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200화 (199/328)

살인의 기억 200화

16. Journey to crime(2)

콩닥, 콩닥, 콩닥…… 쿵쿵쿵…….

‘헉! 헉! 헉! 헉!’

젠장, 또 같은 기억인가? 도대체 왜 자꾸 이런 게 보이는 거야? 사건 기억도 아닌 것 같은데.

하얀색에 아기자기한 무늬가 들어간 포대기가 시야 안에 들어와 있고 땀이 뚝뚝 흐르는 여인의 턱이 보인다. 여성이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이 여인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거나, 혹은 도망치고 있다.

‘헉! 헉! 헉! 헉!’

심장이 터질 기세로 뛰고 있는 여인. 달리던 여성이 품에 안고 있던 나를 꺼낸다.

나는 지난번에 이 부분에서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주변 풍경을 노려보았다. 맨 먼저 지난번에 스쳐 가듯 보였던 건물 지붕 위에 무언가.

순식간에 스쳐 지나 확실히 보진 못했지만 붉은색 뾰족한 벽돌 건물 꼭대기에 십자가가 걸려 있다. 교회일까? 혹은 성당일까?

여인이 날 계단 위에 내려놓는다. 나는 여인의 뒤편으로 회색의 커다란 건물이 있는 것을 보았다. 공장 건물 같아 보인다. 한 개가 아니라 여러 동의 단층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다.

여인이 포대기를 들춰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너무나 슬픈 눈빛. 너무나 급박하고 낭패한 얼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여성이 내 이마를 만지며 눈을 맞춘다.

‘엄마가 미안해. 금방 찾으러 올게. 조금만 기다려, 내 아기.’

여전히 이 사람은 아름답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친밀함이 느껴진다. 아마 이 기억이 엄마를 보는 아기의 기억이라 그런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고 싶었지만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내 시야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옆을 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건 계단 위에 둘둘 말려 있는 신문 뭉치뿐이다. 나는 신문을 힐끔 보았지만 뭐라고 써 있는지는 읽을 수 없다. 아직 고개 돌릴 힘이 없는 갓난아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하나. 신문에 기재된 날짜를 읽을 수 있었다.

1989년 3월 10일.

여자는 잠시 날 바라보다 급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놀란 눈빛의 여성이 움찔한다. 그러고는 바라본 방향을 향해 뛴다. 모든 것이 첫 번째 읽었던 기억 그대로이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이고, 이 여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나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기억에서 빠져나와 눈을 떴다. 최예림 선생의 치료실이다.

나는 또 하나 여전히 이상한 점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습관적으로 머리를 어루만진 나는 눈을 깜빡이며 내 상태를 관조했다.

‘어지럽지 않다.’

무엇일까? 나는 항상 다른 이의 기억을 읽어낼 때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런데 이 기억은 다르다. 첫 번째 읽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전혀 어지럽지 않다. 그저 잠을 오래 자고 일어났을 때 약간 머리가 띵한 정도의 느낌이다.

나는 눈주름을 만들며 주변을 보았다. 내 옆에 있던 최예림 선생이 자기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뭔가 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생각보다 오래 잠들었던 모양이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날 발견한 선생이 헤드폰을 벗고 말했다.

“일어나셨어요?”

“얼마나 잤습니까?”

“대충 한 시간 반이요.”

“오래 잤네요. 오늘 치료는 끝입니까?”

“네, 휴식이 목적이니까요.”

“선생님.”

“네?”

나는 최예림의 앞에 가서 섰다.

“혹시 이 병원 환자 중에 아기를 잃은 엄마가 있습니까?”

최예림 선생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하지만 환자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 그녀는 입을 다문다. 나는 다시 말했다.

“이건 경찰로서 질문하는 겁니다.”

경찰로서 하는 질문.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묻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똑똑한 선생답게 바로 내 말을 파악한 최예림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있어요.”

“어떤 환자입니까? 개인신상은 묻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겪은 사람인지만 설명해 주세요.”

최예림 선생이 턱을 괴고 날 바라보다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네 번 유산한 환자였어요.”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유산이요?”

“네, 거듭되는 유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어했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남편이 직접 데리고 온 환자입니다.”

이 사람은 아니다. 일단 기억 속의 여성은 성당인지 교회인지 모를 건물 앞에서 아기를 잃었다. 유산은 배 속에서 아기를 잃는다.

“또 없습니까?”

“화재 사고로 아이를 잃은 환자분이 계시긴 한데.”

“화재 사고? 아이가 몇 살이었습니까?”

“여덟 살 남아였습니다.”

이 사람도 아니다. 기억 속의 아기는 갓난아기였다.

“또 없습니까?”

“네, 두 분만 계세요.”

“음.”

“왜 그러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

말해서도 안 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말도 없다. 최예림은 내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수사기밀인가 보군요. 그럼 물을 수 없죠. 아참, 안 그래도 깨우려고 했어요.”

깨워? 자는 것이 치료라고 하지 않았나?

“무슨 일 있습니까?”

최예림 선생이 스피커에서 헤드폰을 뽑은 후 모니터 화면을 보여준다. 화면에 뉴스 영상이 올라와 있다.

“이 뉴스 때문에.”

나는 그녀 앞에 선 채로 화면을 보았다. 영상을 재생하자 여성 앵커가 뉴스를 전하는 소리가 들린다.

[안산경찰서는 오늘 연쇄 퍽치기 살인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해당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범인은 2개월 전부터 범행을 시작, 현재까지 총 11건의 사건을 저질렀으며, 이로 인해 두 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경찰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으며, 안산경찰서장은 금일 모든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나는 뉴스를 보며 인상을 썼다.

“11건이라고?”

11건 중, 두 명이 사망. 안타까운 사건이다. 하지만 경찰 입장에서 보면 11명의 피해자 중 9명이나 살아남은 사건이다. 목격자가 아홉이나 되는데 아직 못 잡았다고? 도대체 왜?

뉴스 속 앵커가 다시 입을 연다.

[아울러 청와대 대변인은 금일 기자회견을 통해 해당 사건을 얼마 전 지하철 괴담 사건을 해결한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에 맡기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최예림 선생이 웃으며 물었다.

“전에도 궁금한 문제였는데 원래 경찰이 청와대 지시로 움직이나요? 경찰청장님이 아니라 매번 청와대가 나서네요?”

“…….”

개X끼들. 일은 우리가 하는데 해결하고 칭찬은 자기들이 받겠다는 속셈이겠지. 지금쯤 이 뉴스를 본 강혁 아저씨가 길길이 날뛰고 계시겠구나. 하지만 아저씨도 어쩔 수 없을 거다.

최예림 선생이 급히 옷을 걸치는 날 보며 말했다.

“청으로 가시겠네요. 오늘은 좀 쉬라고 하고 싶었는데.”

나는 선생을 힐끔 보며 방을 나섰다.

“경찰이 사건을 게을리하면 희생자가 늘어나는 겁니다. 그럼 이만.”

최예림 선생이 닫히는 문을 보며 싱긋 웃는다.

“멋진 말이네요.”

* * *

경찰청장실.

국가수사본부 건물과 다르지만 바싹 붙어 있는 청 건물의 최상층을 찾은 나는 밖에서도 다 들리는 강혁 아저씨의 고함 소리를 듣고 고소를 지었다.

“아니! 청와대면 답니까? 어떤 사건에 누굴 투입하는지는 우리가 정하는 겁니다! 국민들 앞에서 다 싸질러 버리고 우리는 그냥 당신들 놀음에 놀아나라는 겁니까?”

내 저럴 줄 알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저씨의 방 앞에 섰다. 비서가 날 만류하며 말했다.

“지금은 손님이 계십니다, 과장님.”

“본부장님도 안에 계시죠?”

“네, 그런데 다른 손님도 계셔서.”

“괜찮습니다. 제가 책임지죠. 들어가겠습니다.”

“저기, 과장님!”

나는 비서의 만류를 뿌리치고 노크를 했다. 안에서 강혁 아저씨의 짜증스러운 외침이 들려온다.

“어떤 새끼야!”

화가 잔뜩 난 아저씨의 목소리. 나는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경입니다.”

“…….”

“들어가도 되죠?”

“……들어와.”

아저씨 허락을 받고 문을 열자 장영훈 본부장님과 아저씨 얼굴이 보인다. 둘 다 얼굴이 빨개져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다. 그리고 두 분 앞에 정장을 입고 금테 안경을 쓴 중년인이 앉아 있다.

나는 경례를 한 뒤 말했다.

“뉴스 보고 부르실 것 같아서 알아서 왔습니다.”

강혁 아저씨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정장의 중년인을 노려본다. 내 말을 들은 중년인이 돌아보며 말했다.

“수사과장님?”

이 아저씨는 누구일까? 강혁 아저씨가 화를 내고 있는 걸 보니 청와대 쪽 사람인 것 같은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금껏 자리에 앉아 있던 그가 일어나며 악수를 청한다.

“청와대 민정수석 조민석입니다.”

헐, 민정수석? 이렇게 높은 사람 앞에서 화를 내고 있었던 거야? 아저씨, 아무리 임기 2년이라지만 민정수석 눈 밖에 나면 말년이 힘들어질걸요?

놀란 얼굴의 내게 명함을 내미는 조민석이 악수를 하던 손을 놓지 않고 잡아끈다.

“자자,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조민석이 날 억지로 앉힌 후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이거, 우리 쪽에서도 좀 당황스럽습니다. 어쩌다 보니 청와대가 경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긴 했는데 결코 고의가 아닙니다. 지난번 사건처럼 국민청원이 있었다 생각해 주시겠습니까?”

“…….”

뭐 사실 그런 건 관심도 없다. 난 청와대 게시판에 들어가 보지도 않는 사람이니까. 내가 나서서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슬쩍 본부장님과 아저씨를 보았다.

잔뜩 열이 받은 강혁 아저씨가 말했다.

“웃기는 소리.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청원도 안 들어갔지 않습니까?”

조민석이 씩 웃으며 비서에게 손짓하자, 구석에 있던 남자 수행비서가 태블릿을 가지고 온다. PC를 조작한 조민석이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금일 오후에 청원이 있었습니다.”

화면 속에 진짜 국민청원이 올라와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사건을 국수본에서 다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능력을 인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이건 좀 아니다. 어떤 사건을 어느 부서에서 다룰지는 경찰청이 지정해야 할 문제이다.

장영훈 본부장님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청원 동의자가 2천 명입니다만.”

조민석이 안경테를 밀어 올리며 웃는다.

“청원이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럴 겁니다. 동의자 숫자 올라가는 거야 순식간이죠. 지난번 지하철 괴담 사건 때도 며칠 만에 30만을 돌파했습니다. 아마 이 사건도 그럴 겁니다.”

강혁 아저씨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말했다.

“그건 예상이고!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청와대가 지시 내릴 수 있는 건 수사를 하라 마라는 정도이지, 어떤 팀을 투입하라는 지시를 하는 건 명백히 월권 아닙니까!”

조민석이 강혁 아저씨를 가만히 바라보다 태블릿을 내려놓는다.

“얼마 뒤에 총선이 있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청장님.”

“그게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청장님. 아직 50대 아니십니까? 60도 안 되어 은퇴하시게 될 텐데. 은퇴 후의 삶에 대해 걱정이 안 되십니까?”

강혁 아저씨의 눈썹이 무섭게 일그러진다.

“뭐?”

아이고 민정수석님. 사람 잘못 건드리셨네.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왔구나, 쯧쯧. 오늘 사람 하나 실려 나가겠다. 근데 민정수석이나 되는 사람을 때려도 되는 걸까? 말려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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