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80화 (179/328)

살인의 기억 180화

15. 기묘한 시신(2)

모니터 속에 있는 사진.

어느 집의 욕실이다. 최근에 지은 건물인지 인테리어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는 가정집의 욕실. 문제는 그 욕실의 욕조 안에 시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신의 모양이 아주 이상하다. 나는 의자를 끌고 모니터 앞에 앉아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욕조에 여성의 시신이 있다.

욕조 안에 있긴 하지만 다리는 밖으로 나와 있다.

욕조에 바로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꼭 밖에서 밀려 넘어진 사람처럼 가로로 들어가 발이 밖으로 나와 있는 모양이다.

키가 크지 않은 여성이라 두 발은 욕조 아래 바닥에서 떨어져 공중에 들려 있다. 욕조 속에는 물이 가득 받아져 있고, 물과 섞여 굳지 않은 피 때문에 붉은 와인 속에 시신이 든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잘 보이지 않지만 얼굴 부근에 상처들이 있다. 방어의 흔적들일까? 나는 차마 다른 이의 PC를 조작하진 못하고 모니터에 있는 사진만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때 커피를 타온 막내가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잔을 올리며 굽실거린다.

“여기 있습니다.”

“아, 고마워요.”

“아닙니다!”

막내 형사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저, 저기…… 아까는 제가 못 알아 뵙고 실례를…….”

“아~ 아닙니다. 수사기밀이 잔뜩 있는 사무실인데 외부인이 오면 당연히 막아야죠.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건 뭐죠?”

막내 형사가 내가 눈짓하는 모니터를 보더니 흠칫 놀라며 몸으로 모니터를 가린다.

“아…… 이건 현재 수사 중인 사건입니다.”

슬며시 최영현의 PC를 잠금 상태로 바꾸는 막내 형사. 아직 신입임에도 수사기밀을 지켜야 한다는 수칙을 잘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 2년 반 전까지 이 팀이었습니다.”

막내 형사를 비롯해 내 눈치를 보고 있던 다른 형사들 눈이 커진다. 막내 형사는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여, 여기요? 하지만 계급이…….”

“맞아요, 여기 팀장이었습니다. 최팀장님이 내 팀원이었죠.”

“헉. 그, 그럼 그 전설의…….”

음? 전설? 무슨 말이야? 막내 형사가 주춤거리며 물러나자 제일 가까이 있던 다른 형사가 벌떡 일어나 물었다.

“호, 혹시 단양사건 해결하셨다던 그 분이십니까?”

단양? 아, 장진수 사건.

“네, 맞습니다.”

늦게 온 형사가 허리를 넙죽 숙인다.

“영광입니다!”

응? 이게 무슨 상황이야? 아이돌 가수를 만난 소녀처럼 얼굴이 붉어진 형사가 굽실거리며 말했다.

“소문 많이 들었습니다. 장진수, 오종식, 김상식에 지현우까지. 무엇보다 애니메이션 킬러도 검거하셨던 종로경찰서 강력3반 황금기의 주역이시라고.”

“…….”

뭐 그런 소문이 다 있어? 형사가 범인 잡는 건 당연하지. 다른 형사들까지 일어나 다가와 허리를 숙이며 한마디씩 한다.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존경합니다.”

“국가수사본부 과장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서른넷에 총경이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뭐냐, 팬 사인회도 아니고. 나는 민망한 마음에 헛기침을 했다.

“흠, 저기 미안한데 다른 형사님들 업무 방해되니까 그쯤하고.”

“예!”

내 말 한마디에 개미 떼처럼 흩어지는 형사들. 뭐냐, 이 분위기는. 나는 덩달아 자기 자리로 가려는 막내 형사를 붙잡았다.

“저기.”

“예!”

“이 팀이었다고 말한 이유가…… 수사 이야기 해줘도 괜찮다고 말하려던 거였는데.”

“아.”

막내 형사는 잠시 머뭇거리며 선배들을 돌아본다. 선배들은 괜찮다는 얼굴로 눈짓한다. 막내 형사가 총경 앞에서 사건 브리핑하는 것이 긴장되는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그게, 일주일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발생 지역은 중학동 오피스텔입니다.”

나는 편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막내 형사가 정자세로 서서 말했다.

“일주일 전 오후 5시 11분. 112 신고센터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신고 내용은 오피스텔에서 아내가 사망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신고자는?”

“남편과 장모, 즉 사망자의 어머니였습니다.”

“둘이 같이 있었습니까?”

“예.”

“현장에 같이 들어왔냐는 뜻입니다.”

“아, 그건 아닙니다. 남편이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저 모습으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일단 장모에게 전화를 걸어 부른 후 함께 신고했습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언뜻 들으면 별 이상한 점이 없겠지만 아내가 죽었는데 장모가 오기까지 기다렸다가 신고를 했다? 그럼 장모가 올 때까지 남편은 아내의 시신과 우두커니 함께 있었단 말인가?

“장모 진술 있습니까?”

“예, 잠시만.”

막내 형사가 자기 노트북을 가지고 온다. 최영현의 PC가 있지만 이미 잠근 상태였기에 비밀번호를 모르는 모양이다.

노트북을 내 무릎 위에 올리고 진술서를 보여주는 형사가 말했다.

“오피스텔에서 장모의 집까지는 5분 거리였습니다.”

아, 5분 거리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금방 올 걸 알고 있으니까. 나는 진술서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5시 3분에 사위에게 전화가 와 아내가 욕조에서 넘어져 죽은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오피스텔로 가 보니 딸이 죽어 있었다고 진술했네요.”

“예, 맞습니다. 확인 결과 장모의 집은 오피스텔 바로 옆 건물이었습니다.”

“아까 그 사진 다시 볼 수 있나요?”

“예, 보여 드리겠습니다.”

막내 형사가 자기 노트북에 사진을 띄워준다.

나는 기묘한 자세로 죽어 있는 여성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가 밀어서 죽인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시신은 말이 없다.

가끔 우리는 사고사나 돌연사한 시신들도 타살을 의심하기도 하니 무엇 하나 단정 지을 순 없다.

나는 아까는 손대지 못했던 사건 보고서의 스크롤을 내리다 사인을 보며 눈을 찡그렸다.

“사인이 아직 안 나온 겁니까? 사망한 지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막내 형사가 한숨을 쉰다.

“예, 못 밝혀냈습니다.”

“왜요? 방어 흔적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런데 타살이 아니다?”

“이게 방어 흔적인지 넘어지며 생긴 흔적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KCSI에서 시신의 손톱 밑 DNA까지 다 긁어갔지만 범인을 특정 지을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CCTV는요?”

“전량 수거했습니다만 이 집에 들어간 건 남편이 유일했습니다.”

그럼 남편이 범인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증거재판주의를 표방하는 국가. 아무리 정황증거가 남편을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어도 물증이 없으면 허사다.

바로 그때 최영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골치 아픈 사건이죠.”

박스를 들고 있는 최영현을 발견한 막내 형사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 저기 팀장님. 이게 그러니까.”

“됐다. 알아도 되는 분이니 가서 네 일 해라.”

내 옆에 박스를 놓은 최영현은 자리로 돌아가는 막내를 힐끔 보며 웃는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전부 다 저런 신입으로 보내준 건 아닙니다. 방금 저놈 빼고 나머지 녀석들은 싹 경사로 주더군요.”

“다행이군요.”

최영현이 박스를 눈짓하며 말했다.

“저 박스입니다. 별로 안 무거우니 들 만할 겁니다.”

최영현이 자리에 앉아 PC의 잠금을 풀며 말했다.

“오면서 들어 대충 상황 파악했습니다. 좀 골치 아픈 사건이라 짜증이 나 있던 참이었는데.”

아까 들어올 때 팀원들을 들들 볶고 있었던 이유가 이 사건 때문이었구나. 최영현이 다시 시신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정황증거만 보면 이 사건의 범인은 무조건 남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이 남편이 의사라는 점입니다.”

“의사?”

“예, 정확히는 종합병원 레지던트입니다.”

“그게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최영현이 시신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준다.

“자, 여기 보세요. 시신의 옆 모습입니다. 여기 보면 목뼈에 금이 간 거 보이죠?”

“예.”

최영현이 테이블을 살짝 내려치며 한숨을 쉰다.

“그러니까 이 의사 주장은 아내가 화장실에서 미끄러지며 넘어졌는데 욕조로 넘어져 목에 부상을 입었다는 겁니다. 즉 사고사라는 주장이죠.”

음, 그럴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목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금이 간 정도라면 이 자세로 발견될 순 없다. 사람은 순간적으로 이런 부상을 당하면 일어나려 버둥거린다.

하지만 이 시신은 넘어진 자세 그대로 발견되었다. 만약 목이 완전히 부러졌다면 그 주장에 신빙성이 있지만 금이 간 정도로 사람이 이렇게 죽지는 않는다.

최영현이 책상 위에 손가락 다섯 개를 순서대로 튕기며 말했다.

“문제는 이 여자가 임신 9개월의 만삭이었다는 겁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만삭이요?”

최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 측은 산부인과 의사를 대동해 소견서를 제출했습니다. 만삭인 임신부의 경우 이런 자세로 넘어졌을 때 쉽게 몸을 뒤집기 어렵다는 소견서였죠.”

“법정에서 인정하겠습니까?”

최영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PC를 조작한다. 영어로 써진 논문 하나가 떠오른다.

“이게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법의학 센터장인 마이클 로벤 플라스 교수가 쓴 논문이랍니다. 남편이 직접 제출한 자료입니다.”

영어에 약한 타입은 아니지만 의과논문에는 평소에 절대 사용할 일 없는 의학 전문용어가 가득해 무슨 이야기가 써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최영현이 턱을 괴며 말했다.

“논문 제목이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라고 합니다. 남편 측은 이 논문을 근거로 들어 사고사를 주장하고 있고 법정에 가면 이 교수를 초빙해 증언하게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넘어진 후 이 자세로 장시간 자세를 바꾸지 못해 경부가 압박당했고, 이것이 사인이라는 주장이죠. 담당 검사가 이걸 보고는 겁을 먹은 거죠. 재판에서 질 수도 있으니 증거 더 찾으라고 송치도 안 해줍니다.”

음, 이렇게만 들으면 검찰이 재수 없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할 수 없다. 기소를 해도 확실히 형을 확정 지을 수 없는 경우에는 증거를 더 확보하라는 지시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검찰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어디 있습니까?”

“중요 용의자로 체포했는데, 증거가 안 나오니 최대한 시간 끌다 결국 풀어줬습니다. 신원이 확실한 양반이고 국내 굴지의 사립병원 레지던트라 해외 도주 막으려고 여권만 막아두고 훈방한 상태입니다. 대신 우리 애들이 두 명씩 24시간 감시 중이고요.”

“남편은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

“한 시간 전 보고로는 병원에서 근무 중이랍니다.”

음, 골치 아프겠구나. 역시 강력사건을 맡는 부서는 그곳이 어디든 힘들고 골 아픈 사건 천지다.

“오피스텔이 중학동이라고 들었는데.”

“예, 맞습니다.”

“청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한번 들러봐도 될까요?”

최영현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어…… 안 바쁘십니까? 뉴스에서 보니 중대범죄 수사과 이름이 계속 오르내리던데.”

“하하…… 뭐 그렇게 됐어요.”

“과장님이 봐주시면 저는 좋죠.”

“뭐…… 기대는 마시고.”

“하하, 제가 과장님을 모릅니까? 좋습니다, 제가 안내하죠.”

타고 온 차가 있어 최영현과 따로 차를 몰아 오피스텔 앞에 도착하니 최영현이 팀원들 다섯과 함께 입구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냥 현장 한번 보려고 온 건데 왜 줄줄이 달고 왔지? 설마 낯 간지럽게 총경이라고 대우하는 건 아니겠지? 최영현이 그런 성격이 아닌데.

최영현은 팀원들을 보는 내 시선을 파악하고 어색하게 웃는다.

“과장님과 함께 간다고 하니 이 녀석들이 같이 가게 해달라고 졸라서. 하하.”

팀원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 평소 최영현이 내 자랑을 얼마나 했는지 알 것 같다.

뉴스에서 중대범죄 수사과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내가 저 사람과 같은 팀이었다고 자랑한 모양이다. 이럴 때 면 세워주는 것도 사회생활이겠지.

나는 형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김상식 검거할 때 최 팀장님 아니었으면 구류 못 했을 겁니다. 워낙 수완이 좋으신 분이니 잘하실 겁니다. 저는 그저 호기심 때문에 온 거니 신경 쓰지 마시고, 본인들 수사에 집중하세요.”

형사들이 자기 팀장을 힐끔거린다. 내 입에서 칭찬이 나오자 어깨를 슬쩍 펴는 최영현. 무척 만족스러운 얼굴이 된 최영현이 엘리베이터를 누르며 말했다.

“현장은 22층입니다.”

나와 최영현, 덩치 좋은 형사 다섯 명이 탄 엘리베이터. 몸도 움직이지 못할 만큼 꽉 찬 엘리베이터를 탄 나는 층수가 표기된 화면을 바라보다 문득 물었다.

“아까 살해된 여성이 임신부라고 했는데.”

최영현이 돌아보며 말했다.

“예, 맞습니다.”

“임신 9개월이면 애가 다 자랐을 텐데. 태아는 어떻게 됐습니까?”

“다행히 건강합니다. 발견 즉시 119로 이송되어 제왕절개 했습니다.”

“음.”

최영현이 머리를 긁으며 푸념을 한다.

“애가 살아난 건 좋은데…… 문제는 그 때문에 현장증거가 다 사라졌다는 거죠. 시신을 옮겼으니…… 후. 사진 몇 장 남긴 게 전부입니다.”

죽은 이는 말이 없지만 시신은 많은 말을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시신이 옮겨졌다. 생명을 살려야 하므로. 여러모로 골치 아픈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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