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93화
15. 기묘한 시신(15)
백승현 감시 해제 30시간 전.
나는 여전히 관우와 함께 아지트에서 발견된 영상물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다.
관우는 영상의 초반부만 보며 사건 관련 영상이 아닌 경우 다른 영상을 확인하고자 했지만 나는 모든 영상을 자세히 확인하자 주장했다.
관우는 연신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과장님. 이제 서른 시간 남았어요. 만약 여기서 영상 못 찾으면 우린 플랜B를 찾아야 하고, 서른 시간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일의 우선순위라는 게 있으니 일단 사건 영상부터 찾는 게 어떨까요?”
“…….”
나는 말없이 영상을 뚫어지게 보았다. 영상 속에서 여전히 백승현의 시시한 장난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내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 영상은 짓궂은 남편이 아내를 놀리는 재미있는 영상으로 볼 수 있지만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아내를 괴롭히며 천천히 말려 죽이려 하는 영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영상 속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매우 컸다.
나는 관우를 보며 말했다.
“관우야.”
“예.”
“넌 스너프 필름(snuff film)의 정의를 정확히 알아?”
관우는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떤 사람이 실제로 살해되거나 자살하는 영상이죠. 어휴, 그런 걸 보는 또라이들은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인지 몰라요.”
“어떤 법에 적용받는지 알아?”
“어……. 그게.”
잠시 생각해 보던 관우가 말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아닙니까?”
“그래, 정확히는 제44조의 7 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의 법률이다.”
관우가 엄지를 치켜세운다.
“역시 경대 수석.”
나는 관우의 눈을 보며 말했다.
“이 법률의 해석이 무엇인지 알아?”
관우가 머리를 긁으며 웃는다.
“그건 기억이 안 나네요.”
나는 다시 영상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 아래 달린 몇 가지 항목 중 3번에 해당하는 대목이 있어.”
“그게 뭔데요?”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 문언, 음향, 화상 또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
“…….”
관우는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제 눈치챘다. 다시 화면을 본 관우가 말했다.
“아내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는 상대의 공포와 불안감을 유발하고 그것이 지속적인 경우. 이 몰래 카메라 역시 스너프 필름의 범주에 있다는 뜻이군요.”
“음.”
관우는 지금껏 남편의 장난 정도로만 치부하던 영상에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심각한 얼굴이 된다.
생각해 보면 남편의 장난은 법적인 문제가 생길 행동까지는 아니지만,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가 너무 커 이런 장난을 계속하는 남편이 이상해 보이긴 했던 관우였다.
“음…… 스너프 필름이라.”
억지로 끼워 맞추면 이걸로 백승현을 옭아맬 수 있다. 이걸 스너프 필름이라고 주장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44조의7 1항 3의 불법영상 제작 및 소지 죄로 구류를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지금 시간에 쫓기고 있는 상황을 탈피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영상은 매우 애매하다. 수위가 아슬아슬하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변호사를 대동할 경우 이빨도 못 박고 되레 만신창이 고소를 당하게 될 것이다.
관우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을 쉰다.
“이건 좀 애매한데…….”
지금 확인하고 있는 영상은 스물세 번째 영상이다. 백승현이 스물세 번이나 반복해서 한 장난은 주로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내가 외출했을 때를 틈타 집으로 들어와 집을 어지른다. 건조기에 넣지 않은 세탁물이 있을 때는 일부러 세탁기의 물을 넘치도록 받아 베란다에 홍수를 만들기도 한다.
백승현은 이렇게 자신이 의심받지 않는 선에서 장난을 친다. 아내 입장에서는 자신이 창문을 열어두고 외출했거나, 세탁물을 그대로 두고 외출해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것이다.
“하, 치밀한 새끼.”
영상 속에서 또 자신의 실수라 자책하며 주저앉아 울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이번에 백승현은 아내가 아슬아슬한 위치에 둔 화분을 일부러 가지고 나가 밖에서 깬 뒤 잔해를 가져와 거실에 흩뿌렸다.
“장난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모든 범죄가 그렇다. 아니, 인간은 원래 그렇다. 무엇인가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 재미있게 느껴지면 다음에는 더 큰 자극을 원하는 법이다.
장난은 장난일 뿐이라고? 그렇지 않다. 어릴 적 하던 불장난을 생각해 보라. 처음에는 아주 작은 불을 피우고 기뻐하지만 점차 쓰레기 더미를 태우고, 종국에는 집을 태우는 방화범이 될 수 있다.
자제력을 잃은 장난은 점점 커지고, 점점 범죄화되는 것이다. 영상 속의 백승현도 점차 강도 높은 장난을 치고 있다.
영상을 뚫어지게 보던 관우가 어느 순간 스페이스 바를 누른다. 영상 속에 침대에 잠이 들어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과장님.”
“음?”
“혹시 사건 났을 때 현장에서 고양이가 발견됐습니까?”
고양이? 갑자기 고양이는 왜?”
“아니?”
관우가 날 보며 물었다.
“혹시 장모님이 데리고 간 건 아니고요?”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다. 물론 내가 사건 지휘자가 아니니 조력자 입장에서 필요한 정보만 전달받았을 수 있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집에 반려동물 물품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서는 그런 부분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니, 없었어.”
관우가 화면을 내린 후 재생 중인 파일의 생성 일자를 보았다.
“음, 지금부터 73일 전에 찍은 영상인데.”
“왜?”
관우가 다시 화면을 보여주며 모니터를 짚는다.
“여기 침대 옆 스탠드가 놓인 탁자 보이죠?”
“어.”
“여기 자세히 보세요.”
관우가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보니 파란색 플라스틱 막대기 같은 것이 보인다.
“파리채 같아 보이는데.”
“아뇨, 이거 고양이 장난감입니다.”
“장난감?”
“예, 끝에 나비나 파리 모양의 장난감이 낚싯줄에 묶여 있는 장난감이에요.”
아이들 장난감일 수 있다. 아직 아이가 없지만 부인이 만삭이면 보통 아이들 장난감을 미리 사두기도 하니까.
“고양이 장난감 확실해?”
“네, 우리 어머니가 고양이 키우셔서 확실합니다. 그리고 여기 보세요.”
관우가 화면 아랫부분을 확대한다. 그러자 침대 다리 부근에 줄이 묶여 있는 것이 보인다.
“이건 밧줄 같은데? 아닌가, 밧줄이라고 하기엔 좀 얇은 것 같은데.”
관우가 손톱을 세우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고양이들은 발톱으로 나무를 긁는 걸 좋아해요. 발톱이 간지러워서 그런다는 사람도 있고, 스트레스 해소용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쨌든 이런 걸 해두지 않으면 집안 가구들에 발톱 자국을 내거든요. 이 집은 확실히 고양이를 키우는 집입니다.”
음, 그럼 그 고양이가 어디에 있다는 거야? 물론 고양이가 어디 있는지 별로 궁금하진 않다. 사건에 특별히 연관 있어 보이지도 않고.
“창문 열어두고 장난쳤을 때 밖으로 나갔을 수도 있고. 별로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넘어가자.”
사건 현장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것을 놓을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관우는 백승현의 장난 영상이 끝나자 다음 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뜬다.
“어? 고양이다.”
다음 영상의 시작 부분.
아내는 침대에 옆으로 누워 잠이 들어 있고, 백승현은 출근을 하려는 참인지 외출복을 입은 채 잠든 아내 옆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다. 잿빛의 고양이가 귀여운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관우가 말했다.
“러시안 블루였네요.”
“그게 뭐야?”
“고양이 종류요. 요즘 많이 키우는 애들…… 저! 저, 저!! 저 개새끼가!”
영상을 보며 답하던 관우가 놀라 고함을 지른다. 급히 화면을 보자 백승현이 고양이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버둥거리고 있는 고양이는 한참 반항을 하며 백승현의 손과 팔을 할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백승현은 벽에 고양이를 밀어놓고 목을 조른다.
열이 받은 관우가 책상을 주먹으로 쾅 때리며 말했다.
“말도 못 하는 불쌍한 애를! 저 씨X놈이!”
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고양이. 하지만 고양이는 점점 몸에 힘이 빠지고 축 늘어진다. 하지만 백승현은 고양이를 완전히 죽일 생각인지 몸에 힘이 빠진 고양이의 목을 끝까지 조르고 있다.
결국 더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눈을 질끈 감는 관우.
반대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백승현을 노려보았다.
그는 의사인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동원해 여러 차례 고양이가 완전히 죽었는지를 확인하고는 옆으로 자고 있는 아내의 등 뒤로 가 죽은 고양이를 아내 등에 바짝 붙여 눕힌다.
그러고는 히죽 웃은 뒤 살금살금 소리를 죽여 가방을 들고 출근한다. 사람을 살해하는 영상은 아니지만 동물도 생물이다. 무엇인가가 생명을 잃는 모습을 보며 좋아하는 정상인은 없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영상을 보았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아내의 알람이 울린다. 아마 남편이 출근한 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모양이다.
손을 더듬어 스탠드 아래에 있는 핸드폰 알람을 끈 아내는 몸을 돌렸다가 등 뒤에 뭔가 있는 것을 느끼고 뒤를 본다. 키우던 고양이가 뒤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곤 웃음을 지은 아내가 고양이를 안아준다.
그러다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벌떡 일어나 고양이를 마구 흔든다.
음성이 지원되지 않는 영상이라 들리지 않지만 아내는 지금 고양이 이름을 부르짖고 있을 것이다.
마구 울며 고양이를 흔들어 깨우는 아내. 하지만 이미 죽은 고양이가 일어날 리가 없다. 아내는 고양이를 끌어안고 미친 사람처럼 울기 시작했다.
근 20분여를 울던 아내. 그러다 전화가 온다.
겨우 핸드폰을 붙잡고 전화를 받는 아내. 침대에 앉아 고양이를 끌어안고 우는 아내의 입 모양이 보인다.
관우가 그 모습을 뚫어지게 보며 입 모양을 읽는다.
“엄마…… 내가 자다가 실수로 우리 아이를 죽인 것 같아…… 이런 개 같은 새끼를 봤나.”
단지 고양이를 죽인 것이 아니다. 백승현은 이날 아내의 마음도 함께 죽였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그보다 더 큰 사실이다.
“장난의 강도가 점점 심해진다. 이제는 생명까지 죽였다.”
고양이를 죽인 것은 살인이 아니다. 목격자가 없으니 학대의 범주에도 들지 못한다.
이렇게 집에서 죽은 고양이들은 주인이 불법으로 매장하거나, 자연사라며 화장 업체를 불러 태우면 끝이다. 증거나 목격자가 있는 경우에만 동물학대 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 아내는 자신이 잠을 자다 등으로 눌러 질식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을 테니 조용히 처리하고 넘어갔을 확률이 높다.
물론 아내의 반응으로 보아 고양이를 무척 사랑하는 것으로 보이니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았을 것이다.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경우는 흔하지 않아.”
관우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보통의 반려동물은 포유류이고, 개나 고양이는 털을 날리니까. 청소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키웠다는 건 엄청 사랑한다는 뜻일 겁니다. 그런 고양이를 죽여서 아내에게 덮어씌우다니. 뭐 이런 짐승만도 못한 새끼가 있죠?”
영상 속 아내가 울부짖는다. 만약 아지트의 주인이 백승현이라면. 그는 보일러실에 앉아 이 영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며 낄낄대며 웃었던 걸까? 아니면 이로 인한 성적 흥분감이라도 느꼈던 걸까?
나는 점점 심각해지고 발전하는 백승현의 영상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다음 영상 재생해.”
관우는 한숨을 쉬며 마우스를 잡는다.
“후, 차라리 야동 볼 때가 나았네요.”
그리고 다음 영상이 시작되었다.
영상 속에서 백승현과 아내가 다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