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90화 (189/328)

살인의 기억 190화

15. 기묘한 시신(12)

탑골공원 주차장.

각자 소주 봉투 하나씩을 든 우리는 공원 방향으로 걸었다. 아무리 기다리는 것만이 최선인 시간이라고 해도 시간 낭비를 할 생각이 없던 나는 오진규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여긴 왜 온 겁니까?”

오진규가 웃으며 말했다.

“양진승이라는 사람 찾으러 왔죠.”

“여기서 말입니까?”

“예. 김, 이, 박, 최씨가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죠.”

이 사람이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오진규가 휘적휘적 걸으며 말했다.

“양씨는 흔하지 않으니 금방 찾을 겁니다.”

오진규는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다 잔디밭 안쪽에 신문지와 박스를 깔고 누워 있는 무리들을 발견하곤 그쪽으로 간다. 나는 그가 가는 방향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숙자?”

오진규가 소주 봉투를 들고 걸어가 말한다.

“안녕들 하십니까?”

박스를 깔고 누워 있던 사람들은 오진규를 힐끔 본 뒤 답도 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한다. 하지만 오진규가 봉투에서 소주병을 꺼내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초록색 소주병을 흔들어 거품과 회오리를 만든 오진규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양진승이라는 사람 아는 분?”

노숙자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다 한 명이 번쩍 손을 들며 말했다.

“나! 내가 압니다.”

그러자 곧바로 다른 노숙자들이 앞다투어 손을 든다.

“저요! 저도 압니다!”

“나도 아는 거 같습니다!”

“나도 어디서 들어본 거 같소!”

뭐야, 이 분위기? 진짜 알고 손을 드는 것 같지 않은데? 오진규는 그저 웃으며 손든 사람에게 소주를 하나씩 쥐여주며 말했다.

“자, 아시는 분들만 여기 따로 앉아봅시다.”

그러자 손을 들지 않았던 다른 노숙자들이 와르르 손을 든다.

“나도 아는 것 같아요!”

“나는 확실히 알아!”

“나는 우리 엄마보다 그 사람을 더 잘 알아!”

오진규는 짜증도 내지 않고 실실 웃으며 모두에게 소주를 나눠준 뒤 그들이 내어준 박스에 앉아서 날 바라본다.

“앉으시죠?”

“…….”

냄새 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는 오진규. 물론 노숙자라고 무시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같이 어울리는 건 약간 꺼려진다.

일단 그가 뭘 하는지 지켜봐야 하니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자 오진규가 노숙자들을 보며 물었다.

“자, 한 명씩 이야기 좀 들어보죠.”

노숙자들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고 있다. 일단 소주를 받긴 했는데 갑자기 지어내려고 하니 스토리가 안 떠오르는 모양이다. 결국 오진규가 한 명을 지목하자,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게, 작년 겨울에 서울역에서 노숙할 때 본 거 같은데.”

오진규가 물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뭐라고 불렀습니까?”

노숙자가 눈알을 굴리다 말했다.

“양진승.”

오진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사람을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나는 배식 시간에 그 이름을 들은 것 같수.”

“사람들이 그에게 뭐라고 불렀습니까?”

“뭘 물어, 양진승이지.”

오진규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 후 다음 사람을 본다. 지목당한 노숙자가 말했다.

“어, 혹시 그 사람 원래 아파트 수위 하던 사람 아닙니까? 저쪽 화단에서 지내는 사람들 중에 본 거 같은데.”

오진규가 멀리 떨어진 화단에 한 무리의 노숙자들이 또 있는 것을 확인 후에 물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뭐라고 불렀습니까?”

노숙자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양진승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처음부터 양진승이라는 이름을 까고 시작을 하니 이 모양이지. 경험 많은 오진규가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오진규는 계속해서 모든 노숙자들에게 질문을 했다. 그때마다 그는 사람들이 그를 뭐라고 불렀는지를 묻는다. 왜 자꾸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걸까?

벌써 열 명이 넘는 노숙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오진규. 질문을 받고 자기 차례가 끝난 이들은 소주를 소중히 안고 자기 자리로 가 눕는다. 아마 저녁이 되면 술판을 벌일 것이다.

나는 이 짓거리가 언제 끝나는지 한숨을 쉬며 지켜보았다.

그때 오진규가 조금 젊어 보이는 노숙자에게 질문하는 것이 보인다.

“그쪽 분은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안경을 쓴 노숙자. 다른 자들과는 약간 다르게 순진한 선생처럼 생겼다. 그는 한참 생각을 해본 뒤에 소중하게 소주병을 끌어안고 말했다.

“저, 저기 그게 마, 말입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거 안 뺏습니다.”

“정말이죠?”

“예.”

“후.”

오진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숙자를 바라본다. 노숙자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게요. 제가 원래 종로3가 지하철 근처에서 노숙하다 여기로 왔는데…….”

“예, 그런데요?”

“지하도가 목이 좋거든요. 근데 거기는 다 자리가 있어요. 얼마나 텃세가 심한지 괜히 근처 갔다가 두들겨 맞기 일쑤입니다.”

“네, 계속하세요.”

“거기서 제가 그 사람을 본 거 같아서.”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냐고! 다 똑 같은 이야기인데 이걸로 양진승을 어떻게 찾냐 말이다! 오진규는 지치지도 않는지 같은 질문을 또 던진다.

“사람들이 그에게 뭐라고 불렀습니까?”

안경 쓴 노숙자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머뭇거린다.

“그게…….”

“괜찮아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까 찾는 사람 이름이 양진승이라고 했죠?”

“네. 그 이름을 들으셨습니까?”

“…….”

노숙자가 다시 머뭇거린다. 잠시 눈치를 보던 노숙자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소주 안 빼앗는다고 약속했죠?”

“물론입니다. 왜요, 그 이름이 아니었나요?”

노숙자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은 이름은 못 들었고. 사람들이 그 사람한테 양 사장이라고 부르는 것만 들었어요.”

순간 오진규의 눈이 번쩍 떠진다.

“어디서 보셨다고요?”

“종로3가 지하철역이요.”

“몇 번 출구 쪽입니까?”

“5번인데요…….”

“인상착의 기억나십니까?”

“아…… 뭐, 대충.”

오진규는 수첩을 꺼내며 물었다.

“그 사람이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습니까?”

노숙자가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제 안경 부러뜨린 인간이거든요.”

뿔테안경이 부러져 더러운 천으로 감겨 있다. 부러진 테를 고치지 못해 저러고 다니는 모양이다.

오진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착의를 묻고 그것을 받아 적는 것이 보인다. 그 후로도 질문 몇 개를 한 오진규는 아직 인터뷰할 노숙자가 남았음에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내게 손을 내민다.

“소주 한 병만 더 주세요. 제 소주는 다 줘버려서.”

“…….”

내가 소주를 내주자, 안경 쓴 노숙자에게 한 병을 더 쥐여준 오진규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오늘 고마웠습니다.”

얼굴이 활짝 핀 노숙자가 소주를 빼앗길까 두려운 기색으로 병을 꼭 끌어안는 것이 보인다.

오진규는 화단을 벗어나 지하철역 방향으로 가며 말했다.

“예전에도 이런 사건이 있었죠. 그때는 부동산이 아니라 자동차였지만. 명의자 주소지로 가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이 살고 있고. 명의자 핸드폰도, 체크카드도 있고 사용 기록도 있는데 사람만 없었습니다.”

일단 이런 사건의 경우 노숙자의 명의를 빌릴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정말 찾을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오진규가 멀어지는 화단 쪽을 보며 말했다.

“일부러 처음부터 이름을 흘렸죠. 그리고 분류하는 겁니다. 노숙자들 사이에서 통성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보통 성만 부르거나 별명을 부르죠. 그러니 이름을 정확히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는 소린 거짓말이란 겁니다.”

음, 그런데 안경 쓴 노숙자는 양 사장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고 했지.

“양 사장이 양진승이라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오진규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사에 보장이 되는 업무가 있습니까?”

“…….”

“보장할 수 있는 사실에만 움직이는 형사는 없습니다, 과장님.”

오진규는 윙크를 하며 지하철역으로 걸어간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소주병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진규의 말이 옳다. 강혁 아저씨가 그랬다. 열 번을 속아도 열한 번 출동하는 것이 경찰이라고. 그래서 범죄를 막을 수 있다면 기꺼이 속으라고.

어릴 때 들었던 양치기 소년 이야기.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던 소년은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주변인이 믿어주지 않아 결국 양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만약 그때 오진규 같은 경찰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백 번을 속아도 출동해 주는 경찰이 있었다면. 어쩌면 그 소년과 양들은 늑대에게 잡아 먹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아저씨께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던 이야기인데. 나는 그리 살지 못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그것을 현실화하며 살아가는 진짜 형사가 있다.

그가 우리 팀이란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뛰었다.

“선배님! 같이 가시죠!”

* * *

종로3가 5번 출구.

우리는 계단 안으로 들어가 지하철과 연결된 통로 양 주변에 박스를 깔고 잠든 노숙자들을 살피며 하나씩 이름을 물었다.

하지만 노숙자들은 순순히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 어떤 사정이 있어 노숙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입니다, 성함 좀 알 수 있을까요?”

“지랄.”

“여기 신분증입니다.”

“꺼져, 볼일 없어.”

“협조 부탁합니다.”

“아씨, 꺼지라고!”

반복되는 이야기들. 그들은 뒤가 없는 사람들이다. 지킬 것이 없으니 막 나가는 인간들도 있다.

“경찰이면 뭐 어쩌라고? 내가 너 같은 공무원 새끼들 때문에 이 꼴이 됐는데. 안 꺼져? 이걸 확 그냥!”

깡통을 집어 던지는 인간들도 있다. 신분증을 보여줘도 이리 나오니 방법이 없다. 오진규를 슬쩍 보니 소주병으로 노숙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얼른 깡통을 던지는 아저씨에게 소주병 하나를 쥐여주며 말했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이름만 말해주시면 되는데.”

노숙자는 소주를 보더니 표정이 나아진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이름은 왜? 무슨 일인데?”

“아뇨, 그냥 찾을 사람이 있어서.”

“찾는 인간이 누구인지 말해. 내 이름 묻지 말고.”

“…….”

“싫으면 그냥 가.”

“저기, 양 사장이라고 아십니까?”

“몰라.”

“…….”

“됐지? 그럼 가. 나 자야 돼.”

“저기, 아저씨.”

“아씨! 밤 되면 너희 짭새 새끼들이 나가라고 하니 낮에 자야 될 거 아냐! 저리 꺼지라고.”

“…….”

나는 다시 오진규를 바라보았다. 그도 나와 비슷한 처지인 것 같다. 오진규는 시간을 확인한 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날 보며 어깨를 으쓱한다. 결국 이 방법으론 찾기 힘든 건가?

나는 가만히 노숙자들을 바라보다 주섬주섬 박스 몇 개를 챙겼다. 사람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걸 빼앗을 수 없어, 근처 수퍼에 가 신분증을 보여주고 박스를 얻어온 나는 빈자리로 가 박스를 깔고 옆으로 누웠다.

그러자 날 지켜보던 오진규가 다가와 물었다.

“뭐 하십니까, 과장님?”

나는 벽을 보고 옆으로 누운 후 박스를 이불처럼 덮으며 웃었다.

“아까 안경 쓴 노숙자가 그랬죠? 여기서 엉덩이 붙이려고 하다 맞아서 안경 부러졌다고.”

오진규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예, 그랬죠?”

나는 엉덩이를 꿈틀거리며 편한 자세를 잡고 드러누웠다.

“그럼 우리도 누가 때리겠죠. 그게 양 사장이면 고마운 거고.”

오진규가 멍한 얼굴로 날 바라보다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는다.

“거 좋은 방법이군요. 이참에 한숨 잘까요?”

“오 선배님 박스도 얻어왔어요. 라면 박스 말고 티슈 박스라서 푹신할 겁니다.”

“오, 센스 넘치는 과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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