 때려치울 거야? 청장 명령도 안 들으면 나가야 맞지. 네 말처럼 공무원이니까.”

“…….”

“네 선에서 알아서 하고.”

“차라리 휴가를 주는 게 어떻습니까?”

“휴가 가라면 가겠냐? 도경이 놈 성격 몰라?”

“…….”

“우리 선에서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며칠의 사건 배당 보류다. 우리는 국가공무원이야. 국민 세금 받아먹고 사는 것들이 놀면 안 되지. 한 2주만 사건 배당 막고, 수사과에는 배당할 사건이 없으니 몇 주만 다른 부서 지원한다고 둘러대.”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장영훈이 일어나려 하자, 강혁이 그를 불러 세운다.

“영훈아.”

“예.”

“도경이 놈 잘 지켜봐라.”

“예…….”

강혁이 장영훈을 노려보며 말했다.

“신이 무슨 생각으로 녀석에게 그런 능력을 줬는지 난 모른다. 하지만 말이다.”

강혁이 입술을 달싹인다. 하지만 끝내 말을 하지 않고 나가라는 듯 눈짓한다. 장영훈은 강혁의 말을 기다리다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선다.

혼자 남은 강혁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신이 사랑하는 자는 일찍 죽는다. 사랑하는 만큼 곁에 두려 하는 것은 신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이니.”

* * *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

며칠 늘어져 있다 갑자기 떨어진 일 때문에 정신없이 영상을 분석 중인 관우가 문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다.

“과장님, 오셨습니까?”

나는 휑하게 비어 있는 사무실을 보고 갸웃거렸다. 연주나 오진규는 모두 자신보다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관우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들 지각이야?”

“그럴 리가요.”

“그럼?”

관우가 빈 오진규와 연주 자리를 눈짓하며 말했다.

“오 선배님은 신입 형사들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해서 두 시간만 강연하라는 지시 받고 강원도 가셨고, 연주는 암수살인 했다고 주장하는 교도소에 있는 놈 인터뷰 따러 갔습니다.”

응? 내가 과장인데 누가 지시를 해?

“누가 지시한 거야?”

“본부장님이요.”

젠장, 그래도 내가 과장인데. 시킬 일 있으면 내게 시키고 특성에 맡게 일을 배당하게 해줬어야 맞는 거 아닌가?

나는 혀를 차며 자리에 앉았다. 내게 보고라도 하고 움직이지. 다들 그냥 가버렸구나. 하긴 그들도 감히 본부장님이 직접 지시하신 일에 토를 달 용기는 없었을 거다.

나는 다시 자기 일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관우를 바라보다 물었다.

“너도 뭐 지시받은 거 있어?”

“예, 얼마 전에 일어난 사거리 교통사고 폐쇄회로 분석하라고 하던데.”

“그건 왜?”

“피해자와 피의자 진술이 명확히 엇갈려요. 자전거 탄 사람이 황색 대기 신호에 갑자기 가속한 차 때문에 넘어져서 전치 12주가 나왔거든요.”

음, 그럴 수 있지. 많은 사람이 황색 등에서 가속을 한다. 도로교통법상 황색 불은 대기 신호다. 가속해서 빨리 가라는 신호가 아닌 것이다.

“황색 불에 지나다 자전거 치었으면 바로 실형 아냐? 사거리이면 횡단보도였을 텐데.”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치면 보행 신호가 아닐 때에도 운전자가 처벌받는다. 횡단보도에서는 무조건 사위경계를 해야 하는 것이 운전자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관우가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려주며 황당하게 웃는다.

“차와 피해자 간의 거리가 7미터나 떨어져 있습니다. 이게 차 때문에 일어난 사고인지, 자전거 운전자의 운전미숙으로 발생한 건지 판단해 달라고 하네요.”

젠장, 그러니까 그걸 왜 네가 하냐고. 교통안전과가 할 일을 왜 중대범죄 수사과 인원에게 배당하냐 이 말이다. 후, 아무래도 본부장님께 가서 따져야 할 것 같다.

내가 혀를 차며 일어나자 관우가 곁눈질하며 말했다.

“본부장님실 가시게요?”

“……? 어떻게 알았어?”

관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아까 본부장님이 혹시 과장님이 자기 방에 온다고 하면 오늘 내일 하루 종일 자리 비울 거니까 오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핑계 아냐?”

“히히, 아까 오 선배님 오리엔테이션 가셨다고 했잖아요. 본부장님도 거기 가신답니다. 강원도 연수원에 계실 거예요, 아마.”

하, 뭐 이런. 나는 할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니, 이렇게 할 거면 나한테도 무슨 일을 주고 가든가. 왜 나만 쏙 빼고 다른 인력들에게만 일을 시켰지?

그때 내 핸드폰이 울린다. 강혁 아저씨다. 아씨, 어제 병원도 다녀왔는데 또 뭐야?

“저 병원 다녀왔는데 또 왜요?”

-이번에는 병원 이야기 아니지롱.

하, 이 다 늙은 아저씨 말투가…….

“아, 왜요.”

-너 보육원 다녀온 지 얼마나 됐냐?

“…….”

에…… 얼마나 됐더라? 지난번에 자주 갈 거라고 생각한 후에 한 번도…… 안 갔구나.

“흠, 갑자기 보육원은 왜요?”

-이 은혜도 모르는 새끼! 수녀님이 네 기저귀 갈아주고! 어? 먹여줘, 입혀줘, 금이야 옥이야 키웠더니 대가리 컸다고 한 번을 안 가? 네가 인간이야?

“…….”

틀린 소리는 아니니 할 말은 없는데. 이 아저씨가 갑자기 왜 업무 시간에 전화를 해서 이런 헛소리를 하는 거지? 나는 살짝 짜증이 났다.

“지금 업무 시간입니다. 끝나고 갈게요. 그럼 됐죠?”

-바쁘냐?

“아뇨, 누구 때문에 아주 한가합니다.”

-뭔 소리야?

“우리 팀 애들 다 다른 과 지원 보내신 거 압니다.”

-잉? 내가 왜?

“아저씨가 그런 거 다 안다고요.”

-그러니까 내가 왜? 공무원 새끼들 노는 거 제일 싫어하는 게 난데.

“진짜 아닙니까?”

-어, 당연히 아니지. 왜, 일 줄까?

음, 진짜 아닌가? 본부장님 단독 지시인가 보다.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주세요.”

-지랄. 네가 내 밑이냐? 영훈이 밑이지.

“…….”

-야, 너 여기 오기 전에 있던 동료들과 연락 안 하지? 정호 새끼 전화 와서 너 한 번도 안 온다고 뭐라고 하더라. 사회 생활하는 새끼가 참 싸가지가 없어요.

하, 미치겠네. 요즘 왜 이리 잔소리가 늘었지? 이런 타입 아니었는데.

-할 일 없으면 심부름이나 해라.

“뭐요?”

-종로 경찰서 가서 내 짐 하나 받아와. 내가 거기 있을 때 놓고 온 짐들 있다. 정호가 최영현이 놈에게 맡겼다니까 가서 찾고, 간만에 얼굴도 좀 보고 와라.

“제가 왜요?”

그런 걸 중대범죄 수사과장한테 시키다니. 이 아저씨가 제정신인가?

-할 일 달라며?

“…….”

-가져와. 박스 하나다.

“하, 알았습니다.”

아오, 열 받아. 청장이면 다야? 사람 마음대로 굴리고, 병원에 억지로 보내고, 과장한테 짐 심부름이나 시키고. 하, 악덕 상사다, 악덕.

나는 한숨을 쉬며 종로경찰서로 갔다. 오는 내내 짜증이 났지만 처음 강력계 형사로 발령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왔던 종로경찰서를 보니 반가운 마음도 든다.

사실 이정호와는 별로 정이 쌓이지 않았다. 금세 승진해서 계장이 되었기 때문에 얼굴 마주한 시간도 짧다. 가뜩이나 얼굴 보기 껄끄러웠는데 짐을 최영현에게 맡겼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최영현만 만나면 되겠지.

나는 익숙한 계단을 올라 강력3반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바뀐 모양인지 생소한 얼굴들이 많다.

하나, 개중에 날 알아보는 형사들이 놀란 얼굴로 경례하는 것이 보인다. 총경 진급을 했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난 모양이다.

강력계 사무실로 와 3반의 자리를 보자, 시뻘건 얼굴로 팀원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최영현이 보인다.

“야 이 새끼들아. 이것도 수사보고서라고! 빨리 KCSI 다시 연락해! 상대가 의사야, 의사! 부검 보고서 허투루 쓰면 법정 가서 다 뒤집힌다고, 이 멍청한 새끼들아!”

어려 보이는 팀원들이 찔끔하며 고개를 숙인다. 그의 말에 반응하는 젊은 형사는 총 다섯 명. 저들이 신입 강력3반 형사들인가 보다.

최영현이 서류를 공중으로 던지며 짜증 내는 것이 보인다. 저 양반. 성격은 여전하구나.

나는 강력3반 자리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사무실 파티션 안으로 들어오자 복도 쪽에 앉아 있던 형사가 날 막아선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형사의 목소리에 다른 형사들이 일제히 돌아보았지만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다. 나는 상황 설명보다는 고개를 쭉 빼며 말했다.

“최영현 팀장님?”

최영현이 혼자 욕을 하고 있다가 고개를 들더니 날 보곤 벌떡 일어난다.

“현 총경님!”

총경이란 소리가 나오자 형사 다섯 명이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혹시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경례를 해 다른 형사들 업무에 방해가 될까 싶었던 나는 얼른 말했다.

“경례 생략. 다들 쉬어요.”

형사들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최영현이 바람처럼 달려와 내 손을 잡는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겁니까?”

“잘 계셨죠?”

“아이고, 강력계 형사가 잘 지내는 거 보셨습니까? 하하. 이쪽으로 오시죠.”

최영현이 자기 자리로 안내 후 의자를 가져온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바로 본론을 꺼냈다.

“청장님이 짐 좀 가져오라고 하셔서.”

최영현이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예? 짐을 가지러 과장님이 직접 오셨습니까? 밑에 애들 다 바쁜 모양이죠?”

“…….”

“하긴, 요즘 제일 화제가 되는 부서이니 그럴 만도 하죠. 잠시만요. 금방 가지고 오겠습니다. 어디 가시면 안 됩니다? 야! 여기 커피 좀 타 와라.”

복도 앞에서 날 처음 막아섰던 형사가 발딱 일어나 커피를 타러 달려간다. 저 녀석이 제일 막내인 모양이다.

나는 짐을 가지러 간 최영현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멍하게 있었다. 이 사무실에서 겪었던 많은 사건들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가끔 이렇게 옛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구나. 그때는 참 힘들었는데 지나와서 생각하면 다 추억이다.

창밖을 슬쩍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최영현의 책상을 보았다. 그리고 내 눈에 그의 모니터에 떠오른 사진 한 장이 보인다.

“이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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