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84화 (183/328)

살인의 기억 184화

15. 기묘한 시신(6)

KCSI.

주차를 하고 로비에 들어가자, 씩씩거리며 열이 잔뜩 받은 목 과장님이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것임에도 손을 흔드는 그의 얼굴에 화가 나 있는 것이 보인다. 아까 내 전화 때문에 정말 화가 난 모양이다.

다가오는 날 보며 팔짱을 낀 목 과장님이 인사도 하기 전에 대뜸 물었다.

“용의자가 의사라고?”

“예.”

“의사라는 놈이 대한민국 법의학을 무시해? 개 쌍놈의 새끼를 봤나.”

“하하.”

이럴 줄 알았다. 목 과장님은 언뜻 냉철해 보이지만 이렇게 인간적인 면이 많은 사람이다.

목 과장님이 눈짓하며 말했다.

“부검 준비해 뒀다. 참관할래?”

“예, 같이 가겠습니다.”

“따라와.”

수술복을 입고 카메라를 든 두 명의 보조 요원이 있는 부검실로 온 나는 부검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 살짝 물러나 있었다.

목 과장님이 장갑을 끼며 물었다.

“시신 발견 시 사진 띄워.”

보조 요원들이 모니터에 경찰에서 공유한 시신의 초기 발견 사진을 띄우자, 양손을 든 자세로 한참 사진을 노려보는 목 과장님. 자존심이 상했는지 모니터가 뚫어지도록 한참을 노려본 목 과장이 손을 내민다.

“메스.”

응? 이미 이 시신은 부검이 끝났을 텐데? 부검 때 위장 속 내용물까지 전부 확인하고 봉합한 걸로 아는데 다시 연다는 건가? 물론 이 생각은 속으로만 했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니까.

목 과장님은 메스를 받아 배 대신 이은지 씨의 목을 절개한다.

“내 인생에 굴욕은 한 번이면 됐다. 더 이상은 없어.”

무슨 말일까? 목 과장님은 이은지 씨 시신에서 목 근육의 일부분을 절취 후 트레이에 담으며 지시를 내린다.

“목 근육에 미세 출혈이 있다. 근육 조직분석 시뮬레이션 돌려.”

목 과장님은 이은지 씨 시신에 난 자잘한 상처들 모두에서 조직을 떼어낸 후 지시를 내린다.

“목과 이마 쪽 피부가 까지고, 눈가가 찢긴 채 멍이 들어 있다. 팔다리에도 여덟 곳에 자잘한 멍이 있지만 결정적인 건 목 안쪽 기도에서 나온 내부 출혈이야. 다른 조직들은 DNA 검사 돌리고, 목은 3D영상으로 볼 수 있게 준비해.”

“예, 과장님.”

목 과장님이 마스크와 장갑을 벗는다. 전체 부검이었다면 두 시간 이상이 소요됐겠지만 이 경우에는 이미 1차 부검을 하며 대부분의 검사가 완료되었기에 독극물 검사나, 위장 내용물 검사가 생략되어 의심 가는 부분만 재조사하는 모양이다.

목 과장님이 내게 나가자 눈짓하며 말했다.

“커피나 한잔하자. 저거 한 시간은 걸린다.”

“예, 생각보다 빨리 끝나네요.”

“내가 했으니 그렇지. 내가 KCSI 과장이다, 과장.”

“하하.”

1층 로비로 나온 우리는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산 뒤 밖으로 나와 근처 벤치에 앉았다. 목 과장님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요즘 어때?”

나는 입에 든 뜨거운 커피를 넘긴 후 답했다.

“뭐. 평소와 같습니다. 늘 사건이 터지고, 늘 범인을 쫓으며 살죠. 형사가 다 그렇죠 뭐.”

목 과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쉰다.

“사명감만으로 견디기 힘든 직업이지. 하지만 말이다, 도경아. 네 덕분에 억울함을 풀어준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 생각을 해봐라. 경찰이 있어서 그런 사람들이 평생 억울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거다. 그들의 슬픔은 어찌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억울함을 풀어준 것만으로 우리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거다.”

“예, 과장님.”

“물론 나와 내 동생도 마찬가지고.”

“…….”

이제 괜찮은 걸까? 그렇게 아끼던 조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신 걸까? 이렇게 멀쩡히 일을 하고 계시지만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목 과장님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느낀 과장님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난 괜찮다. 네 걱정이나 해, 인마. 청장님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

“아저씨가 과장님께도 그런 소리를 해요?”

목 과장님이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청장님은 널 자식같이 생각하시는 분이니까. 아무리 냉철한 인간도 자식 앞에선 바보가 되는 거다.”

“…….”

“병원 다닌다며?”

“예.”

“빠지지 말고 잘 다녀, 이놈아.”

“알겠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우리는 뜨겁고 쓴 커피 한잔이 주는 여유에 잠시간의 휴식을 가졌다. 그러다 문득 부검 중에 과장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물어도 되는 걸까?

“저, 과장님.”

“음?”

“아까 부검 중에 말입니다.”

“음.”

“굴욕은 한 번이면 족하다는 말을 하셨는데.”

“…….”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대답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목 과장님은 잠시 표정이 나빠졌지만 곧 혀를 차며 말했다.

“1995년이었다. 내가 KCSI에 막 부임했을 때였지.”

1995년.

대한민국의 법의학은 생각보다 그 역사가 짧다. 1985년에 겨우 C.V Laser(레이저 지문 검출기)를 도입했고, 1989년에 와서 IFIS(지문검색시스템)이 구축되었다.

감식자료 전산화 작업이 1997년부터 2000년까지 3년간 시행되었으니 1995년에는 주먹구구식 수사가 자행될 때였다.

목 과장님이 날 힐끔 보며 물었다.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들어본 적 있어?”

있다. 경찰대 시절에 이에 관한 리포트를 써봤다.

“예.”

“설명해 봐.”

나는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경찰과 검찰의 초동 수사 실패로 미궁에 빠져 버린 사건입니다. 은평구 불광동의 아파트에서 화재가 났고, 10여 분 만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화했습니다. 화재 진압 후 31세 치과의사 최수희 씨와 2세 딸 이화영 양이 사망한 채 욕조에 있었던 걸 발견했고, 남편인 외과의사 이도행 씨는 개인병원 개원일이라 외출한 상태였습니다.”

목 과장님이 눈을 감고 계속해 보라는 듯 손가락을 돌린다.

“발견 당시 최수희 씨는 상의가 벗겨지고 팬티가 내려가 있는 상태였으며, 목에는 교살(絞殺)의 흔적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또한 목, 팔 등에는 미세한 찰과상이 발견되었습니다. 2세의 딸 역시 끈으로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욕조의 물에 잠긴 채 발견되었습니다. 타살임이 명백한 사건이며, 화재 역시 장롱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아 명백한 방화였다는 판단. 당시 수사팀은 누군가 살인을 저지른 후, 증거인멸을 위해 불을 질렀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목 과장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랬지.”

이 사건이 목 과장님이 부검하신 사건인 모양이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현관문은 잠긴 상태였고, 외부로부터의 침입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집 안의 현금과 귀중품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집을 뒤진 흔적도 없었기에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한 살인사건으로 접근했습니다. 용의자로 몰린 남편 이도행 씨는 자신이 7시에 집을 나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모녀는 살아 있었으며, 둘의 배웅을 받으면서 병원에 출근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가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자신의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였습니다.”

목 과장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그 사건의 쟁점은 모녀가 언제 죽었냐는 것이었다. 만약 7시 전에 사망했다면 남편의 알리바이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지.”

목 과장님이 먼 곳을 바라보며 회상에 젖는다.

“나는 이 사건의 범인이 남편임을 확신했다. 그 이유는 시반(屍斑)의 형성. 최수희 씨를 검안한 건 오전 11시 30분경이었다. 그녀의 우측 대퇴부를 중심으로 하여 양측성 시반(屍斑)이 형성되어 있었다. 양측성 시반이 생기려면 사후 몇 시간이 지나야 하는지 알고 있나?”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게 계산한다면 두 모녀가 사망한 시간은 새벽 3시라는 결론이 나온다.”

음? 이 사건은 미제 사건이다. 이렇게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왜 남편의 범행임을 밝히지 못했을까? 목 과장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다음으로 시강(屍剛)의 진행. 검안 전에 지문부터 뜨려고 최수희 씨의 손가락을 펼치자, 이미 손가락에 시강(屍剛)이 진행된 상태였다. 지관절(指關節)에 시강이 진행되려면 사후 얼마나 지나야 되지?”

“음, 여섯 시간에서 열두 시간 사이에 나타납니다.”

목 과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보면 모녀의 사망 추정 시간은 전날 밤 11시 30분에서 사건 당일 아침 5시 30분 사이가 된다.”

이것도 사건 당일 아침 일곱 시 전에 이미 모녀가 사망했다는 증거가 된다. 목 과장님이 말을 이었다.

“최수희 씨 위장에서 소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밥이 350g 나왔다. 위의 내용물에서 사건 전날 저녁에 먹었다고 진술한 미역국의 미역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남편이 아침에 먹었다고 주장한 콩나물국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잔존물의 상태로 유추하면 저녁을 먹은 지는 시간이 조금 되었으나, 아침을 먹기 전에 살해되었으며, 사망 시간은 전날 23시 30분경부터 사건 당일 4시 사이로 추정되었다.”

나는 잠시 목 과장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목 과장님이 다시 긴 한숨을 쉰다.

“후…… 그래, 미제로 남았지.”

목 과장님이 다시 먼 곳을 보며 말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남편의 직업은 외과의사였다. 그는 부검 결과에 대해 변호인 대신 나서서 반박했다.”

“뭐라고 했습니까?”

“시반(屍斑)과 시강(屍剛)으로 사망 시각을 추정하는 것은 오차범위가 매우 넓다는 주장이었지. 물론 옳은 말이다. 사람에 따라 시반의 발생 시점과 정도가 다르다는 건 검안의 기초 상식이니까. 최초 검안 시에는 목, 가슴, 배에도 시반이 관찰됐어. 하지만 부검을 하는 시점에서는 우측 대퇴부 이외의 시반이 모두 소실되었다.”

“시간의 흐름과 시신의 이동에 따른 자연적인 변화였습니까?”

“그래. 남편은 우측 대퇴부의 시반에 대해 아내가 팬티를 입고 있었기에 압력으로 인해 시반이 먼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시반이 모두 소멸한 것으로 볼 때, 시반이 형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경우 남편이 집을 나간 이후인 7시 40분경까지 사망 추정 시간이 늘어난다.”

“…….”

“시강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시신은 주변의 온도가 높을 경우, 조기강직이 나타난다. 이 사건에서는 욕조 물의 온도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아 시강의 원인이 불분명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시강이 나타난 것인지, 혹은 용의자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고의적으로 급속한 시강을 유도했는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시강으로 사망 시간을 추정한 것 역시 반박되었다.”

과학수사가 수사의 기본이 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신이 욕조에서 발견되었다면 반드시 초기 발견자가 물의 온도를 확인하게 되어 있는 작금과 달리 오래전 일이라 놓친 모양이다.

“위장 속 내용물은요?”

목 과장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최수희 씨가 아침 식사를 할 때, 남편과 달리 미역국을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남편은 그날 일이 바빠 먼저 식사를 하고 나가서 아내와 딸이 아침을 먹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어. 또 평소 최수희 씨가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았기 때문에, 공복 상태여서 콩나물이 발견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실제 현장에 있던 전자레인지에서 최수희 씨가 아침 대용으로 먹는 걸로 추정되는 한약이 발견되었다.”

당시 KCSI가 할 수 있는 모든 주장이 반박된 것이다. 외과의사의 지식으로 대한민국 법의학을 부정한 것이다. 물론 그가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 화재가 있었습니다. 장롱은 발화원인이 될 수 없으니 백 퍼센트 방화 아닙니까?”

“맞아. 119 센터의 기록에 따르면 화재신고 시간은 오전 8시 45분. 신고자는 경비였다. 남편 측 변호인은 아파트 모형으로 법정에서 화재 실험을 진행했다. 장롱에서 불이 났더라도 5~6분 후면 외부에서 연기를 인지하고 신고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지. 그러므로 화재 발생 시간은 남편이 병원에 도착한 8시보다 늦은 시간이라는 주장이었다.”

외과의사와 흉부외과 전문의. 화재 여부만 빼면 꼭 닮은 두 사건이다. 목 과장님이 어금니에 힘을 주며 KCSI 건물을 노려본다.

“비슷한 사건을 또 만들 순 없다. 이건 내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법의학 차원의 문제다. 최선을 다해 도우마. 반드시 범인을 밝혀내라. 부탁한다, 도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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