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96화 (195/328)

살인의 기억 196화

15. 기묘한 시신(18)

관우와 함께 에어컨 안쪽에서 카메라를 찾아 돌아온 사무실.

오진규가 사무실에 앉아 취조 보고서를 쓰다 고개를 든다.

“오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물었다.

“양진승 취조 끝났습니까?”

오진규가 휘파람을 불며 기지개를 켠다.

“이야, 노숙자 진술 오랜만에 땄는데 여전히 힘드네요. 워낙 비협조적이니 이건 뭐.”

“어떻게 하셨습니까?”

오진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밥 시켜줬죠. 영수증 올렸는데 다 처리해 주실 거죠?”

나는 내 자리로 가 PC를 켜고 전자영수증을 확인했다.

“설렁탕, 수육, 짜장면, 탕수육? 이걸 혼자 다 먹은 겁니까?”

오진규가 웃으며 말했다.

“소주도 한 병 먹었습니다. 그건 그냥 제 돈으로 사 먹였죠.”

그래, 이 정도야 뭐. 진술만 제대로 했으면 됐다.

“계좌 개설한 사람이 백승현이 맞답니까?”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확실하답니다. 당시 30만 원을 받고 계좌를 팔았답니다.”

“법정 진술 가능하겠죠?”

“밥 잘 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하.”

내가 오진규와 대화하던 사이 자기 자리에서 아내의 SD카드에 담긴 내용을 확인하던 관우가 이를 갈았다.

“과장님, 이 새끼 범인 맞네요.”

나는 한숨을 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드 복사본 만들어두고 원본은 줘.”

“예, 1분이면 됩니다.”

관우가 복사본을 만드는 사이 주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백승현의 취조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나는 곧 가겠다고 말한 뒤 관우에게 SD카드를 받아 검찰청으로 향했다.

검찰청에 도착해 취조실로 가니, 모니터링실에 주 검사와 최영현의 팀원들이 앉아 있고, 취조실 안에는 최영현이 백승현과 마주 앉아 있다.

나는 주 검사에게 눈인사를 한 뒤 취조실을 보며 물었다.

“변호사는 어디 갔습니까?”

주 검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필요 없답니다. 본인 진술은 스스로 할 테니 선임하지 않겠다고 하네요. 아주 지가 테드 번디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죠?”

나는 구석에 있는 현승이를 바라보았다.

“노트북 좀 빌릴 수 있을까? SD 카드 리더기도.”

“아! 예, 과장님!”

노트북과 리더기를 받은 나는 주 검사를 보며 요청했다.

“잠시 제가 취조해도 되겠습니까?”

주 검사가 날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실 이건 무척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다. 이 사건은 내 담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영현은 그리 생각하지 않겠지만 삼자의 눈으로 보면 갑자기 끼어든 타 팀 인력이 사건 해결에 한발을 올리려는 모양새로 보일 것이다.

주 검사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 최영현의 팀 소속 형사들을 보았다.

“강력 3반이 허락한다면 나야 막을 이유가 없죠.”

나는 강력 3반 형사들을 보았다. 다들 약간 떨떠름한 얼굴이지만 차마 내 앞에서 반대하진 못하고 있다.

나는 노트북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백승현 죄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입수했습니다.”

형사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주 검사도 놀란 얼굴로 물었다.

“거기 들어 있는 겁니까? 증거가 무엇입니까?”

“…….”

나는 취조실 안에 있는 백승현의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걸 보고도 저렇게 태연한 얼굴을 할 수 있는지 보고 싶네요.”

내 이글거리는 눈빛을 지켜본 주 검사가 다시 형사들을 본다.

“음, 그렇게 말하면 말릴 수가 없네요. 확실히 자백받아 낼 수 있는 겁니까? 마이클 박사가 인근 호텔에서 대기 중인데. 언제든 나설 수 있는 양반입니다.”

“그는 곧 토론토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주 검사가 다시 형사들을 본다. 너희 공을 눈 뜨고 뺏길 셈이냐는 눈빛.

나는 형사들을 보며 말했다.

“이 사건의 공식 기록에서 내 이름은 제외하도록 하세요. 모든 건 강력 3반이 해결한 겁니다.”

다들 놀란 얼굴이 된다. 공무원 사회 중 경찰 계통은 오로지 실적이 전부인 곳이다.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공치사에서는 물러나는 공무원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눈앞에 그런 인간이 서 있는 것이다. 다들 말을 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를 보다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정말……이십니까, 과장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약속하죠. 여기 검사님도 계신 자리인데 거짓말을 할 리가요.”

형사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취조실을 바라본다. 태연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백승현 덕분에 얼굴이 새빨개진 최영현이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래서는 지능범에게 자백을 받아낼 수 없다.

주 검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뭐 해요? 최 경위 나오라고 하지?”

형사 한 명이 얼른 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팀장님. 현 과장님이 들어가신답니다. 나오세요.”

잔뜩 열이 받아 있던 최영현이 테이블 위에 서류철을 쾅 내려친 뒤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모니터링실 문을 벌컥 연 최영현이 외쳤다.

“아아아악!! 저 개새끼 저거!”

형사 몇이 최영현에게 방금 내가 한 말을 전한다. 눈이 동그래진 최영현이 날 보며 물었다.

“진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 겁니까?”

나는 노트북을 슬쩍 들어 보이며 말없이 모니터링실을 나섰다.

취조실.

내가 문을 열자 수갑을 차고 앉아 있던 백승현이 눈썹을 꿈틀한다. 표정을 보니 날 기억하는 모양이다.

“두 번째 보는군요.”

“…….”

백승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모니터링실 쪽을 노려본다.

“지금 내가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았다고 자꾸 형사 바꿔가며 같은 진술을 하게 하는 겁니까?”

나는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앉으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부르고 싶으면 부르세요. 체포되실 때 들었겠지만 대한민국 헌법은 변호인 선임을 허가합니다.”

“…….”

백승현은 날 노려보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합시다. 변호사가 한두 푼에 불러지는 것도 아니고.”

“재산은 꽤 여유 있으신 걸로 압니다만.”

“아끼고 사니까 여유가 있는 겁니다. 없이 사는 사람은 줄줄 새는 돈이 많아 계속 없이 사는 거죠.”

“하하, 그렇습니까? 자, 그럼 들어볼까요?”

백승현은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치 연극 배우가 대사를 외우듯이 줄줄 진술을 시작한다.

“방금 왔다 간 멧돼지 같은 형사님께도 말씀드렸지만 나는 아내를 죽일 의도가 없었습니다. 아침에 가볍게 다퉜고, 욕조로 민 것은 맞지만 죽일 의도는 없었습니다.”

“…….”

백승현은 최영현에게서 아지트에서 발견된 영상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플랜 B를 내놓는 것이다. 자신과의 다툼으로 인해 아내가 죽은 것은 맞지만 죽일 의도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것이 그의 주장이며 이것은 나의 예측 안에 있다.

“계속하세요.”

백승현은 최영현과 달리 태연한 얼굴로 진술을 듣고 있는 날 노려본 뒤 말했다.

“그게 끝입니다. 아내가 욕조로 넘어지는 걸 봤지만 그때는 저도 화가 나 있었고 지각할 것 같아 빨리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아침에 예약 환자가 있었기 때문에 늦을 수 없는 상황이라 그랬습니다.”

나는 최영현이 두고 간 파일을 보았다. 백승현의 말처럼 그는 아침에 예약 환자가 있었다.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행위이다.

나는 백승현을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백승현 씨.”

“예.”

“그럼 아침에 아내와 왜 싸우신 겁니까?”

“…….”

“가볍게 싸우셨다고 했는데, 누가 아내와 가벼운 싸움 중에 몸싸움을 합니까? 그것도 욕조 커튼이 다 망가질 정도로 강하게 미셨던데.”

백승현이 테이블을 쾅 때리며 외쳤다.

“영상을 보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내 쪽에서 먼저 때렸습니다! 전 침대 쪽으로 밀치고 빨리 출근 준비를 하려 했는데 욕실까지 쫓아와서 절 때렸습니다! 그래서 우발적으로 민 겁니다!”

나는 턱을 괴고 백승현을 보며 태연하게 물었다.

“그러니까요. 아내분이 왜 그렇게 화가 나셨냐고 묻는 겁니다.”

“…….”

백승현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그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백승현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날 바라본다. 눈알을 굴리거나 하는 수준 낮은 짓은 하지 않는다. 날 똑바로 보는 연기를 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으리라.

“원래 평소에 다툼이 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집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내는 무척 깔끔합니다. 병적으로 깔끔해서 가끔 숨이 막힙니다.”

“집이 깨끗하긴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안 그렇습니다.”

“네, 백승현 씨의 사무 공간을 보니 그런 것 같더군요. 보일러실도 마찬가지고.”

“…….”

“아, 혹시 보일러실이 본인 소유가 아니라는 주장은 하지 마세요. 법정에서 불리하실 겁니다. 이미 거기서 나온 피 묻은 거즈에서 당신 혈흔이 나왔고 완전하지 않은 지문 여러 개를 조합해 당신이 거기 있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추가로, 당신이 2년 전에 30만 원을 주고 노숙자의 명의를 빌려 계좌를 개설한 사실도 확인되었고.”

백승현의 눈썹이 다시 꿈틀거린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것을 미리 알려주는 행위는 자신에게 반론을 제시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 인정했다.

“예, 거기 제가 빌린 곳입니다.”

나는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계속하세요.”

백승현은 최영현을 상대할 때와 다르게 자신이 질질 끌려가는 것을 느끼고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날 노려본다. 침묵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아내와 집 정리 문제로 자주 다퉜습니다. 그날도 그런 이유로 싸운 겁니다. 침대에 씻지 않고 올라가는 것이나, 외출 후 발을 씻지 않는 문제. 쓰레기를 정리하지 않는다는 특별할 것 없는 이유였습니다.”

“보통의 부부들처럼 말이죠?”

“예.”

“그런데 당신이 찍은 영상 속의 행동도 보통의 부부들이 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을까요?”

백승현이 슬쩍 웃더니 의자에 등을 기대며 편안히 앉는다.

“그 노트북 인터넷 되는 겁니까?”

“예, 물론입니다.”

“너튜브에 들어가 ‘아내 몰래 카메라’라는 키워드를 입력해 보시겠습니까?”

“왜 그래야 하죠?”

“수많은 검색 결과가 나올 겁니다. 주로 남편이 아내 몰래 장난을 치고 반응을 찍는 영상이죠. 물론 아내가 남편에게 장난치는 영상도 있고.”

“그 영상의 수위도 당신이 친 장난들과 비슷합니까?”

“더 심한 것도 있습니다. 밤에 화장실 가는 버릇이 있는 아내를 놀리기 위해 화장실 변기에 보이지 않는 얇은 비닐 랩을 씌워놓기도 하죠.”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변기 위에 비닐 랩 같은 걸 보이지 않게 씌운 모양인데 그 상태에서 배변을 하면 둔부가 다 젖었을 것이다.

정말 그런 짓을 장난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 나는 백승현을 뚫어지게 보다 진짜 그런 영상이 있는지 확인했다.

우리나라의 영상은 아니지만 외국 영상 중 정말 그런 영상이 있었고 조회수가 백만이 넘는다. 댓글을 보니 많은 사람이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나는 노트북을 닫으며 백승현을 보았다.

“그래서, 당신도 이런 장난을 친 것뿐이라는 겁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당신의 행동으로 아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잘 아실 텐데요.”

백승현이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본래 장난이란 게 상대 반응이 격하면 격할수록 재미있는 법이죠.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합시다. 제가 친 장난 속에 살해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거.”

“고양이를 죽이셨던데.”

“아, 그건 뭐 인정하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 동물보호법? 학대금지법? 벌금이 50만 원쯤 되나요? 기꺼이 내겠습니다.”

뭐 이런 씨X 새끼가 다 있지? 이러니 최영현이 저렇게 열이 받아 뛰어나갔구나. 나는 의기양양한 백승현을 노려보았다.

백승현은 그런 내 눈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노려본다. 나는 노트북을 열어 백승현 쪽으로 돌린 후 지금까지의 취조와 다르게 으르렁거렸다.

“백승현.”

“…….”

“네 그 장난이 네 아내에게 어떻게 가서 닿았는지. 어떤 일이 생겼는지. 두 눈깔 똑바로 뜨고 봐. 이 씨X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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