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85화 (184/328)

살인의 기억 185화

15. 기묘한 시신(7)

KCSI 로비.

목 과장님은 커피를 마시고 있는 우리를 찾아온 요원에게 검사 결과지를 받아 심각한 눈으로 살핀다. 그는 서류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말했다.

“경부에 압박이 가해진 건 확인했다.”

사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노련한 최영현이 이걸 놓쳤을 리가 없다.

“그걸 사인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목 과장님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사인으로 판명될 만큼 지속적인 압박은 아니다. 목 근육 내부 출혈 정도로 실험해 본 결과 약 3초간 목이 졸린 것 같다.”

3초. 그렇게 짧은 시간 목을 졸랐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만약 매우 강한 힘으로 목을 부러뜨렸다면 가능하지만 시신에게는 경추 골절이 없었다.

목 과장님은 자신이 놓친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서류를 살피다 화난 표정으로 일어나 말했다.

“넌 네 수사를 해. 나는 내 일을 할 테니.”

“검안 다시 하려고 그러십니까?”

“나올 때까지 한다.”

“붙잡고 있다고 없던 게 나오겠습니까?”

목 과장님이 앉아 있는 날 내려보며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다.

“도경아.”

“예.”

“모든 사람은 외친다. 눈빛이든 목소리와 몸짓이든. 어렵고 힘들 때 그것을 표현하고 외친다. 시신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뿐이다.”

“…….”

“나는 시신이 외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귀를 기울일 거야. 그게 내 일이다.”

목 과장님이 돌아서서 부검실로 향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우두커니 과장님의 뒷모습을 보다 핸드폰을 꺼냈다. 좀 전에 커피를 마시던 도중 문자가 왔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확인을 해보니 현중이가 보낸 문자다. 헤어지기 전에 지시했던 CCTV 영상의 일부를 편집해 보낸 것이다. 나는 핸드폰을 동영상 모드로 돌려놓고 화면을 주시했다.

사건 전날 백승현이 다니는 병원의 CCTV 영상이다. 영상 속 백승현의 얼굴은 깨끗했다. 계단을 오가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오긴 했지만 다시 빠져나올 때 이마를 붙잡고 나오거나 응급처치를 해야 할 상처를 입은 모습이 없다.

“백승현…….”

다시 화면이 바뀌어 사건 당일.

아침에 출근을 하는 백승현의 모습이 로비에서 잡혔다. 그의 이마에 상처가 보인다. 이 말은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방증이 된다. 그는 병원 계단에서 굴러 상처가 났다고 했지만 전날 퇴근까지 없었던 상처가 다음 날 출근할 때 생겼다.

물론 이것은 위증이다. 하지만 이것이 살인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머리 좋은 백승현은 어쩌면 이 부분도 계산에 넣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경찰의 수사가 자신의 이마 상처에 집중되어 진짜 확인해야 할 부분을 놓치게 하도록 말이다.

백승현은 경찰이 상처의 진실을 밝혀낼 때 법정에서 이것이 살인의 증거가 될 수 없음을 주장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한다. 어쨌든 그는 거짓말을 했다. 결백한 이가 거짓말을 준비할 이유는 없다.

나는 핸드폰을 품에 넣고 다시 KCSI 로비를 보았다. 목 과장님이 뭐든 찾아내 주시기를 빌며.

* * *

쌍문동 보육원.

문을 열고 변한 것이 없는 보육원 거실로 들어서자, 아이들과 둘러앉아 TV를 보고 있던 루이사 수녀님이 깜짝 놀라며 달려오신다.

“세상에! 도경아!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야?”

“하하, 수녀님.”

부엌에서 아이들 먹일 과일을 자르던 로사 수녀님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내밀었다가 내 얼굴을 보고 한달음에 뛰어나오신다.

“도경아!”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시는 두 수녀님. 나는 엄마같이 정겨운 수녀님들의 환대에 미소를 지었다.

“건강하시죠?”

루이사 수녀님이 등을 짝 소리 나게 때리며 눈을 흘긴다.

“자주 온다며!”

“악! 아파요.”

“나쁜 놈.”

“하하…… 죄송해요.”

“소파에 앉아 있어. 차 한잔 내올 테니.”

“감사합니다, 수녀님.”

루이사 수녀님이 차를 타러 가시고, 로사 수녀님은 다시 과일을 자르기 위해 주방으로 가신다.

나는 내게 집중되어 있는 아이들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내가 여기 살 때만 해도 스무 명이 넘던 보육원 아이들. 이제는 수가 줄어 여섯 명쯤 되는 아이들이 거실에 앉아 나를 빤히 보고 있다.

보육원 아이들이 줄어드는 건 좋은 사회적 신호이다. 하지만 여기서 자라는 아이들은 친구가 적어 심심할 것 같다.

나는 제일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 곁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안녕?”

“…….”

눈이 동그랗게 예쁜 아이. 검은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아이는 5, 6세쯤 되어 보인다. 인사를 했지만 TV로 고개를 돌린 아이는 화면 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TV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뭘 하길래 애가 이렇게 집중하는 걸까? 만화라도 하나?

TV를 보니 만화가 아니라 요즘 인기 많은 예능 방송 중이다. 애들이 이런 걸 본다고 뭘 이해할까? 저거 혼자 사는 사람들이 솔로 라이프를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는 꽤 오래된 예능 방송인데. 나는 여자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재미있어?”

말 없는 아이는 그저 고개만 끄떡인다. 무척 귀엽다. 그런데 이 아이 왜 이렇게 낯이 익지? 지난번에 과자 사 들고 왔을 때 본 아이였나?

나는 아이 옆얼굴만 보다 정면 모습을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다. 그 순간 차를 가져온 루이사 수녀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새별이. 도경이 오빠 옆에 있었구나.”

아이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김새별. 지하철 장기매매 사건의 희생자. 엄마 장기를 판 돈으로 수술을 받고 살아난 바로 이 아이였다. 바보같이 내 손으로 수녀님께 맡겨놓고 얼굴도 못 알아보다니.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새별이 옆모습을 보았다. 무한한 미안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 나온다.

나는 이 아이 아빠를 감옥에 보냈다. 그리고 아이를 이곳에 맡겼다. 그리고 이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바쁘다는 거? 핑계다. 포장마차에서 소주잔 기울일 시간에 찾아왔으면 되는 거였다.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나는 범죄자를 감옥에 넣었고, 홀로 남은 아이를 외면하지 않고 확실한 보육원에 넣어주는 호의를 보였다. 나는 충분히 했다. 하지만 상대가 어린아이다 보니 이상하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 어린아이가 뭘 안다고.

난 TV에 집중하고 있는 새별이 옆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수녀님께 물었다.

“잘…… 지내나요?”

루이사 수녀님이 내 옆에 앉은 후 미소를 짓는다.

“응, 애가 아주 애교가 많아. 새로 오신 신부님도 무척 귀여워하시고.”

“신부님 새로 오셨어요?”

“응, 한 달 전에 오셨어.”

“이번에도 좋은 분이 오셨어야 될 텐데.”

“호호, 대부분 좋은 분이야.”

“저 고등학교 때 오셨던 분은 성격이 엄청 예민하셨는데.”

“음, 그런 분도 가끔 계시지만 대부분 좋아.”

나는 수녀님이 내주신 차를 홀짝이며 자꾸만 눈길이 가는 새별이를 보았다. 이 귀여운 아이가 부디 수녀님 사랑을 듬뿍 받고 예쁘게 크기를 빈다.

수녀님이 쿠키를 주며 물었다.

“요즘은 좀 어때? 여전히 어둡고 나쁜 것들만 보는 거니?”

“…….”

수녀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네가 사회정의를 위해 경찰 일을 택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 하지만 네가 그 일을 하며 사회의 어두운 단면만 주시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이 아프네.”

나는 이제 많이 늙어 주름이 굵어진 수녀님을 보며 웃었다. 내게 수녀님은 엄마다.

“전 괜찮아요.”

“정말?”

“네.”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야?”

“왜요?”

“아무 일도 없는데 여길 찾아올 리가 없잖아.”

“…….”

얼굴이 화끈거린다. 부끄럽다. 어린 시절을 책임져 주셨던 수녀님이 저런 말을 하게 한 내 자신이 무척 바보 같다.

“죄송해요. 진짜 아무 일 없어요. 그냥 수녀님 보고 싶어서 왔어요.”

“정말?”

“네.”

루이사 수녀님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됐다. 얼른 먹어.”

나는 오랜만에 보는 수녀님의 쿠키를 손에 쥐고 물끄러미 보았다. 이건 수녀님이 직접 굽는 쿠키다. 루이사 수녀님은 쿠키를 구울 때 초콜릿을 넣고, 로사 수녀님의 쿠키에는 라즈베리가 들어 있다. 아주 오랜만에 먹어본다.

쿠키를 먹기보다 추억을 먹는 느낌. 나는 속으로 기도를 올린 후 쿠키를 한입 베어 물려고 하다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시종일관 TV에 집중하던 새별이가 내가 들고 있는 쿠키를 빤히 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흠, 이거…… 먹고 싶어?”

새별이는 말없이 쿠키만 뚫어지게 보고 있다.

수녀님이 웃으며 새별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우리 아가는 아까 하나 먹었지? 자꾸 먹으면 치과 가야 해.”

“…….”

새별이는 귀여운 눈으로 내 손에 들린 쿠키만 보고 있다. 저렇게 먹고 싶어 하는데 내가 먹어 치우기가 미안해진다. 나는 머뭇거리며 쿠키를 내밀었다.

“두 개 있는데. 하나씩 먹을까?”

새별이는 방긋 웃는다. 하지만 바로 받진 않고 수녀님을 보며 눈빛으로 허락을 구한다. 간절한 눈망울. 저 부탁을 어찌 거절할까?

하지만 루이사 수녀님은 매우 단호하신 분이다.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꼭 아이가 원하는 모든 걸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수녀님이 안된다고 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하나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

루이사 수녀님은 잠시 고민하다 새별이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럼 하나 먹고 밤에 치카치카 열심히 하고 자는 거다?”

수녀님 입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새별이 방긋 웃으며 양손을 번쩍 든다. 너무너무 귀여운 아이다. 웃으며 쿠키를 내밀자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는 새별이.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 특유의 노랫말 같은 인사. 나도 항상 저 인사를 하며 밥을 먹곤 했다. 맛있게 먹는 새별이를 보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내 몫의 쿠키 하나가 남았지만 난 손대지 않았다. 눈치 보고 하나 더 주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수녀님이 일어나며 말했다.

“집에 김치 있어?”

“김치요? 편의점 거 먹는데 보통.”

“기다려. 이번에 김치 담갔거든. 좀 싸줄게. 집에 가서 라면 먹을 때 먹어.”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요놈아.”

수녀님이 일어나 주방으로 가시는 걸 본 나는 얼른 새별이에게 속삭였다.

“그거 빨리 먹어. 오빠가 하나 더 줄 테니까 수녀님께는 비밀.”

“…….”

야금야금 쿠키를 먹고 있던 새별이는 잠시 사고가 정지한 듯 멈칫한다. 그러더니 주방을 힐끔 본 뒤 자기 쿠키를 입에 막 쑤셔 넣기 시작했다. 아 귀여워 미치겠네. 꽤 큰 쿠키라 입에 가득 찬 과자를 사력을 다해 씹는 새별이.

나는 차를 후후 불어 내밀었다.

“자, 이거 마시고. 꿀꺽 삼켜.”

새별이가 차를 마신 후 입안의 쿠키를 녹인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내 쿠키에 가 있다. 어지간히 과자를 좋아하나 보다. 하긴 이 나이엔 나도 그랬다. 나는 고사리 같은 손에 쿠키를 쥐여주며 속삭였다.

“쉬. 조용히 하고 그냥 원래 네 것처럼 먹는 거야. 이건 우리 둘만 아는 비밀. 알았지?”

새별이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주방을 힐끔거린 새별이가 다시 쿠키를 물고 TV에 집중한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TV가 그렇게 재미있어?”

“응!”

“여러 명 나오는데. 누가 제일 좋아?”

새별이가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윌리!”

응? 저 프로그램에 윌리라는 사람이 나오나? 우리나라 예능인데. 가수가 사용하는 가명인가 보다.

“윌리?”

새별이가 TV를 가리킨다. 프로그램 중간에 출연자의 인터뷰를 따는 영상이 보인다. 출연자는 유명 배우. 본래 저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가 아니라 일회성 출연인 모양이다. 저 배우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윌리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는 건 확실한데.

“저 사람 이름이 윌리야?”

새별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윌리!”

왜 자꾸 윌리라고 하는 거야? 새별이가 쿠키를 물고 배시시 웃는다.

“새별이도 윌리 갖고 싶어요.”

응? 사람을 어떻게 가져? 나는 다시 TV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출연자의 뒤에 앉아 있는 큰 곰 인형을 보았다. 곰 인형이 입고 있는 핑크 티셔츠에 윌리라는 이름이 써 있다. 인형 이름이었구나.

나는 빙긋 웃으며 새별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다 몸을 굳히며 급히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곰 인형…… 사건 현장에도 저 인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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