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94화
15. 기묘한 시신(16)
KCSI.
잠을 자지 않아 눈이 벌겋게 충혈된 목 과장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 하나를 찢어 엎어버린 목 과장이 미친 사람처럼 쓰레기를 주무르고 있자, 요원 한 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과장님…… 그 쓰레기는 수거처가 보일러실이 아니라 건물 쓰레기장인데 왜 그런 것까지…….”
“…….”
목 과장은 말없이 쓰레기를 마구 뒤진다. 종량제 봉투 하나가 찢어져 쏟아질 때마다 검시실이 난장판이 됐지만 전혀 상관없다는 듯 쓰레기를 뒤진다.
그러다 멈칫한 목 과장이 떨리는 손으로 뭔가를 집었다.
“찾았다…….”
요원들이 놀라 달려온다.
“이게 뭡니까?”
피 묻은 거즈와 약 봉투들이 나온 쓰레기봉투. 목 과장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거즈들을 모으며 말했다.
“여기 혈흔 분석해서 백승현 DNA와 대조해!”
요원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이걸 분석하라는 말씀입니까? 이건 왜…….”
목 과장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 새끼 이마에 상흔이 있었다. 병원에서 다친 게 아니야. 분명히 싸우다 다친 상처다. 병원에 왔을 때 이미 상처를 치료한 상태였어. 그럼 그 새끼가 상처를 어디서 치료했겠냐? 당연히 아지트다. 깨끗하게 치웠다고 하지만 치운 쓰레기는 분명히 어딘가 버릴 수밖에 없다.”
“아…… 그러면 건물 쓰레기장을 뒤지신 게…….”
목 과장이 요원을 쏘아보며 다그친다.
“시간 없어! 빨리 움직여.”
“예!”
거즈를 든 요원이 자동문을 열자, 밖에서 여성 요원이 뛰어들어 오며 말했다.
“과장님! 현장에서 발견된 쪽지문 세 개 조합이 완료됐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완전한 지문이 아닐 경우 범인 특정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쪽지문이 얼마나 남았냐 하는 것에 사활이 달린 것이긴 했지만 그런 지문이 여러 개 남았을 경우 퍼즐 잇듯이 조합해 분석이 가능한 수준으로 복원하는 것이 가능해진 세상이다.
목 과장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바로 데이터 대조 들어가.”
“예!”
목 과장이 장갑을 벗어 던지며 쓰레기 더미를 노려보았다.
“법의학을 우습게 보지 마라, 이 개 같은 의사 새끼야.”
* * *
관우와 함께 확인 중인 화면.
아내가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백승현은 그런 아내가 귀찮다는 듯 상대를 안 하려 했지만 아내는 등을 돌리는 백승현을 돌려세우며 자기 말을 들으라는 듯 소리를 지른다.
백승현은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짓다가 아내를 강하게 밀었다. 그러자 아내가 침대 위에 앉는 것처럼 쓰러진다. 하지만 벌떡 일어난 아내가 백승현의 등을 강하게 민다.
백승현은 아내에게 밀려 벽에 얼굴을 부딪힌 후 표정이 변했다. 입 모양을 보니 욕을 하는 것 같다.
아내는 약이 바짝 올라 달려들었고, 백승현은 그런 아내를 강하게 밀친다. 이번에는 좀 전보다 강한 힘으로 밀렸는지 침대 위로 쓰러진 아내의 몸이 한참이나 밀려가 침대 반대편으로 굴러떨어진다.
관우가 욕을 하며 으르렁거린다.
“저 씨X놈이. 만삭 아내를 저렇게 민다고? 저게 사람 새끼가 맞는 겁니까?”
“조용. 일단 본다.”
백승현은 흐트러진 옷을 정리한 뒤 한숨을 쉬며 안방 화장실로 들어간다. 싸운 것은 싸운 것이고 출근은 해야 하니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때 침대에서 굴렀던 아내가 화장실로 뛰어들어 가는 것이 보인다. 화장실 문틈으로 보이는 모습. 백승현이 아내의 양팔을 붙잡고 밀어내고 있다.
관우가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상처!”
백승현의 이마에 상처가 났다. 아내가 만든 상처였던 것이다.
백승현은 잔뜩 열이 받은 얼굴로 아내 양팔을 붙잡고 벽에 밀어버린다. 충격으로 수건걸이가 아내 등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진다. 아내는 잠시 아파하다 다시 일어나 마구 울면서 덤빈다. 백승현의 팔을 할퀴고, 발로 찬다.
백승현은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하다가 몇 대를 맞고는 결국 뒤로 돌아서서 아내의 목을 붙잡고 욕실 방향으로 밀어버린다. 동시에 욕실 커튼이 아내 몸에 휘감기며 부서진다.
욕조 속에 이상자세로 쓰러진 아내. 미동이 없다. 바로 사망한 것인지 기절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백승현은 그런 아내를 힐끔 본 뒤 고개를 젓는다. 그러곤 다시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한 뒤 이마에 난 상처를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욕조 속에 있는 아내를 보며 고함을 친다.
아내가 저 자세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걱정되는 기색은 전혀 없는 백승현. 그는 화가 난 얼굴로 욕실 밖으로 나와 가방을 들고 나가 버린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욕실의 모습이 보였지만 욕실 밖으로 나온 아내의 다리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 침묵하던 우리. 관우가 이를 갈며 말했다.
“백승현이 범인 맞네요. 개새끼 넌 죽었다. 씨X놈.”
나는 화면을 노려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화면 속에서 백승현은 단지 아내의 목을 민 것밖에 없다. 사망의 치명적 원인은 이상자세로 인한 질식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백승현은 이상자세로 있는 만삭의 아내를 보고도 그냥 나갔습니다. 게다가 이 자세를 만들어놓은 것도 백승현이고요. 부정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 하지만 직접적인 살인과 형량이 달라. 어쩌면 백승현은 처음부터 두 가지 플랜을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는 살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살인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으로 틀겠지.”
건달들이 사람을 해칠 때 주로 허벅지를 찌른다. 허벅지는 대동맥이 지나는 자리로 대량의 출혈이 발생한다. 하지만 관통상 자체가 치명상이 되진 않고 과다 출혈이 사망 원인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깡패들은 허벅지를 찌르고 만약 상대가 살아나 고소를 하면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는 주장을 하며 법망을 피해가는 것이다. 백승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분명 이 영상이 밝혀지면 후자의 주장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턱을 쓸며 말했다.
“일단 형량이 줄든 어쩌든 이 영상으로 백승현을 구속할 수 있어.”
나는 바로 영상을 주 검사에게 전송한 뒤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했다. 주 검사는 내 전화를 받으며 영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수고 많았습니다. 일단 이 영상으로 백승현을 긴급구속하겠습니다. 이 영상을 본 마이클 박사 쪽 얼굴이 궁금하군요.
“음, 마이클 박사의 주장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는 백승현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자기 논문의 주장을 증명하고자 온 겁니다.”
-무슨 뜻이죠?
“영상 속에 아내는 즉사했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즉, 백승현이 원인을 제공하긴 했지만 의도적으로 살인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마이클 박사는 이 틈을 파고들어 자기 논문의 타당성을 증명하려 할 겁니다.”
-음…… 결국 계획적 살인을 증명하긴 어렵다는 겁니까?
“함께 발견된 영상 속의 장난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법정에서 정신과 상담의를 대동하여 이러한 장난이 살인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 끝까지 복잡한 사건이군요. 추가 증거가 없을까요?
“글쎄요. KCSI 쪽에서 뭔가 나오길 기대해 봐야죠.”
-일단 알겠습니다. 그래도 짧은 시간 내에 이만큼 증거를 수집할 수 있었던 건 과장님 공이군요. 역시 청장님이 인정할 만한 분이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외투를 입으며 말했다.
“영상 몇 개 남았어?”
“두 개요.”
“계속 확인하고, 다른 영상들도 일단은 계속 확인해. 난 KCSI 다녀올 테니.”
“예, 다녀오세요.”
차를 몰아 도착한 KCSI.
미리 전화를 하고 왔던 나는 로비에서 씩씩대는 목 과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목 과장님이 날 보자마자 말했다.
“이 새끼가 범인이야.”
“백승현 말입니까?”
“거즈에서 백승현의 혈흔이 나왔다. 발견된 쪽지문을 조합했을 때도 백승현 본인 지문과 93% 일치해.”
“…….”
“이 새끼 체포해.”
“이미 주 검사님이 체포했습니다.”
목 과장님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중얼거린다.
“후, 또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 다행이군.”
“…….”
목 과장님은 한시름 덜었다는 얼굴을 하다 내 표정이 나아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사건 해결된 거 아니야? 영상도 발견했다며?”
아까 차에서 전화로 상황을 전달해 이미 사건이 해결된 것으로 생각한 목 과장님.
“그게…….”
나는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백승현이 어떤 주장을 할지에 대해 말했다. 처음에는 그게 말이 되냐는 얼굴로 듣던 목 과장님은 내 설명을 들으며 점점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백승현이 아내와 싸우고 욕실로 민 것까지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살인의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할 거라 이 말이야?”
“예.”
“…….”
언뜻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법이란 것이 원래 그렇다. 이 각도에서 보면 당연한 범인도 다른 각도로 보면 범인으로 볼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백승현은 우발적 살인보다 더 적은 형량을 받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목 과장님이 한숨을 쉬며 자기 손을 바라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는데…… 이제 더 해볼 수 있는 것도 안 남았다……. 또 이대로 지는 걸까?”
낙담한 얼굴의 목 과장님. 물론 과장님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난 건물 쓰레기장을 뒤진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 해봤다. 이건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목 과장님이기에 발견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능범의 계획은 우리의 수사 방법까지 고려해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목 과장님은 자기 손을 가만히 내려 보다 주먹을 꽉 쥔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아내의 시신부터 다시 살핀다.”
“…….”
솔직히 시신을 다시 본다고 방법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이 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이라면 또 모를까 3D 영상까지 돌려 시신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시대에 놓친 것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의 검안에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목 과장님의 눈빛에는 집념이 이글거린다. 하지 말라고, 이제 포기하라고 말한다고 해서 들을 사람이 아니기도 하다.
목 과장님은 그런 날 보며 말했다.
“도경아.”
“예.”
“형사가 사건을 포기하면 범인이 발 뻗고 자는 거다. 우리가 범인 새끼한테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는 사건을 해결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거다. 자기를 쫓는 형사가 있다는 것을 아는 범인은 절대 발 뻗고 편하게 잘 수 없다.”
“…….”
목 과장님은 KCSI 요원이지만 그도 경찰이다. 범인을 잡겠다는 집념은 일선 형사들 못지않은 사람이다. 나는 옷을 단정히 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 수 배웠습니다, 과장님.”
목 과장님이 충혈된 눈으로 씩 웃으며 말했다.
“부검 같이할래?”
솔직히 아직까지는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나약한 사람이 되긴 싫다.
“예, 그러죠.”
“좋아, 먼저 가 있어. 난 자료를 다시 한번 살피고 갈 테니까. 애들 시켜서 시신부터 옮기라고 할 테니 넌 가서 준비하고 좀 쉬어라.”
“예, 과장님.”
잠시 후 검안실.
두 명의 요원들이 백승현의 아내 시신을 밀고 들어와 장비를 세팅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구석에 앉아 시신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나.
‘당신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줄 길이 없네요.’
열 달을 품고 있던 자식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아내.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며 울부짖고 있을 것이다.
죽인 것은 그의 남편이나, 죽음을 밝혀내지 못한 건 오롯이 우리의 잘못이다. 경찰은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이니까.
나는 손을 모으고 아내의 옆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제 능력이 닿지 않아서.’
마음속으로 진심을 담은 사과를 하는 나. 동시에 아내를 죽이고 태연히 빠져나가려고 하는 백승현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를 갈았지만 현재는 다시 처음부터 조사를 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아내를 죽이고도 뻔뻔하게 다음 플랜을 세우고 있겠지. 백승현 너라는 놈은.’
바로 그때, 내 눈에 보이는 아내의 시신이 서서히 흑백으로 물들며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