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92화
15. 기묘한 시신(14)
국가수사본부 수사과.
양진승은 끌려오는 내내 강하게 반항했다. 수갑 찬 손을 마구 휘두르기도 하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기도 하던 그는 사무실 옆 방에 있던 유치장에 갇힌 후에도 마구 소리를 지르며 철창을 두드린다.
“야이 개새끼들아! 능력 X도 없는 대한민국 짭새 새끼들아! 잡아갈 사람이 없어서 하루하루 빌어 처먹는 거지를 잡아와? 할 일이 그렇게도 없냐, 이 상놈의 새끼들아!”
하, 진짜 시끄러운 양반이구나. 오진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바로 취조 준비하겠습니다. 직접 하시겠습니까?”
나는 난리를 치는 양진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런 놈이 살인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 저건 그냥 술 취한 노숙자다.
나는 오진규를 보며 물었다.
“어때 보입니까?”
오진규가 양진승을 힐끔 본 뒤 고개를 저었다.
“명의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자 관상이 아니네요.”
나도 동감이다. 나는 오진규에게 지시를 내렸다.
“범인이 양진승의 이름으로 계좌까지 개설했습니다. 본인과 함께 동행해야 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을 테니 분명히 기억을 하고 있을 겁니다. 적당히 협박해서 인상착의 알아내시고 가급적이면 백승현 사진을 직접 보여주세요.”
오진규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옥 보내주면 오히려 좋아할 것 같은데.”
노숙자들은 힘들 때 가벼운 죄를 지어 일부러 교도소에 가기도 한다. 적어도 교도소는 밥을 주니까. 나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양진승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잠깐 저기 갇힌 것도 저 난리를 치는 인간인데 일부러 교도소에 가려고 하진 않을 겁니다. 취조해 주세요.”
“음, 그건 그렇네요. 알겠습니다. 이쪽은 제가 맡죠.”
오진규가 경찰봉을 꺼내 유치장 철창을 마구 긁으며 고함을 친다.
“입 좀 닥치고 있어요! 지금 꺼내줄 테니까!”
“빨리 열어! 열라고! 답답하다고, 이 새끼야!”
오진규가 유치장 문을 열어주자 수갑을 찬 채로 뛰어나오는 양진승이 숨을 몰아쉰다. 밖으로 나와서 겨우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 양진승이 오진규를 노려보며 말했다.
“씨X, 죽을 뻔했네.”
폐쇄공포증인가? 그리 좁지 않은 유치장이다. 다닥다닥 붙여서 재우면 범죄자 열도 재울 수 있는 넉넉한 넓이의 유치장인데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양진승을 본 오진규는 내 쪽으로 슬쩍 윙크를 보낸다. 교도소에 보낸다는 협박이 통할 것 같다는 신호이다.
오진규는 노련한 형사다. 무작정 협박만 하진 않을 것이다. 취조실에 데려가 뜨끈한 설렁탕 한 그릇을 사주며 살살 꼬시기도 할 거다. 어쨌든 뭐든 알아내겠지.
취조실로 가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보던 나는 유치장 옆에 있는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나오려던 관우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보인다.
“힉! 놀래라.”
“화장실 가?”
“아뇨, 밖이 너무 시끄럽길래 무슨 일인가 해서.”
“아, 양진승 체포해 왔다. 보일러실 대여한 인간.”
“오, 그놈이 범인일까요?”
“아니, 노숙자였어. 명의 도용이다.”
“엥? 월세가 명의 계좌에서 이체됐던데. 명의 도용으로 계좌까지 개설하긴 좀.”
“본인 데려가서 만들었겠지. 돈 얼마 쥐여주면 명의 빌려줄 노숙자는 넘치니까.”
“음, 그건 그렇죠.”
“네 쪽은 어때? 뭐 좀 나왔어?”
관우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폴더 30개까지 줄여두긴 했는데 전부 암호가 걸려 있어서 지금 풀고 있습니다.”
“암호도 풀 수 있어?”
“풀 수 있죠.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몇 개나 풀었어?”
“다섯 개요.”
다섯 개. 그럼 앞으로 스물다섯 개 남았다. 벌써 오후 시간. 주 검사가 벌어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하루 반밖에 안 남았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관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운이 진짜 좋아서 일이 술술 잘 풀리면 앞으로 30시간 정도요.”
30시간…… 관우 녀석은 벌써 2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30시간을 더 강행군 시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사람이 54시간이나 잠을 자지 않고 버티기는 힘들다.
“내가 도울 일 없어?”
관우가 씩 웃으며 말을 아낀다. 하긴, 내가 이쪽 업무에서 도움이 될 리가 없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내 자리로 가 턱을 괴었다. 망할 양진승이 놈이 기억 읽는 걸 방해해서 중요한 걸 못 봤다고 생각하니 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젠장…….”
그래도 그나마 건진 게 뭐였지? 다시 생각해 보자.
나는 기억 속에서 백승현의 집에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의 머리를 하나 보았다. 그게 사망한 백승현의 아내인지, 백승현 본인인지는 알 수 없다. 이불을 덮어쓰고 있어 정수리 부근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 옆의 이불도 불룩했다. 보육원 시절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야 자는 아이도 있었다. 어쩌면 백승현이나 아내는 이불 속에 완전히 몸을 넣어야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범인은 제3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곰 인형을 꺼내 눈알을 닦고 인형에 묻은 먼지를 터는 행동을 했다. 젠장, 이게 다야? 저 망할 노숙자 새끼 때문에 중요한 장면을 놓친 기분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망할, 본 거라고는 인형 이름밖에 없네.”
관우가 갈겨대는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중얼거린 나는 답답한 마음에 일어나 관우 자리로 갔다. 가만히 놀고 있는 건 성미에 안 맞다.
나는 관우 뒤에 서서 폴더의 암호를 해제하는 업무를 구경했다. 30개의 폴더가 들어 있는 큰 폴더의 파일 이름을 자세히 살피던 내가 물었다.
“폴더 분류 기준은 뭐야?”
관우가 키보드를 치며 답한다.
“범인들의 심리상 숨겨야 할 무언가는 사람 손이 안 갈 만한 제목으로 지을 거라고 가정했습니다. 그래서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이름. 즉, 영문이나 숫자의 나열로 이루어진 폴더를 먼저 확인했는데 특별한 게 안 나왔습니다. 아니, 전부 특별하다고 해야 되겠죠? 구하기도 힘든 야동이었으니까. 그리고…… 영문이나 한글 폴더 중에 말 되는 폴더들을 확인해도 뭐가 안 나와서 암호 걸린 폴더들만 따로 추린 겁니다.”
“그게 30개야?”
“네.”
“확인 순서는?”
“시간이 없어서 어떡하든 확인에 순서를 부여하려고 했는데 더는 분류가 안 돼요. 무작위로 확인 중입니다.”
음, 진짜 30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 딱 30시간 만에 증거가 나오면 괜찮다. 하지만 여기 없을 경우에는 백승현의 감시가 무너진다.
나는 의자를 끌어 관우 옆에 앉으며 폴더를 물끄러미 보았다.
“여기 이건 뭐야? 의미 없는 영문 나열은 제외했다고 하더니.”
“아, 그거. 거꾸로 읽으면 마이 네임이란 영문입니다.”
“아.”
“이상한 놈이죠?”
마이 네임을 왜 거꾸로 썼을까? 수상한 생각이 들었던 나는 문득 눈을 번쩍 떴다. 나는 관우를 밀어내며 키보드를 끌어왔다.
“왜 그러세요, 과장님?”
“잠깐만.”
나는 기억 속에서 읽었던 곰 인형의 이름을 떠올렸다. 송수신기에서 전송된 영상 파일. 그것을 전송한 것이 곰 인형이라고 생각하면 이 폴더는 곰 인형에게 있어 ‘My’라는 1인칭 단수 소유격 대명사를 붙일 대상이 된다.
“Elle…….”
나는 내가 읽었던 곰 인형의 이름을 입력했다.
[암호가 틀렸습니다. 다시 입력해 주세요.]
제길, 이게 아닌가? 나는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관우는 그런 날 보며 실소를 지었다.
“곰 인형 이름이죠?”
나는 눈을 돌려 관우를 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에이, 인형 KCSI로 보내셨잖아요. 거기서 분석결과 보고서 나왔는데 곰 인형의 이름으로 보이는 자수가 나왔다고 써 있었어요. 이미 입력해 봤죠. 제가 바보도 아니고.”
음, 관우가 그걸 알고 있었고 마이 네임이란 폴더 제목까지 확인했으니 입력해 봤을 수도 있겠구나.
“이건 아닌 것 같네.”
“너무 힘 빼지 마세요. 원래 이 업무가 그래요. ‘정답이다!’라고 생각하고 덤비면 힘만 빠지죠.”
“…….”
내가 키보드를 밀어주자 관우가 웃으며 다시 키보드를 두들기다 멈칫한다. 갑자기 화면을 뚫어지게 보는 관우. 나는 갑작스러운 관우의 반응에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녀석을 주시했다.
관우는 턱을 쓸며 화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이 네임이 거꾸로 써 있었다…….”
하, 인마. 그건 나도 좀 전에 생각해 봤어. 하지만 말이다. Elle라는 이름은 거꾸로 해도 같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관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수첩을 꺼내 곰 인형 이름을 쓴다. 그러더니 여러 번 같은 이름을 써본 뒤 모든 글자를 대문자로 바꾸어 써본다.
‘ELLE’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곰 인형의 이름은 아닌 것 같네.”
나는 자리로 돌아가다 다시 관우를 보았다. 수첩에 적힌 이름을 뚫어지게 보며 뭔가 생각해 내려는 관우. 시간을 보니 벌써 30분이나 지났다.
“관우야, 우리 시간 없다. 괜히 시간 낭비 말고…….”
시간 낭비 그만하고 빨리 폴더 암호나 풀라고 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내 눈에 관우가 적어둔 대문자 이름이 보였다. 책상을 돌아 관우 앞에 섰기에 거꾸로 보이는 이름.
나는 이름을 보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대문자로 표기된 ELLE라는 이름을 거꾸로 보자 다른 문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3773?”
숫자 네 개. 관우는 내 중얼거림을 듣고는 바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챘다. 수첩을 거꾸로 뒤집은 관우가 얼른 폴더를 클릭 후 암호를 입력하고는 양손을 번쩍 든다.
“풀렸습니다! 3773! 이게 암호였어요!”
와씨, 그냥 넘어갔으면 어쩔 뻔했냐? 자리에서 일어나 그냥 돌아갔으면? 한 번 더 관우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관우 수첩에 적힌 글자를 거꾸로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 머리 좋은 관우 녀석이 어떡하든 풀어내긴 했겠지.
나는 급히 관우 옆자리에 앉았다.
“파일 몇 개야?”
“서른 개요.”
생각보다 많다.
“영상 파일이야?”
“예, 서른 개 전부.”
“몇 분 분량이야?”
“어떤 건 40분이고, 어떤 건 24분이네요. 생각보다 짧습니다.”
“바로 재생해. 같이 확인하자.”
“예.”
관우가 첫 번째 영상을 재생시키자. 곰 인형의 시점에서 보는 침실 영상이 나온다. 설마 미친놈이 부부관계를 하는 걸 훔쳐본 건 아니겠지?
다행히 침대는 비어 있고 빛의 감도로 보았을 때 시간은 낮이다. 빈 침대 옆에 나타난 백승현. 그의 손에 큰 박스 하나가 들려 있다.
하얀 침대보 위에 박스를 올려둔 그는 안방 창문을 열었다. 백승현의 집 구조상 안방에는 베란다가 없다. 창문을 열면 바로 밖이다.
그는 창문을 두 번 열었다. 이 각도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두 번을 열었다는 건 창문과 모기장을 모두 열었다는 뜻이다.
그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박스를 열었다.
그러자 비둘기 다섯 마리가 날아오른다. 비둘기들이 침실을 날아다니며 깃털을 흘리고 있다. 어떤 녀석은 하얀 침대보 위에 똥을 싸기도 한다.
백승현은 박스를 뒤집어 침대 위에서 탈탈 턴다. 그러자 비둘기들이 흘린 하얀 솜털들이 침대보 위로 떨어진다.
관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일까요?”
나는 심각한 얼굴로 화면을 노려보았다.
“사망한 백승현의 아내는 심각한 수준의 결벽증이 있었다. 그런데 백승현이 아내가 없는 틈에 집으로 돌아와 창문을 열어두고 밖에서 들어온 비둘기가 집안을 어지럽힌 척을 하고 있어.”
관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을 일부러 하고 있다고요?”
“음…… 낮 시간이다. 평일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병원에 있을 시간일 거야. 결국 이 사건은 남편의 짓으로 보기 어려운 거지.”
백승현은 비둘기들을 그대로 놓아두고 박스만 들고 침실을 벗어난다.
그리고 5분 뒤. 비둘기들이 온 방 안을 날아다니며 어지럽히는 영상 끝에 외출을 하고 돌아온 아내의 모습이 잡힌다.
그녀는 침실에 들어오자마자 놀라 비명을 지르며 핸드백을 마구 휘두르며 비둘기들을 쫓아내고 창문을 닫아건다.
잔뜩 스트레스를 받아 바닥에 주저앉고는 마구 소리를 지르며 자기 머리를 쥐어뜯는 아내. 그녀는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눈물까지 흘리며 멍하게 망가진 침실을 바라본다.
관우가 헤드폰을 벗으며 한숨을 쉰다.
“이거 그냥 아내 놀리는 몰래 카메라 같은 거 아닙니까? 잘못 짚은 거 같은데…… 다른 영상 볼까요?”
나는 부정적인 관우의 말에도 화면을 뚫어지게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